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9일 늦은 오후부터 트위터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정부와 여당이 SNS를 차단할 수 있는 법적근거가 될 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트위터에선 이를 비난하고 반대하는 내용의 트윗이 지난 여름 폭우처럼 쉴 새 없이 쏟아졌다.
트위터 이용자들의 반응은 격앙돼 있었다. 해당 법안을 대표발의 한 국회의원은 물론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의원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이들을 다음 총선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견들도 분출했다.
'SNS 차단법'에 대한 비판·비난·반대 트윗의 양은 세어보기도 힘든 수준이다. 9일 밤 트위터 전용 프로그램으로 관련 내용을 자동 검색되도록 했더니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간 동안 '박원순' '나경원'으로 검색된 트윗이 올라오는 속도보다 몇 배는 빨랐다.
이런 강력한 반발에 해당 법안을 대표발의 했던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은 보도가 나간 지 하루가 채 안돼 법안을 철회하겠다고 약속하고 사과했다.
이에 앞서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던 장세환 민주당 의원도 발의를 철회했다. 트위터 상의 반발이 법안 발의를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카카오톡 과금 방지' 등 '망 중립성' 내용도 포함문제가 된 법안은 지난 8일 국회에 접수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안이다. 장제원 의원은 해당 법안이 "SNS 차단의 법적근거를 만들기 위한 게 아니라 최근 이슈가 된 바 있는 '카카오톡 과금' 논의 등 통신사업자의 횡포로 인터넷서비스 사업이 위축되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스마트폰 무료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의 이용이 크게 늘어 이로 인한 데이터 교환량이 폭증, KT·SK텔레콤 등 통신사업자가 카카오톡 측에 망 이용료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게 과연 옳으냐는 논란이 있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40조의 2'를 신설해 이런 시도를 막는 게 이 법안의 취지라는 게 장 의원의 설명이다.
실제 개정안 내용을 보면 '40조의 2'의 1항은 통신사업자가 특정 인터넷 콘텐츠와 서비스에 대한 접속을 제공하는데에 부당한 차별을 하지 못하게 하고, '접속 우대'의 대가를 받거나 고의적인 접속 지연을 못하도록 규정했다. 최근 논의되기 시작한 '망 중립성 보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
트위터 이용자들의 반발을 폭발시킨 건 3항이었다. 이 조항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합리적인 통신망 관리를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인터넷 접속역무의 제공을 제한할 수 있다"면서 ▲불법적인 통신인 경우 ▲이용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통신망의 보안과 혼잡해소를 위한 경우 등을 이 조항의 적용대상으로 명기했다.
법을 발의한 쪽에서는 "인터넷 접속 제공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했으니, 성매매나 사기 사이트와 같이 불법 서비스에 대해선 접속을 제한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이 필요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트위터 이용자들에게는 '반대 여론을 불법으로 규정해 SNS 접속을 차단의 명분을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말았다.
'SNS 차단법 발의자들' 명단에 의원 이름이 올라간 의원실의 실무자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법안과 관련된 한 의원실 실무자는 "이제 본격적으로 '망 중립성'에 대한 논의가 되고 이걸 법으로 보장하려는 건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졌다"고 했다. 다른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지금이 이명박 정부라 문제가 됐지, DJ정부나 참여정부 때 내놨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내용"이라고도 했다.
장제원 의원은 10일 오후 법안 철회의사를 밝히며 "오해를 일으킨 쪽이 저니까 제가 사과를 드립니다. 정말 SNS를 생활처럼 하는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막을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립니다"라면서 '오해'임을 강조했다.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순 없으니 '오해'인지 '이해'인지 단정 짓긴 힘들다.
'표현의 자유'에 민감해진 시민들... MB정부 덕분?그러나 이번에 트위터 속 폭발적 반응에서 확실히 확인된 건 시민들이 그 어느 때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 민감해졌고,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열심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의식을 이토록 고양시킨 것은 다 이명박 정부의 공이다.
이명박 정부의 검찰은 인터넷에서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한 '미네르바' 박대성씨를 이미 사문화 된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을 동원해 구속했고, 법원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를 포기하는 것으로 스스로 무리한 수사였음을 인정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법 자체를 위헌으로 판결해 더 이상 이 법을 악용한 수사를 못하도록 했다.
선거벽보도 아닌, 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었다는 이유로 한 예술가를 기소해 결국 벌금형을 받게 만들었고,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한 연예인들은 줄줄이 방송출연이 정지됐다. 한미FTA가 불러올 수 있는 위험성을 제기하는 인터넷 글에 대해 '구속을 원칙으로 수사하겠다'고 법적 근거도 없는 엄포를 놓은 게 다 이명박 정부의 검찰이 한 짓이다.
타인이 제작한 이명박 대통령 비판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인 김종익씨에 대해 불법 사찰을 벌이고, 기업 운영까지 어렵게 한 '생계 박탈형 보복극'을 벌인 것도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다.
오죽했으면 여당 의원들이 나서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웃자고 한 '풍자'마저도 법의 잣대를 들이 대어 처벌하고자 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로 비추어서는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없습니다. 비판적 방송인의 연이은 퇴출, 해마다 발생하는 민간인 사찰 등에 대해서는 엄중한 조사와 책임자에 대한 문책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진언했을까. (11월 6일 한나라당 의원 25명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표현의 자유 억압' 인정 않는 최시중... 시민의식 고취 기대된다이런 상황에서 SNS 차단 가능성이 의심되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니, 법 내용을 오해했든 이해했든 시민들이 반발하고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9일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의 "검찰의 인터넷 괴담 수사 등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명박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명박 대통령 멘토'이자 2기 연임으로 현 정부와 끝까지 임기를 함께할 것으로 예상되는 최 위원장의 이런 굳은 신념은 큰 기대(?)를 갖게 한다. 이명박 정부가 끝날 때까지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 지키기'에 대한 신념 또한 더욱 강고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