메뉴 건너뛰기

close

쌀 수입허가제 폐지는 그저 쌀 관세율을 정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농업과 국민 식생활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나아가 아이들에게 유전자 조작 쌀을 먹일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세월호의 슬픔 이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세상을 아이들에게 바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65년 동안 이어져 온 쌀 수입허가제

두 차례 연재(관련기사 : '쌀 수입허가제 폐지'... 왜 박근혜 대통령은 말이 없나) 중 마지막인 이 글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쌀 수입허가제 폐지의 의미에 대해 간략히 보충하고 싶다.

1950년 2월에 시행한, 그러니까 민족상잔의 비극이 발생하기 전의 양곡관리법은 "양곡을 수입 또는 수출을 하고저 하는 자는 정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여 양곡을 밀수입한 자는 10년 이하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하도록 했다(11조, 21조). 이 쌀 수입허가제는 지금까지도 그 골간이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이 체제에 하나의 구멍을 낸 것이 바로 1994년의 우루과이라운드(UR)이다. 당시 '쌀은 지키겠다'고 한 김영삼 정부는 쌀 수입허가제를 유지하되, 쌀 소비량의 4%를 저관세율로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하기로 했다.

1995년의 양곡관리법은 이 의무 수입량을 시장접근물량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국가가 별도로 국영무역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이 물량은 2004년 노무현 정부의 쌀 협상 결과 8%로 증가했다.

현행 관세법상 쌀의 기본 관세율은 5%이다. 이 관세율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전의 체리 관세율 24%보다도 더 낮다. 그런데도 왜 상인들은 지난 60년 동안 값싼 중국쌀과 미국쌀, 태국쌀, 베트남쌀을 한국으로 수입해서 팔지 못했는가? 그것은 양곡관리법의 쌀 수입허가제와 처벌 조항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관세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상인들이 관세만 물면 쌀을 자유로이 수입하는 체제이다. 즉 양곡관리법의 쌀 수입허가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물론 이 체제에서도 저관세율 의무수입량(매년 연 40만5천톤, 2014년 기준 국내 소비량의 10% 추산) 여전히 국가가 의무적으로 수입해서 따로 관리한다.

유전자 조작 쌀밥이 식탁에 오를 수도 있어

 고령의 농민들이 '친환경농업의 위기'를 걱정하는 농업인의 염원을 담아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는 장면.
 고령의 농민들이 '친환경농업의 위기'를 걱정하는 농업인의 염원을 담아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는 장면.
ⓒ 희망먹거리네트워크

관련사진보기


나는 쌀 수입허가제라는 사회안전망을 확실한 대책 없이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 뒤에는 유전자 조작 쌀 상업화가 도사리고 있다. 미국은 이미 쌀 수입허가제를 폐지한 일본과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협상을 하면서 쌀 유전자조작 검사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쌀 수입 국영제에서는 유전자 조작 검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쌀 수입이 자유화되면 유전자 조작 검사를 폐지하라는 미국의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 유전자 조작 쌀이 상업화될 것이다. 이것이 그저 나의 기우일 뿐일까.

2012년 국회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청회에서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나를 향해, '식자우환(識字憂患,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라고 했다.

"쌀은 지키겠다"는 김영삼 정부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어떤가. 박근혜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한국은 매년 쌀 소비량의 10%가 넘는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쌀 수입허가제를 폐지해야 한다. 20년 전,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쌀 문제를 염려했던 사람들을 식자우환이라 비판할 수 없는 이유다.

유전자 조작 쌀이 상업화되면 우리는 소가족농 친환경농업이라는 한국 농업의 특성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의 농업 여건에서 유전자 조작 쌀 농사와 친환경 쌀 농사를 칸막이 쳐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실 이미 한국의 소가족농 친환경농업에 대한 집요한 공격이 있었다. 미국은 미국의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한 안전성 개념과 그 심사 기준을 그대로 한국에 심었다. 우리 내부에서도 소가족농의 친환경 농업에 기초한 식품망에 대한 공격은 끊이지 않는다.

서울시교육청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도한 친환경급식의 기초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농약은 과학이다'라고 하면서 친환경 농산물 대신 일반 농산물을 급식에 사용하라고 요구했다. 이 일반 농산물을 농림부는 'GAP 농산물'로 불렀다. 결국 서울시 친환경유통센터에서 체계적으로 공급되던 친환경 농산물은 학교 급식에서 떨어져 나가 고사될 위기에 놓였었다.

쌀 수입허가제 폐지 문제는 단순히 쌀 관세율을 계산해서 세계무역기구에 통보하는 그러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박근혜 정부에게 권한다. 내부 합의 없이 올 9월에 쌀 수입허가제 폐지를 통보하려는 시도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국회가 양곡관리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쌀 수입허가제는 절대 폐지되지 않는다. 세계무역기구에 백 번, 천 번을 통보한들 마찬가지이다.

설령 농림부의 해석처럼 한국이 내년 1월 1일부터 쌀 수입허가제를 폐지해야 할 국제법적 의무가 있다고 하자.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의무 이행이란 정부가 독점할 것이 아니다. 국회가 주도해서 해야 한다.

수입허가제 폐지보다 이게 먼저다

 전남 나주시 동강면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안영일(60)씨가 주민들이 떠나면서 아까운 농지가 버려지고 있다며 안타깝게 자신의 논을 지켜보고 있다.
 전남 나주시 동강면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안영일(60)씨가 주민들이 떠나면서 아까운 농지가 버려지고 있다며 안타깝게 자신의 논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나는 정부가 쌀 수입허가제 폐지에 앞서 최소한 3가지 안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농가 소득 안정이다. 지금의 쌀 목표가격제는 유명무실하다. 쌀 시세가 하락하면 할수록 오히려 보전할 수 없는 손해가 늘어나는 지금의 목표가격제를 폐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쌀 농사 소득을 보장하는 수매제나 미국식 사전 수매제로 변경해야 한다.

둘째, 쌀 관세율 결정 절차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이번에 정할 쌀 관세율이 앞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나 태평양 동반자 협정(TPP)에서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소가족농 친환경농업이라는 한국 농업의 특성과 가치 위에서 식품망을 짜야 한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의 개방 농정 후부터 40년 동안 추진한 규모화, 전업화 농업 정책은 실패했다. 지역 친환경농업에 근거한 학교 급식, 유전자 조작 쌀 금지 그리고 소농을 위한 농지개혁을 뼈대로 하는 새 식품 정책을 구성해야 한다.

2005년 11월, 쌀을 지키기 위해 농민들이 생명을 잃었다. 그 해, 당시 마흔 하나인 여성농민 고 오추옥씨가 "쌀 개방 안 돼"를 유서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어 당시 예순 여덟인 고 홍덕표 농민과 마흔 여섯의 고 전용철 농민이 쌀 수입허가제 폐지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 경찰의 폭력적 진압으로 목숨을 잃었다.

나는 박근혜 정부와 국회에 이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아 달라고 호소한다.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세월호의 고통과 슬픔 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세상을 아이들에게 바치고 싶은 소망을 실현해 주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송기호 기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 모임의 변호사이다.



#쌀수입허가제#유전자조작쌀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