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석장승 내력과 근황 |
인사동 북인사마당 석장승은 1988년 올림픽을 맞아 문화재가 거의 훼손되어 문화거리 인사동에서 외국인에게 보여줄 것이 없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음으로 우리나라 대표적 석장승이라고 할 수 있는 '나주 불회사의 하원당장군(唐將軍) 할아버지장승과 상원주장군(周將軍) 할머니장승을 실제보다 더 크게 모작한 것이다.
이화여대 최준식 한국학 교수는 이에 대해서 원본 못지않은 분위기를 충분히 살렸고 석장승을 우리 곁에 가장 가깝게 두게 되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석장승 표지석에는 "장승은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하나로 마을입구에 세워 마을의 수호신 경계표, 이정표 구실을 하는 것으로 […] 서울올림픽의 성공과 인사동 관훈동 지역주민의 평안과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민속학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전남 나주 불회사 입구의 석장승을 모형으로 삼아 1988년 6월 18일 설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20년간 별 문제가 없었는데 2008년 8월 14일 이 장승을 고의적으로 훼손시키는 일이 있어났다. 할아버지 격인 당장군 석장승 얼굴과 몸에 석회로 덧칠을 하고 송곳으로 곳곳을 돌로 쪼았다. 그러나 경찰은 혐의자를 잡지 못했다. 그러더니 드디어 올 7월 1일에는 인사동 거리보수를 내세우며 아예 철거시켰다. 그날 종로구청에 전화를 했더니 복구여부는 확신할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해병병단결단식 표지석도 있는데 석장승은 없애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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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은 내 취재의 플랫폼이다.
<오마이뉴스>와 첫 인연을 맺고 올린 기사도 인사동과 장승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올 7월 우연히 보니 북인사마당 쪽 석장승을 해체시킨 게 아닌가. 박정희 시절 미신 타파라는 명분으로 말살된 성황당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수문장이 없는 인사동은 마치 불타버린 숭례문 같다.
그래서 지난 12월 23일 인사동 담당자인 종로구청 문화공보과 조세일 주임을 찾아갔다. 지금 '인사전통문화보존회' 등 단체의 반대로 석장승은 설치 못하고 경기도 광주 오포면 문형리 '마블라인'에 보관중이란다. 이번 일의 최종결재자가 누구냐고 물으니 말을 흐린다. 윗분에게 보고했을 뿐, 여론조사도 안 해보고 여론이 좋아지면 설치할 수 있단다.
이 설치를 반대하는 '인사전통문화보전회' 사무국장 김명동씨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이유는 4가지다. 첫째 샤머니즘 요소가 강하고 둘째는 장승이 중국인 풍이라 그런지 중국제품이 인사동에서 판을 치고 있고 셋째로 새 도로와 어울리지 않고 넷째로 인사동 상징물인 '붓'이 새로 세워졌기 때문이란다.
인사동 입구에 석장승만큼 어울리는 설치물이 또 있을까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도 인사동 거리의 시작을 알리는 곳에 석장승이 서 있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지 않은가. 장승은 원래 민간신앙에서 솟대, 돌무더기, 성황당, 신목, 고인돌 등과 함께 동네 어귀의 수호신이다. 주먹코에 왕방울 눈이지만 그런 표정 속에 오천년 우리의 수난사를 넉넉한 웃음으로 거뜬히 이겨낸 기개와 여유가 담겨 있다.
어느 외국인이 친구에게 인사동 석장승(돌장승)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가 갑자기 없어 당황했다는 에피소드를 관광 안내원에게서 듣고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장승이 전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으니 호기심 많은 외국인에게 단번에 보여줄 기회 아닌가.
이어령교수가 쓴 <한국문화박물지(2007)>를 보면 장승은 '갓, 거문고, 골무, 나전칠기, 돗자리, 뒤주, 떡, 매듭, 맷돌, 미륵, 박, 버선, 베갯모, 병풍, 보자기, 붓, 비녀, 서까래, 씨름, 연, 엽전, 윷, 장롱, 장독대, 처마, 초롱, 탈, 태극, 팔각정, 팔만대장경, 한글, 항아리, 호랑이' 등과 함께 한국을 상징하는 문화박물지로 손꼽힌다.
서울시는 올해 5월부터 12월까지 인사동 재정비사업을 하면서 도로정비로 19.1억 원, 남북인사 입구 등 시설 확충비로 29억 원 등 총 48.1억 원의 예산을 지출했다. 개발업자(범준ENC, 신성CNE)는 좋았겠지만 문화재복원에 투자한 건 없고 도로만 바뀐 것 같다.
개악의 법 개정도 있듯 개발이라고 다 좋을 수는 없다. 2002년 세계적 건축가 김진애씨가 인사동 재개발 설계를 했다. 그는 인사동의 한옥과 전통업종 살리기, 골목 지키기, 문화거리 가꾸기 등에 주안점을 두면서 콘셉트를 '눈보다는 몸으로 느끼는 인사동'으로 잡았고, 바닥은 인사동과 어울리는 '점토블록(벽돌)'을 썼다고 모 일간지와 인터뷰했다.
이번 2009년 인사동 재정비에서 바닥은 '마천석'이다. 길이 평평해서 하이힐 신고 다니긴 좋다지만 여긴 역사와 문화의 거리가 아닌가. 페이브먼트가 아스팔트가 된 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통업소가 감소되고 인사동의 정체성이 우려돼 이를 보완하고 전통과 첨단이 어우러진 문화관광명소로 만들겠다"고 하는데 아직 그 성과는 안 보인다.
그리고 '인사전통문화보존회'의 지적도 있고 해서 샤머니즘에 대해서 한마디 하련다. 샤머니즘은 한국문화와 예술이 뿌리이자 모체이다. 한국의 멋의 원류인 풍류나 요즘 유행하는 한류나 월드컵 때 붉은 악마도 결국 샤머니즘에서 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신바람(神氣)은 샤머니즘(巫氣)과 통한다.
박경리씨는 '샤머니즘'이라는 시에서 "우리는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샤머니즘)은 생명의 현상과 법칙을 절묘하게 살립니다. 당신 속에서 우리는 신을 생각합니다. 억조창생은 당신의 힘으로 살았습니다. 당신은 태양과 물과 흙의 삼위일체입니다"라고 노래했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세계적 작가인 백남준도 역시 예술적 샤먼이다. 백남준의 전문가이기도 한 경기도미술관 김홍희 관장도 "백남준은 샤머니즘 세계관에 입각하여 인류기원과 역사를 해석하고 한국선조를 샤머니즘 신화에 결부시킴으로써 몽골, 우랄알타이계의 아시아 정체성을 강조했다"고 결론졌다.
백년만에 다시 복원되는 돈의문에 담긴 뜻
문화재복구와 관련해서도 한마디 하겠다. '진달래' 연작으로 이름이 난 작가 김정수를 인사동에서 만나 들은 이야기다. 그는 프랑스에 17년간 살았는데 GDP가 3만 달러가 넘으면 시민들이 문화재 복원에 비등한 관심을 보인단다. 우리도 그 때를 대비해 문화재를 잘 보전하지 하지 않으면 복구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많이 든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서울시가 2013년까지 '돈의문(敦義門, 서대문)'의 복권을 추진한다는 것은 시대흐름에 맞는 것 같다. 돈의문은 1915년 경성개발계획으로 전차가 복선화되면서 강제로 철거됐다. 숭례문 화재 이후 '내셔널트러스트', '아름지기' 등 문화유산재단이 활성화되고 있고 북촌 한옥도 좋은 방향을 타 그런 요구가 더 높아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한국문화를 지키려 목숨을 건(?) 사람은 다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한국에 35년 거주하면서 보니 일제 때 한옥 90%가 계획적으로 철거됐다고 주장하는 한옥지킴이 피터 바돌로뮤(P. Batholomew)씨. 그는 자신이 30년을 살며 가꿔온 성북구 동소문동 한옥을 재개발하려 하자 소송을 시작했다. 1심에서 이겼으나 2심이 남아 있어 지금 고군분투중이다.
또 한 사람은 바로 북촌 가회동 31번지에 사는 영국인 기자 데이비드 킬번(D. Kilburn)씨다. 그는 자신이 사는 한옥집이 재개발로 헐리는 걸 반대하다 주민들의 표적이 되었다. 결국 이러한 스트레스에 지병인 교통사고 후유증이 악화되어 실명하게 된다. 그의 한국인 아내 최금옥씨는 여러 모로 시달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궁암에 걸렸다.
또 다른 사람은 <발칙한 한국학> 등을 집필한 독창적 문화비평가 J. 스콧 버거슨(Scott Burgeson)씨다. 그는 버클리대 출신으로 한국문화를 통렬하게 비꼬는 데 명수다.
"숭례문 사라졌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한국인들은 돈이 전통을 사정없이 짓밟는 결정적 순간에는 입 다문다. 서울은 개발과 진보라는 이름 아래 암매장 당한 역사의 공동묘지, 조선궁궐 사동궁을 깔아뭉개고 주차장을 만드는 골 때리는 코리아는 고등학교다. 유럽은 전후 폐허된 옛 도시복원에 혈안인데 한국은 멀쩡한 과거유산도 재개발로 없앤다."자연과 문화유산은 원금, 우린 이자를 받을 뿐
서울에서 유일하게 한국문화와 전통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인사동이다. "인사동에 10년 전에는 기와집도 많았는데 지금은 1~2개 밖에 없다"는 버거슨씨의 말대로 문화1번지가 변질되거나 훼손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2년 서울시의 인사동 '문화지구' 지정이나 이번 서울시 정비조치도 같은 취지이리라. '피맛골'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박경리 선생의 '자연원금론'은 유명하다. 자연이 훼손되면 원금이 사라지고 그 이자도 없다는 말이다. 문화유산도 마찬가지리라. 한번 훼손되면 복구가 어렵다. 4대강 사업의 문제는 바로 이거다. 자연개발이든 문화유산발굴이든 원금을 까먹지 않는 범위에서 시행해야 한다. 그래야 후손들도 그 이자를 먹고살지 않겠는가.
서울시의 표어가 된 '컬처노믹스(문화가 경제주도)'나 '디자인도시 서울'. 그 취지는 좋으나 서울시민의 일상과 밀착된 것은 아니다. 시민들에게 '문화접근법(자신 사는 동네 몇 km 안에 문화공간만들기)'이나 제정할 일이다. 인사동에만 퍼부은 돈이 50억이 다 되는데 '문화지구1호'로 그 위상을 높이는 데에는 얼마나 예산을 썼는지 묻고 싶다.
하기야 인사동 초입에 석장승 하나 지키지 못하는 수준으로 무슨 정책을 펴겠는가. 서울의 부동산값 오른 만큼 삶의 질을 올릴 수는 없는가. 이제 인사동 문화정책은 사람이나 로봇 수문장이 없다면 돈 안 드는 석장승 수문장 복원부터라도 시작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