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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전통복장 고Goh를 입는 가이드 쉐리. 마치 우리나라 두루마기와 흡사하다.
 부탄 전통복장 고Goh를 입는 가이드 쉐리. 마치 우리나라 두루마기와 흡사하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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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부탄의 국경도시 푼춀링에서 팀푸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호텔 로비로  나오니 가이드 쉐리와 운전사가 부탄 전통 복장인 고(Goh)를 입고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나라 두루마기와 비슷한 전통복장을 입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쉐리의 모습이 퍽 고무적으로 보였다. 옷이 날개라더니 입는 옷에 따라 사람이 저렇게 달라보이다니…. 부탄 사람들은 근무할 때나 사원에 갈 때는 고를 입어야 한다.

"쉐리 너무 우아하고 멋진데! 영화배우 스티븐 시걸보다 더 멋있어."
"하하, 오케이 고마워요."
"당신의 멋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데."
"오케이. 기꺼이."

둥근 타원형에 꽁지머리를 한 그는 차수(叉手)를 한 자세로 기꺼이 포즈를 취해줬다. 목이 나오지 않도록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옷고름을 여미고, 양쪽에 하얀 소매를 한 고는 영락없이 우리나라 두루마기와 유사하다. 다만 옷자락이 무릎까지만 내려오고 그 밑으로 스타킹을 신은 모습이 다를 뿐이다.

"쉐리, 덥지 않아요?"
"밑이 뻥 터져서 보기보다 시원해요."
"하하, 그렇겠군요."

푼춀링을 출발한 버스는 가파르게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버스는 급경사의 언덕을 빙빙 돌아가며 서서히 고도를 높였다. 마치 거대한 성벽을 올라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길은 가파르다.

부탄 가는 길... 노고단 오르는 기분인데?

팀푸로 가는 고속도로
 팀푸로 가는 고속도로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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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90m 저지대에서부터 히말라야 산정에 있는 나라 부탄으로의 진입이 시작됐다. 부탄은 국토 전체의 평균고도가 2000m 이상으로 백두산 높이와 맞먹을 정도로 높다. 뭔가 신비한 느낌이 감돈다. 티베트나 네팔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풍경이다.

쉐리는 이 도로가 인도로 통하는 부탄 유일의 고속도로라고 한다. 2차선의 좁은 도로는 포장이 잘 돼 있다. 깊은 산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길이 페루의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 찾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대관령 옛길이나 지리산 노고단을 올라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 길을 부탄에서는 고속도로라고 부른다.

"어쩐지 낯설지가 않아요. 이 길은…."
"마치 지리산 노고단을 올라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어쩐지 지리산을 닮은 부탄의 산하
 어쩐지 지리산을 닮은 부탄의 산하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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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가 많은 산 모양이 지리산을 닮은 듯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1시간여를 올라가자 작은 곰빠가 하나 나왔다. 칼반디라는 곰빠다. 쉐리는 푼춀링 시내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이라며 포토타임을 위해 잠시 차를 멈췄다. 이곳은 인도와 부탄의 경계를 이룬다. 푼춀링과 자이가온 그리고 그 아래로 강이 흐르고 평원이 이어진다.

츄카 현 게두에는 출력 386MW의 수력발전소가 있다. 이곳에서 발전한 전기의 일부를 인도로 수출한다. 낙차가 큰 히말라야의 풍부한 물을 이용해 생산하는 전력은 부탄 제일의 수출품이다.

오전 10시께, 버스는 게두 대학을 지나 어느 레스토랑에 잠시 멈췄다. 호텔 담뷰(Hotel Damview)라는 레스토랑이다. 계단식 논밭이 호텔 아래로 펼쳐지고 아득히 먼 계곡에는 수력발전을 위한 댐이 있다. 우리는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차를 한잔 마시며 잠시 경치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

국왕도 정년이 있어야 한다는 나라

팀푸로 가는 길에 잠시 휴식을 취했던 호텔 담뷰.
 팀푸로 가는 길에 잠시 휴식을 취했던 호텔 담뷰.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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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서 내려다 본 풍경. 계곡 아래 수력발전소 댐이 보인다.
 레스토랑에서 내려다 본 풍경. 계곡 아래 수력발전소 댐이 보인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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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벽에는 부탄 초대 국왕부터 현재 5대 국왕의 사진을 보기 좋게 걸려 있다. 그중에서 네 명의 여인과 함께 서 있는 왕의 사진이 무척 흥미롭게 보였다.

"쉐리, 저 네 명의 여인과 함께 서 있는 왕은 어떤 왕이지요?"
"네, 부탄의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왕과 왕비님의 사진입니다. 왕께서는 이 네 명의 자매를 왕비로 삼았지요."
"네 명의 자매를 왕비로?"

"네, 부탄에서는 일부다처 제도가 용인되고 있습니다. 싱기에 국왕은 17살의 어린 나이에 국왕이 돼 모든 국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현자입니다. 지금은 국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저 네 분의 왕비와 아주 사이좋게 지내고 있지요."
"국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네 명의 왕비와 사이좋게 지낸다고요?"

팀푸로 가는 산간 레스토랑에 걸려 있는 부탄의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와 네 명의 자매 왕비 사진. 부탄의 레스토랑에 가면 흔히 걸려 있는 사진이다. 싱기에 국왕은 17세에 왕위를 물려 받아 52세에 왕위를 젊은 아들에게 물려준 왕으로 100년 동안 이어온 절대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전환시키고, 국민행복지수를 도입하여 부탄에서는 성군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팀푸로 가는 산간 레스토랑에 걸려 있는 부탄의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와 네 명의 자매 왕비 사진. 부탄의 레스토랑에 가면 흔히 걸려 있는 사진이다. 싱기에 국왕은 17세에 왕위를 물려 받아 52세에 왕위를 젊은 아들에게 물려준 왕으로 100년 동안 이어온 절대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전환시키고, 국민행복지수를 도입하여 부탄에서는 성군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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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52세에 국왕의 자리를 내려놓고 활쏘기 등 취미생활을 즐기며 조용히 살고 계시지요. 왕비님들의 거쳐는 다 따로 있는데요, 왕비님들은 서로 사이가 좋아요. 그중 셋째 왕비의 아들인 지그메 케사르 남걀 왕추크왕자님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지요."
"그럼 다른 왕비와의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나요?"

"물론 있습니다. 싱게에 국왕은 네 분의 왕비 사이에 5명의 왕자와 5명의 공주를 뒀습니다. 그중에서 셋째 왕비의 아들이 가장 나이가 많은 장남이지요. 왕권을 물려주기 전에 가족회의를 했는데 모두가 현 5대 국왕인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왕자님에게 왕권을 물려주는 데 찬성했다고 합니다."
"그것 참 매우 흥미롭군요."

쉐리가 들려 준 이야기는 마치 어느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신비하기만 했다. 나는 잠시 왕권 찬탈을 위해 조선 시대 '왕자의 난'을 비롯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고 물렸던 우리나라의 권력투쟁 역사가 상기됐다. 그런데 한참 일을 할 중년의 나이에 왕권을 그냥 물려주다니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또 알게 모르게 수많은 후궁을 거느린 과거 우리나라의 왕실에 비해, 네 명의 왕비와 보란 듯이 서서 국민 앞에 떳떳이 보여주며 살아가는 부탄의 국왕이 훨씬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솔직하게 '커밍아웃'하며 진솔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왕이 직접 민주주의 설파한 나라, 부탄

부탄 초대 국왕 우기엔 왕추크
 부탄 초대 국왕 우기엔 왕추크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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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떻게 한참 일할 나이에 왕위를 물려 줄 수 있었지요?"
"네. 싱기에 국왕은 젊은 왕자님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00년 동안 지켜온 절대군주제 대신 입헌군주제를 채택했어요. 민주주의를 위해 선거를 실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 부탄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지요. 국민들은 처음 접하는 선거라는 것이 낯설기만 하고 불안했어요. 그리고 모든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국왕이 물러난다고 하니 그것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고요. 그런데 국왕의 말씀이 이제 왕도 좀 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싱기에 국왕은 왕의 정년을 다른 관리들과 마찬가지로 65세로 정하고 자신은 조기 정년을 한 셈이지요."
"뭐? 국왕도 조기 정년을 한다고요? 그거 참으로 놀랍군요!"

부탄의 산신. 우리나라 산신과 흡사하다.
 부탄의 산신. 우리나라 산신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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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팀푸로 가는 버스에서 4대 부탄 국왕 싱기에 대하여 쉐리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싱기에 전 국왕은 1972년 17세의 나이에 국왕의 자리에 올라 중세에 머물러 있던 부탄을 근대화로 이끌어온 주역이다.

왕은 즉위와 함께 외국인의 입국을 처음으로 허용하고, 교육혁명을 통해 80%에 달했던 문맹률(1980년)을 40%로 낮췄다. 또한 전국에 보건소를 확대해 43세였던 평균수명을 68세로 끌어올렸다. 그의 업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국민행복지수를 개발해 도입하고, 국민들에게 물질적인 삶보다는 영적인 삶을 추구할 것을 강조했다.

"나는 좋은 국왕이 되려고 노력할 수 있지만, 이후 대대로 좋은 국왕이 계속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가 민주화를 도입하기 위해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한 말이다. 싱기에 왕은 스스로 왕위를 아들에게 넘겨주고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한 세계 최초의 왕이 됐다. 또 왕은 민주주의 신념을 피력하면서 왕의 정년을 일반 관리들과 똑같이 65세로 정했다. 그리고 자신은 52세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국왕의 자리에서 조기 퇴직했다. 

부탄의 수도 팀푸 시내 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부탄의 수도 팀푸 시내 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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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 부탄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와 갑작스럽게 민주주의로 전환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망연자실하며 입헌군주제도로의 전환을 반대했다고 한다. 이에 왕은 "국민이 행복하려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며 국민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참으로 이상한 왕이다. 죽을 때까지 종신 왕위를 유지하는 여러 나라와 다른 매우 혁명적인 발상이다. 왕이 조기 퇴직하고 모든 국민이 왕을 존경하는 부탄은 분명히 '싹수'가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왕실에 부패가 없다. 왕이 검소하고 정직한 생활을 하다 보니 그 밑에 모든 관리들도 따라서 부패가 없고, 국민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노력하고 있다.

쉐리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부탄의 수도 팀푸(Thimphu)에 도착했다. 왕추(Wang Chhu)를 가운데 두고 낮고 조용하게 펼쳐진 마을이 눈이 들어왔다. 뭐랄까? 꼭 지리산 노고단 자락에 있는 구례읍 크기만 하다고 할까? 멀리 눈 덮인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팀푸는 평화롭게 보였다.

(* 다음 기사에 계속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난 2012년 5월에 여행을 한 내용입니다.



태그:#부탄여행, #국민행복지수,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팀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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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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