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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서울 시청 앞. '특별한' 자동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이 들어왔다. 동그란 헤드라이트와 불룩 튀어나온 앞모습은 여지없는 쌍용차의 코란도다. 멀리서부터 눈에 확 띈다. 차 전체에 그려진 오색(五色)의 민들레 꽃그림 때문이다.
이 차는 특별하다. 길거리를 활보하는 수십만 대의 '코란도'와도 다르다. 지난달 12일부터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이 차를 직접 조립하고 만들었다. 작업복을 벗고 공구를 놓은지 4년만이다. 2만여 자동차 부품을 위해 일반 시민들도 돈을 보탰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해고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만든 세계 유일의 차"라고 했다.
기자는 '특별한' 코란도를 직접 타보기로 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쌍용차 평택공장까지 왕복 150킬로미터에 이르는 구간이다. 문기주 쌍용차노조 정비지회장은 "차가 만들어지고 난 후 평택공장을 가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특별한' 코란도 조립 전 과정에 참여했다. 이어 "그동안 회사 앞에서 철탑농성도 했지만, 직접 만든 차를 몰고 간다니 감회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국산차 가운데 코란도만큼 우여곡절을 가진 차가 있을까
우선 이 차는 2003년 10월생이다. 자동차 연식으로 따지면 2004년식. 정식 이름은 '뉴코란도 602 밴'이다. '밴(VAN)'은 화물용을 뜻한다. 짐을 실어나를 수 있도록 돼 있는 차다. 의자도 앞쪽 두 개뿐이다. 디젤을 연료로 쓰고 배기량은 2874cc, 네바퀴 굴림방식이다. 주행거리는 12만4832킬로미터였다. 10년 넘게 탄 차 치고는 그리 긴 편이 아니다.
문 지회장은 "당시에 코란도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했다. 그는 "길에서 가장 많이 다니는 SUV(스포츠유틸리티차)가 코란도였고, 차를 주문하고 몇달씩 기다려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의 말처럼 코란도는 우리나라 SUV를 대표하는 차다. 4륜 구동 매니아층에선 여전히 옛 코란도를 선호한다. 반면 코란도만큼 우여곡절을 가진 브랜드도 없다.
코란도(KoreanDo)의 유래는 197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진지프자동차가 미국의 에이엠씨(AMC)와 함께 오프로드를 위한 차를 선보였다. 이후 거화자동차가 1983년에 정식으로 '코란도'라는 이름을 쓰면서 우리나라 지프의 전설을 만들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1986년에 동아로 넘어갔고, 자금 압박에 시달리다 다시 쌍용그룹으로 편입됐다. 1988년 3월 서울올림픽에 앞서 쌍용자동차가 정식으로 출범한다. 본격적인 코란도의 생산은 이때부터였다.
이후에도 코란도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경영상의 이유로 여러 차례 주인을 새로 맞이했다. 대우차를 비롯해 중국 상하이차와 인도 마힌드라그룹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30년 넘게 자신의 브랜드를 지켜올 수 있었던 비결은 '코란도'가 주는 신뢰였다. 자동차 제품으로만 봐도 그렇다. 단단한 차체와 탄탄한 성능도 여전하다.
문 지회장은 "쌍용차의 SUV와 관련된 엔진기술을 비롯한 차체 강성, 구조 등은 아직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12만8천 킬로미터 달려온 코란도, 10년만에 다시 태어나 달려보니...그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코란도의 좌석은 높은 편이다. 자리를 잡으니 앞 유리로 사방 시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죽시트가 몸에 달라붙는다. 자동차 열쇠를 꽂고 시동을 걸었다. 디젤 특유의 카랑카랑한 배기음이 들려왔다. 처음 출발할 때 반 박자 늦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코란도가 채택한 독일 벤츠 엔진의 특성이다.
이렇게 '특별한' 코란도와의 여행이 시작됐다. 시청 앞 대한문을 빠져나오면서 길을 걷는 시민들의 시선을 받았다. 이 차는 원래 흰색이다. 하지만 '특별한' 코란도를 위해 새롭게 단장해야 했다. 외부는 국내 판화 예술가 등이 참여해 그림을 그려넣었다. 옥색빛이 나는 바탕에 주황과 초록 등 색깔이 들어간 민들레 꽃이 형상화됐다. 시청 앞을 지나 명동과 남산 3호터널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아트카(Art Car)'로 변신한 코란도는 이들 차량 속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한남대교를 지나 경부고속도로를 들어서자 바로 옆차선에 하얀색의 또 다른 코란도와 나란히 섰다. 이내 옆차선의 코란도 운전자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듯했다. 이어 기자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기도 했다. 그에게 이 차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아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서울 휴게소를 지나자 자동차 정체구간도 조금씩 풀려나갔다. 차의 속도 역시 어느새 시속 100킬로미터에 다달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기자가 직접 느껴보니 시속 140킬로미터까지는 큰 스트레스없이 달려 나갔다. 뛰어난 달리기 성능까지는 아니어도 고속주행의 안정성은 좋은 편이었다. 또 고속 주행 때 소음도 거슬리지 않았다. 외부로부터의 바람소리 등도 레저용 차량 수준에서 잡아줬다.
문 지회장과의 대화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그에게 조립과정에서 특히 어려웠던 점이 없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처음엔 오랜만에 작업공구를 잡게돼서 생소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실제 공구를 들어보니 몸으로 익혀진 기술과 분위기가 그대로 되살아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해고노동자가 만든 특별한 코란도, 평택공장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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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기주 쌍용차 정비지회장 영상메시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일터에 돌아가기를 희망하며 다시 뭉쳐 희망의 차를 완성했지만 공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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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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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는 30여 명이 넘는 해고노동자들이 각자 맡은 공정에 직접 참여했다. 그는 "특히 엔진 부분을 조립할 때 가장 심혈을 기울여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쌍용차의 장점은 무엇보다 벤츠엔진 기술이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사가 자신의 엔진기술을 유일하게 전수한 회사가 쌍용차다. 문 지회장은 "쌍용차가 매각된다고 했을 때 벤츠 쪽에서 (엔진을 생산하는) 창원공장만을 따로 인수하려고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동차 전문가들도 코란도 엔진의 내구성은 인정한다. 엔진 주요 부품 교체주기도 다른 경쟁차보다 상당히 길다. 그는 "이 차를 누가 받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타더라도 앞으로 10만 킬로미터는 충분히 타고도 남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우리는 쌍용차 평택공장에 거의 도착했다. 오후 8시께 평택공장 주변은 어둠이 내려 앉았다. 공장 정문에는 야간근무를 위해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 지회장이 차를 정문 앞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회사 보안요원이 금세 달려왔다. 차를 이동해달라는 요구였다.
출근하는 한 직원에게 '쌍용차 해고노동자가 만든 코란도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 바로 저 차예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기자에게 '차에 그려진 그림이 뭐냐'고 되물으면서, "멋있게 잘 나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회사가 빨리 정상화되서 밖에 나가 있는 분들도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물론 일부 직원은 "잘 모른다"는 반응도 있었다.
문 지회장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어 "해고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차를 가지고 공장 앞에 서 보니 기분이 남다르다"고 했다. 또 "이번 작업을 통해 더 빨리 공장으로 돌아가서 작업복을 입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고 말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역시 정체가 심했다. 코란도는 이날 서울~평택 왕복 150킬로미터 구간을 정말 잘 달려줬다. '특별한' 코란도의 평택 나들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 7일 오후 세상에 하나뿐인 코란도는 이제 특별한 모터쇼에 선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주인도 맞이한다. 그럼에도 더이상 '특별한' 코란도는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이 차 한 대로 충분하다. 이제 밖에 남아 있는 노동자들도 정상적인 코란도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