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8월 15일부터 시작하여 9월 15일에 다녀왔습니다. 이동 경로는 강원도 춘천 -> 홍천 -> 횡성 -> 영월 -> 충북 단양 -> 제천 -> 경북 문경 -> 경남 거창을 자전거로 다녀왔습니다. 여행수첩과 사진기록을 토대 삼아 약 5편에 걸쳐 여행기를 작성할 예정입니다. - 기자 말
2013년 8월 15일 오후 4시.
나는 우쭐해 있었다. 왜? 여름 정기 투어에 나서려고 용산역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몰골은 '우쭐'하지 못했다. '삐거덕' 소리가 나는 중고자전거에 짐을 잔뜩 실었는데 그나마 패킹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것들이 한쪽으로 쏠렸다. 뒤에서 보면 자전거의 뒤태가 완전히 껑뚱했던 것이다.
나의 신발도 문제였다. 어차피 장거리 여행을 끝내고 나면 새로 산 신발도 망가지게 되어 있다. 더군다나 나는 자전거만 타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에 트레킹과 등산을 병행한다. 그래서 2012년에 행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때에도 신고 갔던 트레킹화는 서울로 복귀하자마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그런 점을 잘 알기에 나는 아예 '빵구' 난 트레킹화를 신고 갔던 것이다. 자전거 뒤태는 껑뚱하지, 신발은 옆면이 터져 양말이 보이지... 뒤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관련기사:
흥미진진했던 56일, 나는 '백두대간'을 달렸다)
"자전거... 노숙자...?"정말...?"광복절을 맞아 시작한 자전거여행
하지만 나는 그런 괄시를 쿨하게 받아넘겼다.
'난 지금 백두대간을 종단하고 거기다 남해를 횡단할 거다. 푸하핫! 이거 아무나 못하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쉽게 못 덤빌걸. 억만장자 워런 버핏도 쉽게는 못 덤빌 거야!'
워런 버핏도 못할 일을 시작한다고 그렇게 한참 우쭐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여행의 시작일이 또 8·15 광복절이 아닌가? 광복절 맞이 국토대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 더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백두대간을 횡단하고 남해바다를 횡단할 테니 이름을 '백두-남해 자전거여행'이라고 붙이면 되겠군! 푸하핫!'
백두대간 종단과 남해바다 횡단? 호기는 좋았으나 내 앞에 놓인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횡단에 1200Km 이상, 남해바다 횡단에 흑산도까지 입도하려면 600Km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약 1800km 정도 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 떡하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짐이 주렁주렁 매달린 자전거를 다 떨어진 트레킹화로 페달을 굴리며...
1000㎞가 넘는 장거리 여행을 앞두고도 내가 느긋할 수 있었던 건 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이 첫 장거리 여행이 아니었기에 그런 여유를 부렸던 것이다.
'지리산에서 태풍도 맞아봤고, 공동묘지에서도 홀로 밤을 지새웠는데 겁날 게 뭐있겠어. 한두 번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이런 시건방은 아웃도어 여행에서는 독이다. 철저한 준비와 다부진 마음가짐을 갖고 떠나도 될까 말까인데, 시건방부터 떤다면 여행의 성공 여부를 떠나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악사고도 보면 초심자들보다는 '산 좀 탔다'는 사람들이 더 많이 당한다. 네팔도 다녀오고 했는데 해발고도가 낮은 우리나라 산 쯤이야, 하다가 큰 낭패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하여간 나의 시건방은 열차 출발 시각에서도 표출됐다. 여행의 시작점을 춘천으로 잡기 위해 용산역에서 ITX를 탔는데 그 시간이 오후 4시였던 것이다. 남춘천역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되니 첫 페달을 굴린 시각이 오후 6시 경이 되고 말았다. 여름에는 해가 길다고 하지만 그래도 오후 6시가 가까이 된 시각에 여행을 시작하면 그거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시건방은 장거리여행의 독(毒)
나는 춘천 도심지를 떠나 홍천으로 길을 잡았다. 역시 첫 날이라 그런지 몸이 풀리지 않은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춘천에서 홍천가는 길에는 왜그리 오르막이 많던지! 당시 여행일지를 찾아보니 오후 8시에 원창고개 도착, 오후 9시 40분 모래재 도착이라고 적혀 있었다. 모래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주위는 암흑으로 변한 뒤였다. 달빛도 없어 한 치 앞도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갓길도 없는 춘천-홍천간 국도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달빛도 없어 적막한데...'
콘플레이크를 두유에 말아 저녁식사를 했다. 서울에서부터 품고 왔던 그 우쭐함과 시건방은 이미 어둠속으로 사그러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근사한 야영지에서 멋진 '파티'를 벌이겠다는 계획도 이미 암흑 속으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자칫하면 캠핑은커녕 야산에서 노숙을 해야 할 판이었다. 장거리 여행 경력이 풍부한 나에게 노숙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모기였다. 모기와 정면 승부를 벌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새벽에 강원도 모기와 맞대결을 한다고 생각해보시라! 웬만한 공포영화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소름이 돋을 것이다.
'무언가 많이 잘못됐어. 첫날부터 꼬여버렸어. 완전 꼬여버렸어!'
그랬다. 첫 단추가 잘못 끼어지니 마지막까지 엉켰던 것이다. 여정도 대폭 축소가 되었고, 몸도 종합병원으로 변하고 말았다. 실제로 여행 중에 나는 허리가 아파서 드러누웠고, 위장병 때문에 밤잠을 설쳤으며, 이빨에 이상이 생겨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로 이동을 해야 했다. 한마디로 여행 내내 약봉지를 달고 살았던 셈이다.
하지만 가장 안타까웠던 건 여정이 대폭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중간에 경남 거창에서 사과작업을 했는데 그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졌던 것이다. 사과작업을 하느라 에너지도 많이 허비됐고, 추석은 코 앞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되다보니 중간 기착지가 종착지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결국 여행 명칭도 '백두-남해 자전거여행'에서 '중부내륙자전거여행'으로 바뀌게 됐다.
내가 가지고 있는 퍼즐 조각그러고보면 여행도 우리들의 인생살이처럼 딱, 딱 안 떨어진다. 그런면에서 우리들의 손에 들린 건 네모가 반듯한 벽돌이 아니라 모양도 제각각인 퍼즐이 아닌가 싶다. 차곡차곡 반듯하고 미끈하게 나의 성을 쌓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외형이 울퉁불퉁한 퍼즐 조각들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다.
그 퍼즐 조각을 긁어모아다 하나하나 끼워 넣기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그렇게 고생해서 맞춘 퍼즐의 최종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대박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끼워 맞췄는데 쪽박을 찰 수도 있고, 쪽박만 면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끼웠는데 예상치 못한 대박으로 '해피엔딩'을 맞을 수도 있는게 우리들의 인생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이번 여름 정기 투어는 쪽박이었다. 엉뚱한 퍼즐 조각들을 긁어모아 가지고 와서 대박이 나올 것처럼 우쭐해 있었던 것이다. 쪽박을 찼다고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열심히 여행기를 작성해서 문제점을 찾아야지! 그래야 다음에는 대박을 칠 수 있지!
덧붙임: 사실 이 여행기는 이미 한 달 전 쯤에 작성된 것이다. 처음 기사를 작성했을 때는 바로 송고를 할 셈이었는데 중간에 계속 일이 생겨 송고시기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인생사 타이밍'이라고 기사 작성도 타이밍이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필자는 허송세월을 보내다 그 시기를 놓쳐 버린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본 기사와 이후에 나올 후속 여행기들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굳이 좋은 이야기 거리를 사장시킬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됐다. 시기를 놓쳤든 아니든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물에 대한 판단은 독자가 하겠지만...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게재를 합니다. http://blog.daum.net/artpu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