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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가 된 수험생, 호전성을 부추기는 사회

 

어제(8월 10일), 네이버 메인의 검색창 왼쪽의 가장 주목률이 높은 지점에 이례적으로 NAVER의 그린색 로고를 갈색으로 바꾸고 그 아래에 '수능 D-100 수험생 여러분 햄내세요!'라는 문구를 달았습니다.

 

그 주위를 장식하는 것은 펴진 책과 'D 100'이라고 쓰인 탁상용 캘린더였습니다. 아마 이날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00일 앞두고 있는 날이었나 봅니다.

 

 

저는 이 일러스트를 보면서 '섬뜩한 폭력'을 느꼈습니다. 네이버에서는 시사적인 이슈를 관례에 따라 화면의 노른자위 영역에 뽑아 올렸겠지만 이 일러스트를 보는 순간 수능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저조차도 심장의 박동간격이 빨라졌는데 고등학교 3학년의 수험생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심장을 압박하는 일이었겠습니까?

 

그 일러스트의 책 위에는 네잎 클로버가 올려져있었습니다. 회사 측에서는 수험생들의 행운을 빈다는 의도였겠지만 제 눈에는 그 클로버가 영정 앞에 바쳐진 흰 국화꽃으로 비쳤습니다.

 

입시에 관한한 우리나라의 시스템과 행태는 분명 함께 '애도'해야 할 일입니다. 클로버가 바쳐진 그 앞에는 100일 뒤의 전쟁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검투사가 앉아서 무술을 연마하고 있겠지요. '영어단어 암기법', '외국어 공략법', '나만의 오답노트', 'EBS수능특강' 등의 그날을 대비한 전략과 전술을 가다듬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뿐만 아니라 오늘도 포탈의 대문을 장식하고 있는 주요검색어들은 수능과 연관된 것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수능100일 선물', '수능100일 편지', '수능100일 문자', '수능카운터', '수능디데이'. 이 검색어들은 그 선수들의 전투능력을 부추기는, 그 검투사에게 돈을 건 사람이거나 그 경기를 흥미 있게 관전할 사람들의 '채찍'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정말 입시라는 '잔인한 시스템'에 길들어져있습니다. 목표로한 것에 개인이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만을 평가하는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를 밟아야 자신이 우위에 설 수 있는 상대평가가 기다리는, 온통 적들뿐인 원형경기장으로 우리의 아들딸들을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학교에서는 시험을 잘 보는, 몇몇 검투사들만이 조련사이자 흥행사이기도 한 프로모터인 선생님과 해당 학부형들로부터 온갖 상찬(賞讚)을 독식합니다.

 

친구와 전쟁하기 싫어요

 

네이버의 검색창 아래의 뉴스부분에는 '고2아들, 수능 안 보고 미국에 갑니다'라는 제호의 오마이뉴스의 기사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송고한, 제 아들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아들, 영대는 어릴 때부터 동물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개와 말 등 가축화된 모든 동물에 집착하는 경향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자신의 용돈을 모아 애완견을 사고 유기되는 개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동물권리에 대한 관심이 발전해 말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학교가 파하면 파주의 한 승마장으로 달려가 마사를 돌보는 일을 거들면서 짬짬이 말 타는 것을 즐겼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누나들의 성화로 서울로 전학을 가고도 밴드부에 가입해서 공부보다 트럼펫을 부는 것에 더 열중이었습니다. 모티프원의 청소에 진력난 영대는 큰 집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회의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의 꿈은 넓은 숲이 훼손될 염려가 없는 국유 보호림자락의 귀퉁이 사유지에 10평짜리 흙집을 짓고 동물과 함께 자연 속에 사는 것으로 굳어졌습니다.

 

 

저는 우수한 검투사의 자질이 보이지 않는 이런 아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하는 것은 옳은 일로 보이지 않았고 또한 효율성과 그 결과도 의심스러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방해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아니라 제가 원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었지요. 그것은 그냥 아들을 내버려 두는 것, 즉 '방목'이었습니다. 잘 갈무리된 건초를 먹이는 것이 아니라 초지에서 스스로 풀을 뜯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최소한의 부모 된 도리로서 아직 뚜렷한 주관과 가치관이 확립되지 못한 아들에게 더 넓은 초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최소한의 부모로서의 의무를 할 요량을 했습니다. 그것이 미국공립고등학교의 교환학생으로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영대는 그 방법에 동의했고, 노스다코타의 대평원에 집이 있는 한 자원봉사가정에서 일 년을 보내는 것이 확정되었습니다.

 

28에이커의 농장이 있고 그 농장에는 12마리의 소와 여러 마리의 염소와 개와 고양이가 있는 커티(Kurtti)씨 집입니다. 호스트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세 아들, 20살의 Jason형과 17살의 Nathan 친구와 14살의 Matthew 동생이 있는 집입니다. 남자 형제가 없었던 영대는 3명의 형제를 새롭게 얻은 셈입니다.

 

 

네이버 메인의 그 기사는 8월 21일 출국을 앞두고 있는 영대의 이야기였습니다. 오마이뉴스의 그 기사를 본 많은 사람들이 낯선 땅, 낯선 사람들과 적응해야하는 영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노스다코타에서 온 원어민 교사를 알고 있는 타우가 말했습니다.

 

"그 영어선생님의 고백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여름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대평원의 호밀밭과 옥수수밭, 겨울에는 3m 높이로 눈이 오는 그곳의 착한 이웃들과 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축복이다.' 그는 자신이 노스다코타에 태어나게 해준 부모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영대도 분명 그곳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제도와 나쁜 제도는 공존한다

 

모티프원의 블로그 이웃인 미국서부에 살고 계신 '봄핀'선생님께서도 글을 남기셨습니다.

 

"이안수 선생님, 잘하셨습니다. 아무려면 바다를 건너 세상을 보고 다시 편견 없는 세상을 위하여 '그 땅'으로 돌아가야지요.

 

며칠 전에 저희 둘째 딸은 1일 인턴 기자로 나섰습니다. 미국이니까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은 압니다. 모든 어른들이 편견 없이 아이에게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가감 없이 의견을 줘서 아이가 불쑥 키를 세웠습니다.

 

영대 학생도 아마 미국은 무척 즐거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행운이라고 생각하게 되겠지요. 아무런 염려도 하시지 마세요. 그 결정은 아이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어른들이 부모님 못지않게 아드님을 잘 보살펴 드릴 거예요. 축하드립니다.^^"

 

예술가 남편분과 캐나다에 살고계시는 염은주 선생님께서는 초청의 글을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안수 님. 폴과 염은주입니다. 영대가 미국으로 떠나는군요. 반드시 잘하고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가을에 한국에 잠시 들어갈 생각인데 이번엔 영대를 볼 수 없겠네요. 캐나다 여행 할 기회가 있으면 저희 집에도 오라고 전해 주십시오. 폴은 지금부터 헤이리 땜에 가슴 설레합니다. 9월 말에 뵈어요."

 

문맥으로 보아 미국의 학교에 계신 분으로 추측되는 허성금 선생님께서는 오마이뉴스의 쪽지로 실제적인 조언을 주셨습니다.

 

"아이가 큰 세상을 보고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없어도 아이들은 어디를 가서나 어른보다 잘 적응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어딜 가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급한 경우, 또는 필요한 경우, 도움을 청할 수도 있으니라 봅니다. 어딜 가나 인터넷을 찾아보면, 대학교에 한국인 학생회도 있고, 또 한국인 교회들도 있습니다.

 

지난주에 어떤 분이 제 방을 기웃거리고 가기에, 뭐 하시는 분인가 했습니다. 제가 그때 제 연구조교랑 같이 있었는데, 그걸 보더니 그냥 가시더라구요. 근데 좀 있다 제 방으로 전화가 와서는... 우리나라에서 여기 한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오신 교수님이신데, 제 이름을 보고는 연락할까 말까 거의 5일 내내 망설이다 마지막 가는 날 인사라도 하려고 오셨다는군요. 그래서 점심을 같이 하고, 그리고 우리나라로 돌아가는 날이라 공항까지 모셔다 드렸지요. 그 분이 이곳 학교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만날지는 몰랐다고 하시더군요. 이런 일이 여기선 참 많습니다.

 

저랑 있는 곳이 멀어서, 제가 뭔가를 어떻게 해 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미국 학생들 중에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더 순진한 아이들도 많고, 반면에 생활면에서 우리나라 아이들이 상상하지 못할 일을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좋은 친구들을 사귀면 별 문제는 없겠지요. 아드님의 생각이 바르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늘을 보는 여유를 가진 아드님이라면, 그래도 뭔가 생각에서 나이보다 성숙할 것 같네요.

 

여기서 대학생들 그리고 대학원생들을 많이 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열심히 하고, 또 그래서 좋은 결과를 얻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아무 결과 없이 잘못된 길로 빠져 들기도 합니다. 저는 그 원인이 각 사람의 됨됨이라고 봅니다. 대부분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요.

 

이번에 인생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길 바랍니다. 아드님에게도 좋은 체험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한편으론 어딜 가나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공존하고, 또 좋은 제도와 나쁜 제도가 공존한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드님이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고, 좋은 것들은 배우고, 나쁜 것들은 구분해서 피하는 지혜를 가지기를 바라봅니다.

 

다시 한 번 아드님이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배워서 본인도 좋은 경험이 되고, 또 장차 우리나라에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길 바래봅니다."

 

세 딸을 둔 아버지께서는 메일로 방법을 문의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이안수 사장님의 영대군과 나리양에 관한 기사를 잘 보았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6학년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유학을 왔던 경험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고 나서는 이사장님 가족의 결단에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모티프원에 다녀온 사람들의 블로그 기사, 모티프원 사이트를 보고는 부러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자제 분들을 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 시키셨다고 하셨는데 미국 국무성 사이트에서 제시한 기관들을 가보니 국내에 선발을 하는 연계된 기관들을 갖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제가 이해 한 것이 맞는다면 국내에 위탁기관들을 알려주실 수 없으신지요? 그리고 자제 분들이 응모하셨던 프로그램과 국내 위탁기관에 관한 정보를 나누어 주시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저는 딸아이만 셋을 두고 있는데 이제 첫째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무엇인가 바른 사례를 찾기 위해 저도 노력하고 있는 중인데 "'일류(一流)의 삶'이 아니라 한국을 가장 잘 아는 보편적인 세계의 시민"으로 살아가길 바란다는 이사장님의 말씀에 정리가 되는 듯합니다. 불쑥 메일을 보내 청을 드리게 되어 송구합니다만 제게 몇 가지 경로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이런 다양한 조언과 충고, 격려와 문의의 애정 어린 피드백을 보면서 뒤집어 보면 소름 돋는 핏빛의 '수능 D-100 수험생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청소년들에게 친구들을 적으로 삼은 전투를 부추기는 문구는 '오늘은 친구들과 어깨동무 하는 날!', '친구에게 우정 표시하는 날' 혹은 '함께 행복한 100가지 아이디어 생각해보는 날'같은 상생의 문구로 바뀌어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kr 과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수학능력시험, #교환학생, #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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