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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중인 사진으로 현대 디자인 library 마당에서 유리문 안의 도서관을 바라보는 슬기.
 전시 중인 사진으로 현대 디자인 library 마당에서 유리문 안의 도서관을 바라보는 슬기.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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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안내견 슬기의 시각에서 쓰여진 기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내견 시민기자 김슬기입니다. 여러분들께 시각장애인과 우리 안내견의 삶을 보다 정감 있고, 재미있게 전해드리고 싶어 시작한 시민기자의 길이었는데, 생각과는 달리 충분히 제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듯해, 마음이 아파옵니다.

이 기사가 제가 전해드리는 마지막 기사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7월 중순께 제가 안내견 현역에서 물러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3년 5월 27일 용인에 있는 '삼성안내견학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올해로 제 나이 열한 살, 사람의 나이로 환산하는 게 부질없긴 합니다만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드리자면, 환갑을 지난 나이라 할 수 있겠지요.

제 나이 11살,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강원도 양양의 낙산 해변에서 가로등과 바다가 배경으로 펼쳐진 돌담 위에 앉아 있는 슬기 부녀.
 강원도 양양의 낙산 해변에서 가로등과 바다가 배경으로 펼쳐진 돌담 위에 앉아 있는 슬기 부녀.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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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다르게 다리에 힘이 풀리고, 노안으로 시력은 점차 침침해집니다. 아빠를 모시고 안내하는 게 이젠 두려움으로까지 다가와, 어쩔 수 없이 은퇴라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제 현역에서 은퇴하면, 은퇴견 봉사자님 댁으로 가, 제2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저 없이는 독립적인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사진이나 글쓰기 등 아빠의 예술적 활동에 지장을 많이 초래할 것 같아, 많이 망설이고 또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뤄봤지만, 전철을 탈 때도, 사진 출사를 나갈 때도, 제가 오히려 부담이 되는 것 같아 큰마음을 먹고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물론 안내견학교 훈련사 선생님과의 논의 끝에 말이지요.

슬기 부녀가 전시 작품 앞에 서 있는 모습.
 슬기 부녀가 전시 작품 앞에 서 있는 모습.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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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제게 약속하신 게 하나 있었습니다.

"네가 은퇴하기 전, 너만을 위한 글과 네 사진으로 만든, 너만의 책을 출간해 고마움의 정표로 바칠게."

그러나, 은퇴를 한 달여 앞둔 오늘까지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부지런히 글도 썼지만,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그 외의 조건들이 더 채워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채, 그렇게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극도의 초조감에 몸과 마음이 단 아빠는 '시각장애인예술협회'의 도움으로 작은 전시회를 계획하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북촌 지도'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전시회에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참여하게 된 것이지요.

아빠는 저와 함께 북촌 일대를 수없이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글을 쓰고 주제에 맞는 전시회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난 6월 1일부터 종로구 화동 '우리들의 눈' 갤러리에서 열린 '북촌 지도'라는 전시회에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 3명과 북촌의 기성 예술인 4명이 함께 펼치는 'neighbor's gallery'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떠나기 전에 남기는 당부

self-timer로 경복궁 잔디밭에서 무릎을 베고 엎드린 슬기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 노을.
 self-timer로 경복궁 잔디밭에서 무릎을 베고 엎드린 슬기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 노을.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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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의 방문으로 전시회는 성황을 이루고 있답니다. 그리고 아빠는 저와의 행복한 추억을 계속 만들어가고자, 여행도 다니면서 부지런히 저와 함께하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위의 사진들은 아빠가 셀프 타이머로 찍은 사진들입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서러운 눈물도 많이 흘렸고, 행복한 웃음도 많이 지었던 삶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안내견의 서글픈 삶과 시각장애인들의 아픔·눈물·비애 등과 희망을 전해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로부터 작은 상도 받기도 했었지요.

이제 그 모든 일들을 추억의 갈피 속에 눈물로 갈무리며 여러분께 이별의 악수를 청해봅니다. 그리고 부탁 하나 곁들여 남기고 가렵니다.

첫째, 누누이 얘기하는 사실이지만,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 듯해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안내견을 함부로 만지거나, 사진 찍지 말아 주세요. 저희에게도 '견권'이 있고, 초상권도 있으며, 피곤할 때, 편히 쉴 권리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귀엽다고, 예쁘다고, 안쓰럽다고…, 만지거나, 사진 찍고 먹을 걸 주는 것은 안내견을 더욱 괴롭히는 행동이라는 것을 유념해주십시오.

둘째, 안내견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두다가 자신의 말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안내견의 파트너가 해야 할 명령을 대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안내견에게 상당한 혼선을 초래해 나중에 안내해야 할 시각장애인 파트너의 명령을 안 듣고 지나가거나 아무 명령이나 따르게 되는 심각한 오류를 초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셋째, 안내견도 아픔을 느낄 줄 알고, 두려움에 떨기도 하는 평범한 개라는 사실입니다.

"안내견은 밟아도 안 짖는데…, 그러니 우리 한 번 밟아볼까?"

여러분, 참는 데도 한도가 있고 격한 순간에는 저희도 어떤 짓을 할지 모릅니다. 너무 신체적으로 위해를 가하거나, 위협을 느끼게 하는 행동을 삼가주십시오.

새로 올 후배 안내견, 아빠와 교감할 수 있겠지요?

뒤로 장미꽃이 보이는 잔디밭에 앉아 환히 웃으며 카메라를 쳐다보는 슬기.
 뒤로 장미꽃이 보이는 잔디밭에 앉아 환히 웃으며 카메라를 쳐다보는 슬기.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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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얼마 안 있으면 현역을 떠나는 제가 무슨 구구한 말들을 더 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후배 안내견들을 위해 몇 가지 당부를 드렸습니다. 우리 아빠는 돌아오는 6월 15일 새로운 안내견과의 면접을 위해 안내견학교로 가신다고 하더군요. 새로 올 후배견이 아빠와 사랑으로 교감하고, 서로 믿고 의지하기까지는 6개월 가량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물론 저도 그랬고요.

후배견이 우리 아빠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잘 보필하며 안내해줄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 기도해주시길 부탁합니다. 그리고 제 후배가 다시 제 뒤를 이어 소식을 전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들의 뜨거운 성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기에 계속적인 성원을 다시 한 번 간절히 부탁하면서 이만 물러갑니다. 안녕히 계셔요.

이상 <오마이뉴스> 안내견 시민기자 김슬기였습니다.


태그:#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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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탈시설만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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