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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강의하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강의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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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부터 2007년 6월까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의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기업인 149명 중 125명이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한국 법원이 기업인 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게 처벌하고 있어요. 이런 인식 속에서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경제가 제대로 발전되기는 어렵습니다.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이 정치·사회·문화·이데올로기적 지배력으로 확장되는 것을 넘어 민주주의까지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성의 이건희,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한화의 김승연. 재벌기업 총수가 범죄에 깊이 연루되면 어김없이 휠체어가 등장한다. 배임과 횡령부터 폭행까지 죄명도 다양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들은 언제나 휠체어에 오른 채로 집행유예로 풀려나곤 한다. 재벌 총수들이 법을 위반하고도 벌을 받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기형적으로 재벌에게 집중된 경제력이 이와 같은 결과를 낳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5월 24일과 31일, 두 번에 걸쳐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재벌 중심 체제의 한계'라는 주제로 강의를 열었다. 그는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과 후진적 기업지배구조가 낳는 문제들을 사회 전체가 감당하고 있다"며 "이는 국민경제 전체의 선순환 성장과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5대 재벌이 만드는 부가가치, 전체 GDP의 10%"

1980년대부터 외환위기 전까지 한국의 재계에서는 '대마불사'라는 말이 유행했다. '큰 기업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의 이 단어는 규모가 큰 기업에게 국가의 경제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집중도가 너무 커서 국가가 해당기업을 망하도록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이러한 '대마' 30개 중 16개가 부도를 맞았고 대마불사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기업 재벌들은 한국 경제 속에서 어떤 구도를 형성하고 있을까. 김 교수는 직접 만든 30대 민간 기업집단의 통계를 소개하며 "재벌, 특히 상위 5대 재벌에 대한 집중도는 더욱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때 남은 재벌이 14개입니다. 지금의 30대 기업은 이 14개가 분열한 것이에요. 삼성에서 나온 그룹이 4개, 현대에서 5개, LG에서 나온 그룹 3개가 모두 30대 기업에 들어가 있습니다. 범삼성, 범현대, 범LG, 범SK가 만들어내는 부가가치가 한국 전체 GDP의 10분의 1입니다. 한국 국민의 10%가 직접적으로 여기서 먹고 사는 셈이지요. 하도급 업체와 금융계열사가 만들어내는 부가가치까지 합치면 약 15%에 육박할 겁니다."

김 교수는 "30대 재벌은 차치하고 범4대 재벌만 합쳐도 이렇게 된다"며 "이것이 한국 경제의 현주소이자 재벌 기업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말했다.

"범4대 재벌이 하는 투자는 한국 전체 투자의 1/3입니다. 삼성 혼자 한국 전체 투자의 13%에 해당하는 투자를 하고 있어요. 이러니 4대 재벌 총수가 1, 2년만 투자 안 하면 어느 정권이 버티겠습니까. 대통령의 임기는 5년뿐이고, 총수는 평생 하는 거잖아요? 재벌이 자본파업을 하면 국가 전체의 경제 성적표가 안 나오게 되어 있어요. 이게 바로 한국 재벌 경제력 집중의 현안 중 하나입니다."

재벌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경제력이 특히 커다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금융이다. 김 교수는 "금융 계열사는 재벌의 독점적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어떤 아이디어를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한데 기업이 금융 계열사를 보유할 경우 이 자본을 자체 조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재벌 중에서도 특히 범삼성 계열의 금융계열사들이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김 교수는 "삼성이 가지고 있는 금융 계열사가 10개인데 각각의 이 계열사들이 시장 점유율 1위 혹은 2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5대 재벌의 금융 문제는 삼성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의 지난 2010년 자산 규모는 약 144조. 시중은행 중 가장 큰 외환업 은행인 외환은행의 자산 규모가 100조에 불과한 것을 보면 삼성생명이 삼성 그룹에 불어넣는 자금력이 어떤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돈들이 적절한 감시 없이 그룹 내의 논리로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최근 금산분리 폐지 분위기를 거론하며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금융이 기업을 감시해야 하는데 금융이 기업을 지배해 버리는 상황이 진행 중"이라고 지적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사회 전반에 부작용 낳아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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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재벌의 거대한 영향력은 한국 사회에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김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벌이 경쟁력 제고를 기반으로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나가는 것은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되기 어렵지만 재벌의 성장이 '시장지배력의 남용'의 결과이거나 이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면 얘기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이 중소기업의 존립을 위협하고,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길을 막고 있다면 국민경제의 장기적 성장을 위한 선순환 구조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젊은 기업이 중견 기업이 되고, 중견 기업이 대기업으로 발전하는 사이클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이 30년이 안 되고, 구글이 그걸 따라잡는 데 걸린 시간이 20년이 채 안됩니다. 2006년 말 한국에 존재하는 50대 기업 중에서 1980년 이후에 설립된 기업은 6개뿐입니다. 그것도 모두 서비스 기업이고 제조업 기업은 전혀 없지요."

김 교수는 "젊은 제조업체들이 50대 기업군에 새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거대 재벌의 계열사에 의한 제조업 부문 독과점화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재벌들에 대한 경제력 집중 때문에 한국은 제조업 창업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는 얘기다.

경제력 집중으로 인한 재벌의 영향력은 단지 경제영역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김 교수는 재벌의 영향력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는 현상으로 기업인 범죄에 대한 법원의 이중 잣대를 꼽았다. 그는 "형법상 절도·강도죄에서 집행유예가 나오는 확률은 47.6%, 일반 횡령·배임죄는 41.9%가 집행유예가 나오는 반면 기업인의 횡령·배임죄는 71.1%가 집행유예로 풀려난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한 사회의 갈등을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마지막 권위를 가진 수단이죠. 거기서 수용할 수 있는 분쟁해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가 안정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0년부터 2007년 6월까지 횡령·배임죄로 걸려든 기업인 149명 중 83.9%가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다른 범죄에 비해 비약적으로 높은 수치입니다. 법원의 이중적 잣대를 알 수 있는 것이죠. 이러고 나서 옷 벗으면 유명 로펌으로 가는 겁니다."

김 교수는 "재벌들의 광고비 집행을 통한 언론 길들이기나 민간경제연구소 활동을 통한 경제 이데올로기 장악 역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낳은 심각한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두려운 것은 삼성경제연구소"라며 "여기서 매일같이 쏟아내는 친재벌적인 보고서를 보수언론에서는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다 실어주는데 그걸 몇 년 읽다보면 삼성이 원하는 대로 머릿속 인식이 바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치주의 확립과 기업집단법 제정 필요"

이러한 재벌의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김 교수는 법치주의의 확립을 꼽았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재벌의 폐쇄적 지배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07년 삼성특검으로 불거졌던 '삼성공화국' 논란을 예로 들었다. 삼성그룹의 불법비자금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실시된 삼성특검은 삼성의 불법 상속에 면죄부를 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종료되었고, 이건희 회장은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기업의 전체 지분 중 5%만 갖고 있는 총수 일가가 10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게 한국 재벌들의 지배구조 문제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집행유예 판결 이후 대통령의 단독 특별사면 조치를 거쳐 다시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에 공식 복귀했어요. 이 과정에서 그에 대한 충성심을 입증한 임원들은 인사적·금전적 보상을 받았지요. 이러한 지배구조의 문제가 경제력 집중으로 인한 폐해를 극복하는 길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이러한 현실 관행과 법체계 사이의 괴리가 좁혀지지 않는 한 재벌 지배구조 개선 노력은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 경우, 궁극적으로 재벌의 경제력 집중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밖에도 "재벌은 여러 개의 기업 집단으로 운영되지만 현행법으로는 개별 기업에 대한 규제만이 가능하다"며 "삼성그룹처럼 비상장 가족회사와 비상장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구축하면 사회적인 규제를 가할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유럽 대륙국가처럼 기업집단 자체를 법적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인정해, 사회적인 규제를 할 수 있게 하는 가칭 '기업집단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태그:#김상조, #종횡무진 한국경제, #재벌,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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