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산골 아이들의 겨울 놀이가 있었던곳
 산골 아이들의 겨울 놀이가 있었던곳
ⓒ 고영수

관련사진보기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강원도 산골마을 아이들의 겨울 놀이는 단조로웠다.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깎고 다듬어, 불에 달구어 스키를 만들고, 나무를 깍고 철사를 구부려 스케이트를 만들었다. 손수 만든 스키와 스케이트로 설원을 가르고 빙판을 휘젓는 일은 산골마을 아이들의 유일한 겨울 놀이였다. 스키장과 스케이트장도 따로 없었다. 논에 물을 대어 얼리면 산골아이들에게는 안성마춤 스케이트장이 된다. 또한 스키장도 마찬가지다. 흰눈이 내린 야산에 누가 먼저 길을 내면 한 두사람 따라서 스키를 타기 시작한다. 그곳이 곧 스키장이 되는것이다. 난 별로 스키와 스케이트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친구따라 몇번 스키와 스케이트장에 갔었지만 재미가 없었다. 산골마을의 어른들도 겨울 놀이라고는 딱히 없었다. 농한기를 맞아 동네 어른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나누며 고스톱을 하는것이 유일한 겨울철 놀이였다.

어린시절 뛰놀던 고향의 마을 풍경
 어린시절 뛰놀던 고향의 마을 풍경
ⓒ 고영수

관련사진보기


그해 겨울 우리 동네에 서울에 있는 D여대 학생들이 농촌 봉사활동을 왔다. 모두 20여명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산골에서 보기 힘든 화려한 옷과 치장으로 동네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이 숙식하는 장소는 나의 할머님 댁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할머니 집은 방이 다섯칸이나 되는 제법 큰 집에 속했다. 우리 동네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여관같은 역할을 하는 유일한 곳이었다. 할머니 집은 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학생들이 입은 옷이며, 치장품, 먹는 것에까지 관심을 가졌다. 모든 것이 신기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들의 봉사활동은 아이들에게는 학교 공부를 가르쳐 주고,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머리를 깍아주는 일이었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 이발관이 없었으므로 큰 환영을 받았다. 어르신들을 초청하여 무슨 교육도 한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니, 소위 농촌 계몽활동 측면이 복합적으로 섞여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함께 경로잔치도 베풀어 주었다. 선생님들은 일과가 끝난 시간에는 몇몇 아이들과 눈썰매 타는 것을 좋아했다. 야산에 올라가서 비료 부대에 짚을 넣어 만든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것에 즐거운 매력을 느낀것 같다. 나도 신이나서 덩달아 눈썰매 타기에 따라나섰다.

봉사활동 마지막날은 동네 어르신들과 주민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선생님들이 직접 준비한 음식과 함께 연극도 공연했다. 동네 사람들은 생애 처음 구경하는 연극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재미있지도 웃기지도 않은 연극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재미있고 우습던지 연극이 끝나도 동네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마지막 시간에는 노래 자랑을 하였다. 초등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누구나 참가 자격이 주어졌다. 봉사활동내내 풍금을 반주하시던 한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은 나를 무척 예뻐해 주었다. 그 선생님의 권유로 나도 노래자랑에 참가하게 되었다. 동네사람들이 학교 교실을 가득메운 가운데 진행된 노래자랑에서 내가 1등을 했다. 설탕 한 포대를 상품으로 받았다. 그 당시는 설탕이 귀한 시절이라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였다. 어머니도 무척 좋아하셨다. 동네 분들에게 어머니는 한동안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3박4일의 봉사활동은 그렇게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아쉽게 우리 동네를 떠나가게 되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정이 들었다. 헤어지는 날 선생님들도 마을 어르신들도 아이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후 나는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봉사활동 모임때 풍금을 반주하시던 선생님에게서 편지가 왔다. 선생님도 서울에 가서 우리 동네에서 봉사활동 했던 일들이 많이 생각났던것 같다. 나는 정성을 다해서 답장을 보냈다. 그후 계속해서 선생님과 편지로 소식을 나누었다. 한동안 나는 매일매일 우편 배달부 아저씨를 기다리는 것으로 하루의 즐거움을 삼았다.

어느날 우리집에 오래만에 소포가 배달되었다. 선생님이 주황색 스웨터 한벌을 선물로 보내주신 것이다. 너무 기뻤다. 모자가 달린 스웨터는 디자인이 특이해서 눈에 띄었다. 한동안 그 옷을 입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1학년때 우리 가정은 서울로 이사하게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생각나 D여대를 찾았다.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정문 앞에서 맴돌다 왔지만 지금도 그곳을 지날때면 어린시절 농촌 봉사 활동에 관한 추억이 생각난다. 또한 그분들에게 감사한다. 그분들의 자원봉사로 어린시절 좋은 추억을 갖게 되었고, 문화생활을 생각지도 못하는 산골마을 어르신들에게 찾아와 기쁨을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곳 저곳에서 자원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의 봉사에 감사하고 또 그들을 통해서 기쁨을 누리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태그:#자원봉사, #농촌 봉사활동, #고향, #겨울, #선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