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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따르릉~'

 

벌써 몇 번이나 전화벨이 잇달아 울립니다.

 

"아이고 진짜 오늘 일 못하겠어요. 앞이 안 보여서 운전을 못한다니까요?"

"오르막에 못 올라가서 지금 오도가도 못 하고 있어요."

"오늘은 장사 접어야겠는데요? 암만해도 얘들 다 들어가라고 해야 될 거 같은데요?"

 

엊그제(5일) 전국에 눈이 온다는 소식에 혹시 우리가 사는 구미에도 눈이 내릴까? 하는 기대를 하며 몹시 설레었어요. 이곳처럼 겨울에 눈 구경하기가 힘든 곳이 또 있을까? 해마다 겨울이 되면 온 땅을 뒤덮을 만한 하얀 눈을 기다리지만, 벌써 다섯 해째 구경도 못했어요. 어쩌다가 내린 눈도 고작 먼지처럼 흩날리다가 금세 그치고 말 뿐이었지요.

 

오죽하면 지난 2006년12월18일에 '눈, 너 정말 약만 올리고 갈래?' 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어요. 그 앞선 해인 2005년에 내린 눈을 그리워하면서 쓴 기사였어요.

기사 보기 ☞ 눈! 너 정말 약만 올리고 갈래?

 

"오늘은 전국에 눈이 온다고 했으니까 여기도 오겠지?"

"에잇~! 설마 아예 기대도하지마 그게 속 편하다니까."

"그래도 모르잖아 하늘 봐서는 여기도 올 거 같은데?"

 

아침에 일터에 나오면서 남편이랑 주고받은 말이에요. 그런데 '설마'가 진짜가 되었네요. 이제 막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흩날리듯 내리는 눈이 어느새 굵은 함박눈으로 바뀌었어요. 정말 오늘은 제대로 눈을 볼 수 있을 거 같았어요. 마음이 어찌나 설레는지, 오늘 눈이 오면 차를 타고 장사하러 나간 우리 일터 식구들은 고생을 하겠지만,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눈이라서 속으로는 좋기만 했어요. 생각 같아서는 펄펄 내리는 눈을 맞으러 바깥에 나가서 강아지처럼 펄쩍펄쩍 뛰고 싶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전화벨이 벌써 여러 번 울립니다. 장사 나간 직원들이 갑자기 내린 눈 때문에 운전하기도 힘들다는 소리였어요. 아무래도 오늘은 장사를 접어야 되겠다면서 사무실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말이었어요. 사장님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을 하며 망설이고 있었던 터라, 모두 장사 접고 들어오라고 했답니다.

 

덕분에(?) 오전에 퇴근을 하였답니다. 자전거를 거의 끌다시피 해서 집에 왔다가 사진기를 들고 덮어놓고 나갑니다. 눈 보기가 그리도 힘든 이곳에서 그것도 딱 5년 만에 눈이 내린 날, 이런 소중한 날을 그냥 집에서 보낼 수는 없잖아요. 남편을 불러서 함께 임은동 앞산으로 갑니다. 남편도 나도 마음이 설레기는 마찬가지예요. 지난번에 눈이 왔을 때도 열일 제쳐두고 눈 사진 찍는다고 산을 헤매다가 왔으니까요.

 

임은동 '왕산 기념관' 가는 길에 다다르니, 아이들 웃음소리가 명랑하게 들립니다. 기념관까지 가는 길이 오르막길이다 보니 거기에서 비닐을 한 장씩 깔고는 눈썰매를 타고 있었어요. 아이들 뿐 아니라, 엄마들도 함께 나와서 신나게 눈썰매를 탑니다. 이 얼마나 반가운 풍경입니까? 구미에서 이런 풍경을 보다니요. 날씨가 추워서 볼은 빨개졌어도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납니다. 몇 번이고 내려왔다가 또 다시 올라가기를 거듭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내린 눈을 맘껏 즐기고 있습니다. 맘 같아서는 사진기 팽개치고 나도 저렇게 타보고 싶었어요.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길에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참으로 멋진 풍경입니다. 늘 사진으로만 보던 눈 쌓인 풍경을 내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뭇가지에 소복하게 쌓인 모습도 퍽 정겹습니다. 키 작은 풀들도 하얀 눈을 살포시 이고 있어요. 나뭇가지 틈 사이로 보이는 산 밑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강원도에서나 봄직한 그런 풍경은 아니었지만 아쉬운 대로 퍽이나 평화로워 보입니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은 풍경을 보는 게 얼마나 신이 나고 즐거운지 모릅니다. 두 시간이 넘도록 나지막한 산을 다니면서 맘껏 사진을 찍고 다시 마을로 내려옵니다. 어느새 꽁꽁 얼어버린 찻길과 골목길을 조심스레 걷고 있는데, 어느 집 담장 너머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엄마야~! 이게 다 눈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

 

아이들끼리 모여서 다섯 해 만에 내린 눈을 가지고 노는 가 봅니다. 목소리로 미루어 겨우 대여섯 살 남짓 되어 보이네요.

 

"그러고 보니, 저만한 얘들 같으면 실제로 눈을 보는 것도 처음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꼭 다섯 해 만에 눈이 이렇게 쌓였으니, 일곱 살짜리라 해도 지들 기억에는 이게 처음일 거 아냐. 하하하! 어쨌든 눈 때문에 차타는 사람이야 고생하겠지만, 우린 좋기만 하다. 하하하!"      

 

 

덧붙이는 글 | 뒷 이야기, 자전거 길 안내와 더욱 많은 사진은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http://www.eyepoem.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태그:#5년만에 내린 눈, #눈썰매, #왕산기념관, #구미시, #임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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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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