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의 한 장면

▲ 변호인 의 한 장면 ⓒ 위더스필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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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이 일부 네티즌의 '별점 테러'(영화 내용과 상관없이 의도적으로 낮은 평점을 주는 행위)를 당했고, 이후 여러 영화들이 그 희생양이 됐다. 최근 개봉을 앞둔 <변호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작품성이나 오락성에 있어 몹쓸 영화가 아니라면 굳이 별점으로 혹평을 감행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개봉 직전의 영화에 1점짜리 별점 공세를 퍼붓는다는 건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영화가 상영하기도 전에 극명하게 갈린다는 걸 의미함과 동시에, 많은 사람이 해당 영화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반대 진영의 두려움이 공존한다는 걸 의미한다.

영화 <변호인>은 누군가에게는 민감한 사안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부림사건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다. 정권을 강화하기 위해 집권자가 행하는 정치술 가운데 하나는 '외부의 적'을 상정하는 방법이다.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함이다. 굳이 과거를 돌아보지 않더라도 아베 정권이 우경화로 돌아서는 이유도 같은 논리다.

변호인 의 한 장면

▲ 변호인 의 한 장면 ⓒ 위더스필름(주)


반성하지 않고 적을 만드는 행위가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었다

가령 독도와 댜오위다오 섬을 자극하면 일본의 주변국인 한국과 중국은 당연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주변국이 일본을 강하게 비난하면 비난할수록 우경화를 외치는 아베 정권은, 이웃 국가들이 이렇게 일본에 목소리를 높이는데 어떻게 일본의 안보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느냐고 주장한다. 자위대의 외국 진출처럼 아베 정권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꼼수를 일본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가며 꾀할 수 있다.

부림사건 역시 당시 전두환 정권의 정권 강화를 위해 매카시즘을 들어 조작하기에 이른다. 광주민주화항쟁으로 한 차례 호된 맛을 본 전두환 정권은 이번에는 영남에서 빨갱이 타도를 기획한다. 단순하게 독서모임을 주관한 대학생을 용공 세력에 가담한 빨갱이 불순 세력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영장 없이 체포 후 갖은 고문과 회유, 협박을 통해 체제 전복을 꾀하는 불순분자로 탈바꿈시킨 용공 조작 사건이다.

요즘에야 믿기 힘들겠지만 1980년대에는 '엄한 책'을 들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찰서에 끌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서적도 군사독재정권이 보기에는 불온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영화에서 검사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가 소련 사람이며, 소련식 공산주의를 독서 모임을 통해 퍼뜨린다고 기소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나 인문학을 조금만 아는 이라면 이 책의 저자인 E.H.카가 소련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영국인 역사학자를 소련인으로 날조하는 공안 정국의 얼치기 공작인 것이다. 주인공인 송우석(송강호 분)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영국인을 소련인으로 둔갑시킨 공안 검사의 휘둘림에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을 날조 아닌 날조가 아니던가.

부림사건으로 경찰서에 끌려온 대학생은 그냥 심문만 당하는 게 아니다. 통닭구이나 물고문으로 신체가 훼손당하고 정신마저 학대당한다. 마치 마녀재판처럼 말이다. 마녀라고 한 번 낙인이 찍힌 여자는 본인이 아무리 마녀가 아니라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한번 찍히면 이렇게든 저렇게든 결국 죽기 마련이었다.

변호인 의 한 장면

▲ 변호인 의 한 장면 ⓒ 위더스필름(주)


세속적 인물이 정의에 눈 뜨기까지...<변호인>은 곧 힐링이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7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 분)가 공안정국의 희생양이라는 걸 아는 송우근은 당시 부림사건의 희생자들이 무죄임을 입증하기 위해 싸운다.

송우근은 틈새시장에 강한 변호사다. 당시 다른 변호사들이 눈독 들이지 않던 부동산 혹은 세법을 파고들어 나름 쏠쏠한 수입을 올렸다. 이런 송우근이 부림사건 희생자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경제적인 이익을 포기하는 변신은 곧 그가 인권변호사로서 거대한 발걸음을 내딛는 첫 순간이었다.

송우근이 인권변호사로 돌아서기 전까지의 법정은, 송영창과 조민기가 연기하는 판사와 검사가 지배하 세상이었다. 이런 세상은 일본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세계관과 맞물린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에서 주인공은 지하철 치한으로 내몰린다. 일본에서 한 번 지하철 치한으로 내몰리면 무죄 방면이 어렵다. 형량을 줄이는 게 중요하지 무죄를 입증하는 장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변호인> 속 법정은 피의자가 무죄라는 게 중요하지 않다. 국가 반역을 꾀한 피의자에게 형량이 얼마만큼 부여되는가가 중요한 세상이다. 이처럼 견고하게 디자인된 공안 정국의 '유죄 추정의 법칙'을 깨는 일등 공신은 송우석이다.

송우석의 변론 하나 하나는, 인권 변호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전직 대통령의 그림자를 반추하게 만드는 통쾌함으로 작용한다. 송우석의 변론은 부림사건을 조작한 공안 정국이 국가의 안위를 내세운 채 얼마나 많은 청춘을 짓밟고 유린하였는가를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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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인 의 한 장면 ⓒ 위더스필름(주)


송우석은 다소 모순적인 인물이다. 운동하는 학생을 일컬어 배가 불러 데모나 하는 청춘이라고 경원시했던 그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건이 전개되면서 인권 변호사로 돌변한다. 시대의 어둠을 이길 수 있는 건 침묵이 아니라는 걸 <변호인>은 이야기하고 있다.

만일 송우석이 부림사건에 침묵하고 세법 변호사로만 남았다면 개인의 부귀영화는 꾀했을지 몰라도 제 2, 제 3의 부림사건이 터졌을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참여정부도 성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은, 적어도 불의 앞에서는 틀린 말임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하나 더, 송우석이라는 변호사로 말미암아 부림사건의 피해자는 정신적인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자신들이 국가 전복을 꾀하는 불온 세력이 아니라는 걸 끝까지 믿어주고 입증하고자 끝까지 노력한 송우석 변호사는 정신적인 위안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힐링이 유행하는 요즘, 1980년대에 힐링 변호사가 이미 부산에 있었다.

변호인 송강호 노무현 임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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