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지그베르사미를 연기하는 이정열.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지그베르사미를 연기하는 이정열. ⓒ 창작컴퍼니다


뮤지컬 < 공동경비구역 JSA >는 박찬욱 감독의 동명 영화와 닮은 듯하면서도 2막에서 가슴 찡한 여운을 객석에 제공한다. 이는 영화보다 부각된 지그베르사미 소령이라는 배역 덕인데, 영화에서 이영애가 연기하던 소피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남한과 북한이 아닌 제3국 군인의 신분으로 초소에서 벌어진 총성의 진실을 파헤치는 지그베르사미는 2막에서 숨겨진 진실을 밝혀야 하는가, 아니면 가슴 속에 고스란히 묻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중립국 조사관이다.

한데 이 뮤지컬이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 역사의 상흔이 6.25에만 머무르지 않고 중립국 조사관 지그베르사미라는 한 개인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레드 콤플렉스(공산주의에 대한 과민반응)를 되새기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는 동시에 가슴 찡한 연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중립국 조사관 지그베르사미를 연기하는 이정열은 제 2의 인생을 사는 배우다. 1990년대 포크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변신, 또 암 투병이라는 두 번의 변곡점을 겪으며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가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구사한 단어는 다름 아닌 '감사'였다. 뮤지컬 배우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도 감사한 일인 데다가, 암으로 죽을 뻔한 인생을 덤으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지그베르사미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영화와 달라"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 장면 "노랑머리의 혼혈 외국인인 지그베르사미의 아버지는 인민군이라는 경력이 있다. 혈연이 주는 낙인이 얼만큼 어마어마하게 다가오는지, 심지어는 혼혈임에도 불구하고 연좌제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 장면 "노랑머리의 혼혈 외국인인 지그베르사미의 아버지는 인민군이라는 경력이 있다. 혈연이 주는 낙인이 얼만큼 어마어마하게 다가오는지, 심지어는 혼혈임에도 불구하고 연좌제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창작컴퍼니다


- 영화가 워낙 유명해서 부담되지는 않았는가.
"영화를 기억하는 관객이 많을 거다. 영화가 먼저 만들어져서 영화와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부담은 없었다. 원작을 접하면 그 아우라가 미칠지 몰라서 일부러 원작 소설도 읽지 않았다. 영화 속 이영애씨가 연기하는 소피 역할, 지그베르사미가 선뜻 눈에 떠오르지 않아서 부담이 덜한 것일 수도 있다. 영화를 기억하는 관객이 뮤지컬을 보면 지그베르사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색다름을 얻을 수 있다."

- 2막은 영화와 달리 레드 콤플렉스, 연좌제가 많이 드러난다. 이 때문에 지그베르사미의 아픔이 물씬 묻어난다.
"노랑머리의 스위스 혼혈인 지그베르사미의 아버지는 인민군 장교 출신이다. 혈연이 주는 낙인이 얼만큼 어마어마하게 다가오는지, 심지어는 혼혈임에도 불구하고 연좌제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 연배의 관객이나 뮤지컬을 유심히 보는 관객이라면 연좌제라는 코드를 금방 찾는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도 레드 콤플렉스가 남아있다. 나는 어릴 적 '막걸리 보안법(술김에 한 말조차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 데서 생긴 말) 시대'에서 살았다. 그 시대의 모습과 지금이 얼마나 멀리 왔나 되돌아보라. 스무 살 청년들이 '이런 말 하면 잡아가는 거 아니냐'고 조심하지 않는가. 달라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 달라진 건 없다.

개념적인 진보가 이뤄지지 않은 시대다. 여기서 말하는 개념적인 진보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거다. 상대방의 실수도 '그럴 수 있어' 하고 이해하고 감싸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게 다 날아가 버렸다. 전보다 더 좋아질 뻔 했지만 그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우리 세대의 아픔이다."

- 진실을 알면 크게 다치는 상황이 2막에서 드러난다. 지그베르사미처럼 진실을 알면 나 자신이 다치는 상황에 처한다 해도 진실을 꼭 알려고 하겠는가.
"교과서적인 대답은, 진실을 안다면 유리하고 불리하고를 떠나서 싸우겠다는 거다. 하지만 이는 명작 동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묻어 둘 수는 없다. 하지만 묻어 둘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장치가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다. 진실을 알아서 제가 무엇을 성취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2년 전 암 투병, 분장실로 다시 못 돌아올 줄 알았다"

 "암 수술한 지 2년 차라 재발하지는 않나 조심해야 한다. 운이 좋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암 수술 전에는 나 잘난 맛에 살았다면 지금은 살아있다는 거 자체가 감사하다."

"암 수술한 지 2년 차라 재발하지는 않나 조심해야 한다. 운이 좋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암 수술 전에는 나 잘난 맛에 살았다면 지금은 살아있다는 거 자체가 감사하다." ⓒ 창작컴퍼니다



- 1990년대에는 포크 가수로 활동했다.

"지금도 무대에서 배우로 산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솔로 가수로 데뷔하기 전에 극단 학전에서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당시 극단 학전이 <지하철 1호선>을 마치고 창작뮤지컬을 준비하던 때였다. 록 오페라 <개똥이>를 할 때 저랑 윤도현씨가 같은 식구였다. 윤도현씨가 메인 타이틀 롤을, 제가 서브 타이틀 롤을 맡았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도망쳤다. 당시 제 음반을 내겠다는 꿈이 많았던 때라서다. 대학로는 노래하러 왔지, 연기하러 오지는 않았다. 가수라는 타이틀로 제법 활동하던 시기에 슬럼프가 찾아왔다. 일상은 지옥 같은데, 노래를 부를 때에는 가식적으로 웃으며 노래를 불러야 하는 현실이 싫었다. 당시 심야 라디오 진행 일을 하고 있었다. 심야방송만 하고, 해가 중천에 오를 때에는 집에만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개똥이>를 준비할 때 만난 음악 조감독으로부터 뮤지컬을 같이 하자는 전화를 받았다. 재미 삼아서 아무 생각 없이 한 공연이 <와이키키 브라더스>다. 그때부터 뮤지컬 오디션을 보고 <아이다> <맘마미아!> <노트르담 드 파리> <미스 사이공> 등 다양한 뮤지컬을 하게 되었다."

- 2012년 말 <아이다>를 하다가 암이 발견되어서 수술을 받았다.
"암이 발견되기 전에 소화가 잘 안 되고 더부룩했다. 몸이 안 좋은가 생각하고만 있었는데 지나고 보면 내가 나를 속인 거다. 병원에 가면 이상이 있을 것만 같아서 병원을 안 가고 버텼다.

<아이다> 연습할 때 이쑤시개 백 개를 묶고 옆구리를 찌르는 느낌이었다. 공연 준비하는 중이라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리허설 시간이 빌 때 병원에서 내시경 검진을 했는데 암이 발견되었다. 암 기수가 제법 진행되어 있던 상태였다. 뮤지컬 배우의 삶이 끝나는 게 아니라 제 삶이 여기서 멈추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한 달 정도 공연하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메리 크리스마스'를 무대에서 관객에게 외치고는 '내가 다시 이 분장실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분장실에서 엉엉 울었다. 크리스마스에 입원하고 12월 26일에 암 수술을 받았다. 조금만 늦었어도 말기 암이었을 거다.

수술을 마치면 회복을 위해 운동을 해야 했다. 병원 복도를 걷는데 세 발자국을 못 떼었다. 힘들다고 하면 아내가 걱정할까봐 '이따 운동하자, 들어가자' 하며 병원 침대로 되돌아가야 했다. 지금도 암 수술한 지 2년 차라 재발하지는 않나 조심해야 한다. 운이 좋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암 수술 전에는 나 잘난 맛에 살았다면 지금은 살아있다는 거 자체가 감사하다."

공동경비구역 JSA 이영애 이정열 윤도현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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