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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5월 16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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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회적 관계망 서비스(SNS)에 사무실에 뱀이 들어왔을 때의 대응 방식을 소개하는 글이 전파되어 화제가 됐다. 웃자고 하는 얘기겠지만 기업별 독특한 조직 문화를 풍자했다.

"현대(現代)는 우선 때려잡고 고민한다. 삼성(三星)은 뱀에게 떡값을 줘 내보낸다. LG는 삼성의 처리 결과를 지켜본다. 두산(斗山)은 트위터로 물어본다. 한화(韓火)는 회장한테 물어본다."

행동 먼저 나중 고민이니 불도저로 통하는 현대건설답다. 삼성의 로비는 추상 같은 검사들한테도 '떡값'으로 로비할 만큼 대담하고 끈질기다. LG의 경우, 1등 삼성 따라하기와 2등주의를 풍자했다. 두산은 트위터 활동이 활발한 박용만 회장을 풍자한 것이다. 어느 대기업이나 총수의 영향력이 막강하지만 한화는 모든 의사결정이 총수에 의해 이뤄짐을 빗댔다.

새누리당은 '북한 소행으로 의심'... 민주당은 '안철수 부른다'

굴뚝산업에 비하면 IT기업은 역사가 짧지만 나름대로 고유한 기업 문화가 있다. 이런 식이다.

"네이버는? 사무실에 뱀이 들어왔다고 뉴스캐스트에 올린다. 다음은? 아고라에 뱀 잡는 방법을 물어본다. 구글은? 뱀을 잡은 직원을 포상한다. 애플은? 뱀 잡는 방법을 특허 신청한다."

다 알 만한 내용이니 주석은 사족이겠다. 그렇다면 정당은 어떨까?

"새누리당은 일단 북한의 소행으로 의심한다. 민주당은 안철수를 부른다."

새누리당의 '레드 콤플렉스'는 뿌리가 깊다. 민주당은 자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문재인 상임고문)가 안철수에게 공동정부 구성을 공개 제안할 만큼 안철수 의존도가 높다. 여기까진 그간 널리 회자된 것이다. 나의 한 지인은 여기에 통합진보당의 사례를 추가했다. "당권파를 풀어 팬다"는 것이다. 물론 가라테의 '당권'(唐拳)이 아니고 이 '당권'(黨權)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련다. MB 청와대는 사무실에 뱀이 들어오면 어떻게 대처할까?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이렇다.

"'영포파'를 시켜 미행감시하며 사찰한다."

'영포파'는 이명박(MB) 대통령의 고향 사람들로 구성된 영포(영일-포항) 인맥을 지칭한다. 지난 2010년 김종익 KB한마음 대표에 대한 불법사찰로 꼬리가 밟힌 영포파 일색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그동안 총리실에 위장한 사조직이었음이 언론 취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이 사조직은 정부 각 부처에서 영포 인맥을 차출한 것으로 부족해 영포 출신 퇴직경찰까지 특채해 MB 정권 보위를 위한 게슈타포(비밀경찰) 역할을 했다. 따라서 장진수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내부자고발로 드러난 사찰증거 은폐는 'MB 보고나 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언론의 '합리적 의심'이었다.

빼도 박도 못할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 문건

문제의 'VIP 보고' 문건
 문제의 'VIP 보고' 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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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합리적 의심'을 뒷받침하는 증거물이 최근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설치(2008년 7월 21일)된 지 한 달 뒤인 8월 28일 작성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 문건에 따르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은 VIP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인사들로 구성된 비선조직이라고 규정돼 있다. 설립 이유와 목적, 당면 과제와 함께 VIP가 보고 대상으로 적시돼 있다.(관련기사는 '공직윤리지원관실 업무추진 지휘체계' 전문 참조)

구속된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총괄과장이 작성한 이 문건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을 국무총리 산하에 두는 제1안과 BH(청와대) 민정비서관 산하에 두는 제2안의 장단점을 비교 검토한 끝에 국무총리 산하에 설립했다. 그러면서 최종 검토의견에 "VIP께 일심(一心)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을 통해 총괄지휘"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운용의 묘를 살려, 통상적인 공직기강 업무는 국무총리가 지휘하며, 특명사항은 VIP께 절대 충성하는 친위조직이 비선에서 총괄지휘" 한다고 돼 있다. 형식상의 직제는 총리실에 두되, 청와대의 '비선 친위조직'이 총괄지휘하는 변칙을 쓴 것이다. 편법 운용의 명분은 "정부의 모든 권한은 대통령이 위임하기 때문에 정당성을 가지게 되고, 형식적인 업무분장에 구애될 필요가 없으며, 비선활용은 추후 레임덕 방지를 위해서도 긴요"하다는 거였다. 이걸 보더라도, 'VIP께 절대 충성하는 비선 친위조직'의 실체는 MB 보위를 위한 게슈타포인 것이다.

그렇다면 보고 체계는 어떻게 돼 있을까? 문건에는 "(보안 유지를 위해) 보고라인은 최대한 줄이되 사안의 경중을 고려하여 ▲ VIP 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 BH 비선→ VIP(또는 대통령실장)'으로 하고 ▲ 총리 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 총리'로 함"이라고 돼 있다. 보고 체계 역시 이원화했는데 그 기준은 '사안의 경중'이라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민감성의 경중'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건은 실제로 '운영상 유의사항'에서 "과거(김대중 정부 당시) 사직동팀이 곧바로 청와대 공격루트가 되었으므로 외양을 총리실 소속으로 하여 일상적인 것은 총리께 보고하되 민감한 사안은 절대 충성심이 보장되어 있는 비공식 선을 활용할 필요"라고 적시하고 있다. 공무원 조직에서 'VIP'는 대통령을 의미한다. 불법사찰 내용의 '최종 종착지'가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이야기다. 진경락 총괄과장은 함께 구속된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 최종석 행정관 등과 함께 민간인 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의 핵심 멤버다.

지휘체계와 당면과제 등이 100% 실천된 'VIP 보고' 문건

지원관실 업무추진 지휘체계
 지원관실 업무추진 지휘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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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빼도 박도 못할 물적 증거가 드러났지만 청와대측은 파문 확산을 차단하는 데만 급급해하는 눈치다. 지금껏 나온 청와대측 해명은 "청와대 내부는 대통령께 '직보'가 가능한 구조가 아니다"거나, "진경락 과장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문서에 불과하다. 혹시 그럴 의도가 있었더라도 구상 차원에서 그쳤을 것"이라는 추측이 전부다.

그러나 문건 내용을 검증해보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지휘체계와 당면과제 등 대부분이 실제 문건 내용대로 이행됐다.

우선, 문건 자체에서도 확인된다. 문건은 '운영상 유의사항'에 부연해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관련 VIP 보고사항은 공직윤리지원관이 대통령실장께 보고하되, 자체 기획하거나 VIP 지시사항은 BH 공직기강팀과, 첩보 인지 등 기타 비공식적으로 추진된 내용은 고용노사비서관과 사전 조율"이라고 돼 있다.

당시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장은 이강덕 전 서울경찰청장이다. 포항 출신으로 경찰대 1기의 대표 주자인 이강철 전 청장은 MB가 "강덕아"라고 이름을 부를 만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보고지휘체계에 등장하는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 최종석 행정관, 이인규 지원관, 김충곤 점검1팀장 등은 모두 '범영포 라인'이다. 문건대로 "VIP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으로 충원이 된 것이다.

또 문건에는 "우수공무원 발굴, 감찰결과 조치는 BH 공직기강팀장(이강덕)과 사전 조율"이라고 돼 있는데, 이 또한 검찰이 전에 압수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또 다른 USB(이동식저장장치) 문건에서 확인된다. 아울러 문건에서 제시한 ▲ 추석, 2학기 교직원 인사철 전후로 금품수수·향응 제공행위 적발 ▲ '공기업 선진화' 관련 공기업 임원 사표 제출 유도 같은 '당면 과제'들 또한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공기업 임원 솎아내기로 충실히 이행됐고, 구체적인 추진 내역은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작성한 또 다른 USB 문건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다시 주목 끄는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의 청와대 출입기록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청와대 출입기록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청와대 출입기록
ⓒ 박영선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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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 및 보고 체계와 관련해서 다시 주목을 끄는 것은 지난 4월 박영선 의원이 공개한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들의 청와대 출입기록이다. 청와대 경호실에 기록된 약 2년간의 출입기록(2008년 7월 16일~2010년 6월 23일)에 따르면, 모두 195회인데 청와대 출입이 가장 잦았던 직원은 ▲ 진경락 총괄과장(83회) ▲ 이인규 지원관(62회) ▲ 왕충식 사무관(48회)이다.

이들은 주로 'VIP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인 고용노사비서관실의 최종석 행정관과 이영호 비서관 그리고 민정수석실을 찾았다. 이들이 주로 만난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58회) ▲ 이강덕 공직기강팀장(25회) ▲ 권재진 민정수석(11회)이다. 그런데 이 출입기록은 2010년 6월까지의 기록이다. 주로 민간인 사찰과 관련된 지휘보고상의 업무상 출입기록이다. 즉, 민간인 사찰이 들통 난 이후 민정수석실이 직간접으로 개입한 증거인멸 과정에서의 출입기록은 빠져 있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진술조서에 따르면, 진경락 과장은 지난 2010년 7월 19일 서울중앙지검 1216호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을 때 "진술인이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근무하는 약 2년 동안 청와대를 몇 회 정도 출입한 것 같나요"라는 질문에 "대략 10여회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한 점이다. 진 과장은 "청와대의 누구를 만나로 갔는지, 기억나는 사람을 전부 이야기해보라"는 검사의 추가 질문에도 청와대에 근무하는 행시 동기와 후배들만 거론할 뿐, 출입기록상으로도 그가 만난 것으로 확인된 장석명, 이강덕,이영호 비서관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로서는 'VIP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을 보호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처럼 지휘체계와 당면과제 등이 100% 실천된 'VIP 보고' 문건과, KBS 노조가 입수한 사찰 문건, 그리고 박영선 의원이 입수한 지원관실의 청와대 출입기록은 모두 사찰의 몸통이 대통령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도 금시초문인 듯 딴청을 부리는 VIP께선 마치 가시덤불에 머리만 처박은 꿩 신세다. 어쩌면 VIP께서도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 조직에서 작성한 'VIP 보고' 문건이 '쥐덫'이 되어 자신을 옴짝달싹도 못하게 옭아맬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VIP 보고문건을 단독 입수한 <중앙일보>가 사설('VIP 보고' 대통령이 입장 밝혀야 한다)에서 "검찰에서 진상을 조사해야겠지만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일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의혹을 받게 된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싶다.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논지는 오래 전부터 제기해온 바이지만, 뒤늦게라도 <중앙일보>가 주장하니 새삼 새롭다.

박정희의 후예들... 전두환과 MB의 '일심회'

이명박 대통령당선인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2008년 1월 22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출판기념회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 박정희의 후예들 이명박 대통령당선인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2008년 1월 22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출판기념회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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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말이면 쏟아지는 정권 비리 제보가 MB의 우군이었던 '조중동'의 손에까지 넘어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하야'로까지 번질 수 있는 'VIP 보고' 문건이 하필이면 5월 16일자에 실린 것에서 또 다른 역사의 의미심장함이 읽힌다.

5월 16일은 박정희 소장이 51년 전에 한강 다리를 건너 이 땅의 의회 민주주의를 군홧발로 짓밟은 날이다. 선배들의 군사 쿠데타를 지지한 육사 11기생들은 2년 뒤인 63년 2월 서울 청파동 전두환 소령 집에 모여 '도원결의'를 한다. 김재홍 교수의 <박정희의 후예들>에 따르면, 영남 출신이 주축인 이들은 모임의 명칭을 놓고 숙의한 끝에 "한 마음으로 뭉치자"는 뜻에서 '一心會'(일심회)로 정했다. 이들은 나중에 명칭을 '한마음회'로 바꾸었다가 다시 '하나회'로 바꾸었다.

전두환은 '박정희 양아들'로 불릴 만큼 박정희의 총애를 받았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에 이어 민주주의를 다시 후퇴시킨 5.17 쿠데타를 잉태한 군내 첫 사조직의 명칭이 '한마음으로 영남정권 수립'을 결의한 '일심회'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전두환의 일심회는 '정치 군인들'이고, MB판 일심회는 '정치 공무원들'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박정희의 후예들'인 것이다.


태그:#민간인 불법사찰, #공직윤리지원관실, #진경락, #이명박, #일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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