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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빠세요? 지금 어디세요?"

"시내에 나와서 친구 만나고 있는데요."

"차린 것은 없지만, 내일 점심은 '안나 엄마'(아내)랑 꼭 집으로 와서 드세요."
"네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20일) 오후. 아마추어 사진 동호회에서 함께 활동하던 지인을 10여년 만에 만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형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으로 했는데 받지 않으니까 휴대전화로 했던 모양이었다.

일요일 점심은 꼭 집(형님댁)으로 와서 먹으라는 형수의 당부 전화였다. 아내와 점심을 먹으러 오라니, 형님 내외분 생일이 한참 지났는데 궁금했다. 그러나 무슨 날이냐고 묻기가 그랬다. 만약 중요한 날을 깜빡 잊고 있었다면 큰 실수이기 때문이었다. 

  제수씨 덕에 오랜만에 집에서 맛있게 먹어본 ‘육회 비빔밥’. 돌아가신 아버지와 사연이 깊은 음식이기도 하다.
제수씨 덕에 오랜만에 집에서 맛있게 먹어본 ‘육회 비빔밥’. 돌아가신 아버지와 사연이 깊은 음식이기도 하다. ⓒ 조종안

지인과 헤어져 집으로 오면서도 '일요일(21일)이 무슨 날이지?'만 머리에 가득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를 참기를 짜듯 짜내고 짜내도 생각나지 않아 형님댁에 들러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형님과 소주나 한 잔하려고 탕수육을 가지고 갔더니 형수님 혼자 있었다. 형님은 토요일이라서 낚시 갔다고 했다. 형수와 둘이는 너무 호젓한 것 같아 셋째 누님에게 전화해서 함께 탕수육을 먹으며 놀다 왔는데, 일요일이 제수(弟嫂) 생일인 것도 알았다.

형수는 선물 대신 봉투나 하나 만들어서 주고 서울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그럴 수가 없더라고 했다. 해서 쇠고기하고 돼지고기 몇 근 사서 막내가 좋아하는 제육하고 육회를 무쳐서 식구들이 점심을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불렀다고 했다.

형수 얘기를 듣자니까, 멸종 위기에 있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판다곰이 떠올랐다. 칠순을 바라보는 큰 동서가 사십 대 막내 동서 생일을 잊지 않고 기억해두었다가 생일상을 차려준다니, 그 마음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형수 얘기를 듣고 밤 근무 중인 아내에게 전화했더니 21일 아침에 오겠다고 했다. 순간, 막내 동서 생일상을 차려주는 형수, 몸이 불편한데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겠다는 아내, 몸과 마음으로 손위 동서들을 모시는 제수씨, 세 동서의 우애가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전율을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제수씨 생일날

불편한 몸으로 연속 사흘 밤을 새워가며 환자를 보살피던 아내가 이튿날(21일) 왔기에 함께 형님댁으로 갔다. 낚시에서 돌아온 형님은 햇볕이 쬐는 마당에서 낚시도구를 손질하고, 형수는 주방에서 셋째 누님과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얼마 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조카가 셋째 누님과 포옹을 하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얼마 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조카가 셋째 누님과 포옹을 하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조종안

잡채를 만드는 셋째 누님과 전날 밤 못다 한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동생 가족이 도착했다. 국적이 중국인 제수씨는 들어서기 무섭게 일을 거들기 시작했고. 딸은 반가워하는 셋째 누님에게 다가가 포옹을 했다.

친 조카도 만나면 인사만 하고 자기 할 일을 하는 게 예사인데 혈연으로 맺어진 고모·조카 사이도 만나면서 달려가 반가워하며 포옹하는 모습을 보니까 '언제 저렇게 깊은 정이 들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이 넉넉해지면서 보기가 좋았다.

한동안 소란을 피우며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조카 부부가 도착했다. 평소에는 꼭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 두 사람만 들어오니까 이구동성으로 "왜 둘만 왔어?"라고 물었는데, '부모를 따라다니려고 투정부릴 때까지가 자식'이라는 말이 떠올라 쓴웃음이 지어졌다. 

곧바로 생일상이 차려졌다. 미역국, 육회, 돼지고기 수육, 잡채, 각종 나물 등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각기 제 맛을 자랑하는 음식들이 먹음직스럽게 올라 있었다. 상을 보니까 '아차!'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집에서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케이크를 깜빡했기 때문이었다.

제수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계란을 두 개 삶아 먹었다고 했다. 우리는 미역국을 먹는데, 이상해서 물어봤더니 중국은 생일날 새벽에 계란을 삶아 먹는 풍습이 내려온다고 했다. 행운이 따라주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라고.

 케이크도 없이 생일 축송을 부르는 식구들. 그래도 분위기는 어느 잔치 못지않았다.
케이크도 없이 생일 축송을 부르는 식구들. 그래도 분위기는 어느 잔치 못지않았다. ⓒ 조종안

다른 사람들도 케이크를 준비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해서 손뼉을 치며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ㅇㅇ니임 생일 축하합니다"에 이어 "잘 먹고 잘 살자!"를 외치는 동안 제수씨는 옆에서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음식이 맛깔스러웠는데, "돼지고기가 잘 삶아 졌다", "육회가 잘 무쳐졌다", "김치 부침개가 맛있다"는 등 여기저기에서 칭찬의 목소리가 높았다. 아내는 "형님 몸 컨디션이 좋은 모양이네요"라고 했는데, '음식도 몸이 건강한 사람이 만들어야 제 맛이 난다!'는 속설을 주워들은 모양이었다.

칭찬이 자자하니까 형수가 겸연쩍은지 "만든 것은 없지만, 나가서 먹는 것보다 집에서 먹는 게 여러가지로 좋을 것 같아서 모이라고 했으니까 '오늘 주인공 기훈이 엄마'(제수) 덕으로 아세요"라고 말했고 모두 손뼉을 치며 점심을 즐겁게 먹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이만한 잔치에 술이 빠질 수 없었다. 형님이 제수씨에게 생일 축하주를 권하는 것을 시작으로 술잔이 한 바퀴 돌았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어 낮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술을 마시지 않는 필자도 몇 잔 걸칠 수밖에 없었다.

 셋째 누님이 제수씨에게 술잔을 건네고 있다. “행복허게 잘 살어!”라고 하면서···.
셋째 누님이 제수씨에게 술잔을 건네고 있다. “행복허게 잘 살어!”라고 하면서···. ⓒ 조종안

셋째 누님이 제수씨에게 생일 축하주를 따라주며 "어이, 오늘이 생일인디 하고 싶은 얘기 없는가?"라고 묻자, 옆에 있던 아내가 "그럼요. 왜 할 말이 없겠어요. 쌓였겠지요!"라고 말을 받았다. 그러자 셋째 누님은 "제기랄, 그렇게 생각허믄 남자는 할 말이 없간디. 안 허니까 그렇지···"라고 되받았다.

짧은 대화 속에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내는 여성 입장에서 제수씨 편을 드는 것 같았고, 셋째 누님은 같은 여성이면서도 동생 편인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형수가 덕담을 건네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어이 막내야, 할 말이 있더라도 참으면서 살아야 돼. 다른 사람은 자네를 무척 부럽고 행복하게 보거든. 그러니까 누가 물어봐도 '참 행복해요!'라고 대답하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행복해지거든···."

동서 시집살이도 시어머니·시누이 시집살이만큼이나 맵다고 하던데, 형수가 어른은 어른이었다. 


#제수#생일#형수, 셋째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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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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