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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분야는 많은 개혁이 요구되는 분야다. 무상의료가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반면, 한미FTA를 비롯한 의료민영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 건강권 실현을 위해서는 의료민영화를 반대하고 지나치게 상업적인 현 의료시스템을 극복하여 실질적 무상의료를 실현해야 한다. 4·11총선에서 부각되고 있는 보건의료분야의 핵심 쟁점을 건강세상네트워크와 보건의료단체연합,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몇 차례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말]
지난해 12월 30일, 인천치과의사회와 '의료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인천지역본부' 회원들이 인천종합터미널에서 송도 영리병원 반대 선전전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인천치과의사회와 '의료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인천지역본부' 회원들이 인천종합터미널에서 송도 영리병원 반대 선전전을 하고 있다.
ⓒ 한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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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민영화는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방안'이란 정책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의료산업화는 의료를 경제 재화의 하나로 보고 경제성장과 국민건강에 기여하는 의료산업을 육성하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의료서비스를 시장화하는 정책으로 나타났다.

의료산업화의 본래 목표는 신의료기술 개발, 효과적인 신약개발, 고용창출, 의료의 질 개선 등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자본이 수익을 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한국 의료서비스는 현재도 지나치게 상업화돼 있고 의료자본은 매우 큰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고령화가 심각하지 않은 데다, 의료비는 상당히 낮다. 더구나 약 20조 정도의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요소들만 놓고 봤을 때, 의료서비스 시장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는 자본에게 매우 매력적인 블루오션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삼성을 비롯한 자본들은 정치권에 경제성장과 고용창출, 지역개발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며 의료민영화를 핵심정책으로 끌어 올리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은 의료민영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중심을 잡지 못했다. 보건의료의 근본 목표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형평성과 효율성에 기초한 질 개선 등의 과제는 의료서비스산업의 공공성과 유기적으로 결합돼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치권은 의료산업의 민영화가 진행되어도 보건의료서비스는 유지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산업선진화로 인식되도록 한 의료자본과 경제관료들의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성공한 것이다. 그 결과 경제성장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한국사회에서 어젠다를 선점할 수 있었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에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게 되었던 배경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경제시스템이 파국을 맞고, 한국사회 민영화가 문제점을 야기하면서, 의료산업 선진화란 어젠다도 빛이 바래고 있다. 의료민영화는 국민들의 지속적 반대로 저지되어 왔으며 무상의료로 표현되는 의료공공성이 부각되고 있다. 의료민영화가 고용창출이나 지역개발보다는 의료비상승, 의료불평등과 같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경제성장과 의료서비스 공공성을 분리해 사고하는 패러다임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한미FTA

한 초등학생이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
 한 초등학생이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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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통과된 한미FTA는 의료부분에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강도의 개방조건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 측은 이행법안과 관련 지속적으로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며 본격화 될 경우 무상의료 등 의료개혁과제는 실현 불가능하다.

먼저 한미FTA는 의약품 영역을 일반 상품이 아닌 독립적 챕터로 특화시킨 유일한 FTA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가격과 급여에 관한 사항 등 핵심 정책결정 기능을 기존 위원회가 아닌 독립적 결정기구에서 다룰 것을 명시한 점이다. 미국 측에서는 여기에 의료행위, 질병군, 신의료기술 등마저도 포함시킬 것을 주장한다. 국민건강과 국민의료비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들은 공정한 절차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참여할 수 없는 민간기구를 통해 이 과정을 진행하면,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미칠 수도 있다. 

또한 허가-특허 연계조항은 특허소송 중인 의약품의 국내 시판허가를 가로막아 국내 의약품 가격을 크게 폭등시킬 가능성이 높다. 호주의 경우, 미국과의 FTA가 통과된 이후 약 가격이 크게 상승하고 있다. 의료기기도 문제다. 한미FTA 지적재산권 분야에는 세계 최초로 의료기기 분야가 포함됐는데, 이로 인해 의료기기 가격 폭등,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기 남용 등의 문제가 우려된다. 

한미FTA가 본격화되면 의료에 대한 정부 기능은 극도로 축소되고 시장 원리가 지배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 약가 및 의료기기 ▲ 의료서비스 가격 적정화 ▲ 의료불평등 해소 등은 실현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약가 인하 방안이다. 약제비를 적정하게 조절하려는 정부 정책이 한미FTA에 전면적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투자자중재절차(ISD) 등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크다. 벌써 미국 측에서는 발효되자마자 독립적 검토 위원회를 빨리 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의약품, 의료기기 등 의료산업을 제외한 보건의료 서비스의 경우 미래유보 영역에 포함되어 있고 공공보건 영역은 간접수용에서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 등 의료서비스는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국 6개에 달하는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 영리병원은 예외조항으로 돼있어 이 지역 영리병원은 래칫(되돌림 방지)조항의 대상이 된다. 또한 기존 보험회사들이 판매하고 있는 의료보험과 산재보험은 적용대상에 포함되어 있어 향후 ISD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건강보험 자체가 당장 ISD에 걸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 의약품 및 의료기기 가격 폭등 ▲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 영리병원 활성화 ▲ 민간보험 활성화와 건강보험 약화는 예정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건강보험과 의료서비스는 점차 취약해 질 것이고 한미FTA가 점차 효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미FTA에 대한 정치권의 입장은 애매하다. 정부와 여당은 '의료는 전혀 문제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은 적극 반대를 하는 듯했으나 결국 전면 재검토라는 입장으로 돌아섰으며 4.11 총선에서도 이슈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세력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지난 15일 한미FTA가 발효된 상황이라, 하루 빨리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당장 예상 가능한 파급력을 분석하고 실질적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 현재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건강보험조정심의위원회(건정심) 등 여러 이해당사자가 망라된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합리적인 가격 및 제도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를 배제하고 정부가 빠진 독립적 검토기구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등 대응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또 의약품 가격 결정 및 보험등재 과정에서의 합리적 절차를 마련해서 법제화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취약한 의료공공성을 빠르게 확대하는 것이다. 한미FTA가 구체화되기 전까지 공공영역을 최대한 확대하고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  

의료민영화 극복 없이 무상의료는 불가능하다

한미 FTA가 발효된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한미 FTA 폐기투쟁 돌입 선포 기자회견'에서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강기갑 통합진보당 의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한국진보연대 이강실, 박석운 공동대표 등 참석자들이 날치기로 강행처리된 주권침해협정, 손해보는 협정, 불평등 협정인 한미 FTA 발효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미 FTA가 발효된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한미 FTA 폐기투쟁 돌입 선포 기자회견'에서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강기갑 통합진보당 의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한국진보연대 이강실, 박석운 공동대표 등 참석자들이 날치기로 강행처리된 주권침해협정, 손해보는 협정, 불평등 협정인 한미 FTA 발효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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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외에도 걸림돌은 또 있다. <중앙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여론의 집중 지지 속에 삼성은 헬스산업에 진출하려 하고 있고, 영리병원들도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자유구역의 영리병원 도입과 건강관리서비스 등이다. 제주도와 송도의 영리병원은 삼성과 외국자본의 투자유치로 한 단계 진전되었다. 더 큰 문제는 한미FTA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진행해보고 문제 발생 시 되돌리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건강관리서비스는 예방 및 건강증진-치료-재활 및 요양서비스로 이어지는 보건의료서비스 중 취약한 예방 및 건강증진 영역을 민간을 통해 상업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정책이다. 법적 절차로는 의료법, 경제자유구역의 의료기관 설립 운영에 관한 특별법,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며 건강관리서비스 법안 역시 제출되어 있다.

대부분 새누리당 의원들이 주도했으나 민주통합당 지역의원들 역시 찬성하고 있다. 민주통합당마저도 지역개발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지역 의료시스템을 악화시킬 것이 우려되는 의료민영화에 미온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진정한 무상의료, 민영화 반대에서 출발한다

무상급식과 더불어 국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던 정책이 무상의료다. 대다수 국민들은 교육과 의료부문 복지재정이 늘어나길 바라며, 이러한 열망은 야권연대와 시민사회단체의 무상의료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사퇴와 야권연대 서울시장 당선이라는 획기적 사건의 배경에 무상급식 논란이 있었듯, 2012년 총대선에서도 복지정책에 대한 입장차가 쟁점사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선심성 공약에 묻힐 가능성이 높아 자본 및 사적 영역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에는 의료민영화를 찬성하거나 추진했던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 공약에도 민영화 반대는 명시돼 있지 않다. 한미FTA는 재검토하자는 수준이며 체결 이후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무상의료 실현은 공급영역의 공공성, 자본 및 의료공급자에 대한 합리적 규제방안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의료민영화에 대한 적극적 반대 입장, 제출된 법안의 폐지, 한미FTA 즉각적 폐지 및 대응책 마련, 빠른 시일 내 공공영역의 확장 등을 공약해야 한다.

이상의 과제를 정치권이 수용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하나다. 국민들이 보다 명확하게 요구를 하는 것이다. 선거는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한국 보건의료 전반에 대한 개혁이 논의되는 자리가 돼야한다. 또 정치권은 자신의 공약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은경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의료민영화, #영리병원, #4.11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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