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라이즈> 베인의 철권통치로부터 고담 시민을 구해줄 국가 메커니즘은?

▲ <다크 나이트 라이즈> 베인의 철권통치로부터 고담 시민을 구해줄 국가 메커니즘은?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변종 연가시에 감염된 가족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재혁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국가 메커니즘'이다. 연가시에 감염된 사람들이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국가는 대체 무얼 하고 있었던가.

치료약을 모르기 때문에 감염자를 격리하는 처사에는 십분 공조할 수 있다. 하지만 치료약 하나 제대로 제공하지도 않으면서 시민들의 불안을 차단한다는 목적 아래 감염자의 휴대폰을 차단하는 해프닝은 하나말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가 아닌가.

SNS의 위력은 알지만 감염자와 그들 가족의 소통이 두절됨으로 루머가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행동이었다. 동시에 수용소에 감염자를 가두는 정부의 목적은 '치료'가 아니라 '소통의 차단'에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하다.

감염자를 수용한 수용 시설의 천장에 달린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 수용소 안에 있는 감염자는 모두 사망한다. 배 속의 연가시 때문이다. 스프링클러를 작동하기 위해 비상벨을 누르려는 감염자와, 스프링클러의 작동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경순(문정희 분)이 그토록 사투를 벌일 때 이를 CCTV로 감시하는 공무원은 하나도 없었던 말인가.

국가의 재난방지 시스템 역시 허술하긴 마찬가지다. 연주(이하늬 분)와 팀장 사이에서 귀청이 떨어질 듯 큰소리로 오가는 논쟁은, 매뉴얼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이느냐 아니면 감염자 권익을 위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처사 아니던가. <연가시>에서 작동하는 국가 메커니즘은 하나같이 '함량 미달'의 수준에 불과하다.

 연가시에 감염된 감염자는 각 가족들의 실종 사건과도 연관된다.

연가시에 감염된 감염자는 각 가족들의 실종 사건과도 연관된다. ⓒ CJ 엔터테인먼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도 빠진 국가...그들은 무얼 하고 있었나

그런데 '함량 미달'의 국가 메커니즘은 <연가시>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고담시는 테러리스트 베인에 의해 도시의 전반적인 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직면한다. 그럼에도 미국 국가 차원의 육군이나 공군의 지원은 찾을 수 없다.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이비규환 상황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다른 도시로 넘어가려 하는 고담 시민을 막고 엄포를 늘어놓는 일 뿐이다. 고담 시를 베인의 통제 아래 내버려두는 데에 급급한 처사다. 이 역시 국가 메커니즘의 '억압'을 시사한다.

스크린이나 무대를 현실과 동떨어지게 바라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영화나 방송, 공연은 당시 시대상을 일정 부분 반영하게 마련이다.

공연에서 사례를 찾아보자. 만일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나 뮤지컬 <라카지>를 1990년대 무대에 선보였다면?(참고.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2006년 일본에서 일어난 이지메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극) 지금과 같은 반향을 일으켰을까. <라카지>는 동성애라는 이유로 비난을 한 몸에 받았을 테고,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90년대에는 낯설던 왕따 코드로 말미암아 대중의 공감을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일련의 영화들이 정부의 메커니즘을 무능하게 묘사한다는 건 대중의 일반적인 정서가 국가 메커니즘을 신뢰하기에 앞서 고개를 갸웃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하고 미국에서는 계층 간의 반목으로 월가 시위가 촉발하는 시대적 상황은 현실이다. 이 현실은 영화라는 가상의 공간에서조차도 정부를 신뢰하기보다는 국민에 대한 '억압'의 메커니즘으로 묘사하게끔 만든다. '국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 명제는 <연가시> 혹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관통하는 코드이기도 하다.

연가시 다크 나이트 라이즈 김명민 문정희 이하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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