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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식 차량이 도착했다. 장이 서지 않는 남양면에는 매주 월·수·금요일마다 반찬거리를 실은 트럭이 마을마다 돌아다닌다. 따로 장을 보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손님이다. 사과, 바나나, 귤 같은 과일들에 어묵, 두부, 도토리묵, 계란 같은 식재료까지.

출퇴근하는 보건지소 직원들에게는 영 인기가 없다. 허나 일주일 중 5일을 관사에서 지내는데다 차까지 없는 나에겐 반갑기 그지없다. 전화번호를 어찌어찌 얻어 보건지소도 들러주십사 부탁을 했다.

"소망상회입니다. 도착했어요."
"네. 바로 나갈게요."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나른한 오후. 진료를 하다가 호출을 받고 나간다. 가장 필요한 계란 한 판을 집어들었다. 다른 반찬거리를 이것저것 들추는데 귀여운 여자아이가 아장아장 다가왔다.

"아주머니. 저희 할머니가 콩나물 1000원어치 사오래요."

고사리 같은 손이 퇴계 이황 선생님이 그려진 쪼가리를 앙증맞게 건넨다. 나는 세종대왕님을 건넸다. 남녀노소(男女老小)라는 단어는 아마 밥배 기준으로 순서를 맞췄을게다. '남'이 '노소'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이 먹으니까 말이다.

침 맞은 할머니를 기다리는 손녀
▲ 할머니와 손녀 침 맞은 할머니를 기다리는 손녀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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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머리통만 한 비닐봉지를 받아든 아이와 함께 진료실로 다시 들어왔다. 자리에 누워서 침을 맞던 김금업 할머니가 목소리로 반겨준다.

"사왔어?"
"네. 이따만큼 사왔어요."

손녀와 함께 보건지소를 들른 할머니도 트럭 오는 소리를 듣고 반찬거리 생각이 났나보다. 아마 오늘은 콩나물국이라도 끓여먹겠지. 내가 두부미역국 끓일 생각하는 것처럼.

침이 신기한지 손녀는 연신 고개를 갸웃갸웃거린다. 병아리가 어미닭 옆에서 사방을 두리번 두리번거리는 모습 같다. 아프냐고 묻자 할머니는 괜찮다고 한다. 뽀얀 얼굴에 왕구슬만한 두 눈을 활짝 뜨고 호기심을 못 이기는 아이. 15분의 유침시간이 지나 일어서는 할머니 옆에서 폴짝폴짝 뛴다. 기다리기 점점 지치던 때에 잘된 일이다.

"저기 가서 옷 좀 가지고 오니라."
"네."

옷걸이에 걸려진 할머니의 분홍색 외투. 깡총깡총 뛰어보지만 소인에게는 안즉 닿지 않는 높이. 도와줄까 해서 옆에 다가가보았다. 그새 머리를 굴렸는지 옷 밑자락을 잡고 쭉 땡겨서 기어코 제 손에 안고 만다. 손녀가 가져온 외투를 입는 할머니와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

사륜구동 오토바이 앞에 아이가 타고 할머니는 뒤에서 안았다. 움츠러들고 편치 않은 몸이지만, 조막만한 아이에게는 여전히 든든한 보호자다. 할머니도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는 눈치다.

"선생님한테 인사하고 가야지."
"히히. 이."

뭐가 쑥쓰러운지 어린 아해는 성급하게 목례를 하고 웃음으로 무마한다. 위잉 하는 소리의 자락을 남기고 그들은 떠나간다. 이렇게 조손지간이 함께 사는 경우가 간간이 있다. 부모님이 도시에서 맞벌이하느라 아이를 돌볼 여유가 없는 경우다. 혼자 적적하실 할머니에게 대신 손자 손녀를 부탁한다.

손녀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할머니
▲ 할머니와 손녀 손녀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할머니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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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남양마을에도 귀여운 아해들을 보살피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다. 아, 다 귀여운 건 아니구나. 이경자 아주머니가 데리고 있는 초등학생 아이는 예외다. 덩치가 또래에 비해 제법 큰 이 녀석은 도시에서 살다 와 그런지 머리가 꽤 굵어졌다. 볼딱지도 빵빵한 게 고집 있어 뵌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우연히 만났다. 너 몇 학년이니로 시작해서 가볍게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녀석은 내 생활을 궁금해했다.

"보건소에서 일하면서 많이 벌어요?"
"뭐, 혼자 살 만큼은 되지."
"보건소 사람들이 버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얼마나 벌겠어요."

속된 표현으로 '빡친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나보다. 오 헨리 단편집 <붉은 추장의 몸값>에 나오는 '조니'가 연상되었다. 자신을 납치한 2인조 일당을 골탕먹이는 주근깨 투성이 꼬마. 거침없는 말썽꾸러기에게 시달린 그들은 몸값도 받지 않고 아이를 돌려보낸다. 물론 대부분 아이들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며칠 후, 김금업 할머니가 다시 오셨다. 이번에는 혼자다. 얼굴 한 켠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뭐라 묻기 전에 먼저 말을 꺼내셨다.

"손녀랑 손자가 집으로 가버렸네. 엄마 아빠가 델꼬 갔는데 아이고. 같이 있다 가니까 서운하데."
"손주 보는 재미가 없어져서 어떡해요?"

할머니를 하도 보채는 손자 손녀 녀석을 데리고 아들 며느리가 잠깐 왔다 가긴 했다. 잠깐의 만남은 반가웠지만, 그만큼 진한 아쉬움을 남겨주었다. 오늘은 외투를 내려줄 사람이 없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아르헨티나 할머니>라는 책에서 '그리움이란, 모든 것이 달라진 후에야 비로소 싹트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떠나자 이태껏 몰랐던 그리움이 찾아온다. 오늘따라 환자분들이 많아서 할머니는 오래 기다렸다. 다음에는 손녀를 옆에 끼고 지루함을 달랠 수 있기를 바랐다.


태그:#한의사, #공중보건의, #할머니, #손녀, #콩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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