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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곰세(고갯마루에 선 곰 세마리)는 청소년을 키우는 세 명의 엄마들입니다. 고갯마루에서 우리는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자리, 누군가에게 물 한모금 건네고 서로 길을 물어 보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자리가 되고자 합니다. '고곰세의 좌충우돌 인터뷰'는 청소년을 키우면서 교육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심한 40대 엄마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학력에 상관없이 열심히 살고 있는 20대 청년과 대학, 꿈과 일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기사 수정 : 1일 오후 4시 15분]

내가 40대이다 보니 주변이 대부분 수험생을 둔 부모들이다. 작년에도 친한 친구 몇 명이 아이들을 대학에 들여보내기 위한 절차만으로도 9월부터 시작해 3~5개월을 동분서주하며 치열한 경쟁에서 죽어났다. 나도 내년이면 수험생을 둔 부모라 똥줄 타게 죽어나겠구나 싶어 덜컥 겁이 난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죽을 둥 살 둥 내 돈 들여가며 안달복달하는 내가 더 무섭다.

우리는 태어나 자라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가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치면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무슨 불문율이나 진화의 과정처럼 여긴다. 지키지 않는다고 경찰서에 잡혀가진 않지만 경찰서에 잡혀가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처럼 불안하다. 사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보통의 부모들은 빽도 없고 돈도 없는 평범한 집에 태어나서 그나마 등 따시고 배부르게(착각이지만) 사는 건 대학이라도 나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아직도 은연중에 갖고 있다.

나는 내가 꽤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해왔다. 그래서 다른 이들 앞에서는 '아이가 원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억지로 한다고 공부가 되겠어요. 아이는 놀아야 해요. 아이들이 놀지 못하니 병들잖아요. 남을 배려하며 착한 심성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학벌에 연연하지 않는 척 말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속내는 내 아이만은 그래도 1등을 하고, 'SKY' 대학을 가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길 간절히 원한다. 머리로는 나부터 시작하는 변화와 실천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몸으로는 이 세상 누구보다 더 잘나거나 못나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으로 살고, 또 그렇게 누군가를 바라보는 게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스물아홉 살이 될 때까지 여행이라는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살았다는 이 젊은이는 여행 멘토와 여행 사진작가의 꿈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 우리의 첫 인터뷰이 공찬현씨와 함께 스물아홉 살이 될 때까지 여행이라는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살았다는 이 젊은이는 여행 멘토와 여행 사진작가의 꿈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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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청소년을 키우며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엄마들이 뭉쳐, 부끄럽지만 감춰왔던 길들여진 시선과 편견을 한 보따리 둘러메고,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학력에 상관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러 다녔다.

2012년 한 해 동안 12명의 다양한 청년들을 한 달에 한 번 꼴로 만난 셈이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20대 청년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었지만 학력 인플레가 유독 심한데다 대학 나오지 않은 걸 드러내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유명인이 아니면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책도 뒤져보고 소개도 부탁했다. 그들이 과연 우리를 만나줄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가 섭외한 청년들은 우리의 제안을 흔쾌히 응해주었다.

하지만 섭외과정에서 학력이나 나이를 정확하게 물어보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프리카 여행 디렉터인 박병은, 해방촌에서 '빈집'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지음, 여행가이드였던 공찬현 등은 정해진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멋진 열혈 청년이지만 대졸이라서 기사화하지 못했다.

인터넷신문인 <익산시민뉴스> 대표 오명관, 군산에서 방음부스회사를 운영하는 강태옥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긍정의 힘을 우리에게 전해주었지만 30세가 넘어서 기사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산, 익산, 군산, 양주, 시흥 등 청년들이 있는 곳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길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이 세상 누구보다 더 잘나거나 못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의 한 해였다.

학력이 아닌 '자신만의 삶'을 선택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들

지음씨의 '빈가게, 빈집'이 궁금해 방문
▲ 해방촌 '빈가게' 에서 지음씨를 기다리며 지음씨의 '빈가게, 빈집'이 궁금해 방문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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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들을 만나면 앞서 말했듯이 길들여진 시선과 편견을 듬뿍 담아 물어보았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후회는 없는지? 대학만 들어가면 아무 고민과 갈등 없이 사는 것처럼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말해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선택의 문제로 고민과 갈등하기보다는 지금 부딪친 문제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어떡해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더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행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말한 청년이 많은데, 여행을 예로 들면 '여행이 가고 싶어' 그러면 열심히 준비해서 여행을 간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준비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갈까 말까 이리재고 저리재고 고민하거나 갈등하며 이유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력차별이나 어려움에 대해서도 물으면 대부분 '쿨'하다. 사실 대학, 학력을 화두로 정하니까 차별은 그것 하나인 것 같지만 차별의 종류는 다양하고 역사적으로도 그 뿌리만큼은 각양각색 호화찬란하지 않은가. 나를 봐도 여자라서 차별받고 있고 아줌마라는 편견이 주는 차별도 받고 있다. 그들은 차별이나 편견을 일정 부분 당당하게 받아들인다. 그냥 그때그때 몸으로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부딪칠 일은 부딪치며 배우고 싶으면 배웠다.

군산역 앞에서 강태옥 대표 사무실을 방문하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다가
▲ 강태옥 대표가 있는 군산역 앞에서 군산역 앞에서 강태옥 대표 사무실을 방문하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다가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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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아 보였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인 소득에 관한 부분도 그 중에 하나다. 소득이 높은 청년도 있었지만 대부분 낮은 편이다. 졸업장 하나로 연봉이 몇 천만 원씩 차이가 나고 소비가 가치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제까지 그 적은 보수로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성미산마을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부족하지 않다는 도시락가게 '소풍가는 고양이'의 주인인 단미의 말이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고, 사람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는 '노리단' 박태주의 말이 기억난다.

우리가 만난 청년들은 주변사람들과 풍부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청년들은 주변사람과 연대해 서로 하는 일을 격려하고 지지하고 도와준다. 도시락가게 창업을 함께한 어른들, 졸업장이 없는 어린 직원을 믿고 채용한 회사, 중학생 조카의 창업을 믿어준 멘토 삼촌, 고졸 기자를 가능하게 해준 인터넷신문사 등을 보면서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떠나 공존하려는 긍정적인 시선과 연대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깨달았다.

청년들은 이렇게 부족하다는 의미를 긍정적인 의미로 조금씩 바꿔가며 살고 있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 나누며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실천하면서 말이다.

젊은 사람들이지만, 나이 든 내가 그들에게 배운다

아프리카 여행 디렉터인 박병은씨에게 여행의 의미와 과정을 듣는 행복한 시간
▲ 박병은씨와 진지한 여행 이야기 아프리카 여행 디렉터인 박병은씨에게 여행의 의미와 과정을 듣는 행복한 시간
ⓒ 송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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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도 그들처럼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딛기 위해선 대학을 가든 안 가든 자기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함께 나누고 서로 힘이 되어주는 다양한 사람들이 더욱 넘쳐났으면 좋겠다. 며칠 전에 잡지를 보는데 어떤 꼭지에서 사회학자 엄기호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곳곳에서 이십대 기사는 넘쳐나는데 지방대 다니거나 특별전형으로 들어오거나 거의 무보수로 공중캠프 같은 곳에서 스태프 하며 자기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그런 대학생들 '발굴하는' 취재는 찾아볼 수는 없는 게냐?"

여기서 대학생이라는 말을 대학생을 포함한 청년으로 바꾸면 요즘 20대 성공의 지름길을 알려주는 종류의 책이나 성공신화 같은 기사는 많이 나오는데, 돈에 노예가 되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젊은이를 찾아 취재하며 함께 동참하고 귀 기울여 듣는 기사가 없다는 따끔한 말인데 백배 공감이다.

연대는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혼자서는 힘들다. 이런 청년을 발굴하는 기사를 통해 그들의 가치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귀 기울여 듣는다면, 미흡하지만 연대할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을까. 우리도 인터뷰를 하면서 힘을 넘치게 받았다. 그들과의 만남은 우리는 우리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시간을 정리하고 무의미했던 행동에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있는 자리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가 활동하는 줌마네에서 임지아씨를 초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 임지아 대표와 함께 줌마네에서 우리가 활동하는 줌마네에서 임지아씨를 초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 송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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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이들에게 우리가 만난 청년들 이야기를 한다. 열정과 자기를 성찰하는 모습이 부럽다고, 아이가 그런 점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열심히 노력도 하지만 노력이 힘들면 당당히 쉬기도 하는 모습에 놀란다고, 나이 든 내가 그들에게 배운다고, 젊은 사람들이지만 엄마보다 어른이라고, 왜냐하면 그들의 삶에선 몸으로 살아낸 자의 실천적 사유가 구석구석 배어있다고.

하지만 난 여전히 사회적 지배질서에 순응하는 말로 다음 말을 이어가기도 한다. 한편으론 그 과정이 쉽지 않다고, 남들 하는 대로 사는 게 제일 속 편할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말하듯 우리의 기사도 결국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차별과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낸 결과물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경쟁에서 편견과 차별을 감수하면서 대학이라는 틀에 억매이지 않고 다양한 삶의 방식 중에서 하나를 스스로 만들어가며 살고 있는 평범한 우리의 이웃을 그려보는 일은 우리에겐 무엇보다 값진 일이었다. 대학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무수한 사람들이 존재하듯 무수하고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스스로 깨우치면서 말이다.


태그:#고곰세, #대학, #청년, #연대,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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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그 생각을 실천하고 싶어 신청했습니다. 관심분야: 교육,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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