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부터 시작된 야권 후보단일화의 '마지막 퍼즐'이 34일만에 맞춰졌다. 18대 대선의 최대 변수였던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의 '문재인 전폭 지원' 선언은 벼랑 끝에 내몰린 야권을 기사회생시킬 것으로 보인다. 패색이 짙던 대선 구도에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아직 역전을 기대하기는 섣부르다는 분석이다. 단일화의 완성만으로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단일화 그림에 '화룡점정'을 찍을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몫이 남았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어떻게 차별화 해 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공보단장은 "마라톤 선수가 부실하면 도우미가 목청 쉬도록 응원해도 금메달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안철수 지지층이 자동으로 온다? 안일한 생각"
"안철수는 커피자판기가 아니다. 자판기에 동전 넣을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안철수 전 후보가 6일 문재인 후보에 대한 전폭 지지 선언을 한 직후 안 전 후보 쪽 핵심 관계자가 한 말이다.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해서 그의 지지자들까지 자동적으로 문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안 전 후보의 지원으로 대선 판도는 새로운 국면을 맞으며 거세게 출렁이게 됐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3~8%p가량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안 전 후보가 등판하면서 지지율 상승효과를 얻게 된 문 후보가 박 후보와 박빙 구도를 재형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 후보 쪽 우상호 공보단장은 "최근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상태에 있었던 상황에서 이제 역전의 계기를 만들었다"며 "안 전 후보의 지지층 이동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그는 또 "작게는 2.5%에서 많게는 4%까지를 (지지율) 확장 폭으로 보고 있다"며 "지금 3~5% 정도 뒤지던 판세는 박빙의 판세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안철수 효과'가 문 후보의 지지율 변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안 전 후보가 수위 높은 지원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의 지지층 중 4% 내외가 추가로 문 후보에게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문제는 안 전 후보를 지지했던 부동층이 쉽게 문 후보 쪽으로 옮겨 갈 수 있느냐다. 이와 관련 안 전 후보 쪽 핵심관계자는 "안 전 후보를 지지했다가 아직도 문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15% 내외의 지지층은 정치개혁을 원한다"며 "그 사람들을 상대로 문 후보가 뭔가 보여줘야지, 안 전 후보가 오면 그 사람들도 자동으로 온다고 생각하면 너무 안일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안 전 후보 쪽은 정권교체를 위해서 후보직을 사퇴하고, 전폭적인 지원 활동에 나서겠다는 입장까지 표명하면서 안 전 후보의 역할은 다 했다고 보고 있다. 이미 공은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안 전 후보의 지지층이 원하는 새정치와 정치개혁은 민주당의 쇄신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와 민주당이 안 전 후보의 지지층을 확실하게 흡수하려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거나 인적쇄신을 하는 등 충분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안 후보 자신도 자기를 지지하는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 텐데, 가장 좋은 방법이 뭐겠느냐"며 "정권교체가 되면 새정치가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실제 안 전 후보는 이날 문 후보와의 회동 직전 발표한 메시지에서 "오늘 문 후보께서 새정치 실천과 정당혁신에 관한 대국민 약속을 하셨다"며 "정권교체는 새정치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 후보가 이날 '정권교체와 새정치를 위한 국민연대' 출범식에서 한 '약속'이 안 전 후보의 전폭 지원을 이끌어낸 고리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이 이날 회동을 통해 "새정치를 위해서 대선 이후에도 긴밀하게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한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역전?... '안철수 효과'에 이어 '박근혜와의 차별화'가 관건
우상호 공보단장은 "두 분의 캠페인이 효력을 발휘하면 나머지 부동표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경우 역전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일화 효과'로 반전의 계기는 만들었지만 현재 판세까지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당장 새누리당은 안 후보의 지지 선언을 "마지못한 적선정치"라며 가치 절하에 나섰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특히 "마라톤은 어차피 선수가 뛴다, 도우미가 누구인지는 의미가 없다"면서 "선수가 부실하면 도우미가 목청 쉬도록 응원해도 금메달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안 전 후보의 공동유세나 지원 활동이 충분히 효과를 발휘하면 문 후보가 박 후보와 박빙 구도까지 갈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단일화 완성만으로는 역전을 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안철수 변수'가 사라지면서 '박근혜-문재인', 1대1 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에 원점에서 다시 경쟁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철희 소장은 문 후보가 박 후보와 얼마나 차별화에 나서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정권교체와 새정치가 왜 필요한가를 설명하는 게 안 전 후보의 몫이라면 문 후보는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때와 문 후보가 됐을 때의 차이점을 명확히 설명해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지 않고 단순히 단일화 성과만 믿은 채 양 쪽의 세 대결로 가게 되면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대선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안 전 후보의 막판 등판은 이번 대선의 프레임을 '박정희 대 노무현'에서 '과거 대 미래'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제는 문 후보가 이번 대선이 왜 '과거 대 미래'의 대결인지 유권자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것은 오롯이 문 후보의 몫이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분명한 것은 (안 전 후보의 지원으로) 반전의 계기를 만드는 것이지, 이것으로 승리가 완전히 담보되는 것은 아니"라며 "승부는 이제부터 원점이다, 정책을 훨씬 정교하게 가다듬고 박근혜 후보와의 차별화를 본격적으로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선이 10여 일 정도 남은 상황에서 안 전 후보의 지지 선언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다시 바꾸기에는 시기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오는 13일 여론조사 공표 금지 이전에 안 전 후보의 지지효과가 지지율에 반영되기 위해선 이번 '주말 대회전'이 사실상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왔다.
안 전 후보 캠프에서 국민정책본부장을 지낸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남은 시간이 절대 짧지 않다"며 "사실상 대선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