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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손에서 순식간에 탄생한 돼지머리입니다.
▲ 흙돼지 전문가 손에서 순식간에 탄생한 돼지머리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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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4대 국경일인 삼일절,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이 나라 독립을 위해 순국한 선열들을 생각해서는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마땅히 떠오르는 일이 없습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단순한 휴일쯤으로 생각하는지 방바닥에 누워 빈둥댑니다.

귀한 날 방에서 의미없이 보내면 안 되지요. 그래서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동네 뒷산을 걷기로 했습니다. 전남 여수에 있는 구봉산에도 둘레길이 났습니다. 아이들 앞세우고 그 길 걸을 참입니다. 집에서 시간 버리느니 건강이라도 챙겨야지요.

둘레길은 산 중턱쯤에 있는데 호젓한 게 제법 걸을 만합니다. 새로 난 길이라 그런지 내딛는 발걸음에 보드라운 흙이 밟힙니다. 느낌이 좋습니다. 아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선지 길 걷는 사람이 몇 명 없습니다.

아이들도 부담 없이 걷습니다. 정상 오르는 일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죠. 오랜만에 아무 생각없이 걷고 있는데 아내가 대뜸 걸음을 빨리하랍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길 따라가면 도자기 굽는 집이 나온답니다. 애들과 그곳에 놀러 가잡니다.

접시나 찻잔도 있는데 왜 밥그릇 만들었을까

아내가 접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 접시만들기 아내가 접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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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에 모양을 내는 각종 도장입니다. 귀여운 발도 보이네요.
▲ 도장 도자기에 모양을 내는 각종 도장입니다. 귀여운 발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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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솜씨에 제가 모양을 냈습니다. 예쁘지요?
▲ 예쁜 접시 아내 솜씨에 제가 모양을 냈습니다. 예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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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 듣고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흙장난 할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난겁니다. 갑자기 세 아들 걸음이 빨라집니다. 그러더니 줄달음질을 합니다. 몇 걸음 달리더니 뒤돌아 저를 부릅니다. 빨리 달려오랍니다.

실은 저도 호기심이 동합니다. 도자기는 한 번도 빚어본 적이 없거든요. 이참에 멋진 '밥그릇'을 손수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왜 예쁜 접시나 찻잔은 떠오르지 않고 밥그릇 만들 생각이 난 걸까요.

궁금증을 달고 줄달음질치는 아이들을 쫓아 저도 함께 뛰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봉산요'라는 곳에 닿았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매끈하고 잘빠진 도자기와 그릇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저도 곧 예술적인 밥그릇을 만들 수 있겠지요?

먼저 기초를 잘 가르쳐줄 선생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인장이 어디 있는지 이곳저곳 기웃거려 봅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건물 뒤편에 누군가 있는 듯합니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니 그곳에 주인장과 아들이 도자기에 유약을 바르고 있네요.

아이들, 흙장난하며 놀아야 건강해요

막내가 고운 흙을 다루고 있습니다.
▲ 꼬마도공 막내가 고운 흙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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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흙덩이를 집었습니다. 심오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요.
▲ 흙장난 둘째가 흙덩이를 집었습니다. 심오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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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흙이 잔뜩 묻었는데도 거침없이 새우깡을 집어듭니다. 물론, 새우깡은 입속으로 들어갔지요.
▲ 새우깡 손에 흙이 잔뜩 묻었는데도 거침없이 새우깡을 집어듭니다. 물론, 새우깡은 입속으로 들어갔지요.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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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덩이 같이 둥근 도자기를 능숙한 솜씨로 이리저리 굴리며 유약을 바르고 있습니다. 느닷없이 불쑥 얼굴 내민 길손님을 주인장은 느긋하게 맞아줍니다. 차 한 잔 마시러 안으로 들어가잡니다. 좋은 차가 있다며 한잔 마셔보랍니다. 예쁜 찻잔에 담긴 차를 한입 머금어 봤습니다. 향이 좋더군요.

그리고 찻잔을 들고 아이들과 함께 온 이유를 말하니, 두 말 않고 고운 흙덩이를 내놓습니다. 실로 한 덩이씩 자른 후 아이들과 제 손에 들려주며 마음껏 주물러 보랍니다. 접시도 만들도 둘둘 말아 올려 그릇도 만들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흙장난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더군요. 선생님도 흙 한 덩이를 집더니 이리저리 손바닥 위에서 굴려댑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돼지머리를 만들어냅니다. 귀여운 돼지머리(?)를 보더니 아이들이 신기해합니다.

당연히 얼마 못 갔죠. 곧 돼지 머리는 아이들 손에 짓이겨졌습니다. 애들 손에 남아나는 게 얼마나 있겠어요. 다행히 녀석들 손에 넘어가기 전 사진은 찍어 뒀습니다. 선생님 말이 "아이들은 흙장난하며 놀아야 건강하다"고 원 없이 만지고 놀랍니다.

접시 열 개나 만들었네... 돈 꽤 들지 않을까

큰아들은 뭘 만들 생각일까요?
▲ 집중 큰아들은 뭘 만들 생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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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이지만 전문가 솜씨라 확실히 다른 모습입니다.
▲ 전문가 솜씨 미완성 이지만 전문가 솜씨라 확실히 다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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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옆자리에 앉은 아내는 집에서 쓸 접시를 만드느라 온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여간해선 선생님이 만든 그릇처럼 모양이 나오질 않습니다. 그릇을 만들었다 다시 뭉개기를 몇 차례 반복하더니 조금 모양이 그럴듯한 접시 하나를 완성했습니다.

아내는 뿌듯한 듯 미완의 그릇을 한참 쳐다봅니다. 또 다시 흙덩이를 집어 듭니다. 열 개는 만들어야 한답니다. 갑자기 고민이 생깁니다. 분명 공짜는 아닐 텐데 돈 꽤나 나오지 않을까요?

모든 흙장난과 그릇 만들기를 마치고 돈은 얼마나 내야 하는지 물었더니 흙 값으로 조금 내면 되는데 그릇 구워서 완성되면 그때 값 치르라네요. 집으로 오는 길에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를 생각하고 그 많은 그릇을 만들었냐고요.

돌아온 대답은 "만들다 보니 자꾸 욕심이 생겨서 그만 열 개나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돈이 많이 나오면 어떻하냐며 제게 걱정을 털어놓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핀잔을 주기도 뭐해서 얼마 나오진 않을 거라며 안심 시켰지요. 별 수 있나요. 공들여 만든 그릇인데 버릴 수는 없잖아요.

밥그릇 잘 챙겨서 남에게 기대는 일 없기를

신나게 흙놀이를 마친 후의 모습입니다. 난장판인가요?
▲ 흔적 신나게 흙놀이를 마친 후의 모습입니다. 난장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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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와 막내가 산을 돌아 집으로 갑니다.
▲ 집으로 둘째와 막내가 산을 돌아 집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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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신나게 흙장난 한 덕분에 가족 모두 손톱 밑에 흙이 잔뜩 끼었습니다. 4월 초, 접시가 완성되면 그릇 위에 온갖 정성으로 만든 음식 올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맛있게 먹어볼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항상 하시던 말이 생각나네요.

"누구든 자기 먹을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정말 제가 먹을 밥그릇을 챙겼네요. 아이들에게도 각자 자기 그릇을 하나씩 만들라고 했으니까 앞으로는 그 접시에 뭔가를 올려주렵니다. 세 아들도 세상 살면서 자기 밥그릇 잘 챙겨서 남에게 기대는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만든 그릇, 찻잔, 접시 등은 한 달 정도 기다려야 구워져 나온답니다. 지불 비용은 그릇을 찾을 때 합니다.



태그:#도자기, #구봉산 둘레길, #봉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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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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