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모두 성공이에요. 짝 짝 짝~~~"
뒤늦게 도착한 우리 일행들에게 먼저 도착한 일행들의 환영 박수가 크게 들려온다. 늦게 도착한 우리 일행도 함께 박수로 보답했다. <오마이뉴스> 창간 10주년 기념행사 두 번째 날인 10월 23일에는 한라산 산행이 있었다. 어리목에서 출발해 윗세오름을 올라 다시 영실에 도착하는 프로그램이다.
오전 9시 40분쯤 어리목에 도착해 윗세오름을 향해 출발했다. 영실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2시 예정. 윗세오름은 해발 1700m.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평소 걷기는 심심치 않게 하고 있었지만, 높은 산은 2~3년 사이에 오른 일이 없기에….
출발은 순조로웠다. 아니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기까지 했지만, 어느샌가 뒤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어리목에서 윗세오름까지 오르려면, 사재비동산까지 계속 계단을 타고 올라야 한다. 핑계 아닌 핑계이지만 평지 같으면 2~3시간 걷는 것쯤은 문제없이 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그 정도 거리는 어렵지 않게 걸었기에….
하지만 계단은 나에게는 무서운 존재. 작년, 제주도 올레길을 걷다가 계단이 계속되는 곳을 만나 고생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도 그때 그 계단과 이번에 만난 계단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두려웠다.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는 일. 속으로 '산행을 괜히 시작했나? 이러다 여러 사람에게 민폐라도 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릿속에서 뱅뱅거렸다. 김영주 시민기자와 내가 지치고 한참이나 뒤처지자 이민선 시민기자가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당겨주고. 김영주 시민기자와 나를 번갈아 가면서 도와주었다 .
그래도 별 진전이 없자 이번에는 어깨에 멘 배낭까지 달라고 한다. 하지만 모두 힘든 산행인데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다. 난 그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처진 우리 둘만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선두로 도착할 수 있는데…. 난 그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먼저 가지 않았다.
어쩌다 나보다 앞서 가도 어느 정도 거리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함께 가곤 했다. "왜 계속 가시지요?" 하니, 그는 "혼가 가시면 심심하잖아요" 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곤 했다. 그렇게까지 배려해주는 그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사실 힘든 산행을 혼자 한다는 것은 겁이 난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걱정도 된다. 그날 산행에 나선 모든 <오마이뉴스> 가족들에게도 걱정을 끼치는 것도 미안한 일이기도 했으니.
어쩌다 평지가 나오면 그가 "빨리 오세요, 이제부터는 평지예요" 한다. 그러면, 나는 다시 힘을 내서 걸었다. "보세요, 내 발걸음이 가벼워졌지요" 하니, "네~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하며 힘을 주었다.
하지만 다시 계단이면 다섯 걸음 내딛기가 힘들었다. "여기서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 될까요?" 그러면, 그는 "저기 가서 쉬어요"하면서 등을 밀어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발자국도 더 내디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눈물이 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내가 사서 이 고생을 왜 하나?' 하면서 그대로 그 자리에 눕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고 있을 때마다 장애인들의 산행이 눈에 띄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들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었다. 성치 않은 몸으로 구슬땀을 흘리면서 사투를 벌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과 힘을 동시에 얻어 다시 일어서기를 여러 차례였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딛으니 눈앞에는 해발 1500m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이젠 200m만 가면 되네요!"
하지만 그 200m는 그리 쉽게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땐 오히려 그가 먼저 휭 하니 가버릴까 봐 걱정도 되었다. 구름 속인가, 안갯속인가를 헤치고 오르자 윗세오름 대피소가 보였다. 안도의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곳에서 조명신 상근기자가 우리를 맞이해준다. 반가웠다. 정말. 한참이나 앞서 간 줄 알았던 일행이 그곳에서 뒤처진 일행들을 기다려준 것에 대한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우리 뒤에도 사람 있나요?"하고 물었다. "네, 좀 있어요" 한다. 그 말을 들으니 괜스레 안심이 되었고 조금 쉬었다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는 라면냄새, 따끈한 커피향이 우리를 유혹했다. 고지에 다다르자 온도 변화가 있어서인지 추위가 찾아와 배낭에 넣었던 잠바를 꺼내 입기도 했었다. 하니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추위를 이기며 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라면과 따끈한 커피를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러나 우린 그냥 내려가야 했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니….
내려가는 길은 평지로 시작되어 걸음걸이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그제야 난 사진 찍는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은 너무 힘들어 사진 찍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느 기자인가? "고생해서 올라가면 그만큼 보상이 있을 거예요"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탄성도 절로 나왔다. 순간 그동안 힘든 일도 모두 잊어버릴 수 있었다.
목적지까지 평지로 이어졌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그저 나의 희망 사항이었다. 바윗돌과 계단이 섞인 나름대로 험한 내림 길, 그래도 올라가는 길보다는 훨씬 괜찮았다. 그때부터 조금씩 아파져 왔던 무릎에서 신호가 더욱 자주 오기 시작했다. 발에 힘이 빠지기 시작해서 넘어질 뻔한 일도 수차례. 행여, 그런 내 모습을 누구한테라도 들킬까 봐 조심조심했다.
우리 일행들이 기다리는 곳이 눈앞에 파라노마처럼 아른거린다. 우리가 보이자 그들이 반기는 소리가 들려 왔다. 5시간 만에 만나는 일행들은 마치 며칠 만에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그날 산행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완주에 성공했다.
시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늦게 도착한 사람, 일찍 도착한 사람 모두 한마음이 되어 힘들고도 즐거운 산행이 된 하루였다. 힘들었기에 그만큼 보람도 컸으리라. 뒤늦은 점심 식사는 우리에게 많은 고마움을 주기도 했다.
다음 날(24일), 내 걱정과는 달리 지난밤에 앉았다가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던 무릎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벼워졌다. 아마도 앞으로 그런 산행의 기회는 쉽게 찾아올 것 같지 않다. "정말 엄마가 거기까지 올라갔어요?" 하며 가족들도 쉽게 믿지 않은 기색이다.
그날의 산행은 오랫동안 나의 무용담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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