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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아, 하늘 좀 봐!

지난 5월 말쯤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아들 영대에게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하늘 좀 보고 여유 좀 가집시다. 가족!"

저는 이 문자세시지를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 녀석, 친구들은 공부하고 있는 사이에 먼 하늘만 보고 있구나……."

하지만 0.5초쯤 뒤에 이런 생각이 다시 머리에 자리 잡았습니다.

"공부만 잘 하는 아들보다 하늘 보는 여유를 가진 아들이 분명 더 행복할 거야."

가족 모두에게 보낸 영대의 메시지, '하늘 좀 보고 여유 좀 가집시다'
 가족 모두에게 보낸 영대의 메시지, '하늘 좀 보고 여유 좀 가집시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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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의 이팝나무가 가지마다 흰 '이밥'를 흐드러지게 달고 있는 봄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오랜만에 헤이리의 하늘이 너무나 투명하여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그 하늘들을 사진에 담은 날이기도 했습니다. 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영대가 오히려 대견스러워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들만큼 생각이 미치지 못한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아들이 있는 서울의 하늘도 헤이리 하늘처럼 맑았나보다. 한데, 난 헤이리의 하늘을 내 카메라에만 담았지 아들처럼 가족들에게조차 그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를 가지도록 먼저 일깨우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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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쌀 한 가마와 함께 떠난 유학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대처로 유학(遊學)을 나왔습니다. 부모님께 매형이 저를 도시로 전학시킬 것을 강권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나 어머니의 걱정은 완고한 할아버지를 설득할 명목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일제의 강제 수탈도 겪고, 6·25동란 때 인민군의 부역에도 끌려 나가셨던 할아버지께서는 '세상에 제일 믿을 것은 땅'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계신 때였습니다. 일제가 항복하고 철수하면서도 땅은 가져갈 수 없었고, 인민군이 후퇴하면서도 땅을 떼어 가져갈 수는 없었습니다.
산아래의 작은 고향마을과 그 마을사람들이 땀으로 일구는 논들
 산아래의 작은 고향마을과 그 마을사람들이 땀으로 일구는 논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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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할아버지께서는 부지런한 아버지를 고등교육을 시키는 대신 아버지와 함께 억세게 일하고 억척으로 아껴서 땅을 사 모았습니다. '땀 흘린 만큼 되돌려주는 것이 땅이다'라는 할아버지의 믿음이 옳았는지 제가 전학을 나올 때쯤은, 산골이라 들이 넓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땅은 아니었지만 근동에서 부자소리를 들을 만큼 논이 늘어나 있었습니다.

"안수는 성격도 고분고분하고 일도 잘하니 절대 도회지로 내보내 학교 보낼 생각 말고 국민하교나 졸업하면 옆에 두고 농사일을 가르쳐라. 그럼 너도 편하고, 안수도 평생 배곯을 일은 없다. 농사짓는데 무슨 공부가 필요하나. 절기나 잘 알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된다."

큰 손자를 대학에 보낸 것이 못내 못마땅하셨던 할아버지께서는 일찍부터 저를 공부대신 제대로 된 농사꾼으로 만들도록 어버지께 언질을 주시곤 하던 터였습니다.

아버지는 저보다 10살 위인 형님을 할아버지 몰래 대학에 진학시켰고 할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그 일로 인해 이미 할아버지의 심기가 불편한 때에 할아버지께 저조차 대처로 내보낸다고 하면 벼락이 칠 것이 분명했으므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할아버지 몰래, 매형께 저를 데려가도록 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가 집에 계시지 않는 시간에 쌀 한 가마와 함께 할아버지께 작별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제가 떠나고 일주일쯤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입을 맞추어 제가 친척집에 다니러 갔다고 둘러대었고, 8일째 되는 날에 할아버지께서 마을사람에게 안수가 도회지로 전학 갔다는 말을 듣고 노발대발하셔서 한 달 동안 어머니의 밥상을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한 달 만에 이웃어른들의 설득과 만류로 부모님이 겨우 할아버지의 사랑방을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할아버지 몰래 저를 대처로 유학보냈던 아버지
 할아버지 몰래 저를 대처로 유학보냈던 아버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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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께 부모님이 지게 작대기로 맞을 뻔하면서도 저를 일찍 유학보낸 부모님의 결정이 정말 옳았던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세상에는 갖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된다는 의식은 좀 더 일찍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제가 세상을 떠도는 여행에 집착하게 된 것도 이런 연유인지 모르겠습니다.

미국공립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

구글어스의 위성으로 본 노스다코다 평원
 구글어스의 위성으로 본 노스다코다 평원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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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졌던 이유와 다르지 않는 이유로 아들 영대를 좀 더 멀리 떠나보낼 날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미국 국무성이 주관하는 미국공립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참가로 미국 중북부의 노스 다코다로 떠나기 때문입니다.

미국 국무부 소속의 교육문화부(ECA)가 주관하는 미국공립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1981년에 제정된 교육문화상호교류법을 바탕으로 하고, 이듬해에 레이건 전대통령의 '국제 청소년 교류계획에 따라 활성화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세계 각국의 만15세에서 18세에 해당하는 청소년을 6개월 혹은 1년동안 미국에 머물게 해서, 문화교류를 통해 상호 이해의 폭과 깊이를 높이자는 것입니다.

참여 교환학생은 공립고등학교의 정규학기에 등록되며 현지학생들과 동일하게 학업과 과외활동 및 지역 사회문화활동에 참여하게 되며 숙식은 현지의 자원봉사가정에서 하게 됩니다. 수학하는 미국공립고등학교의 학비가 면제되고 미국의 국무성에서 공인한 비영리단체에서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선발한 자원봉사가정에서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생활하게 됩니다.

영대의 호스트패밀리인 Kurtti씨 가족. 아버지 Arlen, 어머니 Sheryl, 삼형제 Jason, Nathan, Matthew
 영대의 호스트패밀리인 Kurtti씨 가족. 아버지 Arlen, 어머니 Sheryl, 삼형제 Jason, Nathan, Matthew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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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학교의 수업을 들어야하고 호스트패밀리 및 학교급우들과 소통해야 됨으로 어느 정도의 영어구사능력과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적응할 수 있는 독립심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ETS(TOEFL과 TOEIC의 주관사)에서 출제하고 있는 SLEP(Secondary Level English Proficiency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영어 능력 검정시험)이라는 시험에서 일정한 점수 이상을 요구하고 있고 지정된 기관의 코디네이터와의 영어인터뷰를 거쳐야 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특성이 문화교류를 통한 상호이해증진에 있으므로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주로 미국에서 외국인으로 넘쳐나는 대도시의 학교에 배치되기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지방의 학교에 배치됩니다.

학비와 숙식비를 면제받고 새로운 가정의 가족의 일원으로 교류하게 된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이 완숙되지 않은 민감한 시기에 전혀 이질적인 환경에 적응하는 것의 실패 가능성과 향수를 견뎌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시기에 한국과 학제가 다른 나라에서 한국의 대학입시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의 대학진학에 있어서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저는 유럽 여러 나라 학생들은 이미 30여 년 전부터 활용하고 있는, 미국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의 효용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첫째딸 나리가 지금 영대와 같은 시기인 8년 전, 이 프로그램에 참가해볼 것을 권했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나리는 1년 만에 주관이 더욱 뚜렷해진 주체적인 아이로 변해져왔습니다. 

영대에게도 같은 기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서 규정한 연령에 이른 영대의 의사를 물었고, 참가하고 싶다는 확고한 의사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지난 한 학기 동안 훨씬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류'가 아니라 편견없는 세계의 시민으로 살아라

영대는 지금, 많은 낯선 친구들과 새롭게 가슴을 나눌 기대감과 혼자 문화적인 충격에 맞서야한다는 불안감으로 이달 21일의 출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대만 불안한 것은 아닙니다. 저나 저의 처 또한 아들의 적응에 대해 기대와 불안을 함께 안고 있으며, 그동안 청소와 해모의 관리 등, 누구보다도 모티프원의 관리를 능숙하게 도와주던 영대가 없는 모티프원을 저 혼자 감담해야 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께서 저를 대처로 보낸 마음으로 저 또한 영대를 바다로 내보냅니다. 비록 한국의 대학수능시험에서 큰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아들이 세상에는 다른 피부색, 다른 종교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생활하고 있으며, 그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손잡고 사랑의 마음을 섞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상대를 안다는 것은 내 스스로를 더 잘 아는 계기도 됨을 믿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 지금까지도 제가 몰랐던 저의 다른 면과 장단점을 다른 사람을 통해 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다른 문화적 배경의 친구와 호스트패밀리에게 그들과 다른 한국의 문화를 내 보여야하는 입장이므로 더욱 절실한 마음으로 한국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영대가 '일류(一流)의 삶'이 아니라 한국을 가장 잘 아는 보편적인 세계의 시민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영대가 가족들에게 때때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를 가지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날, 모티프원의 2층 발코니에서 40여일간 알을 품고 육추를 했던 멧비둘기 부부가 이틀 전에 이소를 한 두 마리의 새끼에게 안간힘을 다해 비행을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모티프원의 자작나무가지위에서 아직 날기를 두려워하는 갓 이소한 멧비둘기 새끼 2마리와 새끼의 비행을 독려하는 어미
 모티프원의 자작나무가지위에서 아직 날기를 두려워하는 갓 이소한 멧비둘기 새끼 2마리와 새끼의 비행을 독려하는 어미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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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은 일정기간의 육아기간이 끝나면 매몰차게 어미 곁을 떠나도록 내몹니다. 식물들도 씨앗을 모체로 부터 가능하면 멀리보내기위한 갖은 방식으로 진화해왔습니다. 인간도 이 생명체의 원리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봅니다. 영대가 저희 부부 곁을 떠나는 것은 둥지를 떠나야하는 새끼 새의 이소와 다름 아닙니다. 자녀들을 태어나고 자란 둥지를 맴돌게 하는 것은 새롭게 생존영역을 확보해야하는 모든 생명체의 기본 원리에 어긋난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막 이소를 한 멧비둘기 새끼처럼 불안감이 목구멍가까이 까지 가득 차 있을 영대를 격려해주세요.

관련정보 바로가기
-미국 국무성 교육문화부 | http://exchanges.state.gov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미국공립고등학교교환학생, #KURTTI, #ARLEN, #SHERYL, #NA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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