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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정리해고 8년, 날짜로는 2630일 이상이 되니 1인시위를 하는 것도 힘이 든다. 노동자로 출근을 해야 하는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서글프다. 본사(㈜콜텍, 등촌동) 1인시위는 농성장에서 늦게는 7시 20분에 출발하여 8시부터 시작한다.

본사에 가면 맨 먼저 요구르트 아줌마가 인사를 건넨다. 정겹다. 1인시위 용품을 세우고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시작하면 주민들이 인사를 하며 "아직도 안 끝났습니까?" 물어본다. "예." 대답을 하면 "꼭 승리하십시오"라고 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인사 한마디에 힘이 난다.

본사 직원들은 언제부턴가 1인시위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여 우리를 못 보는 경우가 많이 있다. 본사 직원들도 우리와 똑같은 직원인데 노동자성을 잃는 게 아쉽다. 왜 본사 직원들은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출근을 하는지 모르겠다. 조기출근이 노동력 착취인데 본사 직원들도 우리들의 옛날과 똑같이 조기출근을 한다. 바보들 같다.

가끔 ○○이사가 와서 시비를 건다. "언제까지 할 건데?"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빨리 끝내고 일자리를 찾으라고도 한다. ○○이사는 죽어도 한국에서는 기타를 만들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지가 뭔데 와서 지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사는 해고자들 앞에서 잘난 척을 하며 까불고 있다.

한 시민은 피켓을 읽어보고 아직도 이런 회사가 있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나는 "네, 이 회사는 기타 회사인데요, 이런 회사도 있습니다"라고 설명을 해드린다. 어떤 시민은 대한민국은 노조 때문에 안 된다고 화내시는 분도 있어서 차근차근 설명을 해드리면 이해하고 미안해하는 분들도 있다. 오해했다며 미안하다며 커피를 사주고 가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4월 20일부터는 대법원 1인시위를 가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6시 25분에서 45분 사이 버스를 타고 90~100분을 달려가야만 한다. 버스 타고 가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가…….' 대법원 판결은 마지막 판결이다 보니(콜텍 해고 무효 확인에 대한 서울고법의 패소 판결 후 대법원 상고, 현재 재판을 기다리는 중) 과연 어떻게 결정이 날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하루는 대법원 건물은 왜 이렇게 높은가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밑에서 위를 올려다봐야 하는데 (판사는)위에서 밑을 보니 서민, 노동자들을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판사들은 차를 검정색으로 하고 얼굴을 가리고 다닐까?', '법원 건물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대법원 출입문에는 "자유, 평등, 정의"라고 붙어 있는데, 이 세 가지가 대한민국에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법조인들의 재산 증식이 엄청나다는 뉴스를 보았다. 사법부는 비리의 원천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마음이 아프다. 대법원 1인시위를 하면 경비가 물어본다. "내일도 오시지요? 카메라로 (피켓)문구를 찍어도 되지요?" 고등법원에서 1인시위를 할 때부터 매일 보고가 되는 모양이다.

대법원에서 한 시간 동안 1인시위를 하고 올 때면 버스 안은 시민들도 없고 해서 너무 심심하고 서글픈 생각이 든다. 이제 판결이 빨리 나와 노동자로서 출근을 하고 싶다.

2014년 4월 29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1인시위 중에 나타난 '욕쟁이' 동네주민... 고통스러운 풍경

종종 콜트콜텍 해고자들과 아침 1인시위를 나간다. 그때마다 묘한 고달픔이 있다. 빈속에 배고픔이 몰려오거나, 추울 땐 발가락이 얼어붙는 듯 아프거나, 여름이 다가올수록 뜨거운 해가 원망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선 둘 곳이 마땅찮은, 그 긴 침묵의 시간.

임재춘 조합원의 말처럼, 별별 생각이 스친다. 별별 생각을 하지 않으면 막막한 시간이다. 그리고 돌아오면 오후에는 잠이 몰려와서 몸이 흐물흐물해진다. 조합원들을 지켜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역시 나는 당사자가 아니다.' 흉내 낼 수 없는 당사자의 처절함이나 의연함에 가끔은 소름 돋는다. 나는 20분만 지나도 요령 피울 생각이 나는데. 음악을 들을까, 점심으로 뭘 먹을지 정하며 시간을 보낼까, 5분 일찍 왔으니 5분 일찍 끝내자고 말할까. 그런데 씨알도 안 먹히는 사람들이니 말도 꺼내지 못한다.

콜트지회의 이동호 사무장은 아침을 거른다. 콜텍지회 이인근 지회장은 빵 한 조각과 커피면 족하고, 콜텍지회 김경봉 조합원은 대체로 아침밥을 드신다. 그런데 임재춘 조합원은 6시에 칼같이 일어나(정말 자체 자명종이다. 벌떡!) 찬밥이든 뜨신 밥이든 국에 말아 휘휘 마시듯 꼬박꼬박 드신다. "한국인은 무조건 하루 세 끼!"라는 평소의 신조는 1인시위를 가는 새벽에도 어김없이 지켜진다. 푸르스름한 새벽길을 나서는 임재춘 조합원은 그렇게 말없이 성실하다. 농성자들이 많으면 서로 번갈아 가고 하루쯤은 늦잠도 자고 그럴 텐데, 돌아가며 할 인원이 안 된다.

며칠 전의 일이다. 이인근 지회장과 콜텍 본사 앞 1인시위를 하는데 동네에 사는 한 중년 남성이 다짜고짜 시비를 걸었다. 평소에 동네 주민들은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거나 인사를 건네며 격려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이날 이 사람은 "이거 언제까지 할 건데요!"라며 시비조의 말을 건네더니 속사포 욕설을 퍼붓고 갔다. 차분하게 정황 설명을 해도 그는 귀를 닫고 마치 분풀이 대상을 발견한 사람처럼 밑도 끝도 없는 욕을 했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의 1인시위(콜텍 본사 앞)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의 1인시위(콜텍 본사 앞)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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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네들 목요일(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본사 앞 집회)마다 노래자랑 하고 놀잖아. 시끄럽게 왜 여기서 ××이야, 본사 안으로 쳐들어가든가 자식들아. 왜 내가 니들 때문에 손해를 봐야 하는데! 니네들 때문에 집도 안 나가, 알어? 가서 돈이나 벌어 ××들아, 니 처자식이나 먹여 살려! 이 병신들…. 뭘 봐, 그 눈깔을 파버린다 아주, ××년아 넌 뭐야!"

참고 있던 이인근 지회장이 결국 폭발하기 직전, 나는 핸드폰 사진기를 작동시켰고 그제서야 그는 황급히 몸을 돌려 가던 길을 갔다. 자신의 승용차에 오를 때까지 그는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사라진 후 한 동안 우리는 멍한 기운으로 멈춰 있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20분을 더 길게 1인시위를 했다. 왜냐하면,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 낯선 일도 아닌데, 이보다 더한 욕도 들어봤을 텐데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이 길고 잦은 한숨을 쉬게 한다. 이인근 지회장은 그날 참 많이 어두운 얼굴이었다. 약자가 약자를 물어뜯는 풍경이야말로 고통이다. 혹여나 이 농성이 욕을 먹을까 봐 큰소리로 맞서지 못하고 참아내야 하는 상황은 자존감에 상처를 주고, 깊은 회의를 남긴다. "고생하십니다, 꼭 이기세요, 힘들어서 어떡해요"라는 한마디가 고단함을 씻어주는 희망이 되듯, 그 반대의 경우는 절망이 되곤 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제, 이인근 지회장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한마디. "××놈." 뜬금없이 독백처럼 들린 욕은 뜬금없이 지회장 기억에 떠오른 그 동네주민에 대한 늦은 반응이었다. 이런 것도 일종의 트라우마일까.


태그:#콜트콜텍, #정리해고, #부당해고, #위장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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