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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 군포시장
 김윤주 군포시장
ⓒ 군포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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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윤주 군포시장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9년 초였다. 그가 처음 3선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때다. 김 시장은 2006년 5.31 지방선거 당시 낙마해 소위 '야인'으로 4년을 보냈다.

당시 김 시장과 나는 평화아카데미에서 주최한 '오피니언리더' 과정 참가자였다. 그는 늘 일찌감치 와서 자리를 잡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맨 뒷자리에만 앉았다. 어느 날, 사회자가 "늦게 오는 사람들을 위해 일찍 온 분들이 앞자리에 앉아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 때 김 시장은 "일찍 온 사람한테 뒤에 앉을 권한도 있는 겁니다"라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이후, 사회자는 일찍 온 사람들에게 앞자리에 앉아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고집이 느껴지면서도 논리 정연한, 참으로 인상적인 말이었다. 이런 고집과 논리 정연함이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그를 군포시장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추측해봤다. 그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어떻게 해서 정치인으로 성공했는지 꼭 물어보고 싶었다.

지난 14일 오후 2시,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왔다. <오마이뉴스> 유혜준 경기지역팀장과 함께 김윤주 군포 시장을 인터뷰하게 된 것이다. 김 시장의 정책이나, 현안에 대한 생각 등은 유혜준 기자가 인터뷰 기사로 쓰고 나는 개인적인 성공담이나 인생관 등에 초점을 맞춰서 기사를 쓰기로 했다. 그만큼 김 시장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 김윤주 군포시장 인터뷰 기사 보러가기

아이들이 학교 가는 모습 보면 눈물이 났다

시장실에 들어가 나는 김 시장과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김 시장의 명함을 받아들고 나는 짧은 탄성을 질렀다. 독특한 모양 때문이었다. 금색인 명함은 보통 명함 크기의 절반이었고, 명함 위에는 그의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었다. 명함에는 '콩닥콩닥, 가슴이 뛴다고요? 지금, 설레게 하는 일이 있다면 놓치지 말고 도전하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명함은 책갈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아주 독특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명함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이디어가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윤주 시장의 명함
 김윤주 시장의 명함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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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아이디어인가요?"

그런 물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김 시장은 활짝 웃으면서 "누구 아이디어인 게 중요한가요? 책 읽는 군포라면 이런 명함이 필요하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요"라고 답했다. 두 번째 만남에서도 김 시장은 이렇게 내게 다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초등학교 졸업. 이것이 김 시장의 최종 학력이다. 그는 1963년 2월 경북 예천 용문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범양냉방 노동조합위원장, 한국노총 경기중부지부 의장, 한국노총 중앙위원을 거쳐 지난 1998년과 2002년 연거푸 군포시장에 당선됐다.

지난 2010년, '야인' 생활 뒤 3선에 성공한 그가 내건 핵심 정책은 크게 세 가지였다. '책 읽는 군포'와 '철쭉이 아름다운 군포', 그리고 '가정이 행복한 도시 군포'다. 그 중 '책 읽는 군포'에 그의 독특한 삶의 이력이 배어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거의 책 속에 묻혀 살았어요. 먹고 살기 어려워 중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엄청난 고뇌를 했어요. 그러면서 책이란 책은 다 읽었어요. .이런 결심(정치인으로 나서게 된) 하게 된 것도 책의 영향이었어요. '학교에 다니는 애들보다 훨씬 많이 공부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어요.

낮에는 일하고 밤엔 호롱불을 켜 놓고 책을 읽었어요. 책상 앞에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난 운명도 이길 거다' 이렇게 써 놓았지요.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말에 큰 영향을 받았어요. 그렇다고 꿈이 거창하고 그런 게 아니였어요. 내가 크면 적어도 나 같은 사람 없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못가는 사람이 없게 하자' 이런 것 때문에 노동운동도 시작하게 됐던 것 같아요."

다행히 책은 가까이 있었다. 외삼촌이 책방을 한 덕에 책은 원없이 볼 수 있었다. 외삼촌은 소년 김윤주에게 책방을 가끔 맡겼고, 그때마다 김윤주는 창문으로 또래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애들 학교 가는 거 보면 약 오르고 눈물도 나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여기(책방) 있는 책 다 읽겠다고 결심을 했지요. 그렇게 해서 읽은 게 <소공녀 소공자> <걸리버 여행기> 같은 책들을 죽 다 읽었어요, 헤밍웨이가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도 읽었고요, 혹시 <고금소총>이라는 책 아세요? 그것도 그 때 읽었어요."

김 시장은 이해가 가지 않는 어려운 내용의 책도 오기로 읽었다고 했다. 책방 안의 책을 다 읽기 위해서.

"대학 나왔으면 시장 못 됐을 것"

김윤주 군포시장
 김윤주 군포시장
ⓒ 군포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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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의 학력은 화려하다.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대학은 졸업했거나 석사,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런 엄청난 학력 경쟁 사회에서 초등학교 출신이 시장으로 당선됐다는 자체가 사실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혁명'에 성공하기 위해서 남보다 몇 배 더 노력하고, 몇 배 더 고생한 게 분명 할 터. '고 학력자들에 비해서 힘들었을 텐데...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라고 물었다. 기대와 달리 다소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더 쉬웠어요. 대학을 나왔으면 시장이 못 됐을 거예요. 난 노동자예요. 그때는 노동자라 부르지도 않았어요. 공순이, 공돌이라 부르면서 기계부속 취급을 당혔죠. 국회의원, 시장 하는 사람은 원래 씨가 따로 있는 것으로 알았어요. 저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가 그렇게 받아 들였어요. 다들 그렇게 안 거죠.

노동운동을 하면서 그런 사람들과, 많이 가진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이런 틀(씨가 따로 있다는 통념)을 깨야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했어요. 틀을 깨지 않으면 기껏해야 우리가 (노동운동을 하고) 싸우면서 얻는 게 과연 무엇이냐, 이렇게 생각이 닿게 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시장 출마까지 한 거예요."

김 시장은 꼭 당선되려고 출마한 것은 아니란다. 투쟁만 하는 노동운동이 아닌, 시민 속의 노동운동, 시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해보자는 생각에 많은 사업을 벌였고 그런 노력이 얼마만큼 인정받는지 알아보기 위해 출마했다는 것이다. 막상 출마 해보니 현실의 벽은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다.

"힘들었지요. 시장 후보가 관선 시장 하신 분, 서울대 나오신 분들이 있었으니... 난 초등학교 밖에 못 나왔잖아요. 여론 조사 해보니까 5%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당선이 됐어요. 그게 하나의 변혁이라고 생각해요, 국회의원, 시장은 씨가 따로 있다는 분위기 속에서 씨가 다른 내가 감히 출마했다는 것도 변혁인데, 거기다가 당선까지 됐으니... 이게 변혁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고요?

김윤주 시장에게는 참으로 무거운 숙제가 양 어깨에 얹혀 있었다.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온 노동자 출신 시장이기에 그 누구보다 더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다.

"내가 잘하면 '어~ 노동자 출신이 훨씬 잘하네, 기성 정치인보다 더 잘 하네' 이렇게 되면 참 좋은 거죠. 그런데, 만약 내가 못해서 형편없는 사람이 되면 '노동자 출신이 다 그렇지 뭐' 이렇게 매도하게 되잖아요. 그럼 끝나는 거지요. 그 이후에는 저 같은 노동자 출신이 발붙일 곳도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 시장이 3선을 하게 된 데에는 몸에 밴 겸손이 한 몫 했으리란 느낌이 들었다. 김 시장은 겸손이 몸 구석구석에 배어 있었다. 그는 자신을 '겸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못 배우고 못난 게 오히려 유리했어요. 잘 아는 사람(많이 배운 사람)은 자기가 최고고, 내가 맞으니까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전 달라요, 저보다 학교 못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까... 다 저보다 나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전 거만하지 않아요. 사실 거만할 수도 없죠. 거만할 재질이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거만합니까?

공무원도 저보다 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부하라 생각하지 않고 동료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항상 터놓고 의논하지요. 다만 책임과 결정 권한이 나한테 있을 뿐이죠. 그래서 (권한을) 올바르게 행사 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어요."

그가 시장실에 앉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김 시장에게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어도 꿈은 버리지 말아야 해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요. 남 탓만 하고 있으면 안돼요. 가다 보면 언젠가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죠. 절대 그렇지 않아요. 올라가야 합니다. 그럼 언젠가는 올라 갈 수 있어요. 또 남을 배려하라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이 세상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아요. 그런 사람 배려 하다보면 자기도 힘이 생깁니다."


태그:#김윤주, #군포시장,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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