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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정신 좀 차려봐

모든 곳이 카오스였다. 바닥은 온통 진흙탕이었고 짐을 되찾는 이집션들의 목소리가 지붕 아래 쩌렁쩌렁 울리면 지붕이 그것을 되받아쳤다. 우리는 여행자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먼저 입국 비자를 구입해야 했다. 그런데 대체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조그만 간판은커녕 비자를 팔 것 같아 보임직한 건물조차 없다. 직원이 보이면 물어보면 될 텐데 유니폼도 없어서 누가 직원이고 누가 승객인지 구별하기가 불가능하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그때 저 멀리 우리처럼 커다란 배낭을 멘 남자가 보였다. 이보가 특유의 친화력으로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정말이지 그는 내가 평생 만나온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말이 많은 친구다. 수다쟁이로 유명한 나보다도 더.

잠시 후 그가 이보와 함께 우리에게로 왔다. 그는 브라질에서 왔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홍해의 휴양지인 다합에 가는 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랑 같은 페리를 탔는데 너무 피곤해서 타자마자 골아 떨어졌다고 한다. 너도 참 속 편하구나. 7개 국어를 구사하는 이보는 금세 신이 나서 그와 포르투갈어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브라질 청년과 수다에 정신이 팔려 비자는 까맣게 잊은 이보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나흘라.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내 어깨가 갑자기 무거워진다. 

비자는 대체 어디서 사는 거야?!?

자, 이젠 넷이다. 우리는 배를 탈 때 맡겨놓은 우리의 여권을 찾기 위해 우선 비자를 구입해야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그 두 사무실이 따로 위치해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다짜고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물었다. 다행히 어디인지 아는 듯했다.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이럴 땐 일단 믿고 가보는 거다. 어차피 우리 중에 길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가보면 알게 되겠지.

이집트를 여행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말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정말이지 너무 오지랖이 넓다고. 나 또한 그 말에 백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집트를 방문한 여행자를 편하게도, 힘들게도 만든다.

낯선 이들과 대화하기 좋아하고 친절하고 마음씨 좋은 이집션들은 길을 알든 모르든, 무조건 가르쳐 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에서는 길을 물을 때 최소 세 명 이상에게 길을 묻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하고 싶다. 셋에게 물어봤는데 가리키는 곳이 모두 다르다면? 네 번째 사람을 찾는 수밖에.

이집트에도 나쁜이들은 존재한다. 다만 좋은 사람들이 조금 더 많을 뿐.
▲ 도와주길 좋아하는 밝고 친절한 이집션들 이집트에도 나쁜이들은 존재한다. 다만 좋은 사람들이 조금 더 많을 뿐.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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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그가 알려준 곳은 비자를 파는 곳이 아니라 오물 냄새가 진동을 하는 화장실 건물이었다. 아니, 내 아랍어가 그렇게 형편이 없단 말이야?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길을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그리고 세 사람에게. 그중 둘이 같은 곳을 가리켰다. 가리킨 곳을 찾아가니, 새벽의 희뿌연 햇살만큼이나 희끄무레한 형광등 빛이 보인다. 오오 함두릴라(신에게 찬양을).

중동에서 사람들이 일상에서 달고 사는 말 세 가지가 있다. 인샤알라, 함두릴라, 마 피쉬 무시킬라. 그중 함두릴라는 어떠한 일이나 상황에서 신에게 감사를 돌릴 때 쓰는 말인데, 이 세 가지 표현 모두가 정겹고 또 유용해서 아랍에서 사는 외국인들도 나중에는 그 유용함에 감탄하곤 했다. 우리 또한 이집트에서 또 요르단에서 저 말들을 달고 살았다.

형광등이 자신의 아슬아슬하게 남은 수명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눈이 시리게 깜빡였다. 협소한 사무실에 들어가니 사복 차림의 직원들이 먼저 온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바쁘다. 이런 불빛 아래서 서류를 들여다 보면 눈이 빠져버릴 것 같은데 그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잘도 필요한 서류를 짚어낸다. 비자를 요구하고 십오 달러를 내밀자, 뿌연 빛 아래로 내가 내민 달러가 가짜인지 이리저리 뒤집어 확인해 본다. 나 참, 지금 이 사무실 모습만 보면 너희가 거슬러 준 달러를 내가 확인해야 할 입장이거든?

그렇게 우리 넷 모두 무사히 한 달 기간의 비자를 구입했다. 처음 이집트에 국가 장학생으로 발을 디뎠을 때 가지고 있던 비자와 비교하니 왠지 기분이 오묘하다.

주한 이집트 대사관에서 받았던 학생 특별 비자
▲ 2010년 받았던 특별비자 주한 이집트 대사관에서 받았던 학생 특별 비자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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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비자는 입국하는 장소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관광용으로 1개월 간 유효하다.
▲ 이집트 관광비자 이집트 비자는 입국하는 장소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관광용으로 1개월 간 유효하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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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 마쓰리야!

관광용 비자를 보자 '내게는 여전히 고향 같은 이집트인데, 그들에게 난 그저 한 달 동안 이집트를 돌아 보고 떠날 여행객일 뿐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자를 들고 여권을 찾으러 다시 사무실을 나왔다. 자 그럼 이번엔 여권을 찾으러 또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을 사무실을 찾아야 한단 말이지.

그때, 한 남자가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그리고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며 손짓한다. 뭐 하는 사람이지? 우리가 뭐 잘못했나? 알고 보니 우리의 여권을 들고 있는 남자였다. 배에 넷뿐인 외국인이 비자만 사고 오면 되는 '그 쉬운' 길을 한참이 지나도 찾아오질 못하자 걱정을 한 것이다. 뭔가 급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니 우리를 걱정한 것인지 혹은 이 멍청한 네 명의 외국인이 언제 올지 몰라 하염없이 기다리다 뻥 터져버릴 것 같은 자신의 방광을 걱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덕분에 입국신고 사무실은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더니 우리가 건넨 신분증과 여권이 우리 것임을 증명하는 종이를 받아들고 도장을 찍어준다. 내 여권에 도장을 찍으려는데, 가장 뒷장을 펼친다. 으악! 안 되는데!! 내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이야기했다.

"저기, 미안한데 다른 페이지에 찍어주시면 안될까요?"

그러자 남자가 진한 눈썹을 꿈틀거리며 마뜩잖은 표정으로
"왜" 하고 묻는다. 나는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 이집트 사투리로 이야길 했다.

"난 여행한 순서대로 스탬프가 찍히는 게 좋은데, 제일 뒷장에 찍으면 순서가 엉망이 되잖아요."

남자의 표정이 바뀐다.

"너 이집트 아랍어 할 줄 알아?"

그러면 난 이때다 싶어 활짝 웃으며 손으로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난 이집트에 1년 동안 살았었어요! 여긴 내 고향 같은 곳이에요. 알비 마쓰리야!(내 심장은 이집션이야)"

동양 아가씨의 애교 섞인 아랍어 농담이 즐거웠는지 그는 웃으며 내게 어떤 페이지에 찍기를 원하느냐며 손수 여권까지 건네 주었다. 그리고는 꽝, 꽝 하고 도장을 찍더니 웃으며 여권을 건네며 말한다.

" Welcome to Egypt."

역시, 웃는 얼굴에 침 뱉는 사람은 없다. 분위기를 몰아 남은 셋의 여권도 무사히 돌려받고는 출구가 어디인지 안내까지 받은 뒤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사무실을 나섰다.

새 배낭 사수하기

그가 알려준 방향으로 출구를 찾아가니, 맙소사 아까 그 청과물 시장 같은 곳이 출구란다.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단 말이지. 옆에선 이집션 보따리 상들이 길고 크고 묵직하고 위협적인 보따리를 어깨에 머리에 짊어지고 우리 곁을 지나간다. 조금만 정신을 놓았다간 짐짝에 맞아 나가떨어지기 십상이겠다.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영화 <매트리스>의 한 장면처럼 허리를 젖히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곡예에 가까운 모습으로 물품 검사대에 섰다. 말이 검색대이지 맨 흙바닥 위에 덩그러니 세워져있는 보안 검색대는 작동이 되는지 의심스러운 정도로 모양새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다.

사실 이전까지 이렇다 할만한 아주 긴 장기 여행을 한 적이 없었던 내겐 원래 캐리어와 큰 백팩 하나가 전부였다. 3년 전 이집트 내를 여행할 때도 거주지인 카이로를 기점으로 동쪽으로 3일, 또 집에 돌아와 다시 짐을 싼 채 남쪽으로 5일 하는 식으로 여행을 다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르단에 온 뒤 친구들과 떠나게 된 두세 번의 여행 때마다 나는 짐 두 개를 끌고 다니는 고생을 해야 했다. 가는 길이 복잡해 그마저도 불가능할 때는 가방 두 개를 매거나 여행용 배낭이 두 개인 이보가 하나를 빌려주는 식이었다. 그래서 이번 이집트 여행을 계기 삼아 어차피 내 가방이 필요할 것 같아 큰맘먹고 구입해 한국에서부터 조달 받은 40리터짜리 배낭을 나는 정말 애지중지 다루었다.

하지만 이미 페리를 탈 때부터 가방은 여기저기 꼬질꼬질 때가 탄 상태였다. 가방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두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내 가방 뒤에 오던 위협적인 이집션 아저씨의 짐짝이 내 배낭을 가차 없이 내리눌러 진흙 바닥으로 메다꽂는다. 헉! 맙소사.

"You see, Sophie? I told you. you shouldn`t care that too much. Anyway It will be dirty."
(거봐, 소피 내가 뭐랬어. 내가 너무 아끼지 말랬지? 어차피 더러워질 거래도.)

흙투성이가 된 가방을 들어 올리며 울상을 짓는 내게 이보가 얄밉게 한마디를 던진다.

요르단에서의 1년 동안 그는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이 되어주는 친구였다. 내가 아플 땐 의사가 되었고 항상 고민 많은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상담사였으며 아빠처럼 또 오빠처럼 언제나 옆에서 자신보다 나를 더 보살펴주던 나이많은 친구. 하지만 가끔 저렇게 잔소리 많은 아빠의 모습을 할 때면 "Yeah Yeah daddy I know.(네네 알았다고요 아빠.)"하고 퉁명스레 대꾸해버리곤 했다. 게다가 항상 반박도 못하게 옳은 말만 하니까 더 얄미운 게 사실이었다. 나이만 비슷했어도 이미 싸우고도 남았을 텐데 그게 항상 분해서 난 언제나 혼자 씩씩거리곤 했다.

더러울 대로 더러워져버린 가여운 내 배낭에서 흙을 대충 털어낸 뒤 어깨에 메고 청과물 시장의 반대편을 나서니, 줄줄이 늘어선 버스와 택시들로 가득 찬 터미널이 보인다. 시계를 보니 국경을 나오는데만 무려 한 시간 반이 걸렸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밀려오는 안도감에 웃음을 지었다. 끔찍했던 페리, 시장통을 방불케한 입국 심사장. 카이로에 닿기도 전에 이미 페리에서부터 우리는 이집트다운 환영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 것이다.

앞으로도 이집트는 우리를 이만큼의 시련과 이만큼의 예상 불가능한 일들 속에 던져 넣을 것이었다. 혹은 그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 이렇게 열심히 소리 지르고 열심히 찾고 또 즐기면 될 것이다. 새삼스레 실감이 난다.

이제 정말, 내가 이집트에 돌아왔구나.


태그:#이집트 여행, #누웨이바 항구, #시나이 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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