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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수)

하루를 쉬고 일어나서 그런지 통증이 조금 완화된 느낌이다. 오늘은 마량항에서 연륙교로 연결이 되어 있는 고금도(고금면)와, 다시 고금도와 연도교로 연결이 되어 있는 조약도(약산면)에 들어갔다 나올 예정이다. 마량항에서 쳐다보면, 고금대교가 고금도 산 중턱에 걸쳐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모습이 상당히 위압적이다. 고금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고금대교를 건넌 도로가 다시 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사가 가팔라 보이지는 않지만, 산 너머에 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가급적이면 경사가 심한 지역은 피해갈 생각이다. 몸이 정상이 아닌 이상,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는 무리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섬 절반이 산, 조약도에 들어가다

 마량항과 연결이 되어 있는 고금대교
마량항과 연결이 되어 있는 고금대교 ⓒ 성낙선

고금도는 서쪽에 산이 몰려 있는 지형이다. 마량항에서 봤을 때 섬 전체가 산처럼 보였던 이유다. 고금도에서는 77번 국도를 이용해 섬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관통한 후, 해안선을 따라 바로 조약도로 넘어간다. 대체로 낮고 평탄한 길이다. 이 지역 역시 새로 만들어진 도로 외의 도로에는 갓길이 없는 게 보통이다. 공사용 차량이나 대형 버스도 심심치 않게 지나다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조약도는 약산면으로 불린다. '산'자가 붙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전거 타기에 만만한 지형이 아니다. 섬의 절반이 산이다. 섬 안에 위치한 산으로서는 높이도 낮은 편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쪽 해안을 따라 돌면서 조금 가팔라 보이는 언덕이 나타난다.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기어를 최대한 낮춰 천천히 올라간다. 고개가 꽤 높다.

그 고개를 내려와서는 이어서 다시 산길을 오른다. 좁고 가파른 시멘트길이다. 경사가 심해 중간에 자전거에서 내려 걷는다. 사실 걸어 오르는 것도 쉽지 않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쯤 산 위 도로 정상에 도달한다. 산 위로 '약산일주로'라고 적힌 아스팔트길이 놓여 있다. 산 위를 가로지르는 도로다.

 조약도 당목당숲 공원
조약도 당목당숲 공원 ⓒ 성낙선

 약산도, 약산일주로에 올라 내려다본 풍경
약산도, 약산일주로에 올라 내려다본 풍경 ⓒ 성낙선

그 도로를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 언덕 아래로 가사동백숲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앞에 두고 먼저 한숨이 나온다. 그 해변에 갔다 오려면, 산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깟 언덕 하나 오르내리는 게 뭐가 힘들다고 이렇게 주저하고 있는 건지, 며칠 새 마음이 약해져도 너무 많이 약해졌다.

산과 산 사이 오목한 곳에 마을이 있고 그 마을을 지나 산 아래로 내려가면 가사동백숲해변이 나온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 키 큰 나무들 아래 윤기가 나는 짙은 녹색 잎을 가진 동백나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숲이 꽤 울창해서 그 사이로는 해변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그 숲이 해변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가사동백숲해변은 매우 작은 해수욕장이다. 산 아래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은빛 모래가 좍 깔려 있다. 해변은 작지만, 해변으로 밀려 올라오는 파도 소리는 그 어느 해수욕장보다 크게 들려온다. 파도소리가 동백숲을 넘지 못하고 그 안에서 공명이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렇게 맑고 시원한 파도소리도 꽤 오래간만이다.

 가사동백숲해변 가는 길. 산 위 도로에서 마주친 개 한 마리. 서로 상대를 탐색 중.
가사동백숲해변 가는 길. 산 위 도로에서 마주친 개 한 마리. 서로 상대를 탐색 중. ⓒ 성낙선

 파도소리 시원한 가사동백숲해변
파도소리 시원한 가사동백숲해변 ⓒ 성낙선

내 몰골을 보고 감까지 깎아준 식당 아주머니

다시 산비탈을 걸어 올라서 가사동백숲해변을 빠져나온다. 이후로는 대체로 평탄한 길이다. 약산면 소재지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횟집이라 식사하기가 어려운 줄 알지만, 이 지역을 벗어나면 점심을 굶게 될지도 모른다. 염치불구하고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곳에서도 처음에는 밥이 없다고 난색을 보인다. 하지만 내 몰골을 유심히 본 식당 아주머니가 '그래도 자전거까지 타고 온 사람을 그냥 되돌려 보낼 수 없다'며 다 떨어지고 없는 밥을 어디서 구해 와서 한 상 그득히 차려준다.

'혼자서 이러고 다니는 거냐'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던 아주머니, 나중엔 식탁에 마주앉아 감까지 깎아준다. 조약도에 와서 정말 제대로 '손님' 대접을 받는다. 그 정성이 내 몸에 '약'이 됐으면 좋겠다.

고금도에서는 다른 건 다 그만두더라도 이충무공 유적지 하나만은 꼭 보고 가야 한다. 충무사다. 이곳은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의 수군 본영이 진을 치고 있던 곳이기도 하고,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숨을 거둔 뒤 그의 유해를 모셨던 곳이기도 한다.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낮은 언덕에 이순신 장군이 잠들었던 묘지가 평평한 잔디밭으로 남아 있다. 봉분은 사라졌지만, '역사'는 남아 있다. 이순신 장군의 유해는 전쟁이 끝난 뒤 아산으로 옮겨진다. 장군이 숨을 거둔 지 6개월 뒤다.

충무사 주변을 새롭게 단장하는 공사가 한창 분주하게 벌어지고 있다. 충무사로 들어서는 길 주변의 담장을 모두 돌담으로 교체하고 있다. 마을회관은 충무사와 어울리게 품위가 있어 보이는 한옥으로 짓고 있다. 모두 충무사와 잘 어울리는 풍경들이다. 앞으로 충무사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거듭날 모양이다.

 충무사
충무사 ⓒ 성낙선

 6개월간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모셨던 곳.
6개월간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모셨던 곳. ⓒ 성낙선

여행이 무척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 고금도와 약산도를 돌아 나오는데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고금도를 빠져나와서는 해안으로 이어진 길을 놓쳐 바로 대덕읍으로 이동한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를 찾으려니 매일 저녁 버릇처럼 마음이 급해진다. 그 바람에 판단력까지 흐려지고 있다.

어렵게 찾아간 대덕읍에 숙소가 없다. 그 흔한 여관 하나 없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할 수 없이 파출소까지 찾아가 어디에 잠잘 만한 곳이 있는지를 묻는다. 경찰관 말이 이 지역엔 그런 게 없고, 잠을 자려면 아무래도 회진면까지 나가야 한단다.

회진면은 이곳에 오기 전 해안선을 그대로 따라갔으면 곧장 갈 수 있었던 지역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다. 대덕읍에서 다시 회진면까지 어두운 밤길을 달린다. 오늘 달린 거리는 91km, 총 누적거리는 2464km다.

 고금도 지석묘군. 도서지역 지석묘 최대 밀집지. 도로를 내느라 크게 훼손한 흔적이 남아 있다.
고금도 지석묘군. 도서지역 지석묘 최대 밀집지. 도로를 내느라 크게 훼손한 흔적이 남아 있다. ⓒ 성낙선


#고금도#조약도#가사동백숲해변#충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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