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복지는 이제 보수-진보를 떠나 우리가 함께 꾸는 ‘꿈’이 되었습니다.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유럽의 보편적 복지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유럽 복지국가 대사 특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복지국가’란 꿈을 나누기 위해, 5월 22일과 6월 4일 각각 진행된 주한스웨덴 대사와 독일대사의 강연을 소개합니다. 이후 진행되는 주한 프랑스 대사와 독일 사회민주당의 에버트 재단 한국소장의 특강도 다룹니다. [편집자말]

'복지국가.' 누구나 환호하면서도, '과연 한국에서 가능할까'란 의문을 품게 하는 네 글자. 스웨덴은 이 꿈을 현실로 만든 나라다. 그것도 수십 년 전에. 라르스 다니엘손 주한 스웨덴 대사는 지난달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럽 복지국가 대사 초청 연속강연회 : 유럽을 통해 본 한국 복지사회의 미래' 첫 번째 시간에서 그 비결로 '신뢰"를 꼽았다. 

국민들이 정부과 공공기관에 보내는 신뢰는 곧 세금 문제다. 다니엘손 대사는 "신뢰 없인 제대로 작동하는 복지사회를 만들 수 없다"며 "신뢰가 없으면 사람들은 기꺼이 세금을 내지 않는데, 복지제도는 세금 없이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 정부와 공공기관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투명해야 한다. 그래서 스웨덴의 공공분야는 높은 투명성을 유지하려 노력해왔다. 또 언론뿐 아니라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공공분야 감시에 참여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노동을 중시하는 이유도 '신뢰-세금-복지'가 맞물려 돌아가는 복지시스템과 맞닿아 있다. 다니엘손 대사는 "노동에서 세금이 나온다"며 "스웨덴 사람들은 대개 '일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스웨덴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소득의 30%가량을 세금으로 낸다. 한국의 부가가치세처럼 소비품목에 붙는 세금도 25%에 달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세금의 98.5% 이상을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대부분 '공공분야는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스웨덴은 세금을 올리겠다고 해도 집권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죠. 1994년 사민당이 재집권할 때 증세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고, 증세로 더 좋은 보육과 교육을, 실업자와 노인에게는 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민당은 1946년 이래로 가장 큰 승리를 거뒀죠."

"스웨덴, 증세 공약을 내세워도 선거 이길 수 있는 나라"

라르스 다니엘손 주한 스웨덴 대사는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가 주최한 '유럽 복지국가 대사 초청 연속강연회'에서 "스웨덴은 증세 공약으로 집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라며 "스웨덴 사람들은 '세금이 좋은 일에 쓰인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또 "정치인들은 '증세를 하겠다'가 아니라 '세금을 더 걷어 무엇에 쓰겠다'고 약속한다"고 설명했다.
 라르스 다니엘손 주한 스웨덴 대사는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가 주최한 '유럽 복지국가 대사 초청 연속강연회'에서 "스웨덴은 증세 공약으로 집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라며 "스웨덴 사람들은 '세금이 좋은 일에 쓰인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또 "정치인들은 '증세를 하겠다'가 아니라 '세금을 더 걷어 무엇에 쓰겠다'고 약속한다"고 설명했다.
ⓒ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관련사진보기


다니엘손 대사가 뽑은 스웨덴 복지제도의 또 다른 특징은 '개인주의'다. 그와 아내는 각자 세금을 낸다. 그 규모가 상대방의 세액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 방식이다.

스웨덴은 부부 사이뿐 아니라 부모와 자녀끼리도 의존하지 않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긴다. 이러한 문화는 자연스레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아이들이 부모의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충분히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또 자녀의 형편을 떠나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도입으로 이어졌다.

스웨덴의 복지제도가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니엘손 대사는 "이 제도가 돌아가려면 노동참여율이 높아야 하고, (국민들이) 세금을 자발적으로 내야 하는데다 끊임없이 개혁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유·철도 등 일부 공기업을 민영화한 이유 또한 '개혁'이었다. 단 민영화에도 원칙이 있다. 다니엘손 대사는 "그 혜택을 받는 대상이 '모두'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치성향을 떠나 모든 사회 구성원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평등할수록 더 건강하고, 강한 사회가 된다'는 믿음 공유"

"너무 많은 불평등이 있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닙니다. 스웨덴 사람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됐다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평등할수록 더 건강하고, 강한 사회가 된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모든 세금 제도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합니다."

다니엘손 대사는 또 다시 '신뢰'를 강조했다. 그는 "복지제도를 유지하려면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복지 혜택을 받을 것'이란 믿음이 있어야 한다"며 "복지를 '부자의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설명하면 절대 보편적 공감을 얻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국민은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세금을 내고, 정부는 세금으로 모두를 위한 제도를 운영하는 일이 곧 '복지'였다.

"스웨덴은 기부가 그리 많지 않아요. 물론 자비를 베푸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많은 사회는 (부자가) 자비를 베푸는 일에서 (복지의) 답을 찾지만, 우리는 세금에서 찾고 있습니다."

다니엘손 대사는 끝으로 스웨덴이 공유하는 가치는 ▲ 노동은 좋은 것이고 ▲ 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 좋은 사회는 빈부차가 적은 곳이란 점 ▲ 후손을 위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지켜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도 이 네 가지 가치를 마음에 담는다면 한국만의 복지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이 찾은 답? 자비는 좋은 일이지만... 결국 세금"

아래는 다니엘손 대사와 청중이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분단국가인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쯤을 국방비로 쓴다. 스웨덴의 사정은 다를 것 같다.
"스웨덴이 좋은 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정치적 환경의 영향이 있었다. 우리는 200년간 전쟁을 경험한 적이 없다. 1809년 러시아와 한 전쟁에서 패해 당시 점령 중이던 핀란드를 잃었지만, 다른 전쟁을 겪지 않아 우리는 전쟁에 쓸 힘을 비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웨덴은 계속 중립국이어서 전통적으로 군사·무기 쪽에 상당한 비용을 지출해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200년 이상 전쟁의 여파에서 떨어져 있었던 덕분에 지금의 복지국가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

- 한국과 스웨덴 두 나라 경제의 공통점으로 '대기업의 비중'이 꼽힌다. 반면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으로 보는지.
"한국과 스웨덴 경제의 외향은 비슷하지만, 사회적으로 기업의 지배구조를 규제하고 있다(institutionalized ownership)는 점과 노사관계가 크게 다르다. 스웨덴 대부분의 대기업은 증시에 상장돼 있으며 소유형태가 다양하다. 휴대폰 제조사인 에릭손의 경우 국가연금이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 가구업체 이케아의 지배구조 또한 창업주 가족의 직접 소유가 아닌 제도화한(기자 주 - 이케아는 비상장사로 현재 네덜란드에 등록된 공익재단 '스티흐팅 잉카재단'의 소유하고 있음) 형태다.

또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노동조합과 굉장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과 달리 스웨덴 노동자들은 거의 노조에 가입해 있다. 노조 가입률은 약 80% 정도다. 오늘날 스웨덴 기업 안에는 '회사는 이윤을 낳으면 그것을 사원에게 돌려준다'는 노사 합의문화가 존재한다. 또 '노조 대표는 임원회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합의가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 이사회에는 노조 대표가 2, 3명쯤 참여한다. 이 제도를 채택한 후, 20년간 시위와 파업 비율이 줄었다."

"스웨덴에서도 개발-보존 두고 갈등 있었지만..."

라르스 다니엘손 주한 스웨덴 대사가 5월 22일 열린 '유럽 복지국가 대사 초청 연속강연회 : 사회민주주의, 스웨덴 보편적 복지의 근간'에서 스웨덴 사회를 설명하고 있다.
 라르스 다니엘손 주한 스웨덴 대사가 5월 22일 열린 '유럽 복지국가 대사 초청 연속강연회 : 사회민주주의, 스웨덴 보편적 복지의 근간'에서 스웨덴 사회를 설명하고 있다.
ⓒ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관련사진보기


- 더 나은 성장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려는 욕구가 있을 것 같은데, 개발과 보존 사이의 긴장은 없는가.
"항상 긴장감이 있지만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자연을 이용해야 한다'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스웨덴 사회에도 갈등은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많은 강들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했지만 스웨덴에 있는 4개의 큰 강에는 어떤 댐이나 발전시설을 쓰지 말자고 결정했다.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고, 특히 탄광산업계의 반발이 거셌다. 하지만 그들도 오늘날에는 이 결정이 옳았다고 말한다.

스웨덴은 발전용량의 50%를 수력에, 35%를 핵에, 나머지는 화석 연료와 태양에너지, 풍력에 의존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도 다른 유럽 나라들처럼 핵 문제를 두고 열띤 토론이 있었다. 그 결과 스웨덴 사회는 더 이상 핵발전소는 짓지 않되 지금 있는 것은 현대화해서 계속 고쳐 쓰기로 했다. 이것이야말로 서로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스웨덴 내부적으로 환경 문제를 두고 입장차가 크진 않다. 공유하는 가치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만약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면, 기업은 이에 맞춰 기술을 개발한다. 보수 쪽도 환경문제에는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 스웨덴 교육의 목적 및 가치가 궁금하다. 
"스웨덴은 사회적 이동성이 높은 나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이다. 한국과 비슷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고전적인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는 점도 닮았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큰 변화가 있었다. 오늘날 스웨덴의 고교 진학률은 48%로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낮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직업학교를 선택하고 있어서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직업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볼보의 경우 전통적으로 18세쯤 된 고졸자를 바로 채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들을 바로 현장에 투입하지 않는다. 어떻게 차를 만드는가를 4년 정도 공부시킨다. 수학 등 여러 가지를 배우기에 (그 내용은) 대학과 비슷하지만, 돈을 받으며 공부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 과정을 마치면 기술자격증 시험을 본다. 그래서 점점 많은 청년들이 더 안정적이고 확실한 직업을 선택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바꾸고 싶다면 정치 참여해야... 무관심하면 민주주의 사라져"

- 범죄자 처벌과 교화방식 등은 어떠한가.
"스웨덴은 유럽에서 범죄율이 가장 낮은 편이다. 사회적 친화력이 높아서 범죄가 그리 흔하지 않고, '묻지마 범죄'를 찾아보기 어렵다. 만약 여러분이 스웨덴의 감옥을 보면 한국에 비해 호텔 같다고 여길 수도 있다. 스웨덴 감호제도는 범죄자들을 사회로 다시 복귀시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감옥에는 아주 적은 수의, 정말 위험한 사람이 수감된다.

현재 스웨덴은 수감자의 40%가량이 다른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이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지난 20년 동안 다양한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전쟁이나 분쟁지역 난민들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들 가운데 꽤 많은 사람들이 범죄의 유혹에 빠졌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좋은 직업을 찾아주지 못한 것이 근본 원인인데, 앞으로 스웨덴이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다."

- 스웨덴이 복지국가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청년들은 무슨 역할을 했는지 알고 싶다.
"스웨덴 안에 있는 많은 정당들이 청년캠프를 운영하는데 참여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당 가입'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1980~1990년대에는 정당들이 젊은이들을 많이 잃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청년들이 정당 활동보다는 반핵, 인권 운동 등 개별 사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물론 이것도 좋지만 하지만 정말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러분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하게도, 여러분이 믿는 이념노선과 가까운 정당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는 복지제도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일을 하고 가족과도 시간을 보내면서도 정치활동에 참여하고 토론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하다. 정치에 헌신적으로 참여하고,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사라진다."


태그:#복지국가, #스웨덴, #진보정의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