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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중략)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대답이 다행히 창조적 통일로 끝났을때, 그때 우리는 현정권에 대한 효력있는 저항을 참색할수 있을 것이다. 부디 자중자애 하라. 부디 절망하지 말라. 절망은 폭력과 죽음, 그리고 종말의 서곡이다."

1991년 5월 5일 치 <조선일보>에 실란 '죽음의 굿판을 걷워치워라' 칼럼입니다. 글쓴이는 21년 전 <사상계> 5월호에 "(장차관) 굶더라도 수출, 안 팔려도 증산 / 아사한 놈 뼈다귀로 현해탄 다리 놓아 / 가미사마 배알하듯 / 예산 몽땅 먹고 입찰에서 왕창 먹고 / 행여 냄새 날라 질근질근 껌 씹고 캔트 피워 물고"라는 <오적>을 지은 김지하였습니다.

독재자 박정희에 저항했다가 '옥살이'까지 했던 김지하가 노태우 정권에 저항하다 자기 몸을 불살라 스러져가는 대학생들을 '죽음의 굿판'이라며 맹비난하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1991년, 불타오르는 대학가

1991년 5월 투쟁
 1991년 5월 투쟁
ⓒ 강경대열사 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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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봄은 참 뜨거웠습니다. 아니 대학가는 불타올랐습니다. 4월 26일 명지대 강경대씨가 백골단이 휘드른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어 4월 29일 전남대학교 박승희씨, 5월 1일 안동대학교 김영균씨, 5월 3일 경원대학교 천세용씨가 몸을 불살랐습니다. 5월 25일에는 성균관대 김귀정씨가 백골단의 강제진압에 의해 생명을 잃었습니다. 학생 두 명을 때려 죽여놓고도 노태우 정권은 반성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5월 25일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저는 신학대학을 다녔습니다. 당시 신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학생들을 맡아 가르쳤습니다. 당시 저는 부산 영도에 있는 한 교회 전도사로 있었습니다. 다음 날 오전 예배때 대표기도를 했습니다. 기도 내용이 어렴풋하게 기억납니다.

"하나님 아버지, 또 다시 독재권력이 학생을 때려 죽였습니다. 학생들이 몸을 불살라 죽음에 이르는 것도 모자라 권력이 학생을 죽였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저들의 죄를 벌하여 주십시오. 더 이상 학생들이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이 나라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독재권력이 학생을 또 다시 죽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권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도 터져나오게 해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교회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전도사가 기도 시간에 권력을 비판하고, 스스로 죽은 학생들을 긍휼히 여겨달라는 기도를 했으니 가만히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자살을 정죄하는 개신교 교리와도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당장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젊은 신자들이 "대학생이 저 정도 말을 할 수 있다"며 변호해줘 '해고'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신학교에 분향소를? 있을 수 없는 일!"

그런데 더 큰 일은 학교에서 일어났습니다. 강경대씨 타살 직후, 학교에서 '분향소'가 설치됐습니다. 학교가 1982년 3월 18일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을 일으킨 학생들이 다녔던 학교였기 때문에 정치행위에 대해 굉장히 예민했습니다. 더구나 스스로를 불태운 학생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설치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분향소를 설치한 학생들은 이른바 '운동권'이었습니다.

"죽음 사람을 위해 분향소를 설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태우 독재정권이 강경대 열사를 때려 죽였다. 그를 기리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학교는 신학교다. 신학교에서 어떻게 제사를 드릴 수 있느냐."
"이것은 제사가 아니다."
"분향소를 설치하는 것이 제사가 아니면, 무엇이 제사인가."
"독재정권이 죄 없는 학생을 때려 죽였는데.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어떻게 제사인가."

하지만 분향소를 설치한 학생들을 소수였고, 반대하는 학생들은 다수였습니다. 힘의 논리에 밀려 분향소는 철거됐습니다. 이어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같은 반 학생들(신학생)과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같은 말로 논쟁했습니다.

"분향소 철거는 폭력이다."
"강제로 철거한 것은 성급했지만, 그래도 신학교에서 죽은 사람을 어떻게 기릴 수 있느냐."
"죽은 사람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노태우 정권이 학생을 죽였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이 이를 가만두고 넘어갈 수 있나."
"분향소 말고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분향소 논란이 조금 수그러들자 이번에는 '묵념'이 문제가 됐습니다. 그때는 총학생회장을 봄에 선출했습니다. 후보자들 연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관위가 '묵념'을 하자고 했습니다.

"후보자들 연설 이전에 타살당한 강경대 열사와 분신한 학우들을 위해 묵념합시다."
"야! 너희들은 사탄이야. 사탄. 어떻게 신성한 예배실에서 죽음 사람을 기리는 묵념을 할 수 있느냐. 기도로 시작해도 모자랄 판에, 죽은 사람을 위해 묵념하자고? 이는 우상숭배다!"
"이게 무슨 우상숭배냐."
"묵념이 우상숭배지, 그럼 무엇이 우상숭배냐!"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다시 동무들과 함께 했습니다. 대부분은 예배실에서 묵념이 너무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서로 정죄는 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토론하고 논쟁했습니다. 사상과 이념이 달라도, 그 생각에 동의는 하지 못해도, 존중했습니다. 2013년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물론 분향소와 묵념 사건으로 서로가 상처를 받았지만, 함께할 수 없는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분향소와 묵념은 함께 못해도 대자보는 써보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분향소와 묵념은 함께 못해도 대자보로 우리 생각을 전달할 수 있지 않느냐."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럼 누가 쓸까? 네가 한 번 써라."
"내가 무슨 글쓰는 실력이 있나."
"네가 가장 적극적이 아이가. 특히 요즘 돌멩이도 들잖아."
"거리에 나가지만, 돌은 안 던진다."
"그럼 화염병?"
"돌도 안 던지는 무슨 화염병을."
"그래도 네가 제격이다. 대자보 써라."
"나는 글쓰는 실력이 안 된다니까. OO형이 어떻겠노."
"OO형. 맞다 그 형이 글고 잘 쓰고, 생각도 노태우 정권이 비판적이다."

'대자보'는 선동이 아닙니다... 열정입니다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명신관 앞 게시판에 부착되어 있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한 학생이 읽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명신관 앞 게시판에 부착되어 있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한 학생이 읽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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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끝내 대자보 쓰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글쓰기 능력과 대자보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두려웠습니다. 내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동무들과 길거리에 나가 데모까지 했는데 왜 대자보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했는지…. 부끄럽습니다. 학교 앞에 경찰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목사님과 신자들 앞에서 "노태우 정권을 심판해달라"는 기도는 해놓고, 대자보 쓰는 용기는 없었는지. 어쩌면 교회는 감옥에 보내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22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국사회에 대자보가 등장했습니다. 성격과 목적은 다르지만, 22년만에 대자보가 학교에 다시 붙었다는 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적어도 22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방증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원칙에 따른 불통은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철도 민영화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댓글로 대통령 됐느냐"고 분노합니다. 그리고는 민주정당 해산을 밀어붙이고, 전교조를 노조가 아니라고 우깁니다.

교육부는 "면학분위기 해친다"며 '안녕 대자보 차단' 공문을 일선 학교에 내려보냈습니다. 교장 선생은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자 이를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학생들이 대단합니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그 학생들을 존경합니다. 22년 전 대자보를 붙이지 못한 그 부끄러움. 아직도 가슴 한켠에 남아 있습니다. 대자보는 '선동'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자보의 추억' 응모기사입니다.



태그:#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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