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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순간적 판단 착오만 아니었다면, 나의 대학 생활은 한 마리 백조처럼 우아했을지 모른다. 과거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 짧은 순간의 선택은 나를, 대학 생활 내내 습기 찬 지하에서 페인트와 시너, 그리고 새하얀 대자보 용지들과 뒹굴게 만들었다.

때는 1994년 2월의 어느 날. 대학에 합격하고, 1박 2일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게 되었다. 지방에서 더 지방으로 대학을 간 나로서는 1박의 일정 동안 머물 곳이 여의치 않았다. 그런 나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은 피켓이 있었으니, 바로 '민박 5000원. 숙식 제공. 선배들이 대학생활의 노하우를 전수해 드립니다!' 라고 적힌 학생회 선배들의 광고였다.

다른 무엇보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 5000원이라는 제안은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당시 여관비가 1만5000원쯤이었으니 이모저모 따져봐도 수지 맞는 장사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횡재라고 생각, 아니 착각했었다. 내가 단돈 5000원에 머물렀던 그곳은 다름 아닌 학생회 선전국장을 맡고 있던 '곰탱이'라는 별명의 선배 자취방이었고, 나는 대학 생활의 노하우 대신 대자보 작성의 비법을 전수 받게 되었던 것이다.

평소에 여자처럼 글씨를 예쁘게 쓴다는 소리를 자주 듣던, 순박한 신입생은, 악마의 유혹인 줄도 모르고, 선배들의 제안을 덥석 물었고, 훗날 홍보와 선전의 달인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그 날 이후로 7년 만에 가까스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종이와 매직, 그리고 붓과 물감만 있으면, 신 내린 무당처럼 나는 닥치는 대로 써내려 갔다.

대자보 한 장 작성에 10분, 신의 경지에 이르다

언제든 대자보를 써 들고 뛰쳐 나갈 수 있도록 항상 준비 중이다.
▲ '항상 엔진을 켜둘게' 언제든 대자보를 써 들고 뛰쳐 나갈 수 있도록 항상 준비 중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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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2년간은 선배들이 적어준 문구를 단순히 대자보 용지에 옮겨 적는 일을 했다. 글자 간격에 맞게 대자보 용지를 반듯이 접고, 강조할 단어들은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어 적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다 보니 아무렇게 갈겨 적어도 행과 열이 각을 잡았고, 대자보 한 장 적는 데 십여 분이면 충분해지는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홍보와 선전의 거인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면서부터는 학생회 선전과 홍보를 담당했는데, 그 당시 대자보에 적었던 내용들은 주로 정치 현안에 대한 학생회 의견이나 학원 자주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단순하게 옮겨적기만 하던 것이 문구의 내용까지 생각하게 되면서, 고민도 커지고, 스케일도 점점 커져 갔다.

흔히 전지라고 표현하는 대자보 용지 열여섯 장을 테이프로 이어 붙여 대형 걸개용 대자보를 만드는 신공을 발휘한 것이다. 그렇게 큰 선전물은 책상 위에서 쓸 수가 없다. 학우들 대부분이 술집으로 향하는 저녁 7시부터 1층 현관에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적는다. 그때 몇 시간씩 시멘트 바닥을 엎드려 기어다닌 후유증일까? 요즘도 겨울이면 무릎이 시리다.

어느 날은 수업을 자체 휴강하고, 학생회실에서 대자보를 쓰고 있는데, 학장님이 들어오셔서는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누군가 했더니 바로 자네였구먼... 글씨는 잘 쓰네"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홀연히 나가버리셨다. 차라리 혼을 내키시지, 침묵은 때론 비수보다 날카롭다. 그 날 이후로 학장님 수업만은 절대 빼먹지 않았다.

대자보의 세계에도 일종의 서열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초짜들의 경우는 주로 선배들이 건네주는 문구를 대자보 용지에 옮겨 적는 비교적 단순한 일을 한다. 선배가 되어감에 따라, 문구 작성과 대형 대자보의 구상 및 감독을 담당하고, 마지막 최고의 레벨이 되면 현수막을 만드는 고난이도의 기술을 연마한다.

플래카드용 천에 페인트로 글씨를 쓰는 일은 훨씬 고난도의 작업이다. 페인트와 시너(신나)의 비율을 적절히 조합해야 하고, 한 번 붓질 할 때 묻히는 페인트의 양 조절을 정확히 해야 글씨가 흘러내리지 않는다. 책상 두 개에 천을 못질해서 팽팽히 잡아당기는 일 또한 대단히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재주가 참 많은 애야, 신은 공평해..."

누군가는 이런 오해를 하기도 한다. 시너와 페인트 냄새 자욱한 지하실 복도에서 담배 하나 꼬나물고 붓질을 하고 있노라면, 지나가는 여자 후배들에게 동경 혹은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냐고. 찢어진 청바지에 군용 잠바를 입고 마치 위대한 예술가처럼 현수막 글씨를 쓰고 있는 남자 선배의 모습은 그 자체가 영화속의 주인공 아니던가?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지나가던 여자 선배들의 재잘거림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재주가 참 많은 애야. 신은 참 공평해, 쟤가 얼굴까지 잘 생겼으면, 반할 뻔했어."

학생 때 습관이 남아서 요즘도 전달 사항이나 공유할 내용이 있으면 대자보를 활용한다.
▲ 세미나실에 붙어 있는 대자보 학생 때 습관이 남아서 요즘도 전달 사항이나 공유할 내용이 있으면 대자보를 활용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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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두어 마리 머리 위를 날고, 염소 우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페인트가 묻을까봐 새 옷도 못입고, 일 년 중 절반은 손에서 물감과 매직이 지워질 날이 없던 나를, 차디찬 시멘트 바닥을 내집 안방처럼 박박 기어다니며 대자보를 쓰던 나를, 두 번 죽이는 멘트였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갔고, 세 살 버릇 여든 가는 건지, 그런 추억들 때문인지, 요즘도 나는 가끔 대자보를 활용한다. 하얀 대자보 용지 위에 매직으로 쓰인 글씨에는 프린트를 통해 출력된 활자의 냉정함과 치밀함 대신에 따뜻한 인간미와 여유로움이 있다. 그래서인지 장안의 화제를 몰고 온 '안녕 대자보'가 반갑기 그지없다. 대자보라는 형식 자체도 지난 향수에 젖게 하지만, 그 내용면에서도 더더욱 환영 받을 만한 일이다.

안녕 대자보에 대해서는 이미 사회 각층의 분석과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이 있었으니 새삼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안녕 대자보를 통해 나의 아련한 기억들이 되살아난 것과 대자보 속 내용들에 의해 깨어난 청년의 열정이 나뿐만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어이, 곰탱이형! 안녕하신가? 옛 생각나면서 몸이 좀 근질거리지 않아? 이번 주말에 안녕 대자보 한 장씩 써들고 시청 광장에서 만나는 건 어때? 내 청춘, 대자보 용지 위에서 뛰놀게 만들었으면, 끝까지 같이 놀아줘야지! 곰탱이형!


태그:#대자보, #현수막 , #안녕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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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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