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이인제 선진통일당 대표
 이인제 선진통일당 대표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정치의 계절이다.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정당을 옮겨 다니는 일을 우리는 수 없이 봐왔다. 하물며 그 어느 선거보다 중요한 대선을 앞두고 한두 명쯤 정당을 바꿔 타는 것은 이미 예상해 온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당과 당이 합당하기로 했다. 선진통일당 얘기다. 선진통일당은 24일 최고위원회를 열어 새누리당과의 합당을 사실상 결정했다. 형식적으로는 최고위원들의 의견을 모으는 자리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실무적 절차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 선진통일당, 새누리당과 '합당'으로 결론).

그런데 이 대목에서 눈길을 끄는 이름이 등장한다. 바로 정치인 '이인제'다. 누리꾼들은 그에게 '피닉스'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그는 고비마다 당적을 바꾸며 끈질기게 정치 생명을 이어왔다.

한때 500만 표를 얻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3번 대권 도전을 했던 그가 이번에는 충청지역 정당인 '선진통일당'을 이끌고 새누리당에, 그리고 박근혜 후보의 품에 안기려 한다.

이 모습을 보면서 '참 어울리는 모습'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 어울리는 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하면 '원칙'과 '소신'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박 후보의 원칙과 소신이 무엇이고, 실제 이를 지켜왔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적어도 그 캠프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박 후보의 이미지는 '원칙'과 '소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박 후보가 이번에는 '피닉스 이인제'를 품에 안으려 한다. 대선을 50여 일 앞둔 시점에서 각종 여론조사는 야권 후보가 단일화 할 경우 박 후보가 패할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때문에 박 후보와 새누리당이 이번 선거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충청권을 껴안기 위해 이인제 대표가 있는 선진통일당과 합당을 추진하는 것은 어쩌면 큰 무리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칙과 소신을 강조하면서 우리 정치사에 가장 '무원칙과 무소신(정치철학을 논하기 이전에 적어도 이념과 정책이 다른 정당을 수없이 옮겨 다닌 전력을 놓고 평가할 때)'의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과 손을 잡으려 하니 어쩐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연 그 선택이 대선 승리를 가져오는 보증 수표가 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옮겨다닌 '피닉스 이인제'

'정치 철새'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면 물론 당사자는 불가피했던 상황과 타의에 의한 당적 변경을 이유로 들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당선이 정치인의 생명과 같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동의가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 이인제'에게 그러한 강변은 무색하기만 하다. 이인제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통일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입문, 1988년 총선에서 안양 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에 합류했고, 그 후신인 신한국당에서 1997년 대권에 도전했으나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 패하면서 탈당했다. 그리고는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새정치국민회의와 합당했고, 2002년 이름이 바뀐 새천년민주당에서 대통령선거 경선에 나왔으나 결국 노무현 후보에게 패하면서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탈당한 그는 김종필이 이끌던 자유민주연합에 들어갔고, 김종필이 물러난 뒤 총재권한대행으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 뒤 자민련이 2004년 총선에서 몰락하자 심대평 전 충남지사가 주도한 국민중심당 창당에 참여했고, 2007년 국민중심당을 다시 탈당한 뒤 구 민주당 계열이 만든 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리고는 경선에서 승리해 민주당 대선후보가 돼 출마, 다시 낙선했다.

그는 대선이 끝난 2008년 민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이 통합한 통합민주당에 합류했고, 그 해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무소속으로 있던 그는 2011년 자유선진당에 입당해 2012년 총선에서 6선에 성공했고, 이회창·심대평 대표가 물러난 자유선진당의 대표가 돼 당명을 선진통일당으로 변경하더니 이번에는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의 합당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이 대표의 소속 정당 변천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통일민주당(1988)→민주자유당(1990)→신한국당(1995)→국민신당(1997)→새정치국민회의(1998)→새천년민주당(2000년)→자유민주연합(2002)→국민중심당(2004)→민주당(2007)→통합민주당(2008)→무소속(2008)→자유선진당(2011)→선진통일당(2012)

그는 총 11개의 정당에 몸담았다. 이에 현재 추진 중인 새누리당과의 합당이 성사되면 그의 당적 변경 횟수는 하나 더 늘어나게 된다.

당적 변경 '그랜드슬램' 달성한 거물 정치인들

선진통일당 소속 염홍철 대전시장(자료사진).
 선진통일당 소속 염홍철 대전시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뿐만 아니다.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합당하게 되면, 이러한 이인제 대표뿐만 아니라 이른바 '당적 보유 그랜드 슬램(?) 달성'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다른 정치인들도 함께 새누리당에 들어가게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랜드 슬램'은 충청권 빅3 정당인 '새누리당(한나라당 등 포함)과 '민주당(열린우리당 등 포함)' '선진통일당(자민련과 자유선진당 등 포함)'에 모두 몸을 담는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정치인으로는 염홍철 대전시장을 들 수 있다. 염 시장은 2002년 한나라당 후보로 대전시장에 당선됐으나, 2004년 신행정수도 논란 당시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그는 다시 탈당해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선진당에 입당했다. 이로써 이미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염 시장은 선진통일당이 새누리당과 합당할 경우 다시 한 번 당적을 변경하게 될 상황에 놓이게 된다(관련기사 : 염홍철, 입당원서 5만 장 들고 자유선진당 품으로).

또한 선진통일당 최고위원인 박상돈 전 의원도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당선됐지만 이후 탈당해 자유선진당(국민중심당)에 머물렀고, 이번에 다시 새누리당으로 소속을 변경하게 될 상황이다.

현재 선진통일당 대전시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선택 전 의원도 박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당선됐으나 탈당해 자유선진당(국민중심당)에 머무르다가 다시 새누리당으로 둥지를 옮길 상황에 놓였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총선에서 당선된 뒤 선진통일당을 떠나 새누리당에 입당한 이명수(충남 아산시) 의원도 열린우리당과 자유선진당을 거쳐 새누리당으로 당을 옮긴 정치인이다.

철새 품고 대선승리? 그게 최선입니까

이들 거물급 정치인들 외에도 3개 정당을 제집 드나들 듯 오가며 무소신과 무원칙 행보를 보인 기초단체장 및 지방의원들의 이름은 일일이 거명하기 어려울 만큼 숱하다.

이렇게 '충청의 자존심'을 팔아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이어온 정치인들을 '원칙과 소신'을 내세우는 박근혜 후보가 품에 안는 게 정말 대선 승리의 길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이번 선진통일당의 선택이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선결 과제인 '지역정당 철폐'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4석의 초미니 정당으로 전락해 대선후보도 내지 못하는 소규모 정당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선거 때만 되면 자신을 지지해 준 유권자의 선택과 그동안 견지해 온 신념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는 철새 정치의 병폐까지 용인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태그:#박근혜, #이인제, #선진통일당, #염홍철, #철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