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먼저 무엇을 볼까?'지난 15일 오전 8시 40분, 2012여수세계박람회장을 들어서며 잠시 고민했습니다. 결론은 아쿠아리움이었습니다. 엑스포장 최고 인기관이고, 언론 등을 많이 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곳이니까.
지난 5월 12일 시작된 여수 박람회장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도 아쿠아리움을 보길 늦췄던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엑스포 사후에도 계속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여수에 사는 관계로 외지 관광객에게 양보하는 게 먼저였습니다. 셋째, 두어 시간씩이나 줄 서서 기다리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이번에는 아쿠아리움 구경을 미룰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쿠아리움은 오전 선착순 입장이고, 오후 선착순과 예약제가 혼용된 터라 이른 시간이면 쉽게 입장이 가능하겠지 여겼습니다. 그런데 웬걸, 아쿠아리움은 이른 아침에도 줄지어선 관람객이 많았습니다.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아쿠아리움에서 배운 흰 고래 습성 '기회주의적 포식자'
아쿠아리움에 들어서자 흰 고래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흰 고래를 아이처럼 마냥 좋아했습니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어렵사리 들어간 사람들에게 한 줄기 청량제 역할로 충분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수조에 갇힌 흰 고래 습성 등은 관심 밖이었습니다.
흰 고래는 배고프지 않아도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먹어 치우는 엄청난 식성의 '기회주의적 포식자'입니다. 또한 연어, 가자미, 넙치 등 1000여 종의 다양한 어류를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는 '무차별적 포식자'였습니다. 배부를 때 사냥을 않는 자연의 법칙(?)에 벗어난 일탈자였습니다.
이로 보면 우리에게 친근한 일반 고래와는 차원이 다른 '바다의 난폭자' 상어와 차이가 없었습니다. 놀라웠던 건 공포스러운 흰 고래조차 수조에 갇히니 자연의 무법자에서 그저 얌전하고 귀여운 고래일 뿐이었습니다. 사람도 이런 부류 있습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고 할까.
흰 고래가 자연에 순응하는 진화 과정도 흥미진진했습니다. 북극에서 살아남기 위해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져야만 했던 생존전략. 뿐만 아니라 차가운 수온을 견디기 위해 체중의 40%에 달하는 두꺼운 지방층이 몸을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
단단한 돌기가 등지느러미 대신 솟아 있어 바다 위 얼음을 쉽게 깰 수 있는 힘. 시력이 매우 좋지만 캄캄한 바다 속에서 음파를 이용하여 환경을 파악하는 능력 등은 존재에 대한 무한 본능을 엿보게 했습니다. 어쨌거나 흰 고래는 북극이라는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노력을 작은 수조 안에서나마 우리에게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아쿠아리움 평, "볼 게 많고 신기" vs. "기대에 못 미친다"
아쿠아리움은 어류에 대해 새로움을 알게 했습니다. 남극에만 있는 줄 알았던 펭귄이 아프리카에도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또 아마존에 사는 피라니아는 이빨을 가진 육식성이며, 먹잇감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종이라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대형 수조 사이를 걸어 다니며 멸치떼, 돔, 해초, 바다동물 등 다양한 바다 생물을 보는 즐거움도 꽤 괜찮았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육지 수족관이 아닌 당초 계획대로 해양수족관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아쿠아리움을 둘러보는데 50여 분이 걸렸습니다. 아쿠아리움에 대한 평은 두 가지로 갈립니다. 부산에서 친구 네 명이 어울려 토요일 저녁에 박람회장에 와서 당일 빅오쇼 보고 일요일 아침에 다시 왔다는 이슬비(부산·22)씨의 아쿠아리움 평입니다.
"처음 봐서인지 이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볼 게 많았다. 그 중에서도 고래와 물범이 신기했다."대구에서 일행 63명과 함께 오전 6시에 출발, 10시에 박람회장에 도착해 먼저 아쿠아리움부터 관람했다는 정태규(55)씨는 "신기하긴 하지만 기다린 만큼의 기대에는 못 미친다"고 합니다.
"공부 안 해도 좋으니 박람회장에 가서 놀아라!"
위의 두 사람 아쿠아리움 평에서 박람회장 만족도를 유추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묻지 마' 관광과 '공부하는' 관광의 차이입니다. 시간 들여, 돈 써가며 찾은 박람회장이라면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려는 자세가 필수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불평만 가득할 것입니다.
80여 개의 박람회 전시관은 하나하나 꼼꼼히 보면 볼 게 아주 많습니다. 필자도 처음에는 "별 거 있겠어?" 반신반의 했습니다. 한 달여 동안 자원봉사하며 느낀 점은 차분히 둘러봐야겠다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만큼 좋은 컨텐츠가 넘쳐납니다.
단지, 잠시 왔다 가는 묻지마 관광으론 좋은 콘텐츠를 다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입니다. 방학이 다가왔습니다. 부모로써 아이가 훌륭하게 자라길 바란다면, 자녀가 변할 터닝 포인트를 찾는 기회를 주라는 겁니다. 여수 엑스포장은 그만한 컨텐츠를 갖추고 있습니다.
방학을 맞이하는 자녀에게 해외 혹은 국내 여행을 시킨다는 명분에서 인기관과 공연만 쫓을 게 아니라, 며칠동안 작정하고 박람회장 구석구석을 보며 느끼도록 배려하는 게 최선의 교육이 될 거라 여겨집니다. 박람회를 본 아이와 보지 못한 아이의 차이는 훗날 자연스레 평가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에서 필자 부부도 아이들을 "공부 안 해도 좋으니 박람회장에 가서 놀아라"고 등 떠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계기'가 더 중요함을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