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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햄릿>에 출연하는 배우들

연극 <햄릿>에 출연하는 배우들 ⓒ 명동예술극장


연극계에서 올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히던 <햄릿>이 4일 막을 올렸다. 한국에서 한 해 동안 무대에 오르는 <햄릿>이 어디 한 두 편이던가. 수백 편은 족히 될 터. 그럼에도 명동예술극장이 선보이는 <햄릿>이 연극계의 기대작이었던 건 정보석·김학철이 출연하는 것도 모자라 오경택 연출가가 가세한 덕이었다.

요즘 오페라의 연출은 '모더니즘'이 대세다. 무대가 모던하든 시대적 배경이 현대이든 원작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 게 추세다. <햄릿>도 마찬가지다. 포스터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 극중 캐릭터는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하고 햄릿은 총을 뽑아든다. 배경은 중세 덴마크지만 연출적인 부분에서 모던한 경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햄릿>은 원작을 그대로 공연하면 공연 시간이 4시간에 가깝다. 이러한 시간적인 부담 때문에 오경택 연출가는 "이야기 구조를 헝클어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대사의 절반가량을 덜어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명동예술극장의 <햄릿>은 원작을 어떻게 재해석했을까. 연극은 동생에게 살해당한 햄릿의 아버지를 육체가 필요한 유령으로 상정, 호레이쇼의 육체의 빙의하는 유령으로 그렸다. 영혼 그 자체로는 아들에게 말을 걸지 못하다보니 다른 육체를 빌려 아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연극 <햄릿>의 한 장면. 오필리어(전경수 분)를 끌어안는 햄릿(정보석 분)

연극 <햄릿>의 한 장면. 오필리어(전경수 분)를 끌어안는 햄릿(정보석 분) ⓒ 명동예술극장


친구라고 믿을 건 못 된다.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햄릿의 친구지만 햄릿의 행동거지를 왕에게 하나하나 일러바치는 프락치나 다름없다. 정보석이 연기하는 햄릿은 1막에서는 허허실실의 햄릿이다. 겉으로는 미친 척하면서 입 꼬리가 귓가에 항상 걸려 있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고뇌가 인물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는 연기를 보여준다.

허허실실한 1막의 햄릿은 2막으로 넘어가면서 복수의 대립각을 숨기지 않는다. 2막의 햄릿은 어머니 거투르드에게 죄의식을 상기하도록 만들어준다.

정보석이 연기하는 햄릿이 어머니 거투르드의 입가에 묻히는 검댕은 죽은 아버지의 육체와 오버랩된다. 남편이 죽은 지 두 달 만에 시동생과 결혼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어머니의 입을, 죽은 아버지의 육체를 상기하게 만드는 검댕으로 칠하는 이 부분은 거투르드의 입을 정죄하는 것이자 동시에 그의 죄의식을 상기케 만들어주는 연출이다. 또한 뼈대만 앙상한 드레스폼을 거투르드에게 입히는 것은 그동안 어머니에게 순종만 해오던 햄릿이 이제는 거꾸로 그의 사고관을 어머니에게 덧입히겠다는 의미다.

배우들이 넘나드는 막 또한 거투르드의 죄의식을 상기하기 위해 사용된다. 대개의 경우 막으로 빈 공간이나 천이 애용되지만, <햄릿>에서는 얇은 금속이 사용됐다.

 연극 <햄릿>의 한 장면. 레어티스(박완규 분)와 운명의 검술 시합을 벌이는 햄릿(정보석 분)

연극 <햄릿>의 한 장면. 레어티스(박완규 분)와 운명의 검술 시합을 벌이는 햄릿(정보석 분) ⓒ 명동예술극장


배우들이 금속 막을 넘나들 때, 재질의 특성 상 소리가 울린다. 이 또한 아버지가 죽었음에도 작은 아버지에게 복수하지 못한다는 햄릿의 죄의식, 혹은 남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시동생과 결혼하는 거투르드의 죄의식을 상기하게 만들어 준다. 죄의식을 되새기는 장치는 금속 막이 다가 아니다. 2막에서 햄릿의 작은 아버지 클로디어스가 바라보는 거울은 형을 죽인 동생의 '카인 콤플렉스'를 되새기게 만드는 소품이기도 하다.

극중 고뇌에 가득 찬 햄릿, 정보석의 연기는 "30년 동안 햄릿 역을 꿈꿔 왔다"는 기자간담회 당시의 고백을 잘 보여준다. 특히 죽은 오필리어의 시신을 관에서 부둥켜안는 햄릿의 모습은, 앞으로 햄릿의 운명 역시 죽은 오필리어와 가까이 맞닿아 있음을 암시하게 만들어주는 장면이다.

<햄릿>은 재해석이나 정보석의 연기에 있어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그대로 연기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원작과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가를 비교해 볼 수 있게 만드는 묘미를 제공하며 연극 팬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다만 햄릿이 클로디어스의 죄의식을 상기하게 만드는 극중 극 장면이, 클로디어스의 얼굴 연기를 볼 수 없는 각도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다소 아쉬웠다.

 연극 <햄릿>의 한 장면. 아버지를 죽인 원수 클로디어스(남명렬 분)의 뒤에서 칼을 겨누는 분노에 찬 햄릿(정보석 분)

연극 <햄릿>의 한 장면. 아버지를 죽인 원수 클로디어스(남명렬 분)의 뒤에서 칼을 겨누는 분노에 찬 햄릿(정보석 분) ⓒ 명동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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