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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뿐만이 아니다. 1970년대 송전탑이 지어진 전남 여수 봉두마을에 최근 또 송전탑이 세워져 주민들이 반대에 나섰다. 40여 년을 송전탑과 함께 조용히 지냈던 봉두마을 주민들은 왜 지금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밀양의 '미래'가 될 수 있는 봉두마을을 찾아 2박 3일 동안(17~19일) 취재했다. - 편집자말

취재팀 : 김종술·황주찬·신원경·문나래·소중한 기자

봉두마을 위아무개씨 축사 앞의 땅을 파니 소 사체가 나왔다. 위씨 축사의 건강하던 소 여러 마리는 수 년 전부터 이유 없이 죽기 시작했다. 기형소가 태어나거나 태어난 뒤 일어서지 못한 채 시름시름 죽어간 사례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위씨는 현재 백혈병을 앓고 있다.
 봉두마을 위아무개씨 축사 앞의 땅을 파니 소 사체가 나왔다. 위씨 축사의 건강하던 소 여러 마리는 수 년 전부터 이유 없이 죽기 시작했다. 기형소가 태어나거나 태어난 뒤 일어서지 못한 채 시름시름 죽어간 사례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위씨는 현재 백혈병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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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적을 들어내고 몇 차례 삽질을 하자 소뼈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전남 여수 봉두마을의 한 축사 앞에 묻힌 소 사체입니다. '음머'하고 소 우는 소리가 들리는 축사 바로 앞에 죽은 소가 묻혀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내가 밤을 따러 요 앞을 지나간디 냄시가 나서 말이제. 죽은 소를 묻었다 하드라고. 요 축사에서 하도 소가 죽어브러갖고…. 원래 저 멀리 끄꼬 가서 묻어야 한디 계속 죽어난께 여따가 묻어서 거적때기만 덮어놨겄제. 여그여 여그."

봉두마을 강옥순 할머니(71)가 손가락질 하는 곳을 파니 대번 소 사체가 나왔습니다. 등 뒤론 바로 축사가, 머리 위론 송전선로가 지나는 곳입니다. 강 할머니에 따르면 수 년 전부터 이곳 축사의 건강한 소 여러 마리가 이유 없이 죽어갔습니다. 기형소가 태어나거나 태어난 뒤 일어서지 못한 채 시름시름 죽어간 사례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합니다.

송전탑 밑에서 부모님 잃고 자신은 신장암에

축사엔 10여 마리의 소가 울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축사의 주인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주인 위아무개(남, 55)씨가 백혈병에 걸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축사는 이웃 주민이 종종 돌봐주고 있습니다.

축사 앞집에 살던 김용균(남, 55)씨의 사연은 더욱 안타깝습니다. 92년 아버지(당시 60세)가 집 대문을 나서다 쓰러져 뇌줄중으로 사망했고, 97년엔 거의 비슷한 위치에서 어머니(당시 62세)가 쓰러져 검사도 못해본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씨도 2009년 신장암 판정을 받고 현재 치료 중입니다.

위씨의 축사와 김씨의 집 옆 송전탑 부근은 지난해 4월 한전 직원의 참여 하에 이뤄진 전자파 측정 결과 6.0밀리가우스(mG)의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봉두마을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는 "많은 선진국의 전자파 국제기준치는 2mG이다"며 "한전이 2009년 대한전기학회에 용역을 줘 실시한 조사 결과 '전자파 4mG가 초과할 경우 각종 암 발병률이 5.6배 증가한다'는 보고서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에 한전은 "송전선로 전자파 국제기준은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 비전리방사선 보호위원회에서 정하고 있으며 2010년 11월 일반인에 대하여 2000mG를 국제기준으로 발표했다"며 "우리나라는 국제기준인 2000mG보다 낮은 수치인 833mG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전의 의견을 두고 장하나 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미국, 스웨덴 등은 전자파 기준치를 1~2mG로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이보다 400배 더 높은 기준치를 두고 있는 셈이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염소도 벌도 모두 죽어나가"

한전이 봉두마을에 1970년대 고압 송전선로 두 기(송전탑 19기)를 설치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 송전선로 1기(송전탑 6기)를 추가로 건설한 가운데, 봉두마을 주민들이 새로 생긴 철탑에 각자의 바람이 담긴 천 조각을 묶어뒀다.
 한전이 봉두마을에 1970년대 고압 송전선로 두 기(송전탑 19기)를 설치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 송전선로 1기(송전탑 6기)를 추가로 건설한 가운데, 봉두마을 주민들이 새로 생긴 철탑에 각자의 바람이 담긴 천 조각을 묶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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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위 송전선로와 이어진 봉두마을 뒤 앵무산 어귀의 송전탑은 김근수(남, 49)씨가 염소 10여 마리를 잃은 곳입니다. 2010년 처음 10여 마리의 염소로 축사를 꾸린 김씨는 현재 한 마리의 염소만 기르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염소가 죽어갔기 때문입니다.

"송전선로 밑에 가둬놓고 키웠었제. 어느 날 자고 일어나서 보니 비실비실 하더라고. 그러더니 갑자기 죽기 시작하는 거여. 처음에 종자도 좋은 놈으로 샀었고, 변 상태도 문제가 없었당께. 확실히 일반적인 질병으로 죽진 않았던 것 같어."

역시 염소를 키우던 신순례 할머니(67)도 8마리의 염소를 송전선로 밑에서 잃었습니다. 신 할머니는 "5년 전부터 송전선로 밑에서 염소를 키웠는디 좀 클라하믄 죽어블고 그러더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염소와 함께 키우던 개도 지난해 죽었습니다.

벌을 키우던 네 명의 주민도 모두 양봉업을 접었습니다. 박아무개씨는 마을 뒤편 345kV 송전선로 밑에서 벌을 키웠었는데 2004년 벌 유충이 모두 녹아 내리면서 양봉업을 접었습니다. 박씨는 2009년 폐암 선고를 받고 치료를 해 현재는 완치 통보를 받은 상황입니다. 박씨가 양봉을 하던 곳의 전자파 수치는 8.7mG를 기록했습니다.

봉두마을 주민인 김근수씨는 2010년부터 송전선로 밑에서 키우던 염소 10여 마리 중 한 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잃었다.
 봉두마을 주민인 김근수씨는 2010년부터 송전선로 밑에서 키우던 염소 10여 마리 중 한 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잃었다.
ⓒ 김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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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시작된 지난해부터 부동산 매매 전무"

사정이 이렇다보니 봉두마을의 부동산 매매는 공사가 시작된 지난해 6월부터 끊겼답니다. 마을 주민들은 하나 같이 "(땅을) 팔려고 내놔도 누구 한 명 와서 물어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봉두마을이 속해 있는 여수시 율촌면사무소 부근의 부동산을 들러 봉두마을의 부동산 매매 분위기를 들어보니 "전혀 매매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등기에 송전탑이 지나간다는 내용이 들어가면 압류가 된 거나 다름없다"고 표현했습니다.

다른 중개업자는 "율촌면에 율촌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에 봉두마을이 속한 산수리는 택지지구로의 개발 가능성이 있어 요새 부동산 매매가 괜찮은 편이다"면서 "그럼에도 봉두마을은 송전탑 때문에 아무래도 손해보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키우던 소가 죽어가고, 사람마저 살기 힘든 상황에서 땅을 팔지 못해 마을을 떠날 수도 없는 게 봉두마을 주민의 현실입니다. 주민들은 ▲ 1970년대에 생긴 기존 송전탑의 원거리 이전 ▲ 주민건강을 위한 역학조사 ▲ 현재 공사 중인 송전선로 지중화(땅 밑으로 송전선을 묻는 공법) ▲ 위 사항이 어렵다면 마을 전체의 집단이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봉두마을 강옥순 할머니가 17일 마을을 지나는 송전선로와 송전탑을 가리키고 있다. 이곳은 박아무개씨가 벌을 키우다가 2004년 벌 유충이 녹아 내려 양봉업을 접은 곳이다. 박씨는 2009년 폐암 선고를 받고 치료를 해 현재는 완치 통보를 받은 상황이다.
 봉두마을 강옥순 할머니가 17일 마을을 지나는 송전선로와 송전탑을 가리키고 있다. 이곳은 박아무개씨가 벌을 키우다가 2004년 벌 유충이 녹아 내려 양봉업을 접은 곳이다. 박씨는 2009년 폐암 선고를 받고 치료를 해 현재는 완치 통보를 받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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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여수, #봉두마을, #송전탑,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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