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013년 11월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서 열린 쌍용차 회사와 경찰이 쌍용차 지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부가 쌍용차지부 노조 간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약 46억 8천만원을 회사와 경찰에게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리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판결에 실망하며 주저앉아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2013년 11월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서 열린 쌍용차 회사와 경찰이 쌍용차 지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부가 쌍용차지부 노조 간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약 46억 8천만원을 회사와 경찰에게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리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판결에 실망하며 주저앉아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경기도 평택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있는 쌍용자동차(아래 쌍용차)가 지난 4일 평택 지역 초중고교와 대학에 공문을 보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들을 선발하여 장학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올해로 세 번째 일이라고 했다.

지난해(2013년) 자동차시장의 침체에도 쌍용차는 3조 4849억 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의 매출 실적을 기록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줘 기업이 이익을 나누는 모습은 당연하기도 하거니와 가치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장학생 선발 계획 공문을 천천히 읽어 보다가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함께 공문을 돌려보던 다른 선생님들도 "돈 몇 푼 주면서 이거 너무한 거 아냐!"라며 쌍용차의 장학생 선발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쌍용차의 장학생 선발 공문을 살펴보면 무려 9가지의 구비서류를 요구하고 있다. 구비서류가 너무 많다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 이것들이 모두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고 자존감을 훼손하는 것이어서 경악스러웠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장학금을 받으려면 9가지의 구비 서류를 갖추어 제출하라는 쌍용자동차의 공문
▲ 9가지의 구비 서류 장학금을 받으려면 9가지의 구비 서류를 갖추어 제출하라는 쌍용자동차의 공문
ⓒ 임정훈

관련사진보기


성적과 집안 형편만 장학금 받는 '필수조건'

우선 장학생 선발 기준을 보면 1순위를 "성적우수자+가정 형편이 어려운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자'와 '성적우수자'를 각각 2-3순위로 제시했다. 오로지 성적과 집안 형편만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비록 성적은 좀 낮지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학생, 기꺼이 자신의 이익을 친구들과 나눌 줄 아는 학생도 성적이 낮으면 해당 사항이 없다. '사람'은 없고 성적과 가정형편만 남은 참 잔인한 장학금이다.

'성적이 우수하면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자'는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의 인간 유형이다. 개천도 용도 사라진 지금, 가난한 만큼 성적도 낮고 자존감도 낮은 게 오늘 날의 실태이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세상에 회자하던 이야기인데 쌍용차는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쌍용차는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것, 그러니까 가난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서류(친권자의 재산세과세증명서 또는 미과세증명서)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돈(장학금)을 받으려면 스스로 가난하다는 증명을 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해당 학생이나 친권자에 대한 배려나 존중도 없다. 쌍용차의 장학금이 잔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청을 통해 공문을 시행했으면 큰 틀의 기준이나 재원을 내놓고 장학금을 받을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교육청이나 학교에 맡겨도 좋을 일이었다. 9가지나 되는 엄청난 구비 서류를 들이밀어 가진 자의 횡포를 굳이 부리지 않아도 되었다는 말이다.

분명 가난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가난을 스스로 증명하게 만드는 건 치욕을 동반한 폭력이다. 24명 동료들의 한 맺힌 죽음을 가슴에 묻고 아직도 거리에서 천막을 치고, 김밥을 말아 팔며 복직의 결의를 다지고 있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가하고 있는 폭력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장학금 받을 학생에게 '서약서' 강요

쌍용차의 잔인한 장학금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쌍용차는 장학금을 받게 될 학생들에게 희한한 '서약서' 제출도 강요했다. "장학회의 제반 규정을 준수하며…평택시의 발전과 국가 사회에 이바지 할 것을 서약"하라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돈을 줄 테니 개인정보를 모두 내놓고 스스로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기업, 지자체와 국가에 충성을 다 할 것을 서약하라고 강요하는 기업은 싫다.
▲ 서약서와 개인정보제공동의서 학생들에게 돈을 줄 테니 개인정보를 모두 내놓고 스스로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기업, 지자체와 국가에 충성을 다 할 것을 서약하라고 강요하는 기업은 싫다.
ⓒ 임정훈

관련사진보기


서약까지 하고 '준수'해야 할 '(쌍용차) 장학회의 제반규정'이 무엇인지는 알 수도 없고, 장학금을 주면서 지자체와 국가에 이바지 할 것을 서약하라는 요구 앞에서는 아찔한 낭떠러지가 펼쳐진다.

이 같은 서약서 강요는 헌법에 명시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경기학생인권조례의 양심에 따른 서약 강요 금지를 어긴 것이다. 공문 어디를 읽어봐도 학생들이 왜 이런 서약을 강요 받아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가난해서 이 장학금을 받으려고 한 탓이라고 짐작할밖에. 잔인한 장학금의 또 다른 이유다.

쌍용차의 잔인한 장학금의 이유는 또 있다. 9개의 구비서류 가운데 하나인 '장학금 신청서'에는 신청자와 보호자의 개인정보를 지나치게 많이 요구하고 있다. 대상 학생의 학교, 학년, 반, 이름 정도면 충분할 텐데 주민등록번호와 성별, 휴대전화, 한자 이름 등 학생의 개인정보 6가지와 보호자의 이름(한자 포함)과 성별, 주소, 휴대전화 번호 등 보호자 개인정보 8가지를 모두 쓰라고 요구하고 있다. 신청학생과 보호자를 합치면 모두 14가지의 개인정보를 내놓아야 한다. 장학금 받는 길이 너무 멀고 험하다. 장학금을 주면서 이토록 많은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기관이나 공문은 학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 보태어 '개인정보제공동의서'를 추가로 또 내야 한다. "본인에 관한 각종 정보자료를 담당기관에 제공하는데 동의"하는 서류를 따로 또 내야 한다는 말이다. 개인정보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알려주지도 않고 '담당기관에 제공하는데 동의'하라는 명령만 있다. 장학금을 받고 싶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시키는 대로 다 써서 개인정보를 내놓고 그것을 이용하는 데 동의하라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돈(장학금)을 줄 테니 개인정보를 모두 내놓고 스스로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기업, 돈을 받고 싶으면 지자체와 국가에 충성을 다 할 것을 서약하라고 강요하는 기업은 싫다. 아직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제 식구들은 내팽개치고 이미지 제고와 홍보를 위해 돈을 미끼로 폭력적 위력을 행사하는 기업은 너무 싫다.

거리에 있는 제 식구부터 오롯하고 온전하게 챙기는 게 우선일 터이고, 기업 이미지를 위한 생색내기나 홍보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물론 그조차도 '사람'을 중심에 두고 해야 할 일이다.

장학금을 미끼삼아 학교와 학생들에게 잔인한 상처를 남기는 '잔인한 장학금' 사업도 그 의미를 살리도록 충분히 고민하기를 기대한다. 듣기 좋은 노래도 세 번이면 그만이라고 했다. 올해가 '잔인한 장학금' 사업을 시행한 지 3년째라고 하니 쌍용차는 새겨들었으면 싶다. 기업이 제 식구든 남이든 상처를 주는 것이 본업처럼 돼서는 안 된다.


태그:#쌍용자동차, #쌍차, #평택 쌍차, #장학금
댓글2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