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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이제 보수-진보를 떠나 우리가 함께 꾸는 ‘꿈’이 되었습니다.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유럽의 보편적 복지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유럽 복지국가 대사 특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복지국가’란 꿈을 나누기 위해, 5월 22일과 6월 4일 각각 진행된 주한스웨덴 대사와 독일대사의 강연을 소개합니다. 이후 진행되는 주한 프랑스 대사와 독일 사회민주당의 에버트 재단 한국소장의 특강도 다룹니다. [편집자말]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는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주최로 6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유럽 복지국가 대사 연속강연회'에서 독일 사회복지의 비결을 '복지와 보험, 세금' 세 개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데에서 찾았다.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는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주최로 6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유럽 복지국가 대사 연속강연회'에서 독일 사회복지의 비결을 '복지와 보험, 세금' 세 개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데에서 찾았다.
ⓒ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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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 해도 독일의 별명은 '유럽의 병자'였습니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유럽 복지국가 대사 초청 연속강연회'에서 롤프 마파엘 주한독일대사가 입을 뗐다. 그는 "하지만 10년 사이에 독일의 실업률은 많이 낮아진 반면 경제성장률은 높아졌고 수출도 늘었다"며 '독일병' 탈출비결은 개혁과 복지제도라고 설명했다.

2003년 슈뢰더 당시 총리는 '아젠다 2010'을 실행했다. 중소기업이 직원을 좀 더 쉽게 해고 할 수 있고, 시간제 근로 등 비정규직을 늘릴 수 있도록 한 '노동법의 유연화'가 주요 내용이었다. 독일정부는 국가지출을 줄이는 한편, 헌법에 '2016년부터는 독일연방정부가 신규 부채를 지지 않음으로써 균형예산을 실현한다'고 명시하는 등 허리띠를 더욱 졸라맸다. 임금 비용을 지속적으로 낮춰 수출 경쟁력도 유지했다.

노동자들의 저항은 없었을까? 마파엘 대사는 "독일 사람들은 독일경제 구조가 민주적이라고 믿는다"며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가 가능하고, 노사관계가 합리적이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의 거의 모든 기업에선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한다. 또 임금협상이 산별조직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노사 관계가 안정적이다.

복지제도의 뒷받침도 한몫했다. 마파엘 대사는 "사회복지제도 역시 큰 힘이었다"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야기를 꺼냈다.

"독일병 탈출, 강력한 사회 개혁을 복지제도가 뒷받침한 덕분"

독일은 사용자가 일정 기간 동안 근무시간을 절반에서 3분의 1가량 줄이자고 제안했을 때 노동자 대표가 동의하면 단축근무제를 실시할 수 있다. 실업보험 등 사회보장제도가 자신들의 재원으로 노동자에게 임금의 25%를 추가 지급하는 데에도 동의해야 한다. 이 제도는 2~3개월 정도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금융위기 때 독일 정부는 6개월 이상 단축근무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덕분에 독일기업들은 해고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복지제도가 위기 대처에 기여한 셈이다.

그런데 복지제도를 전적으로 세금으로 운용하고 있는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와 달리 독일은 '사회보험'에서 그 답을 찾았다. 마파엘 대사는 "독일 국민들은 실업보험과 의료보험은 모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며 "정부는 최저생계비처럼 절대적으로 (국가 지원이) 필요한 부분만 세금으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경제구조는 한국처럼 수출주도형이라 세율이 높으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파엘 대사는 "독일의 국민소득 대비 조세부담률은 22%, 스웨덴은 34%, 덴마크는 46%"라며 "우리에게는 22%가 마지노선"이라고 했다. "이 비율을 넘어서면 생산에 드는 비용이 너무 높아져 경쟁력을 잃기 때문에 국민도, 기업도 용납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독일 사람들에게 사회복지와 경제성장이란 가치는 모순이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목표를 위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짧게는 복지제도 확충이 국가 경쟁력 추구와 긴장관계에 있을 수 있지만, 길게 보면 제대로 된 사회복지제도를 마련해야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성공한 기업 폴크스바겐, 노동자 경영참여 가장 많이 보장"

다음은 마파엘 대사와 청중들이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한국은 기업들이 단기수익창출에만 치우쳐 노동자들의 조기퇴직을 강요하거나 신규 채용을 하지 않는 일이 많다. 독일은 이런 것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기업은 이윤극대화를 추구한다. 다만 국가 제도와 사회 시스템이 기업가가 일방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결정을 하도록 허용을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하다. 독일은 산별로 협상을 진행하는 '임금협약'을 맺는다. 여기서 합의한 임금 인상률과 근무 조건 등의 적용 대상은 모든 기업이다. 한국과 다른, 독일 노사관계의 장점이다. 또 독일은 직원 1000명 이상의 대기업의 경우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또 노동자와 사용자가 각각 반반씩 참여하는 감독위원회를 구성하게 했다. 가장 성공한 독일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폴크스바겐은 노동자들의 경영참여권을 가장 많이 보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 1996년 헬무트 콜 전 수상이 무상교육 폐지를 선언했을 때 많은 저항이 있었지만 결국 16개 주 가운데 8개 주가 유상교육으로 전환했다. 그런데 최근 무상교육 부활이 이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독일만의 특별한 사례다. 우리는 18세기에 프리드리히 대제가 무상교육을 도입한 이후 줄곧 그 제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의 여러 대학들이 넉넉한 재정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는 반면, 독일 대학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고민이 생기면서 1990년대 들어 대학을 유상으로 전환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학 재정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유상교육 실시를 택했지만, 학생당 한 학기에 500유로, 즉 1년에 총 1000유로(1300달러)를 넘지 않는 수준으로 정했다. 한국 대학등록금의 10%정도다. 또 두 자녀 이상 가구에는 무상교육 혜택을 유지했다. 그런데 국민들이 '대학 공부를 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개념을 수용하지 못했다. 또 무상교육을 유지하거나 유상교육으로 전환했다 금방 폐지한 연방주 정치인들에게 많은 지지를 보냈다. 그 결과 현재 바이에른주만이 유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제가 알기론 내년에 폐지할 계획이다.

독일이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하는 이유는 독일의 역사, 교육 철학과 관련 깊다. 독일 국민은 '교육은 언제나 무료'라고 생각해왔다. 유상교육이란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고등교육 받을 권리가 제한당해선 안 된다'는 기본 철학도 있다. 꼭 논리적인 생각은 아니겠지만, 독일 사회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 한국 노동운동의 취약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데, 그런 점들을 염두에 둘 때, 스웨덴과 독일 모델 중에서 어떤 모델이 더 우리에게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조금 바꿔서 대답을 하자면, 독일은 스웨덴식 사회복지모델을 수용할 수 없다. 독일인들은 스웨덴인들 만큼 국가 역량과 정부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은 스웨덴처럼 전적으로 세금에 의존하는 사회복지가 힘들다. 그게 가능할 만큼 국민들이 많은 세금을 부담하지 못한다. 

스웨덴은 (세금이라는) 하나의 분명한 해법을 갖고 있는, 흥미로운 모델이다. 반면 독일은 복지와 보험, 세금이라는 세 가지 해법을 조금씩 갖고 있다. 복지는 보험으로 유지되고, 기본 생계는 국가 세금으로 뒷받침되며, 민간영역인 사보험이 존재한다. 둘 다 (한국이) 연구해 볼 만한 모델이다.

사실 한 국가가 그 구성원들의 기본 생계를 위해 어느 정도의 연대성을 발휘할 것인가는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 외부에서 뭐라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다만 독일은 지난 10년 동안 사회복지, 경제성장과 관련해 많은 일을 겪고 고민을 거듭하며 ▲ 국가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해야 하고 ▲ 국가 경쟁력을 살려야 하며 ▲ 사회연대와 사회복지가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는 세 가지 교훈을 얻었다. 여기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기지 않고 상황에 맞도록 노력하는 일이 필요하다."

"독일 복지는 비스마르크가, 노동자 경영참여는 보수당이... 이념 상관없어"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는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주최로 6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유럽 복지국가 대사 연속강연회'에서 독일 사회복지의 비결을 '복지와 보험, 세금' 세 개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데에서 찾았다.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는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주최로 6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유럽 복지국가 대사 연속강연회'에서 독일 사회복지의 비결을 '복지와 보험, 세금' 세 개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데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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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사회복지 또는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조차 '사회주의하자는 거냐'고 오해받는 이유는 분단 영향이 크다. 독일도 동서로 갈라졌던 역사가 있는데, 혹시 이런 경험 때문에 사회복지 모델 실현에 어려움은 없었나.
"독일은 그렇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독일에서 복지란 비스마르크가 1860년대 초 사회개혁을 하면서 시작한, 국가가 위에서부터 실시한 개혁이었다. 그 역사도 100년이 넘는다. 사회주의나 냉전과 관계없다.

사회복지제도 확충이 '우리 체제가 사회주의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물론 1970~1980년대 동독과 서독 간 갈등이 있던 시기에도 '사회복지를 국가가 주로 담당하는 것과 민간에 넘기는 것 중에서 무엇이 옳은가' 하는 논쟁은 있었지만, 사회복지 그 자체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진 않았다. 차라리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사회주의적인 제도로 볼 수 있겠지만, 이 제도 역시 보수정당이 도입했다. 사회주의와 전혀 무관하다.

독일에서 말하는 사회복지의 개념은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북유럽과 다르다. 우리는 복지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일자리를 찾게 해주고 다시 사회로 통합되도록 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반면 덴마크는 기업이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을 많이 유연화한 대신, 국가가 1년 안에 일자리를 찾도록 보장해준다. 사회주의 이념 때문이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노동력이 취약한 사람이 다시 노동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 영미식 자본주의는 기업들이 주로 자본시장에서 직접 자본을 공급받는데, 독일 기업들은 그 방법이 '은행 대출'이고, 은행들 또한 이런 방식으로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다. 유럽연합(EU) 체제에서도 여전한지 궁금하다.
"독일에는 국영은행이 많다. 영국·미국 은행의 가장 큰 차이다. 우리는 16개 연방주마다 주립은행이 있고, 이 은행들이 각 주 정부의 경제발전 사업을 지원한다. 독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연방체제에 익숙하다. 또 주마다 주립은행이 있어야 자기 주의 기업이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양성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독일 금융부문에선 지역금고, 작은 도시에 있는 작은 은행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30~40년 전만 해도 독일인 대부분은 큰 갑부가 아닌 한 지역금고에 저축했다. 중소기업들이 성공한 배경에도 지역금고 역할이 컸다. (지역금고는) 현지 기업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은행의 기업 경영 참여는, 한국에서 논의 중인 '경제민주화'와도 관계있다. 1990년대까지 독일에는 경제 영향력이 큰 인물 20명이 참여한 '독일주식회사'가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은행 소속이었고, 독일 기업 대부분의 감독위원회에 관여했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재벌이 주도했다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은행과 보험회사, 제조업체의 밀접한 관계가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경제성장기에 큰 장점을 발휘했던 이 구조는 시간이 지나면서 단점으로 변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독일 은행과 보험회사, 기업들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불투명하고 복잡하게 보고 투자를 꺼렸다. 결국 1990년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보험회사-기업 간 밀접한 관계를 끊었고, 각 기업 감독위원회에 참여하는 독일주식회사 관계자들의 수를 많이 줄이는 식으로 은행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을 많이 줄였다. 자본시장도 많이 개방한 결과, 현재 독일 대기업 절반 이상에 외국자본이 들어와 있다. 은행과 기업의 관계 단절은 지난 30년 동안 독일 경제 구조에 있어 가장 큰 변화였다.

한편 EU는 독일의 노동자 경영참여제를 다른 나라 기업들에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금은 독일 기업도 유럽 주식회사나 유럽 유한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독일의 엄격한 경영참여 규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다. 그래서 몇몇 독일 기업은 유럽 법인으로 전환하곤 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끝이 좋지 않으리라 본다."


태그:#복지국가, #진보정의당,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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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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