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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9일 영등송별제가 열렸다. 김윤수 심방이 붉은 옷을 입고 굿을 진행하고 있다.
▲ 세계유산 영등굿 지난 3월 29일 영등송별제가 열렸다. 김윤수 심방이 붉은 옷을 입고 굿을 진행하고 있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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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와서 교회를 별로 보지 못했다. 서울에서는 발에 차이는 것이 교회고 보기 싫어도 보이는 것이 십자가인데, 제주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대신에 제주에서는 '작두대왕'이니 '처녀보살'이니 하는 무당집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건 제주에 남아있는 무속신앙의 전통과 연관 있을 것이다.

이런 무당을 가리켜서 제주에서는 '심방'이라고 부른다. 현재 제주에는 약 300명 가량의 심방이 있다고 한다. 김윤수(65) 심방도 그 중 한 명이다. 다른 심방과의 차이가 있다면 김윤수 심방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인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하 영등굿) 기능보유자라는 점이다. 영등굿은 2009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무형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 영등굿은 제주에서 1년에 두 차례 벌어진다. 음력 2월 1일에 영등환영풍어제, 음력 2월 14일에 영등 송별제가 열린다. 이중에서 더 커다란 행사는 영등 송별제다. 영등신(靈登神)이 음력 2월 1일에 제주에 들어와서 14일에 제주도 옆에 있는 섬 우도로 간다고 한다. 거기서 하룻밤을 묵고 15일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영등신을 무사히 떠나보내기 위한 송별제가 더 커다랗게 치러지는 것도 이해가 된다.

올해에는 영등 송별제가 지난 3월 29일 제주시 건입동에서 열렸다. 바로 앞에 남해바다가 보이는 칠머리당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굿판이 벌어졌다. 김윤수 심방을 포함한 많은 심방들이 함께 어우러져 노래와 춤을 하고 흥겨운 영감놀이까지 벌인 행사였다.

김윤수 심방은 영등굿보존회(이하 보존회) 회장이기도 하다. 영등 송별제가 있고 나서 이틀 후에, 건입동에 있는 보존회 사무실에서 김윤수 심방을 만났다. '무당'이라고하면 왠지 신들린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직접 만나본 김윤수 심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냥 편안한 동네 아저씨라는 인상이 더 강했다.

바람의 신 영등신을 맞이하는 영등굿

영등굿보존회 회장 김윤수 심방
▲ 세계유산 영등굿 영등굿보존회 회장 김윤수 심방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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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등굿은 풍어(豊漁)를 기원하는 굿이죠. 바다가 안녕하기를 바라고 어부와 해녀들이 해산물을 많이 잡기를 바라는 굿입니다. 예전에는 건입동에서만 작게 했었는데,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제주도의 큰 축제 중 하나가 됐죠. 음력 2월 1일에 영등신이 강남 천자국 외눈박이섬에서 바람을 타고 제주도 서쪽에 있는 귀덕리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들어온 영등신은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본다. 영등신이 들어오면 바닷가에 고동이나 소라 같은 것들이 빈 껍데기만 남는 경우가 많다. 영등신이 돌아다니면서 전부 까먹어버렸기 때문이란다.

"영등신이 들어올 때 날씨가 좋으면 딸을 데리고 들어왔다고 하고, 바람이 많이 불거나 날씨가 나쁘면 며느리를 데리고 들어왔다고 합니다. 비가 많이 오면 우장 입은 영등신이 들어왔다, 날씨가 추우면 솜옷 입은 영등신이 들어왔다, 날씨가 따뜻하면 덜 추운 옷을 입은 영등신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김윤수 심방은 영등신을 가리켜서 영등할머니라고 표현한다. 딸과 어머니는 사이가 좋으니 날씨도 좋을테고,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사이가 상대적으로 안 좋으니 덩달아서 날씨까지 나빠지는 것이다.

"작년 9월 30일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어요. 금년 9월이 되면 유네스코 등재 1주년이 됩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지 30년이 되구요. 그래서 올 9월이나 10월 초에 기념행사를 하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영등굿은 언제부터 이어져온 굿일까. 김윤수 심방은 아마 200~300년 전부터 제주도에서 행해졌을 것이라고 한다. 칠머리당에는 다른 신도 있다. 남신은 도원수감찰지방관(都元帥監察地方官)이고 여신은 요왕해신부인(龍王海神夫人)으로 이 두 신은 부부다. 그리고 남당하루방, 남당할망, 영등대왕, 해신선왕이 있다. 이렇게 총 여섯 신을 칠머리당에서 모시는 것이다.

칠머리당은 원래 지금 항만청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 큰 돌이 일곱 개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항만청 건물이 들어서면서 그 돌들도 없어졌고 칠머리당도 건입동 사라봉쪽으로 옮겨오게 됐다.

영등굿보존회에서 하는 교육과 활동

굿을 진행하는 김윤수 심방
▲ 세계유산 영등굿 굿을 진행하는 김윤수 심방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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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회의 인원은 약 40여 명으로 전부 제주도 토박이 심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주도 토박이가 아닌 사람도 보존회에 가입할 수는 있지만, 제주 방언을 모르기 때문에 제주굿을 배우지는 못한다.

보존회는 주로 육지나 해외에서 요청이 오면 가서 공연을 한다. 제주에서도 탐라문화재 같은 행사 주최측에서 초청하면 공연한다. 그리고 영등굿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을 받아서 계속 교육하고 있다. 영등굿을 제대로 하면 하루 종일 걸리니까 다른 행사장에서 영등굿을 할 때는 짧게 한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으로 줄여서.

"제주굿은 상당히 힘이 듭니다. 육지 악기하고 제주 악기하고 때리는 방식이 달라요. 굿할때 사설이나 노래도 전부 제주도 사투리로 하기 때문에 이것을 배우는 것도 어렵지요. 대학생들이야 책을 보면서 공부하지만, 심방들은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죠. 말과 행동으로 배웁니다. 육지에서 보살들이 제주굿을 배우려고 저한테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 저는 '당신들은 제주말을 못하기 때문에 제주굿을 배울 수 없다. 제주말을 배우려면 적어도 제주도에서 10~20년 가량 살아야 하기 때문에 가르쳐 주기 힘들다'고 말하면서 돌려보냅니다."

영등굿은 2004년에 문화재청에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후보로 선정했다고 한다. 김윤수 심방도 유네스코 등재에 신경을 많이 써왔기 때문에 2009년에 정식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김윤수 심방은 16살때부터 심방일을 해왔다. 거의 50년 가까운 경력을 가진 것이다.

"열세 살 때 백부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분이 아주 큰 심방이었어요. 그리고 6대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묘자리를 찾는데, 풍수가 와서 보더니 '여기에 묘자리를 쓰면 자손이 많이 나오는데 심방 자손이 나오겠다' 이런 말을 했답니다. 우리 집안이 저까지 4대째 심방일을 합니다. 백부님이 돌아가신 다음에 제가 자꾸 아팠어요. 머리도 아프고 누우면 일어나지 못하겠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백모님이 '심방일을 하면 아픈 것이 없어질 거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백모님 따라다니며 심방일을 배우니까 진짜로 아픈 것이 없어지더라고요."

보존회의 이전 회장인 안사인 심방이 1990년에 돌아가시면서 김윤수 심방이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1996년에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영등굿은 그렇게 심방에서 심방으로 전수되어 왔다. 지금도 그렇게 전수하고 있다. 현재 배우고 있는 전수생이 7명이 있다고 한다. 물론 전부 제주도 토박이들이다. 영등굿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서 적어지고 있는 추세다.

"지금도 젊은 사람들을 위주로 전수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몇 십년간은 문제없을 겁니다. 한 백 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웃음)."

앞으로 어떻게 보존하고 전수해갈까

영등굿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감놀이
▲ 세계유산 영등굿 영등굿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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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태어나서 굿을 처음으로 보았다. 호기심이 많이 있었지만 영등굿은 제주 방언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심방들의 사설을 제대로 알아듣는 것이 어려웠다. 기억남는 장면 중 하나, 요왕맞이(바다를 차지한 요왕을 맞이하여 축원하는 의식)를 했던 여성 심방이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인정 걸어!"라고 말하며 돈을 걷으러 돌아다녔다.

'인정'이라는 단어는 신에게 바치는 재화를 일컫는 제주도 방언이다. 돈을 많이 내면 낼수록 신이 그 사람의 앞길을 잘 돌보아주는 모양이다. 영등굿은 하루 종일 진행되지만 일반적인 굿도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단다. 새로 지은 집에서 굿을 하는 성주풀이도 5~6시간, 사람이 죽어서 하는 귀향풀이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 집에 환자가 생겨서 하는 굿의 경우는 2~3일이 소요되기도 한다.

예전에 비해서 이런 일반적인 굿이 많이 없어진 편이다. 그래도 육지와 비교하면 아직까지는 제주에서 굿을 많이 한다. 이건 오래 전부터 어부와 해녀들이 많았던 제주도의 특징과 연관 있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바다가 평안하기를 빌고 해산물을 많이 잡기를 바라면서 굿을 했을 것이다.

영등굿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영감놀이와 배방선(재물을 실은 짚배를 바다로 띄워 보내는 의식)이다. 영등신이 짚으로 만든 배를 타고 남해바다로 떠나가기 전에 영감들을 불러들여서 배불리 대접하는 것이 영감놀이다.

"영감이란 것은 도깨비신입니다. 도깨비신이 주로 바다에 사는데 해녀들을 해치기도 하지만, 해녀와 어부들을 편안하게 도와주기도 합니다. 영감놀이의 의미는 도깨비신들을 불러서 배부르게 먹인 다음에 영등신을 잘모시고 떠나가라는 겁니다. 그 영감놀이 다음에 제주항 방파제에서 짚배를 띄우는 배방선을 합니다."

영등신이 떠나면 본격적인 봄이 시작된다. 실제로 전날까지 바람이 많고 추웠지만 영등굿을 했던 당일은 날씨가 아주 맑고 좋았다. 제주에는 1만8천의 신이 있다고 한다. 영등굿은 그중 하나인 영등신을 모시며, 궂은 액도 씻어 버리고 새해의 소망을 기원하는 질펀한 굿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켜나가야할 세계유산이기도 하다.

음식을 실은 짚배를 타고 영등신은 남해바다로 떠난다.
▲ 세계유산 영등굿 음식을 실은 짚배를 타고 영등신은 남해바다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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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주칠머리당영등굿,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김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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