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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푸의 거리에서 부탄의 전통의상인 고(Gho)와 키라(Kira)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부탄인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먼 중세기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경찰이나 승려, 군인들은 전통의상을 입지 않지만 그들 특유의 복장을 입는다.

군인들과 경찰들은 옅은 고동색과 짙은 청색 유니폼을 입고, 승려들은 진한 적색 의상을 입는다. 이 동화 속 같은 거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부탄은 히말라야야 숨겨진 '은둔 왕국'이라는 표현이 아주 적절한 것 같다. 

'고'와 '키라' 입고 활보하는 부탄인들

부탄 전통의상 고Gho와 키라Kira를 입고 있는 쉐리와 치미. 무척 우아하고 단정해 보인다.
 부탄 전통의상 고Gho와 키라Kira를 입고 있는 쉐리와 치미. 무척 우아하고 단정해 보인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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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색깔과 독특한 무늬로 조합된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데, 이는 부탄의 민족성과 각 지역의 특징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필자가 한국에서 부탄 전통의상을 입고 주제발표를 하는 도르지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부탄인이란 당당한 긍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매우 당당해 보였다. 작은 키였지만 다리에 스타킹을 신은 그 모습이 매우 정숙하고 우아하게 보였다. 부탄에 가면 저 멋진 고를 꼭 한 번 입어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부탄 전통의상을 만들고 있는 과정을 보기 위해 팀푸 시내 '국립 텍스타일 박물관'을 방문했다. 텍스타일은 직물 혹은 직조란 뜻으로 수동식으로 직접 짜고 있었다.

직조기는 마치 우리나라 베틀처럼 생겼는데, 북이 우리나라 베틀보다는 훨씬 길고 컸다.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다양한 색깔의 실로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짜고 있는 여직공의 모습이 무척 소박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수동식으로 직물을 짜는 모습. 우리나라 베틀과 유사하다(팀푸 국립텍스타일박물관)
 수동식으로 직물을 짜는 모습. 우리나라 베틀과 유사하다(팀푸 국립텍스타일박물관)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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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미스터 초이, 이 옷을 한 번 입어 보세요."
"허허, 그럴까?"

쉐리가 붉은 색과 감청색 무늬가 들어있는 고를 하나 골라서 나에게 입어 보라고 권했다. 나는 좀 쑥스럽기는 했지만 쉐리가 입혀 주는 고를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입어 보았다.

"이 벨트를 단단히 매지 않으면 옷이 밑으로 흘러내립니다. 옷자락이 무릎 위까지 올라오도록 허리 위로 꽉 조여 매야 흘러내리지 않지요."
"그거, 보기보단 쉽지가 않네요."
"몇 번 입어보면 금방 숙달이 되지요."

고는 우리나라 두루마기와 비슷한 옷이지만 옷깃이 무릎 밑으로 내려오지 않고 옷이 밑으로 처지지 않게 케라(Kera)라고 부르는 벨트를 허리에 단단히 매야 한다. 그리고 옷고름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여며 맨다.

나는 먼 생애 부탄에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부탄 전통의상 고를 입은 기자의 모습
 부탄 전통의상 고를 입은 기자의 모습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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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미스터 초이, 부탄 국왕처럼 보이는데요!"
"하하, 쉐리 날 놀리는 거요."
"하하, 아닙니다. 정말 멋져요. 고를 입고 나니 미스터 초이가 우리 부탄 사람과 똑같이 보여요. 일단 밖에 나가서 한 번 걸어보시지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꼭 부탄 사람과 닮아 보였다. 지구상에서 한국인을 가장 많이 닮은 민족은 부탄 사람과 몽골 사람들이다. 나는 쉐리의 권유에 따라 부탄 전통복장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가 내 모습을 보더니 쿡쿡 웃었다.

"이왕이면 스타킹까지 채우시지요?"
"하하, 스타킹이 있어야지. 당신 스타킹을 좀 빌려주겠소?"
"아이고, 아서요. 그만 빨리 벗기나 하시지요."

나는 고를 입고 예상치 못한 패션쇼를 하게 되었다. 모두들 고가 내게 잘 맞는다고 찬사(?)를 한마디씩 하는데 아내만 빨리 벗으라고 성화를 부렸다.

아내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탄 전통복장을 입은 채 건물 밖을 이리저리 걸어 다녀보았다. 생각보다 편했다. 고를 입고 걷다 보니 나는 먼 과거 생에 부탄에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탄전통복장을 한 쉐리와 치미의 깔끔한 모습. 고는 스타킹을 신어야 제대로 폼이 난다.
 부탄전통복장을 한 쉐리와 치미의 깔끔한 모습. 고는 스타킹을 신어야 제대로 폼이 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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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릎 밖으로 바짓가랑이가 흘러나와 별로 폼이 나지않는 것 같았다. 고는 스타킹을 채워야 제대로 폼이 난다. 처음에는 부탄 남자들이 다리에 스타킹을 채우는 것을 보고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은 일본 기모노처럼 긴 치마를 입는 데 반해 남자들은 스타킹을 채우다니 아무래도 우리의 잣대로는 잘 맞지 않는 의상이다. 그런데다가 남자들이 쪼그리고 앉으면 팬티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데, 부탄 사람들은 그 자세를 전혀 이상스럽게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부탄의 전통의상 고(Gho)와 몽골의 전통의상 델(Deel), 그리고 우리나라 두루마기는 서로 공통점이 많다. 다만 몽골은 추운 지방이라 소매와 옷깃이 매우 길다. 우리나라 두루마기는 몽골 델보다 짧기는 하지만 발목까지 내려온다. 지구상에서 우리와 가장 닮은 사람들이 몽골인과 부탄 사람들인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의상도 유사하다. 무언가 서로 연관이 깊은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텔종업원들도 부탄전통복장을 입고 근무를 한다.
 호텔종업원들도 부탄전통복장을 입고 근무를 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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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전통성 지키려는 부탄인들의 열정

부탄은 산스크리트어로 '높은 지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고구려의 의미와 다소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구려는 '높고 아름다운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전통의상 또한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의상과 아주 유사하다.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고구려인들은 부탄의 고와 아주 유사한 복장을 입고 있다. 그렇다면 몽골과 부탄, 한국은 같은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가 아닐까?

수백 년 동안 자기 나라의 전통을 고수하는 부탄인들의 자긍심은 대단한 것 같다. 팀푸의 거리에서 고와 키라를 입고 활보하는 부탄사람들을 보면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로 여행을 온 느낌이 든다. 그리고 전통의상을 입은 부탄사람들은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하여 그 자체가 관광자원이 된다.

호텔 로비에서도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여행자들을 돕고 있다.
 호텔 로비에서도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여행자들을 돕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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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행은 그냥 단순하게 보는 관광보다는 이문화(異文化)를 체험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에 오면 사실 거리에서 볼거리나 체험거리가 별로 없다. 물론 조선시대 복장을 하고 대한문이나 창덕궁 정문에서 위병 교대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것은 단순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꾸민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인들은 생활 속에 스며 있는 전통이나 문화를 보고 체험을 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복을 입는다거나 김치를 담그는 체험은 매우 권장할 만한 일이다. 몇 해 전 서울 북촌에서 '우테'라는 독일 여행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전라도 광주에서 김장을 담그는 체험이 매우 인상이 깊었다고 말했다.

서울 북촌이나 전주 한옥마을 등에서 주민 모두가 우리나라 전통 한복을 입고 생활을 하고, 외국인들로 하여금  누구나 체험을 할 수 있게 하여 준다면 좋은 볼거리와 체험의 장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부탄 전통의상을 입은 학생들
 부탄 전통의상을 입은 학생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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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인들은 모두가 이 전통의상을 입고 생활을 한다. 국왕도, 관리들도, 농부들도, 학생들도 모두 똑같은 전통의상을 입는다. 한때는 전통의상을 입지 않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을 경찰이 벌금을 매기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정체성과 전통을 지키려는 부탄인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내가 입은 고의 가격을 물어보니 한국 돈으로 25만 원 정도 된다고 했다. 꽤 비싼 가격이다. 이곳은 텍스타일 박물관으로 품질이 좋은 것만 생산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고 했다. 생각 같아서는 부탄에 온 기념으로 한 벌 사고 싶기도 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 생각을 접어야 했다.

"미스터 초이, 파로에 가면 50달러 정도면 살 수 있어요."
"아, 그래요. 그럼 거기 가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네요. "

우리는 텍스타일 박물관을 나와 국립기념탑으로 갔다. 


태그:#부탄의 전통의상, #고GHO, #키라KIRA, #팀푸 국립텍스타일박물관, #부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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