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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재보존회 회장 일운 스님
 영산재보존회 회장 일운 스님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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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법석(野壇法席). '야외에 단을 세우고 불법을 펼친다'는 뜻의 불교용어이다. 야단법석의 기원은 아마도 석가모니 부처가 오래전 인도의 영취산(靈鷲山)에서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설법했을 때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 당연히 시끌벅적해지고 어수선해진다. 그러다보니 소란스러운 상황을 가리켜서 '야단법석을 떤다'라고 일반적으로 표현한다.

진정한 의미의 야단법석도 있다. 한국불교태고종의 총 본산인 봉원사에서 매년 주최하는 영산재(靈山齋)가 바로 그것이다. 3월 11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영산재가 열렸다. 실내에서 한 것이라 야단법석은 아니었지만, 무려 2만이 넘는 인원이 체조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영산재는 지난해 9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영산재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13일 오후에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봉원사를 찾았다. 봉원사 주지스님이자 영산재보존회 회장인 일운(62) 스님은 영산재를 이렇게 소개한다.

"영산(靈山)이라는 단어는 인도의 영취산(靈鷲山)을 줄인 말이에요. 재(齋)라는 것은 나눔과 베풂을 의미하구요. 부처님이 살아계실 당시에 영취산에서 일반 대중들한테 6년 동안 법화경을 설법하셨어요. 그 영산회상(靈山會上) 모습을 재현한 불교의식이 영산재입니다."

체조경기장에서 보았던 영산재는 불교음악과 무용이 한데 어우러진 장엄하고 화려한 의식이었다. 부처가 법화경을 설법할 당시에, 상방(上方)세계의 묘음보살(妙音菩薩)이 천동천녀(天童天女)를 거느리고 그 모습을 본 뒤 지상에 내려와서 춤을 추며 기뻐했다고 한다. 영산재 의식의 바라춤, 나비춤 등은 바로 그때 행해진 것들이다.

"영산재는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의식으로 불교에서 가장 성대한 의식입니다. 살아있는 자에게는 행복을 주고 죽은 자에게는 고통스런 이승을 떠나서 편안히 저 세상으로 가도록 해줍니다."

영산재는 1973년에 '범패(梵唄, 불교음악을 지칭)'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다. 1987년도에는 범패에서 영산재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 뒤 봉원사 등이 영산재보존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유지해왔다.

"언제부터 영산재가 행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통 영취산에서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시던 그 때를 기점으로 봅니다. 지리산 쌍계사에 가면 진감선사 대공탑비가 있습니다. 진감선사가 830년 경에 당나라에서 범패를 배워 와 처음으로 세운 절이 지금의 쌍계사인데, 그 당시에는 구슬 옥(玉) 샘 천(川), 옥천사였어요. 그 옥천을 따서 봉원사 내 옥천범음대학을 93년도에 세웠어요. 하늘의 소리라는 뜻의 범음(梵音)은 주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영산재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누리는 의식

지리산 쌍계사에 있는 진감선사 대공탑비
 지리산 쌍계사에 있는 진감선사 대공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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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운 스님은 영산재를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해외에도 여러차례 다녀왔다. 미국의 카네기홀에도 서본 적이 있고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도 공연을 했다. 그동안 크게는 200명에서 작게는 5명까지의 공연단을 이끌어 왔다. 서양학자들은 우리의 영산재에 대해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있느냐'며 감탄했다고 한다.

"이런 식의 재는 다른 나라에도 있어요. 부탄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고. 그런데 중국은 문화혁명 당시에 많이 없어진 것 같더라구요. 재작년에 중국 화북성에서 우리를 초청했어요. 그래서 200명 정도 가서 영산재 행사를 멋지게 해주고 왔습니다. 화북성의 성장이 직접 나와서 '이런 의식을 중국에 전해줄 수 없냐' 이런 제안을 하더라구요. 오래 전에는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범패를 배워왔지만 이제는 거꾸로 우리가 중국에게 가르쳐 주는 거지요."

중국에서의 공연이 대규모였다면, 2004년에 달라이라마의 초청으로 인도 뉴델리에서 했던 공연은 소규모였다. 티베트 문화원에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니 자비로 와달라고 부탁했지만, 어렵기는 영산재 측도 마찬가지다. 결국 영산재보존회의 도움을 받아 일운 스님을 포함해서 다섯 명이 가게 되었다. 다섯 명으로 영산재 공연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바라춤, 나비춤, 목탁치며 염불하고 법고(法鼓) 치는 것등을 보여주는 수준에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봉원사에서는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매년 6월 6일에 영산재를 개최한다. 현충일에 국가를 위해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개최하는 것이다. 3월 11일에 열렸던 영산재는 약간 예외인 셈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됐으니 영산재를 산속에만 두지말고 일반 대중들에게 한번 내려가보자는 취지로 올림픽공원에서 영산재를 열게 된 것이다. 오는 6월 6일에는 봉원사에서 영산재가 개최된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8시까지.

"원래 영산재는 3일짜리 의식이에요. 3일짜리 영산재 의식을 복원하자고 하는데 경제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어가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번은 해야겠죠. 절차를 다 알고 있어서 진행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올림픽공원에서 있었던 영산재는 한 시간 동안 가장 기본적인 것만 보여준 것이에요. 바라춤도 원래는 8가지인데 한 가지만 했잖아요. 나비춤도 한 번에 그쳤고. 제대로 하면 식당작법(食堂作法, 스님들이 공양을 받고 그 보답으로 법공양을 베푸는 의식)만해도 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계에 널리 알려나가야할 영산재

3월 11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영산재가 열렸다.
 3월 11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영산재가 열렸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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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산재를 앞으로 어떻게 보존하고 세속에 알릴까. 일운 스님은 봉원사에 상설공연장을 지으려고 한다. 외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에게 영산재를 보여줌으로 해서 영산재가 불교에 국한된 행사가 아니라 한국의 문화라는 점을 부각시키겠다는 계산이다. 영산재를 구경하고 템플스테이(Temple stay, 절에 숙박하며 사찰 생활을 체험하게 하는 것)도 하면서 불교의 의식주를 다 체험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이를 위해 일운 스님은 단원을 모집해서 관광객용으로 한 시간 정도의 짧은 영산재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이다. 공연은 다양하게 변화시켜서 같은 나비춤이라도 3월에는 도량게(道場偈, 도량을 깨끗이 해 놓고 나비춤을 추는 의식), 4월에는 다게(茶偈, 자비를 드리우도록 차를 올리는 의식), 5월에는 향화게(香花偈, 모든 중생이 성불하라고 향과 꽃의 불전에 올리는 의식) 등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영산재와 관련해 이렇게 여러 계획들을 세울 수 있지만, 무형의 유산을 이어오는 동안 힘든 시기도 있었다.

"박송암 스님이 2000년에 열반하셨습니다. 장벽응 스님도 같은 해 열반하셨구요. 범패 보유자인 두 분이 돌아가시면서 영산재도 어려워졌어요. 그때 어느 신문사 편집부장이 힌트를 주었어요. 영산재를 보존하기 위해서 학술세미나를 열라는 거였죠. 그래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7차례 학술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국내학술세미나로 출발했다가 나중에는 국제학술세미나가 됐어요. 세계무형유산 심사하는 사람들이 외국 곳곳에 있죠. 우리가 세미나하는 내용이 해외각국으로 나가다보니까 유네스코에 등재가 좀더 빨리 된것 같아요. 그 신문사 편집부장이 선견지명이 있었던 거지요."

'공'의 이치가 담긴 영산재의 마지막 의식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대웅전
▲ 세계유산 영산재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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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운 스님은 14세 때 출가했다. 군복무를 하면서 월남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스님들도 군대를 가느냐고 질문을 던지자 "스님들은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동안 스님들은 군면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약간 어리둥절해진다.

어리둥절해질 일은 또 있었다. 일운 스님은 결혼을 한 대처승(帶妻僧)이다. 한국불교태고종의 종법에는 스님들의 결혼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단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면 얼마든지 결혼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봉원사 스님들 중 약 절반 가량이 결혼을 한 스님들이란다. 스님들은 결혼식을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진다.

일운 스님과 인터뷰를 하던 날은 법정 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된 날이다. 영산재의 마지막 의식을 장식하는 것도 불이다. 영산재는 행사장에 걸려있던 금은전과 옷가지 등을 불에 넣고 사르며 공식 행사를 마무리한다. 일운 스님은 이것이 공(空)의 이치를 알려준다고 말한다.

"인간의 육신은 네 가지 원소, 지(地)수(水)화(火)풍(風)으로 되어 있죠. 지는 뼈로 흙의 성분입니다. 수는 물의 성분이구요. 몸이 따뜻한 것은 불의 기운이고, 오늘 기자들이 오신 것은 바람기 때문입니다. 법정스님처럼 떠나고 나면 뼈는 재가 됩니다. 물은 수분으로, 더운 기운은 불로, 움직이는 것은 바람으로 가고. 남는 것이 없죠. 여기서 반야심경의 '부증불감(不增不減)'이 나오는 거예요. 많아지는 것도 적어지는 것도 아니죠. 이런 이치를 알고 살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겁니다."

일운 스님은 6월 6일에 꼭 봉원사에 오라고 권한다. 11시 30분까지 오면 식당작법이 거행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굳이 불자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6월 6일 영산재를 보러 가는 것이 어떨까. 성불까지 하지는 못하더라도 야단법석의 진수를 맛볼 수는 있을 것이다.


태그:#영산재, #인류무형문화유산,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일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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