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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를 넘으니 이제 온전히 유럽이다. 전 세계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여행의 메카 유럽이지만, 유럽횡단을 놓고는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해야했다. 온통 새로운 세계였던 다른 대륙과 달리 수 년 전에 이미 한 번 중앙유럽을 여행했던 나는 유럽의 화려한 아름다움과 높은 물가의 부담감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느꼈다.

결국 마음이 내키는 대로 맡겨보자 싶었던 나는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여행을 다녀 본 사람치고 파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파리는 유럽의 수많은 경쟁 지역 중에서도 다시 가고 싶게 만드는 특별한 도시다. 30여개국을 여행하면서도 두 번 찾은 곳은 일본과 프랑스 뿐이니 말이다(일본은 아마도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이라면 한창 가을이 깊어질 10월에도 파리의 태양은 여전히 뜨거웠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빠짐없이 선글라스를 쓰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과 그 사이를 누비는 지도를 든 여행객들. 지나가는 사람 3명 중 1명이 여행객이라는 파리는 4년 전에도 만남과 헤어짐이 유독 잦은 도시였다. 유럽행 항공기의 대부분이 파리를 기점으로 하거니와, 혼자 떠난 여행에서도 혼자이기 쉽지 않은 곳, 뜻하지 않게 일행과 흩어져 각자의 길을 가기도 하는 곳이 바로 파리다.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여전한 파리의 에펠탑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여전한 파리의 에펠탑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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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역시 에펠탑이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닿을 수 있었던 에펠탑으로 가는 길에 나는 4년만에 다시 온 파리의 골목골목을 다시금 되새겼다. 그리고 조금 어린 시절의, 20대의 마지막 겨울을 파리에서 보냈던 나를 회상했다. 취업을 하고 서울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기 전 모아두었던 돈을 탈탈 털어 유럽여행을 떠났던 그 청년이 추위도 잊은 채 한 시간동안 멍하니 바라보던 그 자리에, 그 시간에 에펠탑은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문득 뉴욕에 있을 때 들었던 에펠탑 관련 일화가 생각났다.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과 에펠탑에는 공통점이 있다. 프랑스 국민이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과 프랑스 혁명 100주년에 맞춰 건설된 에펠탑은 둘다 '100년'을 기념하기 위한 프랑스의 작품이다. 다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사랑을 받았던 자유의 여신상과 달리 에펠탑의 팔자는 좀 기구했다.

건축가 귀스타브 에펠이 산업화의 의미를 담마 돌이 아닌 철을 재료로 건축한 에펠탑은 많은 파리 시민들로부터 예술도시 파리의 미관을 망치는 혐오스러운 쇳덩어리라며 외면 받았다. 불편한 것은 참아도 안 예쁜 건 못 참는다는 파리지엥이 아니던가. 시민들로도 모자라 프랑스의 유명 예술인들까지 건립반대에 나섰다고 하니 사태는 꽤 심각했던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그 유명한 모파상이 에펠탑의 2층에서 점심을 먹을 때 누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 곳이 파리에서 이 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장소니까"

그러나 막상 완성된 에펠탑은 여행자와 이민자가 가장 많은 파리에서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파리는 아마도 누구의 고향도 아닌 모양이다.

2008년 겨울, 프랑스가 유로연맹회장국이던 때의 에펠탑
 2008년 겨울, 프랑스가 유로연맹회장국이던 때의 에펠탑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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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이 주는 아름다움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겠지만 2008년 그 겨울의 나에게는 더더욱 특별했다. 당시 프랑스는 유로연맹 회장국이었고, 에펠탑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밤이면 언제나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그 눈부신 불빛은 마치 앞으로의 내 앞날을 축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랬던 청년은 어느새 꿈이었던 세계일주를 이루겠다며 다시 파리를 찾았다.

에펠탑의 기둥밑에서부터 끝도 없이 이어진, 꼭대기로 가는 엘리베이터 대기줄을 보면서도 나는 기꺼이 그 끝에 다가섰다. 그러다가 문득 다시 발길을 돌렸다. 어쩐지 영원히 볼 수 없는 한 군데는 남겨두는 게 좋을 듯 싶었다. 20대의 나도 못했고 지금도 못했으니 언젠가 또 다시 파리에 와서 그 때 오늘을 떠올리며 오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 곳 만은 꼭 그 사람과 함께 오르고 싶었다.

감성이 왈칵 솟아오르니, 그의 이름을 크게 불러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온힘을 다해 꾹 참았다. 그 풍광을 눈에 넣으며 지하철이 아닌 몇 시간을 걷는 것으로 대신했다. 100년이 넘었다는 포숑을 지나며 그 유명한 마카롱을 집어들었고(4년전에는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했던) 모처럼 백화점에 들러 쇼핑을 했다. 같은 파리와 다른 내가 얽히자 머릿속에서 미묘하게 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이다. 아마도 비슷한 내용의 영화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선문에서 바라보는 샹들리제의 전경
 개선문에서 바라보는 샹들리제의 전경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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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걸어서 도착한 개선문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갈등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4년 전에는 오르지 못했던 그곳에 오를 것인가를 두고. 에펠탑을 남겨두었으니 개선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이 건물이 완성되는 것을 보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했던 나폴레옹을 위로하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개선문의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모습은 역시 아름답다. 녹음이 진 채로 쭉 뻗은 샹들리제 거리와 어우러진 에펠탑의 모습도 일품이다. 이런 풍경도 보지 못한 채 관속에서 개선문을 통과한 나폴레옹의 삶도 참 기구하다. 그에게도 이 개선문에 올라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한편, 파리의 중심을 흐르는 아름다운 센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무려 37개나 되지만 언제나 사람들이 향하는 다리는 단 하나,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다. 칠월칠석에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오작교 처럼, 다리가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사랑을 상징하는 장소라는 점은 파리라도 다르지 않다. 하루에도 여러 번 서로 만나고 다시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파리지만, 그래서일까, 다시 만나기를 혹은 지금이 영원하기를 사람들은 바라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결실은 고스란히 예술의 다리에 남았다.

시몬을 기다리는 멜라니 - 예술의 다리에서
 시몬을 기다리는 멜라니 - 예술의 다리에서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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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의 한쪽을 가득 메운 자물쇠는 남산에 올라도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혹자는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혹자는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점이다.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전시 공간과 저마다 먹을 것을 사들고 다리 위, 나무 바닥에 걸터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누군가는 홀로 이어폰을 낀 채 명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이 또 만나 친구가 되기도 하는 곳이 바로 파리의 예술의 다리다. 파리에 누군가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건 참 멋있는 일이다. 대신 나는 한국에 있는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제법 긴 시간을 다리 위에서 보냈다.

먼 노을이 진 노트르담 대성당
 먼 노을이 진 노트르담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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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다리에서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노트르담 성당을 바라 보고 있자니 영화에서 처럼 타임슬립에 빠져든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저 곳에 가면 해가 지는 풍경을 고흐나 고갱 같은 예술가들이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아... 그래서인가 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고향도 아닌 이 곳, 프랑스 파리에서 예술혼을 불태운 이유가. 우리가 백년 전의 반 고흐를 생각하듯이 그는 이곳에 와서 그 백년 전의 예술혼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아직 해가 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인데도 어쩐지 붉게 물들어가는 먼 하늘 처럼 말이다.

재즈가 흐르는 밤

파리와 서울의 가장 큰 차이점을 들라면 밤이 되면 들려오는 '재즈'를 뽑고싶다. 꼭 물랑루즈가 아니더라도 파리에 어둠이 깔리면 골목 길 여기저기에는 재즈 음악이 깔린다. 재즈가 미국 흑인음악이냐 프랑스의 음악이냐를 두고는 제법 논란이 많은 편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원래 프랑스의 땅이었던 '뉴올리언스'를 나폴레옹이 미국에 팔아넘김으로서 이곳에서부터 재즈음악이 시작되었지만 이를 미국음악이라 해야할지 프랑스 음악이라 해야할지 여전히 혼랍스럽다.

그러나 파리가 훨씬 더 재즈를 사랑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파리의 밤은 언제나 재즈와 함께다. 흐느적거리는 몸짓과 그다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음이 때로는 늘어질 정도로 리듬을 타는 재즈 공연은 파리에서 만난 인연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다음을 기약하기에 딱 좋은 느낌이다.

파리의 밤은 언제나 재즈가 흐른다
 파리의 밤은 언제나 재즈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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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는가. 이 재즈 선율에 취해서 내일의 헤어짐이 연장될지.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건지 내가 지금 이 공연장에서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의 몰입감을 주는 재즈 공연이라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영화 <비포선라이즈> 의 주인공들처럼...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수많은 영화의 촬영장소인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수많은 영화의 촬영장소인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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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겪는 것은 여행자뿐만은 아니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프랑스 파리에 처음 문을 연 1919년 그 즈음에 '율리시즈'로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사장을 만나 '율리시즈'를 출판했었다. 그리고 '전원교향곡'으로 유명한 앙드레 지드도 이곳의 단골이었다고. 한 번쯤은 서로 만나지 않았을까. 

얼마 전 영화로 개봉된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 역시 프랑스 파리에서 헤밍웨이를 처음 만난다. 물론 이후 둘 사이는 우정이라기보다는 치기어린 질투에 가까웠지만 이 역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게 되는 파리의 묘한 매력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두 주인공은 파리에서 처음 만나고 10년을 그리워 하다 <비포 선셋>에서 다시 만나지 않던가. 지금 당장 파리로 날아가지 않고도 이런 이야기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영화도 있다. 그건 바로 2011년 개봉한 <미드나잇 인 파리>.

여러모로 맞지 않는 약혼녀를 둔 주인공 길은 어느날 약혼녀와 떨어져 홀로 파리 시내를 걷다가 클래식 카를 탄 사람들에 이끌려 1920년대의 파리로 타임슬립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헤멩웨이, 피츠제럴드….

영화는 당신이 꿈꾸는 황금시대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임을 깨우쳐 주면서 끝나지만 적어도 파리의 1920년대는 황금기였음에 틀림없다.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그리고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라니…. 이건 마치 옵티머스 프라임이 잭 스패로우와 배를 타고 절대반지를 가진 프로도와 함께 해리포터를 만나러 호그와트로 가는 느낌이다.

많은 스타들이 잠들어 있는 페르 라세즈 공원묘지
 많은 스타들이 잠들어 있는 페르 라세즈 공원묘지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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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만남과 헤어짐은 무덤까지 이어진다. 알퐁스 도데, 쇼팽, 프루스트, 발자크, 오스카 와일드 등 많은 유명인들이 잠들어 있는 페르 라세즈 공원묘지는 무덤이라기보다 관광지에 가까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지도와 좌표까지 들고서 찾는다. 누군가는 헤어짐을 그리워 하며, 누구는 만날 수 없었음을 안타까워 하며….

간략여행정보
파리에 대한 여행정보는 서울보다도 더 많이 인터넷 곳곳에 소개되어 있다. 파리를 방문한다면 필요한 것은 돈과 시간 뿐이라고 하고 싶지만 조금 색다른 파리를 원한다면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보고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아래는 그런 영화들...

물랑루즈(2001, 바즈 루어만)
비포 선셋(2004, 리처드 링클레이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 데이비드 프랭클)
미드나잇 인 파리(2011, 우디 앨런)
새 구두를 사야해(2012, 기타카와 에리코)



태그:#파리, #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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