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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YESA(청년과학기술자모임)는 고압 송전탑 문제로 피해를 받고 있는 여수 봉두마을을 방문했다. 방문 조사를 통해 송전탑 설치 상황 및 피해 상황에 관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고, 과학기술계 종사자들로서 고압 송전탑이 내뿜는 유·무해성에 관한 과학적 규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절감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송전탑 건설 문제는 고압 송전선 전자파 유·무해성의 과학적 규명 이전에 우리나라의 민주성과 봉두마을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더욱 본질적으로 제기하고 있었다. - 기자말

주민 8명당 1개의 송전탑이 서 있는 봉두마을

봉두마을에 들어선 송전탑
 봉두마을에 들어선 송전탑
ⓒ 봉두마을 송전탑 철거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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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율촌면 산수리에 위치한 봉두마을에는 80세대 200여 명 정도가 살고 있다. 꼼꼼하게 지도를 따라 가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규모의 마을이지만, 처음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봉두마을의 위치는 쉽게 알 수 있다.

여러 가닥의 송전선들이 굵게 뻗어 한 곳을 지나가고 있고, 그 곳에 무려 25개의 송전탑이 마을에 밀집해 서 있기 때문이다. 봉두마을에는 주민 8명당 1개의 송전탑이 서 있다.

봉두마을에 송전탑이 처음 들어선 때는 1975년이었다. 유신시절 국가가 필요하다며 공사를 하겠다는데 주민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고압 송전선 3개(174kv 2개, 345kv 1개)를 받치기 위해 19개의 철탑이 봉두마을에 갑자기 들어섰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6월 한전은 6개의 송전탑을 새롭게 설치했다.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174kv 송전선이 더 필요하고, 봉두마을이 기존 선로 설치 지역이니 더 추가하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2년 전 쯤부터 시작된 이번 공사 또한 마을주민들과의 제대로 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

송전탑에 무너져 내린 주민들의 삶

민가 바로 곁을 지나는 고압 송전선
 민가 바로 곁을 지나는 고압 송전선
ⓒ 청년과학기술자모임(Y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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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선로가 마을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송전탑이 집 바로 앞에 위치한 경우도 있다.

"하우스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제작년에 돌아가셨어. 그 자리에서, 현장에서 쓰러져가지고 그날 돌아가셨으니까…."

345kv 고압 송전선이 바로 위를 지나는 비닐하우스를 가리키며 마을 할아버지가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르던 가축이 죽고, 사람들도 자꾸 암에 걸리는 것을 보며 처음에는 왜인지 몰랐지만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주민들은 고압 송전선을 그 원인으로 인식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 174kv 송전선이 6개의 송전탑과 함께 마을에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주민들은 분노했고, 주민들은 여수지역 시민·노동단체들과 봉두마을 송전탑 철거 대책위(아래 대책위)를 만들어 그 동안의 피해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대책위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였다. 1970년 마을에 송전탑이 들어온 이후 마을 주민 중 40명이 암으로 사망했고 현재 7명이 암과 백혈병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345kv 송전선로 아래(자기장 8.7mG)에서 양봉을 위해 벌을 키우고 있었는데 유충이 녹아내렸으며 154kv 송전선로 밑(자기장 6mG)에서 운영 중이던 축사에서 소가 기형 출산을 하거나 죽는 경우도 있었음이 알려졌다.

주민 대부분이 "밭에서 일하다가, 우산을 쓰고 있다가 끌려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진술했다. 또 "비가 올 무렵이면 기분 나쁜 소리가 납니다"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전자파뿐만 아니라 철탑과 송전선이 일으키는 소음도 주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했다.

마을회관에 모여 있던 마을 할머니들은 만나자 마자 그 동안의 고통을 호소했다. '살려달라'는 목소리는 절박했다. 한 세대가 지나가는 40년이란 시간 동안 송전탑이 준 정신적·물리적 고통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보였다.

주민들은 이러한 고통이 해소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이들의 요구도 모두 여기에 맞춰져 있었다. 구체적으로 마을을 통과하는 송전탑의 원거리 이전, 현재 공사 중인 송전탑 지중화 및 원거리 이전,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마을 집단 이주 그리고 역학조사를 요구하고 있었다. 송전탑 이전을 위한 부지는 주민들이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현재 여수시가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조사 결과는 5월 말에 나온다고 한다.

보상과 합의만 유도하는 한전 그리고 국가기관들

한국전력(아래 한전)은 고압 송전선로에서 나오는 전자파의 유해성에 대해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인 2000mG보다 낮은 수치인 833mG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이는 알려진 대로 단기노출에 관한 기준이지 주민들이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장기노출에 관해서는 무해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고압 송전선이 내뿜는 전자파의 유·무해성은 아직 과학계에서도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의 핵심적인 우려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한전은 주민들과의 대화에서 보상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었으며 이에 관한 주민들의 불만은 매우 컸다.

"한전에서는 느그들하고는 건강권은 얘기 안되니까 재산권, 돈줄테니까 보상받고 협상하자, 공사하자고 말해…."

봉두마을 안내를 해주신 마을 할아버지의 말이었다. 보상금을 법원에 기탁해놨으니 공사를 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한전의 말은 주민들 입장에서는 매우 무책임한 것이었다. 덧붙여 이 할아버지는 "여수시와 경찰 그리고 국민권익위원회까지 봉두마을 주민들에게 한전의 보상안에 합의할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며 이 때문에 봉두마을 주민들은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라고 전했다.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어떻게 이처럼 큰 공사를 강행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합법이다. '전원개발촉진법'에 의하면, 한전은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의 승인만 있으면 지방자치단체나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도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사업에 필요한 토지의 수용과 사용 또한 물론 가능하다.

유신 말기에 제정된 이 법은 현재까지도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 법은 고령의 마을 할머니들을 공사현장에 나오게 만들었다. 마을 할머니들은 완성된 송전탑에 전선이 연결되지 못하도록 몸으로 공사를 막고 있었다. 살 권리를 위해 그동안 수많은 기관에 탄원서를 넣어봤지만, 모두 외면당했다. 희생만을 강요당한 이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이것뿐이었다.

순천시는 땅에 고압선을 묻었는데, 왜 봉두마을은...

공사를 막기 위한 농성용 비닐하우스
 공사를 막기 위한 농성용 비닐하우스
ⓒ 청년과학기술자모임(Y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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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 송전탑의 인체 유·무해성은 과학계에서 규명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봉두마을 주민들도 우리(청년과학기술자모임)가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라는 말을 듣고 이를 밝혀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한전은 봉두마을 주민들에게 '유해성에 관한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면 공사를 중단하고 송전탑을 철거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 공사를 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유·무해성 판단은 쉽지 않은 과학적 문제다. 그리고 유·무해성은 밝혀지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다. 설령 유해성이 규명됐다고 해도 상황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수용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가 본 송전탑 문제는 과학적 문제 이전에 우리나라의 민주성과 인권에 관한 문제였다. 우리나라 큰 도시의 경우 송전선은 지중화돼 있다. 이는 명확한 과학적 근거 때문이 아니라 반대 민원 때문이거나 이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봉두마을 근처에 있는 순천시만 하더라도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지상의 송전선을 땅에 묻었다. 대책위가 문제제기를 하는 대목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봉두마을이 도시에 비해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고령의 주민들로 구성돼 있다는 이유로 건강권을 소홀히 취급당하고 있다"는 마을 주민들의 주장은 당연해 보인다.

봉두마을 주민들의 요구 어디에도 보상에 관한 조항은 없다. 정부와 관련 공공기관들은 봉두마을 주민들이 그들의 건강권과 환경권이 모든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소중하게 생각될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부가 얼마나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구성원의 인권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의 문제다. 하지만, 전원개발촉진법은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홍식님은 청년과학기술자모임(YESA)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YESA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바른 과학기술자의 길을 고민하는 젊은 과학기술자들의 모임입니다. (이메일: joinyesa@gmail.com, 카페: cafe.daum.net/yesa2014)



태그:#봉두마을,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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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학기술자모임(YESA)"에서 지난 2018년 12월에 새롭게 출범한 "공공을 위한 과학기술인포럼(FOSEP)" 입니다. FOSEP은 과학기술이 공공성, 합리성, 민주성에 따라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이메일: fosep2018@gmail.com, 블로그: https://yes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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