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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2009년 3월 25일, 여전히 겨울 기운을 머금고 있는 봄의 문턱을 넘어 모티프원으로 제 아내의 새로운 도전을 있게 한 두 분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서로의 도전에 불씨가 되다

서울산악구조대 김남일 대장님과 백림치과의 최영림 원장님이셨습니다. 저의 아들 영대와 함께 승마를 하시던 최영림 원장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동안 한국등산학교를 졸업하고 산악특수훈련을 마친 다음 '2009 히말라야 로체남벽 원정대'의 팀 닥터로 참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원정의 정찰을 위한 6189m 임자체 원정을 이미 다녀오셨다는 말씀과 함께…….

8516m의 세계 4위봉이지만 에베레스트 남서벽과 안나푸르나 남벽과 함께 악명 높은 세계 3대 거벽 중의 하나인 로체남벽의 원정에 김남일 선생님이 대장을 맡았다고 했습니다.

아내의 등반에 불씨가 된 서울산악구조대의 김남일대장님과 최영림원장님
 아내의 등반에 불씨가 된 서울산악구조대의 김남일대장님과 최영림원장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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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대장님과 같은 거목 알피니스트alpinist가 아니면 도전조차 불가능한 것으로 알았던 그 '신들의 땅'에 지금까지 치과의사로만 살아오신 대학생의 엄마가 함께 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웠습니다.

알피니스트로 변신한 최원장님께서 제가 잊고 있던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매순간 포기하고 싶었던 산악훈련을 주말마다 받고, 드디어 임자체에 올랐을 때 세상을 향한 새로운 의욕이 샘솟았습니다. 저의 이런 변화를 자극한 것은 두 사람입니다. 이안수선생님께서 배낭을 꾸리고 길 떠나는 그 용기와 록클라이밍rock climbing을 하셨다는 강민지 선생님의 얘기가 저를 도전하게 했습니다."

2007년도에 최 원장님 가족과 만났을 때 저와 저의 아내가 40대 초반에 인공암벽을 타고 잠시 암벽등반에 참가했었다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최 원장님의 알피니스트로의 변신은 바로 그 얘기가 불씨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날 김남일 대장님께서는 '2003 서울, 티벳 합동에베레스트원정대의 총기록인 'Dream of Everest'의 책에 '등산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라고 서명을 해서 저희에게 선물해주셨습니다. 그 책은 서울시산악연맹의 대원들과 티벳등산협회 대원들의 에베레스트를 향한 도전과 환희 그리고 우정의 61일간이 고스란히 담긴 등반 보고서였습니다.

그 책의 서문에는 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그곳, 그 자리에 있기에 우리는 갔습니다.
그리고 후회없이 올랐습니다.
사파이어 블루의 하늘과 은빛 정수리
그 꼭지점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반환점이었습니다."

최 원장님의 놀라운 도전, '등산의 시작은 마음'이라는 김 대장님의 자극, '고봉의 정수리는 세상의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을 위한 반환점'이라는 것들이 제 아내의 잊었던 등반욕구에 다시 불을 붙였습니다.

아내는 세 아이들을 모두 키워낸, 이제는 50대의 중반이 머지않은 나이입니다. 암벽등반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니기를 바랄뿐이지요.
 아내는 세 아이들을 모두 키워낸, 이제는 50대의 중반이 머지않은 나이입니다. 암벽등반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니기를 바랄뿐이지요.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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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학교에 입교하다

아내는 1년에 단 두 차례만 실시하는 한국등산학교에 입교를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 해 봄학기는 이미 등록이 마감되었습니다. 그 해 9월, 쿰부 히말라야로 부터 엽서가 왔습니다.

"나마스떼!

저희는 지금 네팔의 카투만두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로체남벽을 향해 출발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로체남벽 정상에 서는 날까지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으로 성원해 주시기 바라며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배낭꾸리고 떠나는 용기를 가르쳐주신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을 로체 B.C.에서 기원합니다. 최영림 배"

최영림 원장님께서 쓰시고 '2009 NEPA 한국로체남벽원정대(2009 NEPA LHOTSE SOUTH FACE EXPEDITION)'의 모든 대원들이 육필로 서명한 엽서였습니다.

쿰부 히말라야로 부터 온, 아내의 등반욕구의 불씨에 부채질을 한 '2009 NEPA 한국로체남벽원정대'의 엽서
 쿰부 히말라야로 부터 온, 아내의 등반욕구의 불씨에 부채질을 한 '2009 NEPA 한국로체남벽원정대'의 엽서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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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장님과 최원장님은 스노 샤워(Snow Shower : 작은 눈 결정체가 퍼붓는 현상)와 낙석, 낙빙을 뚫고 절망의 벽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직장의 스케줄 조정에 실패해서 다시 2번의 등산학교 입교기회를 놓쳤습니다. 마침내 올해 초 입교를 확정지었습니다. 2011년 4월 9일부터 5월 15일까지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 일원에서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6박 12일 동안 진행되는 교육과정입니다.

매주말 밤 도봉산대피소에서 이론교육을 받고 바로 전문산악인들의 지도로 실습을 하는, 전문산악인이 되기 위한 강도 높은 과정입니다.

일반등산론, 암벽등반론, 확보론, 산악기상, 등산식량, 장비론, 응급처치, 안전대책, 알피니즘의 역사, 산노래 등 12과목의 이론과  매듭법, 암벽실기(폭포, 부엉이 하강, 소침니chimney, 대침니), 독도법, GPS, 자연보호, 야간산행과 비박 등을 훈련하고 마침내 선인봉과 만장봉의 암벽등반을 마침으로서 졸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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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복자

두려움이 엄습하다

아내가 등록한 제74회의 71명 중에는 아들만큼 젊은 사람들과 이미 산악회의 회원으로 수년간 등반을 한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등산학교의 안내에 따라 암벽화와 카라비너carabiner, 하네스harness와 하강기 등의 등산장비를 구비했습니다. 그런데 입교가 다가올수록 아내의 걱정은 철저하게 실전에 기반한 이 훈련을 체력적으로 견딜 수 있는 것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무거운 물건을 들면 척추에 통증이 오는 허리의 이상도 간과할 수 없는 우려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몇 년간을 기다린 이 기회를 포기하지 않도록 부추겼습니다.

아내는 주말마다 검단산을 오르내리고 한밤중에 헤이리를 한바퀴씩 도는 구보를 했습니다. 또한 인근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병행했습니다. 병원에서 무거운 물건을 들지 않도록 경고한 점을 고려해서 가능하면 배낭 무게를 줄이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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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복자

산악인의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을 보니...

도봉대피소에서의 입학식과 1박 2일간의 1주차 교육을 마치고 귀가했을 때는 포기하기 않은 것을 퍽 다행스러워했습니다. 이번 기수에는 여자분들도 여럿 있어서 위로가 된다고 했습니다. 입학식에서 후배들의 격려차 최영림 원장님도 오셨다고 했습니다.

2주차 교육에 참가해야하는 지난 토요일에는 모티프원의 청소를 돕다가 도봉산행이 늦어졌습니다. 도동대피소의 교육장까지는 한 시간의 산행이 필요한 거리입니다. 이미 완전히 어두워진 산길을 혼자 오르면서 두려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다행이 보름달의 달빛이 길을 밝혀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대피소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저도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도봉산입구에서 도봉대피소의 교육장까지 한 시간 남짓한 도봉산의 밤길을 혼자 오르면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어둠속에 분홍꽃잎을 숨긴 진달래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도봉산입구에서 도봉대피소의 교육장까지 한 시간 남짓한 도봉산의 밤길을 혼자 오르면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어둠속에 분홍꽃잎을 숨긴 진달래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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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 교육을 마치고 일요일밤 10시에 귀가한 아내의 표정에는 고통과 희열이 함께 담겨있는 표정이었습니다.

"새벽구보를 비롯한 어떤 훈련도 빠지지 않았어요. 암벽등반에서는 김남일 대장님이 직접 나서서 지도해주었습니다."

2주차의 교육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 아내의 표정에는 고통과 희열이 교차되는 묘한 표정이었습니다.
 2주차의 교육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 아내의 표정에는 고통과 희열이 교차되는 묘한 표정이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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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는 서로가 상대의 목숨을 담보해야하는 암벽등반에서 사람을 완전하게 신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우정을 경험하는 일이 즐겁다고 했습니다. 온전하게 자신의 목숨을 상대에게 맡길 수 있는 산악인들의 신뢰의 마음으로 산 아래에서의 사람들을 대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긍정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아내의 등반욕구를 자극했던 김남일 대장님이 아내의 암벽등반 실전을 지도했습니다.
 아내의 등반욕구를 자극했던 김남일 대장님이 아내의 암벽등반 실전을 지도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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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보다 더 두려운 것은 도전 없는 삶이다

올 봄, 모티프원의 2층 난간에서 알고 깨고 나온 멧비둘기 새끼가 이소를 앞두고 첫 비행을 위해 난간에서 며칠을 망설이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멧비둘기 새끼는 여전히 자신의 날개를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추락이 두려웠으므로 나간을 뛰어내리는 일은 좀처럼 어려워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창공을 비행하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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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저는 지난날 짧은 기간의 암벽등반을 통해 가는 자일에 의지해 아득한 바위산을 오르는 것의 두려움에 대해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처는 암벽을 오르는 일이, 그리고 죽을힘으로 오늘 그 암벽의 정상에서 다시 아득한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일도 온 몸의 세포하나하나가 떨리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변화와 도전 없이는 창공을 나는 멧비둘기를 자유를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내와 저는 40대 초반에 잠시, 암벽등반을 즐겼습니다.
 아내와 저는 40대 초반에 잠시, 암벽등반을 즐겼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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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내가 마침내 상아빛으로 빛나는 얼굴로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는 도봉산의 선인봉을 등반하고 졸업하는 날을 흥분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위꾼들은 인수봉을 어머니바위, 선인봉을 아버지 바위라고 부른다했습니다. 그 바위에 안기고 보면 인수봉은 너그럽고 풍요로운 품이며 선인봉은 날카롭고 당당한 기개를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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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선인봉이 4주 뒤에 있을 아내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아버지 바위는 마침내 50대 중반의 아내에게 알피니스트의 자유를 선물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파이어 블루의 하늘과 은빛 정수리 그 꼭지점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반환점이었습니다'는 선배님들의 말을 관념이 아니라 온 몸으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4주 뒤에는 이 예비 알피니스트들의 뒤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저 상아빛 바위를 등반해야합니다. 수직암벽에서 가는 로프에 의지하고 내려다보는 바닥은 너무 아득해서 마치 나락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4주 뒤에는 이 예비 알피니스트들의 뒤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저 상아빛 바위를 등반해야합니다. 수직암벽에서 가는 로프에 의지하고 내려다보는 바닥은 너무 아득해서 마치 나락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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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한국등산학교, #암벽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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