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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 KBS 이사회는 현재 월 2500원인 수신료를 최소 4600원에서 최대 6500원으로 올리는 안을 상정했습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과 누리꾼은 수신료 인상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50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야당, 누리꾼단체들이 수신료 인상 강행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 29일 발족한 'KBS 수신료 인상저지 범국민행동'과 <오마이뉴스>는 KBS가 추진하는 수신료 인상의 타당성을 따져보고, 시민사회단체들과 누리꾼이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편집자말]
우리 가족은 텔레비전 없이는 '못 산다'.

특히, 93세 친정어머니는 TV가 인생의 낙이나 다름없다. 얼마 전 우리 집은 빌라로 이사 왔다. 그런데 안테나만으로는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았다. 유선방송을 신청할지 IPTV를 신청할지 선택하지 못한 채 며칠을 그냥 지냈는데, 친정어머니가 주무시지도 않고 하루 종일 식구들을 곤란하게 하는 불안 증세를 보였다. 노인에게 이사가 큰 변화라지만 좀 지나치다 싶어 마음이 심란했는데, 알고 보니 문제는 '텔레비전'이었다.

우리 집은 TV 없이는 '못 산다'

TV 없이는 못 사는 우리 가족. 하지만 KBS 수신료 인상은 절대 못 받아들이겠다.
 TV 없이는 못 사는 우리 가족. 하지만 KBS 수신료 인상은 절대 못 받아들이겠다.
ⓒ 김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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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온 지 삼일 째 되는 날, 유선방송을 연결했더니 친정어머니가 안정을 되찾는 게 아닌가. 어머니에게 텔레비전이란 반은 들리고 반은 안 들리는 것이지만, 세상과 자신을 연결해주는 통로 같은 존재였던 모양이다.

나와 두 딸은 영화와 관심 있는 프로그램을 IPTV로 본다. 한때 나는 아이들에게서 TV를 떼어놓고 싶어서 텔레비전을 없애버릴까 시도했다가 두 딸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그래서 평소에는 TV를 보지 않는 대신 주말에 각자 보고 싶은 프로그램 몇 가지씩을 골라보는 방식으로 '타협'했다.

빌라로 이사 온 후에는 IPTV를 설치해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골라서 본다. 나는 영화와 다큐멘터리, 고1 큰 아이는 <무한도전>과 <유희열의 스케치북>, 초등5학년 둘째 아이는 <우리 결혼했어요>와 <뮤직뱅크> 등을 주로 본다. 남편은 퇴근 후 스포츠 중계를 보는 게 가장 큰 '여가생활'이다. 아마 텔레비전이 없다면 우리 남편은 퇴근 후에 어디에 자리를 잡고 쉬어야 할지조차 모를 것 같다.

지금 우리 가족이 텔레비전을 통해 이런 일상의 '평안'과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 돈은 월 2만3000원 정도다. 매월 KBS 수신료 2500원, 유선방송 보급형 8800원, IPTV 1만1000원 가량을 낸다. 여기에 영화나 드라마를 따로 구입해서 보는 비용이 약 1만5000원 정도 추가 된다.

그런데,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이렇게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는 우리 가족에게 '위기'가 닥쳤다.

이미 월 3만8천원 내는데 4천원 더 내라고?

KBS가 수신료를 인상하겠단다. 나는 KBS가 제대로 된 공영방송 노릇만 해준다면 KBS 수신료를 인상해줄 뜻이 있다. KBS가 당장 우리 집의 난시청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더라도, 내가 KBS를 일주일에 한두 번만 본다 해도, 공영방송을 위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게 '민주시민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3일 민언련 한 회원이 KBS 앞에서 '이병철 탄생 100주년 기념' <열린음악회> 편성 취소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3일 민언련 한 회원이 KBS 앞에서 '이병철 탄생 100주년 기념' <열린음악회> 편성 취소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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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시사기획 쌈>이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파헤쳐 주고, <KBS스페셜>이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었을 때, 민영방송이 감히 시도하지 못할 것 같은 규모 있는 대하사극을 제작해 주었을 때, 오락프로그램에서도 지식과 정보를 얻는 새로운 시도를 보았을 때 나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KBS의 이러저러한 행태를 보고 있으면 수신료 인상은커녕 태어나서 처음으로 2500원이 아깝다는 '쪼잔한' 생각이 든다. 일단 KBS에서 볼만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없어졌다. <추적60분>처럼 폐지되지 않고 살아남은 프로그램도 맥이 빠진 느낌이 들어 보기가 싫어졌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애꿎은 방송인들이 쫓겨나는가 하면 KBS 뉴스에서는 도무지 '날카로운' 보도를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KBS가 수신료를 인상해달라고 한다. 그것도 최고 6500원까지, 그렇게 수신료를 올려주면 그 돈이 '조중동 종편'으로 들어간다고 하니 더욱 어이가 없다.

마음 같아서는 수신료를 딱 끊어버리고 싶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다. 수신료는 지금 전기요금에 합산되어 나오는데, '합법적'으로 수신료를 내지 않으려면 텔레비전 수상기를 없애고 한전에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 TV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텔레비전이 있는데도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수신료를 끊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변에 수신료를 내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 '자문'을 구했다.

TV 없애고 한전에 전화해 수신료 끊은 큰바위와 솔바람, 하지만

우리 마을에는(나는 두 아이를 성미산학교에 보내는 학부모이고, 성미산마을공동체 일원이다.) 텔레비전이 없는 집이 꽤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집만 20여 가구가 넘는다. 공동육아와 대안 교육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한 원인인 것 같다. 최근에 수신료를 끊은 사람들을 수소문했더니 두 집이 나왔다.

'큰바위'(우리 마을은 별명을 쓴다)는 초등 1학년과 4살 두 아이를 둔 아빠다. 그는 올해 2월 말, 성미산마을로 이사 오면서 '폼'나는 거실 텔레비전을 없앴다. 그는 교육적인 이유로 텔레비전을 없앤 뒤에도 한동안 '좋은 마음'으로 수신료를 냈다고 한다. 공영방송을 위한 수신료 2500원 정도는 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한전에 전화하기도 귀찮았기 때문이다.

7월 3일 보신각 앞에서 열린 'KBS 수신료 인상 반대 캠페인'.
 7월 3일 보신각 앞에서 열린 'KBS 수신료 인상 반대 캠페인'.
ⓒ 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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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KBS가 공영방송 노릇도 제대로 못하면서 수신료만 엄청나게 인상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짜증이 났다. 그는 KBS가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 수신료를 끊기로 했다면서 한마디 툭 던졌다. "대통령 방송 수신료는 대통령이 내야지."

40대 주부 '솔바람'씨도 수신료를 끊은 사람이다. 그는 KBS에 대한 세간에 평가가 너무 나빠진데다가 수신료 인상까지 추진한다는 말에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는 80년대 수신료 거부운동을 경험했고, 요즘 KBS 행태와 수신료 인상 시도를 보면서 바로 그때를 떠올렸다고 했다.

KBS의 문제가 실제로 많이 느껴지는지 묻자 "사는 게 바빠서 텔레비전 볼 시간이 별로 없고, 솔직히 KBS가 뭐가 문제인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인터넷만 봐도 KBS가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이번 기회에 '텔레비전 없는 삶'도 좋을 것 같아서 텔레비전을 없애버리고 수신료를 끊어버렸다는 것. 그는 초등학교 6학년과 7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다행히 텔레비전을 없애는 것에 대해서 큰 저항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텔레비전이 있을 때에도 꼭 필요한 것만 보게 해서 연착륙 한 셈이다.

그는 비용의 문제도 지적했다. "유선방송을 달지 않으면 공중파가 잘 나오지 않는 집들이 많다. 그래서 유선방송비와 수신료 함께 내야 한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와중에 한꺼번에 6500원으로 인상한다니 말이 되느냐"며 "KBS가 방송을 아주 잘 만들고 있어도 이렇게 올려주기는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례는 나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두 경우 모두 과감히 '텔레비전 없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수신료를 간단히 끊을 수 있었다. 텔레비전만 없애면 수신료를 끊을 때 힘들지는 않은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한전에 전화 한통이면 되더라'고 말했다. 확인 절차 같은 것도 없이 그냥 수신료를 빼주겠다고 했다는데, 아마 한전이 수신료의 직접 이해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인 듯했다. 

TV를 버리지 않으면서 민주시민 자존심 지키는 법

그런데 나처럼 쉽게 텔레비전을 버리지 못하는 조건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수소문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나처럼 아이들 때문에, 남편 때문에 또는 드라마를 즐겨보는 자기 자신 때문에 텔레비전은 없앨 수 없지만, KBS 수신료 인상을 해줄 수 없다며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결국 나는 잘 알아보고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주겠다고 장담하기까지 했다.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현재까지 나온 방법은 'TV수신카드' 정도다. 컴퓨터 모니터에 TV 수신카드를 달면 수신료를 내지 않고도 TV시청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방송법에 수신료 부과 대상이 '텔레비전을 보유한 가구'로 되어 있어서 컴퓨터 모니터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TV수신카드를 다는 게 번거롭기도 하고 비용도 들어가는 일이다. 우리 집의 경우는 적어도 두 대의 '괜찮은' 모니터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정말 수신료가 6500원으로 인상된다면 1년 수신료만 7만 8천원이니 비용에서 꼭 손해를 본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KBS 수신료 인상에 항의하는 의미로 시민들이 버린 텔레비전.
 KBS 수신료 인상에 항의하는 의미로 시민들이 버린 텔레비전.
ⓒ 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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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장 좋은 상황은 KBS가 수신료 인상을 포기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 KBS를 보면 2500원 내는 것도 아깝지만, 그래도 KBS가 인상 카드만 접는다면 나는 꾹 참고 수신료를 내면서 '다시 KBS가 좋아지기'를 기다릴 생각이다.

하지만 KBS가 기어이 수신료 인상을 포기하지 않고, 정부 여당이 수신료 인상안을 관철시킨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결국 이런 KBS에게 수신료를 올려주지 않을 것이다. 방법을 찾다 찾다 안 되면 수신료가 포함된 전기요금을 내지 않는 방식의 '불복종'을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불복종을 하다보면 약간의 과태료를 물어야할지도 모르고, 번거로운 과정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정권의 나팔수'가 된 공영방송에 수신료를 인상해주지는 생각이다. 이건 나름 '민주시민'을 자처하며 살아온 나의 자존심 문제다.  

만약 KBS 수신료가 6500원으로 인상되고, 내가 '특단의 조치'에 들어가게 되면 그 노하우를 정리해 다시 글을 올려보겠다.


태그:#KBS, #KBS 수신료 인상, #공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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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의 회원으로 언론모니터를 시작하여 민언련 모니터부장, 협동사무처장, 사무처장, 공동대표 등으로 언론개혁운동을 했습니다. 현재는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으로 인권 관련 미디어비평을 하고, 매주 일요일 8시 유튜브 <뭉클했슈>를 통해 작은 소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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