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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바위 위 연주대와 그 아래 관악사지(과천시 시도기념물 제190호) 2011년 2월 26일.
 촛불바위 위 연주대와 그 아래 관악사지(과천시 시도기념물 제190호) 2011년 2월 26일.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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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2월 26일) 관악산에 갔다. 관악산의 수많은 코스 중 우리가 선택한 길은 사당역에서 출발하여 마당바위, 하마바위, 관악문, 지도바위, 촛불바위 등을 지나 연주대까지 가는 '사당암릉구간'이다.

사당암릉구간에 처음 가게 된 것은 2009년 6월 6일. 지난해 4월 4일에도 갔었다. 2009년에는 능선을 통해 연주대까지 가려면 반드시 올라가야만 하는 가파른 바위를 지나 연주대→연주암까지 가서 향교(과천) 쪽으로 내려왔고, 지난해 4월에는 바위를 앞두고 왼쪽 관악사지길로 갔다. 관악사지(과천시 시도기념물 제190호)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4일에 관악사지를 찾았을 때, 관악사지는 한마디로 형편없었다. 곳곳에 자리를 펴고 음식을 먹으며 떠드는 등산객들로 떠들썩한데다가, 법당지에서는 한 산행단체가 온 산을 뒤흔들듯 함성을 지르며 신입생 환영파티를 하고 있어서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관악사지의 유적지로서의 가치를 떠나 정말이지 부끄럽고 어이없는 현실이었다.

유적지에서 이렇게 해도 되나?

2010년 4월 4일 관악사지.
 2010년 4월 4일 관악사지.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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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등산객들은 '남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다리를 묶고 결승점까지 뛰어가 몸을 부딪혀 풍선을 터트리는' 시끌벅적한 게임을 보면서 "노는 것도 가지가지군. 산에 와서까지 저렇게들 놀아야 친목이 도모되나?"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뭘 새삼스럽게 그래. 어디 어제오늘 일이고 한두 번 있는 일이야? 다들 뭣들 하는지"라며 관리부실을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문화재청과 과천시청에서는 이처럼 엉망인 관악사지의 현실을 정말 모르고 있을까? 아님, 알고 그냥 내버려 두는 건가?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문화유적지이자 불교유적지인데 불교계에서는 왜 그냥 두고 있는 걸까?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면 꽤나 유서 깊은 곳인데….'

솔직히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산행문화를 제대로 이끌어야 하는 산행단체의 바람직하지 못한 신입회원 환영 행사도 한심하고, 쉴 곳 많은데 하필 법당지 주춧돌에 앉아 쉬고 있는 등산객들의 소양도, 유적지 곳곳에 둘레지어 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는 등산객들도 어이없었다.

게다가 관리 흔적이란 문화재 지정지임을 알리는 안내문을 비롯하여 여기는 법당지였노라, 이곳은 우물이었노라' 정도를 알리는 낡은 안내판 몇 개와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사랑합시다'란 단행본 크기의 낡은 팻말 3개뿐인, 등산객들의 의자가 되고 있는 법당지의 주춧돌과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석물 부재들의 현실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리하여 문화재청(042-481-4650)과 과천시청(02-502-5001~5006) 연주암(02-502-3234)에 전화, 이런 사실을 알리고 항의했다. 그리고 마땅한 조치를 물었다. '문화재지정 관악사지에서 운동회를?'는 이렇게 쓴 기사였다.

결과가 궁금했지만, 이후 관악산에 가지 못했다. 엊그제 토요일 사패산에 가자는 언니를 꼬드겨 가기 전까지는. 지난해 여름 주말마다 비가 오고, 가을은 가을대로 여러 사정들이 겹치는지라 쉽게 계획할 수 없었다. 아마도 집과 가까웠다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가볼 수 있었으련만, 산행을 위해 이동 시간만 1시간 30분. 후다닥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관악산에 갔다 왔다는 사람만 있으면 붙잡고 관악사지의 근황을 묻곤 했다. 내심 내가 쓴 기사 덕분에 관악사지가 더 이상 방치되지 않고 유적지 관리에 마땅한 어떤 변화나 조치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관심 없이 지나쳐 왔다"는 사람, "옛날과 똑같던데?"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기대와 희망은 와르르 무너지고...

지난 토요일 관악사지를 향해 가는 동안 희망을 잠시 가졌었다. 힘든 구간에 계단도 놓고 전망데크와 쉼터도 여러 군데 설치했는가 하면, 예전에는 전혀 없었던 잡상인 금지 팻말도 세우고 이정표를 다시 세우는 등 기사를 쓴 지난해 봄보다 관악산의 등산 환경이 많이 달라졌는지라 아마도 대대적인 정비와 함께 체계적인 관리를 시작했나 보다 싶었기 때문에.

그러나 이런 기대와 희망은 관악사지에 들어서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지난해 봄처럼 사람이 많지도 않고 떠들썩하진 않았지만, 예전에 있던 낡은 팻말과 안내문 몇 개뿐, "특히 4월과 5월에는 등산객들이 많으니 경기도청 문화재 관련부서와 연주암과 상의, 관련 안내문 설치를 고민해보겠다"는 흔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사실을 말한 것도 아닌데, 관악사지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명문이 새겨진 바위 앞에는 버젓이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까지 있지 않은가. 따뜻해지고 지금보다 등산객들이 더 많아지면, 등산객들이 특히 많은 4월과 5월에 지난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1년 가까이 지났는데, 마땅한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단지 그냥 그 순간을 모면하려는 변명에 불과했나? 과천시청과 소유자인 연주암에 전화하여 지난해(2010년 4월 6일)에 기사를 쓰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한 후 1년 가까이 지나고 있음에도 어떤 조치도 전혀 하고 있지 않음에 대해 물어 봤다.

지난해 4월 4일의 관악사지 모습이다. 오른쪽 사람이 누워있는 그 위 법당지에서 운동회를 방불케하는 게임이 있었다.
 지난해 4월 4일의 관악사지 모습이다. 오른쪽 사람이 누워있는 그 위 법당지에서 운동회를 방불케하는 게임이 있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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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 단체가 시끌벅적한 운동회를 벌였던 법당지에서 내려다 본 관악사지 또 다른 구역. 암각명문이 있는 바위 앞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막걸리병 등이 보인다. 2011년 2월 26일.
 지난해 한 단체가 시끌벅적한 운동회를 벌였던 법당지에서 내려다 본 관악사지 또 다른 구역. 암각명문이 있는 바위 앞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막걸리병 등이 보인다. 2011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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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 뒤편에 있는 커다란 바위 암각 부분과 바위 앞에 세워진 설명문이다. 2010년 4월 4일에 찍은 사진이다.
 위 사진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 뒤편에 있는 커다란 바위 암각 부분과 바위 앞에 세워진 설명문이다. 2010년 4월 4일에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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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대대적인 정비계획 잡혀 있다"

- 지난해 기사를 쓸 당시 마땅한 조치를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1년 가까이 지났지만 현재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최소한의 조치도 하지 않은 것 같다.
과천시청 문화체육부 : "지난해 4월 지적, 항의하신 이후 담당자가 정비관련 계획안을 올렸고 내부에서 논의했다. 결과 올 봄 대대적인 관악사지 정비 계획이 잡혀 있고 경기도에 심의안을 보낼 예정이다. 자연석 계단 설치 및 배수로 정비 등과 함께 문화재 보호 차원의 계도 안내문을 세우는 등의 문화재적인 측면의 정비도 함께 할 계획이다. 정확하게 올 4월에 착공할 예정이다. 정말 관악사지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자주 나가봐야 하지만 여건상 자주 나가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죄송하다. 통화하신 전임자가 개인 사정으로 휴직하면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점도 있다. 지속적인 관심과 지적, 감사드린다."

- 지난해 통화 중 "원래는 경기도청 문화재과에서 쉴 수도 있고 밥도 먹을 수 있는 정자 등과 같은 편의시설들을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지금처럼 개방하게 된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번 정비에 정자등과 같은 등산객 편의 설치가 포함되어 있는가?
과천시청 문화체육부 : "이번 관악사지 정비 계획에 정자와 같은 등산객 편의시설 설치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홍수 위험 등이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그에 관한 정비와 문화재 보호 차원에 중점 두고 있다."

- 과천시청에선 4월중에 관악사지 보수를 할 예정이라는데 연주암에도 통보된 것인가?
연주암: "이번 겨울에 너무 추웠기 때문에 정비가 늦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확실하게 4월에 정비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부서가 어떤 측면에서 정비를 하는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관악사지 관련하여 오래전부터 우리가(연주암) 여러 가지 요구를 해왔다. 그 요구들 대부분이 이번 정비 계획에 반영되었다. 관심을 가지고 지적과 항의를 해준, 좋은 기사를 써 준 <오마이뉴스>에 감사하다는 마음 전하고 싶다."

과천시청의 담당자는 4월에 정비계획이 있다고 대답했지만, 혹 변명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고, 어차피 연주암의 대답도 필요한지라 연주암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니 이렇게 대답했다. 4월의 대대적인 정비계획은 확실해 보인다. 어떤 모습으로 정비가 될지 기다려진다. 나의 관심이 문화유적지 보호에 도움이 되었다는 보람 또한 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이후 1년 가까이 그 흔한 현수막 하나 설치하지 않고 방치되었다는 것은 못내 아쉽다. 정비는 정비고, 비용도 그다지 많이 들지 않고 설치도 비교적 쉬운 계도 안내문이나 현수막이라도 우선 설치했다면 적어도 관악산 등산로에서는 사라진 상인이 유적지인 관악사지에서 장사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닌가, 등산객들의 관악사지에 대한 인식이 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관악구청 관리 관악산 산행구간에는 이처럼 계단과 전망테크 등을 설치했다. 힘들게 올라갔던 봉우리 중 하나다. 하지만 여전히 관악산에는 쓰레기가 많다. 귤껍질을 매달고 있는 나뭇가지들도 자주 보였다. 2011년 2월 26일.
 관악구청 관리 관악산 산행구간에는 이처럼 계단과 전망테크 등을 설치했다. 힘들게 올라갔던 봉우리 중 하나다. 하지만 여전히 관악산에는 쓰레기가 많다. 귤껍질을 매달고 있는 나뭇가지들도 자주 보였다. 2011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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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이후 전혀 달라진 흔적도 어떤 조치의 흔적도 없는 2월 26일 관악사지(과천시 시도기념물 제190호)
 2010년 4월 이후 전혀 달라진 흔적도 어떤 조치의 흔적도 없는 2월 26일 관악사지(과천시 시도기념물 제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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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담당자도 지금의 담당자도 관악사지의 현재 상황을 말했을 때 공교롭게도 같은 말을 했다. "수시로 올라가 보고 있다. 여건상 관리하기 힘든 면이 있다"고. 정말 그럴까? 그런데 왜 관악사지 혹은 관악사지 주변에서 관리자들을 보았다는 사람이 전혀 없는 걸까. 다만 암행만을 하고 만 걸까? 누구 말마따나 눈살 찌푸리는 일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닐 만큼 빈번한 현실, 당연히 지적을 했을 터, 그런데 그런 상황을 봤다는 사람은 왜 없을까?

과천쪽 관악산 초입에서 연주암까지는 대략 2.4km. 어린아이들도 오를 수 있을 만큼 완만하고 잘 정리되었다지만,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한편 이해도 된다. 솔직히 관악사지 문제는 등산객들의 소양 부족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여건이 힘들다고 나 몰라라 방치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관리를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등산객들이 많이 몰리는 주말이나 공휴일,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각인 오후11시~2시까지 만이라도 단 한사람이라도 나와 관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도 저도 힘들다면 시민 산행단체와 연계하여 적절한 관리체계를 모색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어떤 방법이 있을 텐데 변명만 하는 것 같아 여전히 아쉽다.

한 가지 더 아쉬운 것은 민원인에 대한 서비스 문제다. 지난해 취재 이후 관악산에 쉽게 가지 못하게 되자 결과가 무척 궁금해 과천시청에 전화했지만 통화중이었다. 두번째 통화를 시도하며 속으로 '기사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나에게는 혹시 알려줄지도 모르지만 또 다른 누군가가 민원을 하고 그 결과를 묻는다면 과연 쉽게 알려 줄까?'의 의문도 있었다.

지난해 취재 당시 추가 답변을 요구하며 연락처를 남겼었다. 그렇다면 민원인인 내게 이렇게 일이 진행되고 있다와 같은 결과를, 단 1회만이라도 해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민원도 한다. 당연히 자신의 민원 그 결과가 궁금할 것이다. 규칙으로 정해지지 않아 그럴 수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면 이제라도 그에 대해 고려하여 가급 통보해줬으면 좋겠다. 민원 하나하나가 정말 고맙고 소중하다면 말이다.


태그:#관악사지(과천시 시도기념물 제190호), #문화유적지, #관악산, #연주암(연주대), #산행(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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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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