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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이거나 초상날 저녁이면 아이들이 떼를 지어 아버지를 마중 나가곤 하던 시절에 도깨비는 의심의 필요가 없이 '저기' 어디에 있는 별빛 같은 것이었다. 귀에 대고 끊임없이 알 수도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바람 같은 것이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놓치는 법이 없이 끈질기게 따라오는 발자국 같은 것인가 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잊지 말자고 맹세하고 다짐하는 숨소리 같은 것이었다.

맨 뒤에서 걷는 남자 아이는 가끔 뭔가가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도깨비를 발견하고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여자 아이는 걸으면서도 문득문득 도깨비의 숨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때문에 누구도 맨 뒤에 서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숨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재잘재잘 새처럼 말을 하거나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도깨비를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도깨비가 두려워서 엉덩방아를 찧는 것이 아니었고, 도깨비가 두려워서 그 숨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었다. 뭐라고나 할까. 굳이 피할 필요도 없지만, 피하려 한다 해서 피할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들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바로 내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싹오싹 소름이 돋기도 하지만, 그래서 누군가 장난으로 도깨비다, 하고 소리라도 지를라치면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처럼 소리를 질러대며 어둠 속으로 뿔뿔이 흩어지기도 하지만 이내 다시 모여서 키득거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잠잘 때만 빼고 항상 함께 했던 4형제

동화책 <도깨비의 비밀> 겉그림.
 동화책 <도깨비의 비밀> 겉그림.
ⓒ 상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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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도 모호하고, 그렇게도 신비로 가득한 도깨비를 우리는 학교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그러니까 동화책 같은 데서 도깨비 이야기를 읽기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다. 별나게도 우애가 좋았던 아버지 4형제는 그렇게도 일찌감치 우리를 모호한 상상의 세계로 인도해 주셨던 셈이다.

친형제도 아니고 사촌간이었다. 특이하게도 아버지와 세 분 당숙들 모두 남자 형제가 없었다. 큰댁 작은댁 할 것 없이 할아버지들이 모두 아들은 딱 하나씩만 둔 딸부자였던 셈이다. 누이들이 모두 시집간 뒤에 닥친 외로움 때문이었는지 아버지와 당숙들은 비유를 하자면 '4총사'처럼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일을 같이 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버지와 당숙들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다. 모내기나 타작 같은 큰일은 말할 것도 없었고, 돼지우리를 고치는 작은 일도 혼자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듯 한꺼번에 달려들어 뚝딱 금방 해치웠다. 심지어는 어디서 누군가 하루 품을 사자고 해도 혼자서는 안 간다고 거절하는 반면 형제들이 다 필요하다고 하면 그제야 응했고, 멀리서 누구 초상이 났다고 부고가 와도 시간을 조율해서 4형제가 나란히 논둑길을 걸었다.

뿐만 아니라 시집간 고모 가운데 누군가 친정 나들이라도 올라치면 아침밥은 큰댁에서, 점심은 작은댁에서, 저녁은 또 다른 작은댁에서, 하는 식으로 사전에 무슨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으레 그렇게 해야 한다는 듯 돌아가며 상을 차렸다. 식사 시간이 되면 어른 아이들 할 것 없이 수십 명이 한꺼번에 이동을 하게 되는데 아이들에게는 잔치도 그런 잔치가 없었고, 자랑거리도 그런 자랑거리가 없었다.

문제는 4형제의 그런 돈독한 우애가 술자리에서도 여지없이 그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이었다. 일단 술판이 벌어졌다 하면 형님 한 잔, 아우 한 잔 하는 식으로 끝이 없었고, 장날이거나 멀리 타동네에서 초상이라도 난 날이면 온 동네의 개들이 새벽녘까지 짖어대야만 할 정도로 요란해서 엄마와 당숙모들께서는 다음 날 동네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느라 진땀을 빼야 할 지경이었다.

때문에 엄마와 당숙모들은 장날이 다가오면 이런저런 온갖 구실을 만들어내느라 바빴다. 오늘 할 일을 굳이 장날까지 미뤄둔다거나 장이 서는 하루 전날 옷가지들을 죄다 꺼내 물에 담가버리는 것인데, 그러나 그런 작전이 성공한 예는 거의 없었다.

특히나 보리타작도 끝났고, 모내기도 끝나 손이 한가해진 여름이면 거의 모든 장날마다 실랑이가 벌어졌다. 장에 무슨 볼 일이 있다는 것이냐, 어디에 무슨 작은 각시라도 두었느냐, 등등 엄마의 목소리는 높지만, 그러나 마음이 이미 콩밭에 가 있는 아버지의 발길을 막지는 못한다.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벌써 저만치 가고 있는 아버지의 뒤에 대고 "갈치꼬랑지라도 한 마리 사 오라"는 식으로 인정을 해버리는 것이다.

아버지가 만났단 그 도깨비는 대체 어디 있나

어떤 이유로 집을 나섰건, 아버지와 당숙들은 결코 벌건 대낮에 귀가하는 법이 없었다. 때문에 산 그림자가 길고 두텁게 마을 앞으로 장막처럼 내려앉는 시간쯤이면 이 집 저 집에서 엄마들이 고개를 길게 빼고 당산나무 쪽을 보는 듯이 안 보는 듯이 보고, 또 보고, 그러다가 결국은 아이들을 부르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귀를 막고 엄마의 부르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애를 써보기도 하지만, 어둠이 짙게 깔릴 즈음이면 결국 "에이 씨이, 아빠는" 어쩌고 투덜대며 집을 나서기 마련이다.

투덜대며 마지못해 집을 나서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약속이 없었는데도 있었던 것처럼 당산나무 밑으로 하나씩 둘씩 모여드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벌써 들떠 있다. 어쩌면 오늘밤에 진짜 도깨비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고, 정말로 도깨비를 만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또 있기 때문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 소리나 마구 지껄여대며 논둑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논둑에 나와 있던 개구리들이 풍덩풍덩 논 속으로 달아나는 소리는 또 그 얼마나 천둥소리처럼 요란하게 가슴을 두드리는가. 허공을 나는 개똥벌레들의 푸름한 불빛은 왜 또 그리도 많은가. 그래서 더욱 큰소리로 떠들고 노래를 불러야만 한다. 얼마나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떠들어대며 논둑길을 걷노라면 이윽고 어둠 저 편에서 어른들의 노랫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마치 화답하는 메아리처럼 들려오기 시작한다.

두 명씩 두 명씩 짝을 지어 갈짓자 걸음으로 휘청거리는 서로를 부축하며 전진하는 어른들은 이미 도깨비들과의 한판 씨름을 멋지게 승리로 끝내버린 뒤였다. 그래서 그렇게 다정하게도 어깨동무를 하고, 그래서 그렇게 신나게도 노래를 부르며, 옷이 모두 흙탕에 젖었거나 아예 찢어져서 너덜거리는데도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마중 나온 아이들을 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어른들은 결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도깨비를 만나는 일이 없었고, 씨름을 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아침이면 집집마다 벌어지는 또 한 차례의 소동

아버지 4형제는 술만 드시면, 도깨비를 만났다고 말씀하셨다. 영화 <선생 김봉두>의 한 장면.
 아버지 4형제는 술만 드시면, 도깨비를 만났다고 말씀하셨다. 영화 <선생 김봉두>의 한 장면.
ⓒ 좋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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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요놈 새끼들. 애비가 걱정돼서 나왔구나. 봐라. 이젠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 애비가 당숙들이랑 힘을 합쳐서 말이다, 봐라, 요렇게, 요렇게 왼쪽 다리로 걸어서 그놈의 도깨비를 그냥."

술 냄새 팍팍 풍겨대며, 똥물인지 시궁창물인지 알 수도 없는 악취를 폭폭 풍겨대며 아버지와 당숙들은 열심히 무용담을 늘어놓지만, 당신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하면서 아이를 끌어안고 뽀뽀까지 해가며 도깨비와의 씨름 장면을 재현하다 보니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넘어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게 되는데, 다음 날 아침이면 당연하게도 집집마다에서 또 한 차례의 소동이 벌어진다.

당일 저녁에는 아버지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의식을 잃고 쓰러져 버렸기 때문에, 드르렁드렁 코고는 소리도 요란한 속에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샌 엄마가 잠에서 깬 아버지를 문초하는 것이지만, 도무지 바라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기연가미연가 알쏭달쏭한 소리만 나오고 있으니, 엄마의 목소리가 자연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때 보이는 아버지의 태도는 가히 박물관급이었다.

"아 이 사람아 우리들이 먼 돈이 있어서 술을 마셨겠어, 술을 마시기는. 그 써글놈의 도깨비를 만나는 바람에 죽을 둥 살 둥 경을 쳤다니께 그러네. 용케도 어떻게 왼쪽 다리를 탁 걸어서 넘어뜨렸기 망정이지, 안 그랬음 자네 서방 잃고 과부될 뻔한 거여, 이 사람아."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혀. 세상 천지 도깨비가 어디 있다고."

"얼래? 아 못 믿겠음 다음 장날에는 자네가 한 번 가 봐. 아 그 써글놈의 도깨비 키는 또 어찌나 크던지, 나도 아직 얼굴도 못 봤으니께, 자네가 어디 가서 얼굴이나 보고 나한테 말해봐. 들어보게."

이렇게 되면 엄마도 더 이상은 강력한 추궁을 못하게 된다. 장이 서는 읍내까지는 십 리도 넘었다. 버스는커녕 자전거 한 대도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 아저씨의 따르릉 소리로나 겨우 구경할 수 있었던 시절에 엄마들은 거의 장 나들이를 하지 않았다. 장을 보러 간다 해도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저녁까지 있을 이유가 없었고, 도깨비가 정말로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말문이 막힌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당숙들을 찾아가서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확인해보는 것뿐이다. 그것은 당숙모들도 마찬가지여서, 이 집에서는 저 집으로, 저 집에서는 또 이 집으로 분주하게 발품을 판다. 손아래 당숙모는 시숙님을 찾아가서, 손위 당숙모는 시아제를 찾아가서 열심히 심문(?)을 해보는 것이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하나같이 도깨비 이야기뿐이다.

오는 길에 도깨비를 만났다. 씨름을 하자고 해서 싫다고 했지만 계속 쫓아오면서 길을 막아서고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갈치꼬랑지도 잃어 버렸고, 그래서 옷도 찢어지고 신발도 없어진 거다. 그래도 살아서 돌아왔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이런 한결같은 답변 앞에서 엄마는, 당숙모는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치고 하늘을 쳐다보고, 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몸짓을 해보지만, 그렇다고 도깨비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명해낼 수가 없고 보니 답답하고 속만 상할 뿐이다.

도깨비가 아니면 어찌 그런 이상한 행동을...

도대체 그놈의 도깨비는 정체가 무엇인가. 실제로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어떻게 보면 정말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를테면 어떤 날 아버지와 당숙들은 마을에 다 와서도 헤어질 줄을 모르고 서로가 서로를 바래다준다고 밤새 왔다 갔다를 되풀이하는데 그러한 행위는 도저히 일반 상식만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형님 혼자 집으로 가시다가 또 도깨비를 만나면 안 되니까 바래다 드린다, 하고 바래다주면, 형님은 다시 아우가 혼자 가다가 도깨비를 만나면 곤란하다고 해서 또 바래다주고, 그렇게 끝도 없이 바래다주고, 바래다주고를 반복하는 동안 개들은 죽는다고 짖어대고, 닭이 울고, 먼 동이 터 오르고, 이렇게 형제간의 우애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어른들의 눈에 아이들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처음 두세 번 정도는 어른들을 따라서 왔다, 갔다를 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그러면 선잠이 들었던 엄마는 왜 혼자 왔느냐 묻고, 아이들은 아빠가 작은댁에서 주무신다고, 혹은 큰댁에서 주무시기로 했다고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하고 마는데, 결코 마음 놓을 수 없는 이 거짓말 뒤에 문득 도깨비는 정말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깨비가 아니고서야 아빠들이, 당숙들이 어떻게 저런 이상한 행동으로 밤을 꼬박 지새울 수 있단 말인가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그들의 특별한 술버릇을 공개합니다> 응모글



태그:#도깨비, #술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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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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