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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곽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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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방향에서는 맞게 가고 있어요. 괜찮은 정책 아이템들이 많이 나왔으니까, 박근혜 정부는 이제 그것들을 설득력 있게 잘 묶어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순항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보진영 학자에게서는 처음 듣는 평가다. 그러나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터뷰 내내 "지금 가는 방향은 10년 전부터 전문가들이 말해왔던 방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직후 내걸었던 5대 국정목표 중 대표격인 두 가지가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와 '맞춤형 고용·복지'다. 국정운영에서 사실상 경제와 복지가 나란히 가는 그림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이 밑그림을 그린 안 교수의 말에도 무게가 실린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 사회정책을 전공한 안 교수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유럽형 복지국가' 전문가 중 하나로 박 대통령의 복지 '멘토'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대통령 직속인 국민경제자문회의의 민생경제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안 교수는 "복지국가가 정착되고 복지가 경제 발전으로 선순환되는 틀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지금 정부의 방향성은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다"면서 "여기에 이제 사회적 경제를 본격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게 창조경제"라면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등의 사회적 경제를 육성하고 사회안전망을 갖추지 않으면 창조경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금 정말 중요한 것은 '사회적 창조경제'"

박근혜 정부는 지난 31일 140대 국정과제 실천 계획인 '공약가계부'를 발표했다. 앞으로 5년간 세출 구조조정과 지하경제 양성화로 134조 8000억 원을 마련해 그중 79조 3000억 원을 맞춤형 고용과 복지 및 교육 시스템 구축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증세는 없었다. 안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을 "정답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특히 그는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증세 불가피론'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지하경제와 합리적인 세출 구조가 확보되지 않았는데 증세 얘기가 나오면 영영 두 가지는 실현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는 게 이유다.

안 교수는 "종착지는 증세로 가야 하지만, 한국이 제대로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번 5년간 증세 없이 착실하게 구조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 자본주의 구조가 복지국가로 변모하려면 우선적으로 지하경제, 세출 구조정리, 조세정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확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이런 의미"라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측면에서 "지금 정말 중요한 것은 사회적 창조경제"라고 지적했다. 최근의 창조경제 담론이 지나치게 정보통신기술(ICT) 담론에 치우쳐 있는데 창업과 벤처가 몇 번의 실패를 딛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회 안전망을 마련하는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육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사회적 경제 자체가 지금껏 우리 사회에 없었던 서비스이기 때문에 이것들 하나하나가 창조경제의 좋은 개별사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ICT는 '있으면 좋은' 창조경제지만 사회적 경제는 '없으면 안 되는' 창조경제"라면서 "추후 정부가 이쪽으로 정책을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확신 섞인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곽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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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교수는 지난 100일간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아쉬웠던 점으로 "스토리텔링이 없다"고 평했다. 스토리텔링이란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개별 단위로는 기존 새누리당보다 훨씬 유연한 자세로 좋은 정책들을 많이 흡수해 놓고 써먹지를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는 스토리텔링 실패의 대표적인 예로 지난 4일 정부가 발표한 '70% 고용률' 발표를 꼽았다. 여성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내용이고 그 안에 사회적 경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신문에서 온통 '시간제 일자리 늘린다'는 얘기만 나온 것은 정책 전달의 실패라는 것이다.

안 교수는 '고용률 70%'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747' 공약처럼 보여주기식 구호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인수위 때부터 고민됐던 부분이고 보여주기식 구호는 아닌데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좀 아쉽다"고 수긍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도 개별 정책의 성패에 매몰되는 것 보다는 국민에게 큰 그림을 설득력 있게 보여줘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날 인터뷰는 5일 오후 서울대학교 교수식당과 안 교수의 연구실을 오가며 진행됐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 하려면 5년은 증세 없이 가야" 

- 박근혜 정부 100일 어떻게 보시나.
"(이 정부에서는) 복지도 경제다. 복지국가가 정착되고 복지가 경제 발전으로 선순환되는 틀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지금 정부의 방향성은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다. 전문가들이 10년 넘게 얘기했던 방향으로 조금씩 가고 있다."

- 이런 '화끈한' 긍정은 처음 들어 본다.(웃음) 
"진짜 정답대로 가고 있다. (웃음) 재정학자나 이런 분들은 우리나라에서 보수, 진보할 것 없이 공감할 부분인데 특히 증세 없이 5년 복지공약 실천하겠다고 한 건 대단히 잘한 선택이다. 지하경제와 합리적인 세출 구조가 확보되지 않았는데 증세 얘기가 나오면 영영 두 가지는 실현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나중이 되면 복지에는 어차피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증세가 불가피한데 우선 저 세 가지가 선결되어야 국민과 합리적인 증세 논의를 시작될 수 있다. 사실 지금 단계에 증세 얘기하는 건 멍청한 선택이다."

- 증세 안 하고 지하경제 양성화로 복지 세원 마련 불가능하다는 지적 많은데.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복지국가 되려면 지금 당장은 확장 속도가 늦어져도 계속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자본주의 토대 만들어두는 게 중요하다. 젊은 친구들이 입는 옷을 보면 예쁘고 나도 입고 싶다, 그런데 가서 입어보면 배 나오고 안 맞는다. 물론 억지로 입을 순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살 빼고 몸 만드는 게 좋을까. 입고 싶은 옷이 있으면 독하게 체질 개선부터 해야 하는 게 맞다. 증세를 염두에 두면 이런 체질 개선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 그래서 방향성이 정확하다?
"사회정책은 지식인들이나 정치인들이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세금 올리는 것을 좋아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더구나 조세 정의도 확보되지 않고 역외탈세 문제 매일 언론에 나오는데, 정부 씀씀이도 줄이지 않은 상태에서 증세? 지금 증세 말하는 야당 중 어느 곳이라도 국민을 설득할 수 없을 거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 복지는 민주주의에서 불가능한 거다. 자칫하면 남미식 포퓰리즘 복지로 빠질 위험도 있다. 그럼 거기에 들어가는 돈은 지금 고등학생 애들이 다 갚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 개별 정책 좋은데 엮을 줄 몰라...'스토리텔링'이 없다"

안상훈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안상훈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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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복지국가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만나는 부분은 어딘가?
"복지국가는 사회적 기반시설들이 잘 갖춰진 국가를 말한다. 그리고 현재 창조경제에서 강조되는 시장경제 영역, 첨단산업 영역의 창업 활동이 활성화되려면 역시 이 사회적 기반시설들이 어느 정도 깔려 있어야 한다. 증세 정책을 쓰기 전에 선결적으로 충족돼야 하는 조건들이 있다고 했는데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창조경제는 복지국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 박근혜 정부 100일 동안 나온 창조경제 담론에 그런 부분은 없었던 것 같다. 
"고용률 70% 로드맵에 나오는 '사회적 경제' 육성이 그런 부분이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 자활 기업, 공동체 기업 등 민간에서 사회적 목적을 우선 추구하는 경제주체들을 정부예산 지원이나 법률 제정으로 활성화 시키는 것이다. 진보진영이 전통적으로 추구해왔던 담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직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 '고용률 70% 로드맵'의 주요 내용은 시간제 일자리 확대다. 사회적 경제는 의제 중 하나로 포함되어있지만 존재감이 크지 않다. 언론들도 대부분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지금 정부의 문제 중 하나가 여러 가지 정책들을 잘 마련해 놓고도 개연성 있게 엮지를 못하고 있다는 거다. 정책에 '스토리텔링'이 없다. 고용률을 높이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인데 시간제 일자리 확충은 네덜란드식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직장 그만두는 이유 중 가장 큰 게 육아인데 네덜란드 역시 그런 정서가 강하다. 그러다보니 시간제 일자리가 발달한 거다. 네덜란드에서는 자기가 일할 시간을 스스로 짧게 선택한다. 물론 복지수준이 받쳐주니까 가능한 일이다.

한국은 이게 안 된다. 대학 나온 여성들이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되면 일하고 싶은 일자리를 구하기 매우 어렵다. 사회적으로 '좋은 일자리'가 전부 전일제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을 받은 똑똑한 여성들이 집에 묻혀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고 돈도 벌수 있는, 가령 방과 후 학교 교사 같은 시간제 일자리가 생긴다면 많은 여성들이 별 거부감 없이 직업을 구할 수 있다. 국가적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이게 시간제 일자리 확대의 개요다. 정책 목차는 똑같은데 시간제 일자리 확대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경제와 시간제 근로를 조합하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 되게끔 엮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번에는 총괄적으로 '70%'라는 숫자 개념으로 얘기했으니 앞으로 이런 부분이 엮인 2차, 3차 내용이 더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 비정규직 양산했던 기존의 '노동시장 유연화' 전략과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확충이 다르다는 얘긴가?
"당연히 다르다. 노동시장 유연화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 지금 복지 예산만 5년간 80조에 가깝게 집행되고 그중 사회서비스 부문에 상당 부분이 풀리는데 이걸 일자리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수준이 된다. 그래서 지금 이 부분에 창조경제가 필요하다. 어떤 성격의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면서 고용을 확충할 건지 구체적 콘텐츠로 보여줘야 한다. 사회적 경제 자체가 지금껏 우리 사회에 없었던 서비스이기 대문에 이것들 하나하나가 창조경제의 좋은 개별 사례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정부가 할 필요는 없다. 예산 지원하고 법 제도 만들어서 지금 당장 잘못 굴러가는 어린이집, 요양원, 방과후 학교 등 영역에서 사회 서비스를 전달해줄 '착한 기업'들을 육성하면 된다. 요즘 주목받는 협동조합이나 공유경제 등도 마찬가지 영역이다. 창조경제가 별 게 아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게 창조경제다."

-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고용률 70%'가 MB정부의 '747' 공약처럼 보여주기식 구호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런 면에서 아쉬운 게 있다. 더 멋지게 보여줄 수 있었는데 그게 잘 안된 것 같다. 그런데 고용률 70%는 인수위 때부터 고민됐던 부분이고 747공약과 비교할 만한 내용은 아니다."

"박 대통령 개별 정책 성패에 매몰되지 말고 비전 보여줘야"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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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박근혜 정부의 주요한 과제는 사회적 경제와 창조경제를 엮는 일이라는 결론인가. 
"그렇다. 아무리 정책 아이템들이 많아도 개연성 있게 엮지 않으면 소용없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아닌가. 지금 창조경제 개념 따로, 고용률 목표 따로, 이렇게 각각 나오는 것보다 총체적으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그런 측면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미 좋은 정책들은 많이 가지고 있다. 정책 하나하나의 성패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보다는 전체 정책의 조화에 신경을 쓰고 국민들에게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 지금 나와 있는 창조경제 담론들이 대부분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첨단 산업에 그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나.
"말했다시피 본질적으로 창조경제와 사회적 경제는 뗄 수가 없는 관계다. 반드시 연계 콘텐츠가 나와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 창조경제를 첨단 산업에 국한시켜 생각하는 것은 고등학생이 공부할 시간 부족하니 운동은 안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러면 오래 갈 수 없다. ICT가 '있으면 좋은 창조경제'에 해당한다면 사회적 경제는 '없으면 안 되는 창조경제'라고 할 수 있다."


태그:#안상훈, #창조경제, #박근혜, #박근혜정부, #고용률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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