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의 한 장면

▲ 변호인 의 한 장면 ⓒ 위더스필름(주)


한 변호사가 법정에 서서 '대한민국의 주권'을 소리높여 말한 건 순전히 국밥집 아지매 최순애(김영애 분)에 대한 마음의 빚 때문이었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변호인>의 이야기다.

주인공 송우석(송강호 분)은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노동으로 하루하루 입에 풀칠해야만 했다. 아이가 태어나는 날에도 아내와 함께 있지 못했다. 노동 현장에서 반나절의 품삯만큼 일한 뒤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가야 할 정도로 가난했으니, 송우석에게 국밥 한 그릇은 사치나 다름없었다.

변호인 의 한 장면

▲ 변호인 의 한 장면 ⓒ 위더스필름(주)


외상으로 결제한 밀린 국밥값을 갚지 못하고 황급히 최순애의 국밥집을 떠나려는 찰나, 송우석은 최순애의 아들 진우(임시완 분)을 마주한다. 송우석과 진우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변호사로 성공한 송우석은 7년 전 떼어먹은 식대를 갚으려고 최순애의 국밥집에 다시 찾아온다. 그 가운데서 송우석은 대학생이 된 진우와 재회하게 된다.

갓 대학생이 된 진우의 낭만적인 상아탑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불온서적을 소지하고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 돼 영장 발부도 받지 않은 경찰에게 끌려간다. 행방불명된 아들의 소재지를 겨우 찾은 최순애가 송우석을 찾아왔을 때 송우석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잘나가는 기업의 변호사로 채용되느냐 마느냐 하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그것.

7년 전 국밥 값을 떼어먹은 마음의 빚이 송우석에게 없었다면 그는 최순애의 부탁을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송우석은 7년 전에 진 마음의 빚을 기억하고 최순애의 집 앞에서 저녁 나절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송우석은 의리의 사나이다. 7년 전에 진 빚인 국밥값을 기억하고는 사라진 최순애의 아들 진우를 찾아주기 위해 인권에 눈뜨게 된다. 최순애에게 마음의 빚을 직접 갚는 게 아니라 그의 아들에게 갚으려고 고민하고 애쓰는 송우석의 모습은 물질적인 보상 이상으로 최순애에게 돌려주는 은혜 갚는 빚쟁이의 모습이면서, 앞으로 송우석의 인생 항로를 영원히 바꿔놓을 거대한 발걸음의 시초가 된다.

대학생 진우가 갇힌 세상... 애국이 된 파시즘

변호인 의 한 장면

▲ 변호인 의 한 장면 ⓒ 위더스필름(주)


진우가 갇힌 세상은 파시즘을 애국으로 착각하는 세상이다. 엄한 사람을 잡아놓고는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다. 그리고는 먹다 남은 김치찌개 국물을 수건에 들이붓는다. 콧구멍에 고춧가루를 탄 물을 들이붓던 일제가 자행한 형태의 고문을 진우에게 태연자약하게 자행한다. 구타와 인격 모독은 기본이고 팬티만 입은 진우를 통닭구이처럼 매달기도 한다. 영화 <변호인>은 국가 권력이 파시즘으로 작용할 때, 개인을 어떻게 교란하고 위해를 입히는가를 정면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 공안경찰의 모습에서 죄의식이라고는 나노미터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이 해야 할 일, 빨갱이를 때려잡고 색출하는 것을 '애국'으로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휴전이지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면서 대한민국에 잠입한 빨갱이를 찾아내고 법정에 세워 단죄하는 것이 최상의 애국이라고 착각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런 공안경찰이 착각하는 게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이 애국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두환 군사정권에 톡톡한 도움을 준다는 걸 말이다. 공안경찰은 위에서 '까라면 까'라는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한 나머지 자기반성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채 잡혀온 사람들을 옥죈다. 영화 <변호인> 속 공안경찰은 군사정권의 부속품임에 틀림없다. 관객들은 이런 끔찍한 상황을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관객이야 당연히 공안경찰이 잘못된 판단을 하고 그릇된 일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오늘날 전두환 정권 당시 공안경찰처럼 그른 일을 바른 일이라고 믿고 그릇된 일을 행한다면? 훗날 역사라는 거울이 우리가 가한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되짚어줄 것이다. 역사적 평가는 역사가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영화 <변호인>처럼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도 가능하다. 우리가 훗날의 역사 앞에서 떳떳하기 위해서는 '자성'이라는 필터링이 필요하다.

변호인 의 한 장면

▲ 변호인 의 한 장면 ⓒ 박정환


다시 영화 <변호인> 속 송우석으로 되돌아가 보자. 공안경찰에 의해 강제진술서를 쓴 부림사건의 희생자는 육체만 유린당한 게 아니다. 희생자의 정체성이 국가의 고문 기술자들 앞에서 산산조각 나고, 빈자리에 공안경찰이 부여한 그릇된 정체성이 부여된다. '나는 빨갱이'라는 진술서를 통해 당시 고초를 겪었던 이들의 영혼에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공안경찰은 그들의 영혼에 치명적인 생치기를 남겼다.

이 영화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뻔한 부림사건을 양심의 소리로 환원하는 이는 송우석이다. 부귀영화의 길을 버리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는 그의 길은 험난하고 외롭다. 영화 속 보수주의자들은 송우석을 '빨갱이를 변호하려 하는 불순분자'로 간주하고 그의 신변을 캐묻기 시작한다. 함부로 변호하지 말라는 모종의 협박인 셈이다. 이도 모자라 송우석에게 계란을 던지기까지 하는 물리적인 폭력까지 행한다.

그럼에도 송우석은 판사와 검사에게 진실이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송우석은 법정에서 인간의 소리·양심의 소리가 무엇인가를 환기하고 인간의 권리를 촉구하며 자성을 환기시킨다. 또한 국가권력이 잘못됐을 때 권력에 주눅이 들지 말고 잘못을 시정할 것을 주장한다. 송의석은 불의한 권력에 대항할 줄 아는 '부산의 촛불'임에 틀림없다.

송우석이라는 촛불은 국가권력의 폐해만 비판하지 않는다. 따뜻한 시선이 그 안에 담겨있다. 송우석의 따뜻한 시선이란 고문으로 국가의 파시즘을 체득한 부림사건의 피해자를 향하는 따뜻함이다. '공안 정국이 부여한 잘못된 파시즘이 창출한 정체성을 거부하라'고 희생자들에게 소리치는 이가 바로 송우석이다. 국가폭력이라는 독소를 제거하면서 다시금 원래의 정체성을 되찾게 만들어주는 힘이 느껴진다.

영화 <변호인>은 국가가 개인의 육체와 마음에 어떻게 생채기를 내는지 보여줄 뿐만 아니라, 희생자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고 새 희망을 부여해주는 작품이다.

변호인 송강호 제국의아이들 임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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