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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문화원'이 주최하고 '중동 당산제보존회'가 주관하며 군산시가 후원하는 '중동 당산제(仲洞堂山祭)'가 신묘년(辛卯年) 정월 대보름을 하루 앞둔 16일(수) 오전 11시부터 군산시 중동 경로당 2층 옥상에 마련된 당집에서 열렸다.

 

 

이날 당산제는 공식행사 시작에 앞서 성산 '고살메농악단'이 마을의 액을 몰아내고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풍물 한마당을 펼쳤다. 전통 국악기들이 신명 나게 어우러지자 몇몇 주민은 풍물패 속으로 뛰어들어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예전에는 설 다음날부터 목총을 어깨에 멘 말뚝이와 날라리를 앞세운 풍물패가 집집이 다니며 안녕과 복을 빌고 악귀를 쫓아주었다. 그렇게 풍물패가 보름 가까이 동네를 돌면서 거둔 쌀과 돈은 모았다가 당산제 지내는 비용으로 사용했다.

 

  

인근 서래산에 있었던 당집은 기와로 되어 있었고 옆에는 당지기 집이 있어 그곳에 사람이 살며 당을 지켰다고 한다. 현재 당에 모신 신령님들 화상은 이곳으로 옮겨왔을 때 새로 그려서 모셨고, 옛날 서래산 당집에 모셨던 화상은 보존되고 있지 않다.

 

김양규(87) 향토문화연구회장은 당제 유래 보고에서 일제의 한국문화 말살정책으로 일본인들의 전관거류지나 다름없었던 군산은 민족 고유의 전통 토속신앙은 물론 세시풍속이 사라진 도시가 되어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회장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전쟁, 정치적 변동, 미신타파 등 온갖 시련과 변화 속에서도 변두리 지역인 중동 당산제만큼은 주민의 보호 속에 명맥을 유지하면서 지켜왔으니 참으로 놀랍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중동 당산은 재래식 시장이었던 '서래장'을 지켜 준다고 믿는 '서래산(돌산)' 동쪽 중턱에 당집이 있었으나 계속되는 개발로 공설운동장 근처로 옮겼다가 돌산 채석작업으로 철거해야 하는 처지에서 노인들이 나서서 '당우(堂宇)'를 중동 노인 회관으로 옮겨 당집을 만들어 신체를 모시고 당산제를 계속 지켜오고 있다"며 보고를 마쳤다.

 

어렸을 때 당집이 있던 서래산 아래 물문다리 옆에 살았던 덕에 당제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는 군산문화원 이복웅 원장은 풍어를 기원했던 '중동 당산제'는 2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군산의 유일한 동제(洞祭)라고 소개했다. 

 

이 원장은 정월 대보름 전날이 되면 중동에 사는 아주머니들이 며칠 전부터 준비한 떡과 생선 등을 머리에 이고 산에 올라오는 모습이 장관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당산에서 제사가 끝나면 강가로 내려와 풍어제를 용왕제 비슷하게 지냈다고. 이 원장은 그렇게 엄청났던 당산제가 갈수록 퇴색되고 있다며 가슴아파했다. 

 

행사에 참석한 최동진 군산시 의회 운영위원장은 전국에서 당산제로 유명한 지역을 방문하여 군산에서도 제대로 된 당산제를 지낼 수 있도록 장소와 공간을 확보해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안녕과 풍어 기원하는 '용왕제' 

 

 

만조(滿潮)가 되는 오후 1시 30분부터는 돼지머리와 제사음식을 금강의 지류 경포천(깨꼬랑) 변에 차려놓고 어민의 무사와 풍어를 비는 용왕제(龍王祭)를 지냈다. 경로당 회원으로 이루어진 노인 풍물패는 풍물굿 한마당으로 용왕제 시작을 알렸다. 

 

노인 풍물패는 경로당에서 경포천으로 이동하면서 다채로운 춤과 풍류굿, 삼채굿 등으로 구경꾼들의 흥을 돋우었으며 강변과 간이 건물로 지어진 동부어촌계 사무실을 돌면서 무사를 빌고 잡귀를 쫓아냈다.  

 

 

상이 다 차려지니까 고깃배를 가지고 있는 선주들은 물론 지켜보던 주민과 풍물패 단원들도 제사상 앞으로 나오더니 돼지 입에 1만 원짜리를 몇 장 물리고 재배하면서 한해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했다.

 

어려서부터 중동에서 살았다는 강준태(75) 할아버지에게 옛날에는 용왕제를 어떻게 지냈는지 아시느냐고 묻자 혀를 내두르며 "옛날 용왕제는 참말로 굉장혔어!"라고 짧게 표현했다. 용왕제 비용도 부자들은 많이 냈고, 없는 사람은 부정을 타지 않도록 목욕재계하고 심부름이나 음식을 만드는 일로 대신했다는 것.

 

10대 후반부터 배를 타기 시작했다는 김창선(60)씨가 음식이 차려진 제사상 앞으로 다가오더니 1만 원짜리 열 장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돼지 입에 물리고는 큰절을 넙죽 했다. 절하는 모습이 건장한 체격만큼이나 푸짐했다.

 

'오복호'(2.5톤) 선주로 주로 실뱀장어(히라시)를 잡는다는 김씨는 해마다 용왕제에 참여한다며 올해는 히라시를 좀 많이 잡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말했다. 작년에는 4개월 동안에 2-3천만 원 정도 올렸는데 선원들하고 나눠 가지니까 별것 없더라고.

 

용왕제에 참석해서 액을 몰아내고 주민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했다는 군산시의회 박정희(여) 의원은 "민족 고유의 얼과 올바른 정신문화가 깃든 세시풍속은 더욱 계승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라며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이 관심을 둘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중동당산제, #용왕제, #풍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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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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