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클로저>의 한 장면.

뮤지컬 <클로저>의 한 장면. ⓒ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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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갓 시작한 연인이나 신혼부부에게는 믿기 어려운 진실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 아무리 죽고 못 사는 사이라도 일 년 혹은 일 년 반이라는 기한이 지나면, 사랑의 정열을 헌신으로 바꾸지 않으면 사랑이 식을 수밖에 없다는 연구 보고도 있지 않던가.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없을 것처럼 과대포장하기 바쁜 로맨틱 코미디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연극 <클로저>는 심박동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져만 가는 안타까운 사랑에 심폐소생기를 달아주어야 하는가, 아니라면 사망 선고를 내려야 하는가 관객에게 묻는 연극이다.

<클로저>는 과정이 탈색된 사랑 이야기다. 부고기자 댄(신성록 분)이 처음 만난 스트리퍼 앨리스(이윤지 분)에게 호감을 갖는 사랑의 시작과 댄이 앨리스 이외의 또 다른 여자인 사진작가 안나(김혜나 분)를 유혹하는 사랑의 시작은 있을지언정 댄이 어떻게 이 두 여자와 사랑을 꽃피우는가에 대해서 연극은 침묵한다.

안나와 래리가 인연을 맺는 수족관 장면은 있을지언정 안나와 래리가 어떻게 부부의 연을 맺는가에 대해서도 <클로저>는 침묵한다. 이성을 유혹하는 시작은 있지만 이성에게 빠져드는 모티브는 없다. 이는 <클로저>가 사랑이 어떻게 꽃을 피우는가 하는 과정보다는 사랑이 어떻게 시드는가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갓 사랑이라는 교통사고에 치인 러브홀릭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클로저>는 쌉쌀한 블랙초콜릿과도 같다. 남녀가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는 달콤함은 정제하고 새로운 사랑이 끼어듦으로 기존의 사랑에 어떻게 균열이 가고 다른 사랑으로 옮겨 가는가를 치열하리만치 보여주는 블랙 러브스토리다.

클로저 앨리스(이윤지 분)와 댄(신성록 분)

▲ 클로저 앨리스(이윤지 분)와 댄(신성록 분) ⓒ 박정환


남자의 '사냥꾼 기질'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캐릭터는 댄(신성록 분)이다. 남자는 정말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끈질기게 구애한다. 여자는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만 남자의 구애를 뿌리치지 못한다면 십중팔구는 열렬하게 구애하는 남자의 연인이 된다.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한다. 사랑에 헌신적인 착한 남자라면 문제되지 않겠지만, 나쁜 남자는 사랑이라는 새장 안에 들어온 자신의 여자 외의 다른 여자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다. 남자의 사냥꾼 기질이 발동해서다.

댄은 이런 부류의 나쁜 남자다. 아무리 진세연이나 이윤지, 나탈리 포트만처럼 매력 만점인 앨리스라 하더라도 내 안에 들어온 이상 관심 밖에 놓인다. 도리어 유부녀 안나라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만 하는 전형적인 사랑 사냥꾼이다.

신성록, 주드 로 등 연극과 영화에서의 댄은 매력적인 외모를 갖고 있다. 하지만 댄의 내면은 못생긴 오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헌신할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채 다른 여자라는 '대상'에만 탐닉하는 나쁜 남자다. 음란채팅으로 피부과 의사 래리(서범석 분)를 갖고 놀기 바쁜 영리한 댄은 처음의 판수만 보면 래리보다 한 수 위의 캐릭터로 보이지만, 결국에는 래리보다 한 수, 아니 두 수 아래의 하수라는 게 증명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리석게도 댄은 남자에게 갖춰진 최악의 조건은 다 갖춘 '찌질이 종합선물세트' 같은 남자다. 자신의 품 안에 안긴 여자가 다른 남자와 잤느냐, 안 잤느냐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사랑하는 여자의 육체에만 천착하는 찌질이이면서, 자신은 다른 여자랑 자도 괜찮은 이중적인 정조 관념을 갖고 있다. 안나, 그리고 앨리스에게 육체관계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짐으로써 다가오는 파국은 간신히 공들여 놓은 탑을 자기 스스로 허물어버리는 댄의 하마르티아적인 기질에 기인한다.

댄의 비극은 사랑을 게임으로 착각한 인과응보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여자 앨리스가 멀쩡히 있음에도 다른 여자인 안나를 눈독 들인 죄에 대한, 혹은 래리의 여자가 된 안나를 빼앗으려 들었을 때부터 래리와의 피 튀기는 경쟁을 예고하는 댄의 자업자득, 인과응보 말이다. 사랑은 게임이 아니라는 걸 댄이 알았어야 했건만, 집착을 사랑으로 착각한 찌질함이 남을 뿐이다.

댄을 연기하는 신성록은 나쁜 남자의 사냥꾼적인 기질을 능글능글하게 표현한다. 앨리스를 연기하는 이윤지는 사랑을 빼앗기는 비통함과 스트리퍼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고르게 소화한다. 래리를 연기하는 서범석은 요즘 뮤지컬 무대보다 연극 무대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듯하다. 중년 남성만이 가질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로움과 툭 하면 터질 듯한 신경질적인 폭발감을 고루 갖추고 있다.

다만 육두문자가 난무하는 연출은 개선해야 할 사항이다. 날 것 그대로의 폭발할 것만 같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연출 의도라는 점은 십분 이해되지만 'X발' 'X같은' 등 육두문자가 20여 회 이상 언급되는 연출은 사랑의 파열음을 읽는 데 있어 심히 거슬리기만 할 뿐이다.

클로저 신성록 이윤지 진세연 서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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