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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조세체계도 일종의 상벌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조세체계는 바람직한 경제행위에 대해서는 세금을 가능한 한 가볍게 하고, 경제에 해를 끼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무겁게 부과하도록 짜야져야 한다. 이것을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조세개혁의 목표는 '시장실패의 교정' 및 '초과부담의 최소화'에 두어야 한다.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진보와 보수, 좌와 우를 떠나서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조세개혁안을 찾아보자는 데에 있다. 시장실패를 교정하고 초과부담을 줄이는 세제를 구축하자는 데에 누가 반대할 수 있을까. 고용을 늘리고 GDP를 증가시킬 수 있는 경제행위엔 가급적 세금을 가볍게 하고,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행위에 대해서는 세금을 무겁게 하자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시장주의자도 진보주의자도 아니다.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사람이거나 사익추구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사회 전체에 해를 끼치는 경제행위에는 무엇이 있는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 토지투기다. 토지투기를 재테크, 혹은 투자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것은 생산적인 경제행위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장실패를 초래하고 고용을 위축시키며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경제행위다. 이것은 전 국민이 토지투기에 나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인천 중구 중산동 아파트 건설 공사 현장
 인천 중구 중산동 아파트 건설 공사 현장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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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투기는 광범위한 시장실패를 초래한다. 토지투기는 금융권에 있는 자금들이 비생산적인 토지투기로 몰려가게 만들고, 집값 폭등을 초래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주거불안에 떨게 만든다. 또 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빈부격차를 초래한다.

그런데 토지투기라는 경제행위는 도대체 왜 하는 것일까? 투기는 심심해서 하는 게 아니다. 이득, 정확히 말해서 불로소득을 노리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바람직하지 않은 경제행위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

그러면 토지 불로소득을 가장 잘 환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토지보유세를 지속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다. 흔히 양도소득세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양도소득세를 강화하게 되면 불필요한 토지를 계속 소유하게 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반면 보유세를 강화하면 불필요한 토지는 시장에 나오게 된다. 그리고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면 토지투기는 사라지고 토지는 결국 가장 잘 이용할 사람이 소유하게 된다.

그러면 이렇게 중요한 토지보유세(이하에서는 보유세로 통일)에 대해서 각 당은 어떤 정책을 내놓았을까? 진보신당이나 새누리당은 보유세에 대해서 어떤 정책도 낸 적이 없기에 여기에서는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 두 당만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해보려 한다.

소득세·법인세 강화 외치는 민주당... 보유세는?

보유세의 장기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법제화한 최초의 정부는 참여정부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는 후보시절에 공약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참여정부를 계승하겠다고 하는 민주통합당이 지난 2월 26일 발표한 조세개혁 방안에는 보유세에 관한 것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정책위의장인 이용섭 의원이 일전에 민주통합당의 보유세 강화 목표는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중간 정도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마저도 아예 실종된 것인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노무현 정신의 부활을 외치는 민주통합당이 왜 이럴까? 세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민주통합당도 부동산 부자들이기 때문이다. 토지정의시민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민주통합당의 평균부동산소유액은 6억 3천억 원인데, 이는 상위 20% 평균의 1.3배에 달하는 액수다. 보유세 강화로 부동산 가격이 하향안정화 되면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불로소득의 규모가 줄어들 텐데, 바로 이것이 민주통합당이 보유세 강화에 미온적이거나 부정적인 까닭일 수 있다.

둘째, 참여정부에서 보유세 강화의 대명사로 불리던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에 대한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일 수 있다. 보유세 강화가 바람직하지만 저항이 너무 커서 노력에 비해서 정치적ㆍ경제적 효과가 작다고 생각할 수 있다. 셋째, 토지 내지는 부동산의 중요성을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반면 통합진보당은 참여정부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을 정책 목표로 내세웠다. 민주통합당보다 낫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좀 이상한 면이 있다. 소득세와 법인세 강화는 과감하면서, 왜 보유세에 대해서만 겨우 참여정부 수준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민주통합당과 마찬가지로 참여정부의 종부세 경험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통합진보당 역시도 토지 내지 부동산의 중요성을 간과해서 그럴 수도 있다.

특히 통합진보당은 토지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는 점이 우려된다. 진보정당이나 그쪽의 전문가들이 만든 정책을 보면 하나같이 토지를 주택문제나 은행의 대출문제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큰 오해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 이외에도 ▲양극화 문제 ▲도로와 같은 기반 시설 설치 문제 ▲창업의 어려움 ▲일자리 부족 문제 ▲적대적 노사관계 문제 ▲공무원의 부정부패 문제 등의 원인을 살피다 보면 어김없이 토지문제와 만나게 된다. 진보가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을 고치는데 가장 적극적인 그룹임을 자임하려면 토지문제와 마주해야 하고, 토지문제의 해법인 토지보유세 강화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종부세 반대 주도세력은 한줌도 안 되는 기득권

그러면 다른 건 논외로 하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생각하는 종부세에 대한 기억은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일까? 종부세가 정말 전(全) 국민적 반대에 부딪쳤나? 종부세는 정말 효과가 없었나?

종부세가 도입되던 2005년 연말 참여정부의 지지율은 한마디로 바닥이었고, 그런 민심은 그 다음 해에 치러진 지방선거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부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은 줄곧 60%를 웃돌았다. 조중동이 매일 주요 지면을 할애해서 아무리 세금폭탄이라고 우겨대고 참여정부를 약탈정부, 좌파정부라고 해도 희한하게도 종부세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 유지됐다.

종부세에 대한 저항의 주도세력은 정확히 말하면 한줌도 안 되는 기득권이다. 당시 가장 앞장서서 종부세를 반대했던 지금의 새누리당은 자타가 공인하는 지주정당(地主政堂)이다(참고로 새누리당 국회의원 부동산평균가액은 21억 2천만 원이다). 조중동 역시 지주언론(地主言論)이고, 재벌 역시 어마어마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지주기업(地主企業)집단이다(2010년 15대 재벌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가액은 무려 83조 원이나 된다). 학계와 언론계, 심지어 종교계까지 반대했던 종부세에 대한 지지율이 60%가 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민심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고 하겠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고층 아파트촌.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고층 아파트촌.
ⓒ 엄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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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개혁진영이 참여정부의 종부세 입법화 경험에서 배워야 할 점은 집권 1년 안에 제도화에 성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참여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이 제도화 된 시기는 2005년 연말이다. 다시 말해서 집권 3년차였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과 재정경제부는 보유세 강화에 비협조적이었다. 그런데 만약 집권 1년차인 2003년에 청와대와 여당과 정부가 하나가 되어 보유세 강화 정책을 마련하고 그것을 제도화시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최소한 2005~2007년에 불어 닥친 부동산 광풍은 면했을 것이라 판단한다.

이것은 2003년 10·29 대책이 발표되고 난 이후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10·29 대책에서 부동산 세금과 관련된 내용은 다주택자 양도세 강화였고, 그 즈음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연설에서 가능하다면 토지공개념을 도입할 수 있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아직 입법화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시장 참가자들에게는 정권 차원에서 부동산 문제는 꼭 해결하겠다고 느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것의 영향으로 2004년은 부동산 시장이 상당히 안정되었다. 그러나 2004년 12월 말에 너무도 미약한 세제 정책이 입법화가 되자 2005년부터 부동산가격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참여정부가 추진한 방법대로 보유세 강화를 추진해도 괜찮나? 보유세 강화의 정신은 계승해야 하나 두 가지는 반드시 수정해야 한다. 첫째는 토지와 건물을 구분하지 않았던 것을 수정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보유세가 낮을 때는 별 문제 없지만, 보유세가 높아지면 건물을 짓는 생산 활동은 위축된다.

예를 들어서 주택가격은 4억 원으로 같지만, 어떤 주택은 지은 지 얼마 안 되어서 건물가격이 2.5억 원 토지가격이 1.5억 원인데, 어떤 주택은 노후주택이어서 건물가격이 0.5억 원 토지가격이 3.5억 원이라고 하자. 그런데 현재의 제도 하에서 두 주택은 가격이 같기 때문에 같은 세금을 낸다. 앞의 주택은 전체 세금에서 건물에 대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것이고, 뒤의 주택은 토지에 대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유세가 강화됨에 따라 건물을 짓는 생산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는 과세표준을 지가(land price)에서 지대(land rent)로 바꿔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가는 사실 매우 불안정한 개념이다. 가령 어떤 지역의 개발계획이 발표되면 지대엔 변동이 없는데도 지가가 폭등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또 그린벨트 지역은 어떤가? 실제 지대는 형편없이 낮은데도 땅값은 개발에 대한 기대 때문에 엄청 올라 있다. 농지도 마찬가지다. 농지의 현실 지대는 상당히 낮지만, 지가는 용도 변경에 대한 기대 때문에 엄청 비싸다.

이렇게 지대와 지가 사이의 엄청난 괴리가 있기 때문에 거품이 잔뜩 낀 지가를 과세표준으로 삼게 되면, 그 땅을 이용해도 수입이 별로 없는데 토지세를 많이 내야 하는 불공평이 발생한다.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토지 용도에 따라 세율을 차등을 두지만(예를 들어 전ㆍ답ㆍ과수원ㆍ목장용지 및 임야의 경우 세율이 단일세율로 0.07%로 재산세 세율 중에 가장 낮은데, 이렇게 한 이유는 농지가격에는 기본적으로 거품이 끼었다고 가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공평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당해 연도의 토지가치를 정확히 반영하는 지대를 과세표준으로 삼게 되면 해소된다. 이렇게 하면 토지의 용도 별로 세율을 다르게 적용할 필요가 줄어들게 되어 조세체계가 더욱 간소화될 수 있다.

보유세 강화, 즉 토지문제 해결은 국가적 과제

이런 것을 감안해서 19대 국회와 차기정부가 제도화해야 할 보유세 강화의 대안을 구상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앞으로 10년 안에 보유세실효세율 1% 달성이라는 목표(지대를 과세표준으로 하면 지가의 1%는 지대의 약 40%에 해당된다)를 복원해야 한다. 통합진보당도 보유세 목표를 참여정부의 수준으로 잡겠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은 결국 보유세실효세율을 0.3~0.4% 정도에 만족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거기서 머물 게 아니라, 참여정부 때 이미 사회적 합의가 된 보유세실효세율 1%를 되살려야 한다.

둘째, 보유세 1% 달성은 다른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과 함께 해야 한다. 보유세 강화와 보조를 맞추어 취득세와 등록세, 그리고 건물분 보유세를 감면해주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소득세와 법인세도 손보는 것이 필요하다. 소득세와 법인세는 하위구간의 세율을 낮추는 동시에 상위구간을 신설하는 수직적 공평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개편하면 증세기조를 유지하면서 중상위 계층과 중견기업까지 감세가 가능해진다. 결과적으로 주택분 보유세를 더 내는 대신 개인 소득세를 감면받고 (비)사업용 토지세를 더 내는 대신 법인 소득세를 감면받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조세체계를 개혁하면 주택 과소비자와 비사업용 토지를 많이 보유한 법인은 부담스러워지지만, 적정주택보유자나 토지를 알뜰하게 사용하는 법인, 즉 토지투기 안 하는 기업은 유리해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조세개혁이 목표로 하는 바이기도 하다.  

셋째로 국세 보유세를 납부하는 인원을 늘려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의 토지가치가 높은 것은 중앙정부의 서울 집중정책에 기인한 바가 크다는 것을 생각하면 보유세는 꼭 지방세로 해야 한다는 논리는 근거를 상실한다. 그리고 보유세 강화, 즉 토지문제 해결은 국가적 과제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보유세실효세율을 1%, 즉 지대의 약 40%를 환수한 이후에는 '이자 공제형 지대세'로 전환해서 토지투기를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이자 공제형 지대세가 어떻게 투기를 뿌리 뽑는지, 그리고 어떤 효과를 내는지에 대해서는 김윤상. 2009. <지공주의: 새로운 토지 패러다임> 321~344쪽을 참조).

이자 공제형 지대세가 필요한 까닭은 보유세를 강화한다고 해서 토지투기가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여건에 따라 토지투기는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 미국이 한국보다 보유세실효세율이 7~8배 높지만 투기가 일어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자 공제형 지대세를 적용하게 되면 매매차익인 토지 불로소득은 발생하지 않는다.

토지투기 뿌리 뽑을 정당·정부 출현을 고대한다

보유세는 그냥 여러 세금 중 하나가 아니라, 토지투기라는 비생산적 행위를 잠재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보유세를 통해 토지투기를 근절하면 토지 때문에 발생했던 빈부격차, 실업, 사회갈등, 금융위기, 주택문제 등은 사라진다. 뒤집어 말하면 빈부격차가 완화되고,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사회갈등은 줄어들고 토지 때문에 발생하는 금융 불안정은 사라지며, 주택문제도 크게 완화된다. 그러나 보유세 강화는 단기간에 성공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재벌개혁처럼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해야 토지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앞서 보았듯이 참여정부의 보유세 강화에 대한 지지율은 조중동과 재벌의 집요한 방해가 있었음에도 60% 이상이었다. 따라서 참여정부 시기에 경험한 종부세에 대한 충격 때문에 추진하지 못한다는 것은 민심을 제대로 읽는 것이 아니다. 민심은 더 이상 땅과 집으로 돈 벌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라고 외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들은 토지투기라는 경제행위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는 정당과 정부의 출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남기업 기자는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입니다.



태그:#보유세, #4.11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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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전 국민 주거권과 토지공개념 실현, 토지보유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인 토지배당제를 위한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배당》(2023, 공저), 《아파트 민주주의》(2020),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2018, 공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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